칼럼

원인불명으로 이체된 비트코인의 임의처분과 배임죄의 한계

핵심 결론 법률상 원인 없이 가상자산을 이체받아 반환의무를 부담하더라도, 그 사정만으로 권리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신임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착오송금에 관한 횡령 법리를 유추하여 처분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20도9789, 2019도9756, 2021도9855, 2010도891, 2020도11566, 2008도10572

해당판례

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20도9789 판결
사건명: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인정된 죄명: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하급심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2020. 2. 14. 선고 2019고합56 판결은 주위적 공소사실인 횡령을 이유무죄로 판단하고, 예비적 공소사실인 배임을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였다.
횡령에 관해서는 비트코인이 유체물이나 관리할 수 있는 동력에 해당하지 않아 횡령죄의 객체인 재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배임에 관해서는 법률상 원인 없이 비트코인을 이체받은 사람이 소유자에게 반환하기 위해 이를 보관할 임무를 부담하므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수원고등법원 2020. 7. 2. 선고 2020노171 판결은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다. 이에 피고인만 배임 유죄 부분에 관하여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부당이득반환의무와 배임죄상 신임관계를 구별하여 유죄 판단을 파기하였다. 예비적 공소사실인 배임 부분과 동일체 관계에 있는 주위적 횡령 부분도 함께 파기·환송하였다.
파기환송심인 수원고등법원 2022. 6. 8. 선고 2021노1056 판결은 제1심의 배임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횡령 무죄 부분에 대한 검사의 항소도 기각하여, 환송심에서는 두 공소사실 모두 무죄로 정리되었다.
다만 횡령 부분은 검사가 상고하지 않아 환송심에서 다시 다툴 수 없는 효력이 발생한 상태였다. 대법원이 이 사건에서 실질적으로 판단한 핵심은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해당 여부이다.

관련판례

  •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배임죄의 주체가 되려면 당사자 관계의 본질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데 있어야 한다는 판례이다. 대상판결은 민사상 반환채무만으로 이러한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근거로 원용하였다.
  • 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1도9855 판결 가상자산이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는 판례이다. 대상판결도 비트코인의 재산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재산상 이익의 존재와 배임죄상 신임관계의 존재는 별개의 요건이다.
  •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착오송금된 돈을 임의로 인출·소비한 경우의 횡령죄에 관한 판례이다. 대상판결은 이 법리를 원인불명으로 이체된 가상자산에 유추하여 배임죄를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하였다.
  • 대법원 2022. 3. 31. 선고 2020도11566 판결 증권회사 직원이 착오로 입고된 주식을 임의로 매도한 사건에서 배임책임을 인정한 비교판례이다. 직원과 회사 사이의 기존 신임관계 및 사고 수습에 관한 임무가 문제 되었다는 점에서, 당사자 사이에 계약관계조차 없었던 대상사건과 구별된다.
  • 대법원 2009. 4. 9. 선고 2008도10572 판결 환송 후 새로운 증거로 판단의 기초가 달라지지 않는 한 환송법원은 상고심의 파기이유가 된 사실상·법률상 판단에 기속된다는 판례이다. 환송심이 배임 무죄를 판단하면서 원용하였다.

관련법령

  • 형법 제355조 제2항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취득하게 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의 배임죄.
  • 형법 제355조 제1항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횡령 또는 반환거부. 주위적 공소사실의 기초가 된 조항이다.
  •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제2호 횡령·배임 등으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인 경우의 가중처벌. 기본범죄가 성립하지 않으면 가중처벌도 성립하지 않는다.
  • 민법 제741조 법률상 원인 없이 얻은 이익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의무. 대법원이 형사책임과 구별하여 언급한 민사상 반환관계의 근거이다.
  • 대한민국헌법 제12조 제1항, 제13조 제1항 죄형법정주의와 형사처벌의 법률상 근거에 관한 헌법적 토대.
  • 법원조직법 제8조 해당 사건에 관한 상급심 판단의 기속력.
  •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의 무죄판결. 환송심의 배임 무죄 선고 근거이다.

