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가핵심기술 유출죄의 고의와 죄수

핵심 결론 국가핵심기술 유출죄의 고의는 해당 기술이 법상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었음을 알 것까지 요하지 않고,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 유출 시 국민경제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인식으로 족하다. 포괄일죄의 일부가 다른 죄와 상상적 경합인 경우 포괄일죄 전체를 상상적 경합으로 처단한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25도7729, 2020도3705, 2013도12266, 2002다60610, 2005도6223, 2009다12528, 2017도13791, 2003도3044

해당 판례

대법원 2025. 8. 14. 선고 2025도7729 판결 [산업기술의유출방지및보호에관한법률위반·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위반(영업비밀국외누설등)·업무상배임] — 제1부(재판장 서경환, 노태악, 신숙희, 주심 마용주)
  • 피고인·상고인 A / 변호인 변호사 조태욱
  •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 확정
  • 상고기각 사유: ⓐ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구 산업기술보호법위반죄·부정경쟁방지법위반죄·업무상배임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 양형판단에 법리오해·심리미진이 있다는 주장은 결국 양형부당 주장인데,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상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금고가 선고된 사건에서만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가 허용되므로 적법한 상고이유가 아니다
대법원 판결은 2면 분량으로 법리 판시를 따로 하지 않았으므로, 실질적 내용은 원심인 수원고등법원 판결에 있다. 인용할 때는 원심을 주된 출처로 삼고 대법원 판결로 확정 사실을 부기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급심
단계사건번호선고형
제1심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24. 11. 7. 선고 2024고합53 판결징역 1년 6개월, 벌금 2,000만 원
항소심(원심)수원고등법원 2025. 5. 7. 선고 2024노1363 판결 (제2-1형사부, 재판장 김민기, 김종우, 박광서)징역 5년, 벌금 3,000만 원(미납 시 10만 원을 1일로 환산한 노역장유치, 가납명령)
상고심대법원 2025. 8. 14. 선고 2025도7729 판결상고기각 → 확정
항소심에서 형이 3배 이상 가중되었다. 다만 형식적으로는 검사의 양형부당 항소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직권으로 죄수 판단의 잘못을 발견하여 파기한 뒤 다시 양형한 결과다. 원심은 피고인과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직권파기했고, 최종적으로 검사가 구형한 대로 형을 정했다.
피고인은 2024. 5. 10. 공소제기되었다.

관련 법령

처벌조항
영업비밀 정의조항의 연혁
원심은 비밀관리성 요건이 계속 완화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왔음을 명시적으로 설시했다.
시기조문 표현
구 부정경쟁방지법(2015. 1. 28. 법률 제1308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2호"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2015. 1. 28. 개정"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2019. 1. 8. 법률 제16204호 개정 ~ 현재"비밀로 관리된"
행정 고시의 연혁
  • 산업자원부고시 제2007-109호 — '80나노급 이하 D램에 해당되는 설계·공정·소자·조립·검사 기술'
  • 지식경제부고시 제2012-13호 — '60나노급 이하 D램…3차원 적층형성 기술'(피고인 입사 당시)
  • 산업통상자원부고시 제2016-211호(2016. 11. 28.) — '30나노 이하급 D램에 해당되는 설계·공정·소자기술 및 3차원 적층형성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
  • 2022. 12. 19. — HKMG 기술이 위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고 판정
양형 관련
2025. 법률 제20694호로 개정되어 2025. 7. 22.부터 시행되는 현행 산업기술보호법 제36조 제1항은 법정형을 징역 3년 이상, 벌금 65억 원 이하 병과로 상향

관련 판례

쟁점판례
포괄일죄의 일부도 다른 죄와 상상적 경합을 이룰 수 있음대법원 2023. 6. 29. 선고 2020도3705 판결(취지 참조)
산업기술에 대하여는 비밀유지성 내지 비밀관리성이 요구되지 않고, 관련 비밀 보호조치를 하여야만 국가핵심기술이 되는 것은 아님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도12266 판결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다'의 의미대법원 2004. 9. 23. 선고 2002다60610 판결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의 의미 /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거나 시제품 실험으로 알아낼 수 있어도 영업비밀성 인정대법원 2008. 2. 15. 선고 2005도6223 판결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다'의 의미와 판단요소대법원 2011. 7. 14. 선고 2009다12528 판결 /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역설계가 가능하더라도 영업비밀로 보는 데 지장 없음대법원 1999. 3. 12. 선고 98도4704 판결
업계 공통 시행 내용, 학술지 공개, 공개 특허출원서류 포함, 경쟁업체도 생산 등의 사정만으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라 단정할 수 없음대법원 2005. 3. 11. 선고 2003도3044 판결