사실관계

피고인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계정을 보유한 개인이고, 피해자로 기재된 사람은 다른 거래소 계정에 200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던 그리스 국적자였다. 양자 사이에는 계약관계가 없었다.
피해자의 거래소 가상지갑에 있던 199.999비트코인이 2018. 6. 20.경 알 수 없는 경위로 피고인의 계정에 이체되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직접 주소를 잘못 입력하였다는 사실이 확정된 사건이 아니다. 권리자의 착오인지 거래소 시스템의 문제인지 등 구체적인 이체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비적 배임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다음 날 그중 29.998비트코인과 169.996비트코인을 자신의 다른 계정들로 나누어 이체하였다는 내용이다. 검사는 합계 199.994비트코인, 당시 약 1,487,235,086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피해자에게 같은 금액의 손해를 가하였다고 기소하였다.
주위적 횡령 공소사실에는 피고인이 일부 비트코인을 원화로 환전하여 대출채무 변제와 유흥비 등에 사용하고, 거래소 법무팀의 반환요구에도 나머지 비트코인의 반환을 거절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피고인은 타인의 비트코인이라는 점과 별개로, 피해자와 아무런 신임관계가 없으므로 피해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법리

일반적인 판단 기준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단순히 타인에게 채무를 부담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타인을 위하여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데 있어야 한다.
따라서 부당이득반환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반환채무자를 권리자의 재산관리자로 볼 수 없다. 자신의 민사상 채무를 이행해야 하는 지위와 타인의 재산관리 사무를 맡은 지위는 구별된다.
가상자산이 재산상 이익이라는 점도 배임죄 성립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경제적 가치가 있더라도 피고인에게 필요한 신분과 신임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대법원은 판결 당시의 법제와 가상자산의 특성을 고려하여, 법정화폐의 착오송금에 관한 횡령 법리를 가상자산에 그대로 유추할 수 없다고 보았다. 신의칙만으로 형사처벌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
해당 사건에 대한 적용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는 계약관계가 없었고, 비트코인이 어떤 경위로 이전되었는지도 불명확하였다. 대법원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자가 피해자인지 거래소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나아가 피해자에게 직접 반환의무를 부담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반환의무 자체만으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하여 비트코인을 보존·관리하는 사무를 맡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환송 전 원심은 신의칙과 착오송금 판례를 근거로 보관·반환 임무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그 논리가 민사상 채무를 형사상 신임관계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환송심은 이러한 판단에 따라 배임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무죄의 이유는 손해액이 작거나 처분 사실이 없어서가 아니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횡령 부분에서는 비트코인을 형법상 재물로 보기 어렵다는 하급심 판단이 유지되었다. 다만 대법원의 파기이유는 배임죄의 주체에 관한 것이므로, 하급심의 횡령 판단과 대법원의 배임 판단을 구분하여 인용하여야 한다.

실무적 유의점

착오이체 사건에서는 이체 경위와 권리관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거래소 내부 장부상의 이전인지 블록체인상 이전인지, 어떤 사람의 자산이 감소하였는지, 거래소가 손실을 보전했는지 등이 반환청구권자의 특정에 중요하다.
형사책임은 기존 계약이나 위탁·보관관계가 있었는지를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이 사건의 판단을 투자금 운용자, 수탁자 또는 거래소 직원이 맡아 관리하던 가상자산을 유용한 경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반환요구를 받고도 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반환의무와 그 불이행뿐 아니라, 타인의 재산관리 사무를 맡았다는 신임관계의 근거가 필요하다.
무죄 판단은 비트코인의 소유권이나 자유로운 처분권을 피고인에게 인정한 것이 아니다. 민사상 부당이득반환의무는 별도로 문제 될 수 있으며, 대상판결은 그 청구권자와 구체적인 반환범위까지 확정하지 않았다.
판결문에서 가상자산 규제나 처벌규정의 부재를 언급한 부분은 판결 당시의 법제에 관한 설명이다. 홈페이지에서는 이를 현재의 모든 가상자산 규제 상황에 관한 설명으로 옮기기보다, 민사상 반환채무만으로 배임죄상 신임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핵심 법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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