사실관계

피고인의 지위와 경력
피고인은 T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전공하여 공학석사를 취득하고 2013. 8. 19.경 피해회사 B 주식회사에 입사하여 반도체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했다. 2020. 7. 1. 중국 상해 사무실로 파견되어 근무하다가 2022. 7. 1. 본사로 복귀했고, 2022. 7. 15. 퇴직신청을 했다. 상해 사무실에서는 고객의 제품 관련 문의에 대응하는 업무도 담당했다.
피고인은 입사 시 영업비밀보호 등 서약서에 서명했다. "비밀로 분류되어 있는지를 묻지 아니하고 재직 기간 중 지득한 회사의 영업비밀을 제3자에게 누설하거나 업무 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한다", "재직 중 가지고 있던 도표, 설계도, 명세서 등 일체의 자료를 퇴직 시 회사에 반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직 정황
일자내용
2022. 4. 10.위챗으로 헤드헌터에게 "LP DRAM 개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 발송
2022. 5. 25.직장 동료에게 카카오톡으로 "K 메모리 한다 이제" 메시지 발송
2022. 6. 7.국내 거주지 임대인에게 "중국에서 취직하게 되어 한국의 집을 비우려 한다" 메시지
2022. 6. 10.K가 보낸 지적재산권 및 비밀정보 유출금지 서약서 출력
2022. 6. 17.동료 직원에게 "리더에게는 마지막까지 숨기려고 한다" 메시지
2022. 6. 26.모친에게 "K에 가기로 했어요. 첫해 연봉은 세전 160만 위안(한화 약 3억 2천만 원)이에요" 메시지
피고인의 피해회사 연봉은 2021년 62,520,000원, 2022년 70,572,000원이었다. 원심은 이직 조건이 기존 연봉보다 과도하게 높은 점에 비추어 "국가핵심기술이나 영업비밀을 유출하는 것에 대한 대가가 포함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유출 행위
상해 사무실 근무 만료 직전인 2022. 6. 27.부터 6. 30.까지 4일 동안 약 4,000쪽이 넘는 문서를 '모아 찍기'로 1,309장 출력했다(기소분 1,090장).
일자출력 장수기소 대상 연번마지막 출력 → 퇴근
2022. 6. 27.355장1~1219:27 → 19:32
2022. 6. 28.306장13~2817:02 → 17:05
2022. 6. 29.377장29~3215:53 → 16:54
2022. 6. 30.271장33~5814:09 → 21:54
  • 연번 1, 2: 'HKMG 적용에 따른 Performance 개선 정리_20191014_M', 'HKMG Study_Process Flow_201125_개인소장용' → 국가핵심기술이자 영업비밀
  • 연번 3~58: DRAM 동작·설계·공정 시험·불량 분석 등 56개 문서 → 영업비밀
피고인은 파일을 중앙서버에서 다운로드하여 출력한 다음 곧바로 다운로드 파일을 삭제했다. 평소 백팩만 메고 출퇴근하던 피고인은 이 4일간 쇼핑백을 들고 출퇴근했다.
발각 및 도주 경위
일자내용
2022. 7. 18.퇴직예정자로 분류 → 내규에 따라 보안모니터링 실시
2022. 7. 19.1차 면담. 피고인은 "인쇄물을 일부 파쇄했다", "중국 기업 면접은 이직 목적이 아니라 시장 값이 얼마인지 알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
2022. 7. 20.상해 사무실에 확인 요청 → 인쇄물이 남아있지 않다는 회신. 2차 면담에서 추궁하자 피고인은 울면서 조사 거부
2022. 7. 22.(금)컴퓨터·휴대폰 포렌식에만 동의
2022. 7. 25.(월) 14:14팀장에게 "몸 상태가 안 좋아 휴가 내야 할 것 같다, 조사 결과 기다릴게요" 메시지
같은 날 18:15실제로는 인천공항에서 중국으로 출국
2022. 8. 30.피해회사 징계위원회, '정보자산 무단 수집 및 유출' 사유로 징계해고 결의
2023. 8. 4.피해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W가 "법적조치는 다 철회됐다"는 카카오톡 메시지 발송
2024. 4. 16.제주도 여행 중 체포
배우자는 피고인과 함께 출국하지 않고 2022. 8. 1.경 집기류를 옮긴 뒤 8. 5. 퇴거했다. 원심은 피고인이 조사 결과를 우려하여 원래 출국 계획보다 일정을 앞당겨 급하게 출국한 것으로 보았다.
HKMG 기술의 의의
DRAM의 경쟁력은 동일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하는 데 달려 있는데,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면 절연막이 얇아져 누설 전류가 증가하는 문제가 있었다. HKMG 기술은 기존 절연막 물질인 SiON보다 얇으면서도 절연 효과가 뛰어난 High-K 물질을 적용해 두께를 줄이면서 누설 전류를 막는 기술이다. 피해회사는 2010년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2022년부터 양산을 시작했고, 범행 무렵 이 기술을 적용해 양산하는 업체는 AV사와 피해회사뿐이었다.

법리

가. 직권판단 — 죄수관계

제1심의 죄수 판단
행위성립 죄관계
범죄사실 제1항(연번 1, 2)구 산업기술보호법위반 + 부정경쟁방지법위반 + 업무상배임, 각 포괄일죄3죄 상호 상상적 경합
범죄사실 제2항(연번 3~58)부정경쟁방지법위반 + 업무상배임, 각 포괄일죄2죄 상호 상상적 경합
제1항과 제2항실체적 경합(경합범 가중)
원심의 시정
원심은 부정경쟁방지법위반죄와 업무상배임죄가 동일한 피해자에 대하여 단일한 범의와 동일한 방법으로 문서를 유출한 것이므로 제1항·제2항을 통틀어 각 하나의 포괄일죄라고 보았다. 그리고 포괄일죄의 일부도 다른 죄와 상상적 경합을 이룰 수 있으므로(2020도3705 취지 참조), 연번 1, 2에 관한 구 산업기술보호법위반죄는 그 포괄일죄들의 일부와 상상적 경합 관계에 선다.
처단 범위의 확장 — 여기서 원심은 실무상 의미 있는 판시를 했다.
포괄일죄를 상상적 경합범으로 처단하는 범위는 상상적 경합 관계를 이루는 부분뿐만 아니라 그 포괄일죄 전체를 그 다른 죄와의 상상적 경합범으로 처단하여야 한다.
근거는 두 가지다.
  • ㉠ 기판력 — 포괄일죄의 일부와 다른 죄가 상상적 경합 관계를 이루는 경우, 그중 어느 하나의 범행에 대하여만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그 기판력이 나머지 죄 전체에도 미친다.
  • ㉡ 일죄의 성질 — 포괄일죄는 1죄이므로 전체에 대하여 하나의 형을 선고해야 하는데, 일부만 다른 죄와의 상상적 경합범으로 처단하면 나머지는 별도로 처단하게 되어 하나의 포괄일죄를 과형상 수죄와 같이 취급하는 결과가 된다. 이는 포괄일죄의 성질에 반하고 피고인에게도 불리하다.
결론적으로 부정경쟁방지법위반죄 전체와 업무상배임죄 전체가 구 산업기술보호법위반죄와 상상적 경합범으로 처단되고, 형이 가장 무거운 구 산업기술보호법위반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된다. 제1심이 경합범 가중을 한 것은 죄수에 관한 법리 오해다.
역설적 결과 — 이 시정은 논리상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경합범 가중 배제)인데, 실제 선고형은 징역 1년 6개월에서 5년으로 올랐다. 죄수 정리로 파기의 문이 열리자 양형이 전면 재검토되었기 때문이다.

나. 국가핵심기술 유출죄의 고의 — 인식의 대상

피고인의 주장은 명확했다. 피해회사가 연번 1, 2 문서를 다른 자료와 마찬가지로 '대외비'로만 분류했을 뿐이므로, 그것이 다른 정보자산과 달리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할 만한 '더 중요한 기술'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원심의 판단 구조는 고의의 인식 대상을 법적 평가가 아니라 실질적 가치로 설정하는 것이었다.
설령 피고인이 HKMG 기술이 구 산업기술보호법이 정한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HKMG 기술이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으며 해외로 유출되는 경우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점은 알았다고 인정된다.
즉 "이것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기술이다"라는 인식은 필요하지 않고, "이것이 그만큼 중요한 기술이다"라는 인식으로 족하다. 전자를 요구하면 고시를 확인하지 않은 모든 기술자가 면책되기 때문이다. 이를 모르는 것은 법률의 부지에 해당할 뿐이어서 고의 인정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 제1심 이래의 논리다.
인식을 인정한 근거
  • 피고인은 공학석사로 약 9년간 반도체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여 국가핵심기술 해당 정보를 식별할 능력이 있었다
  • HKMG 기술은 피해회사가 선제적으로 개발하여 고객 문의가 많았으므로 그 경제적 가치가 높음을 잘 알고 있었다
  • 2007년 최초 고시 이래 D램 관련 기술이 계속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어 왔고, 증인 Q는 "D램 관련 부서는 국가핵심기술 취급 부서로 호명하고 있고, 본인들이 다루는 자료들이 국가핵심기술에 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 범행 무렵 HKMG를 적용해 양산하는 업체가 AV사와 피해회사뿐이어서, 대한민국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보안조치 미흡과 고의의 단절 — 원심은 상해지사에서 보안조치가 충분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산업기술에 대하여는 영업비밀과 달리 비밀유지성·비밀관리성이 요구되지 않고 보호조치를 해야만 국가핵심기술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2013도12266), 보호조치 여부에 따라 곧바로 고의 유무가 결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 영업비밀성 — 개별 판단의 방식

피고인은 문서마다 개별적으로 영업비밀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심은 이 주장 자체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피고인이 스스로 분류한 유형별로 나누어 여덟 개 집합에 대해 각각 비공지성과 경제적 유용성을 검토했다. 방법론상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분류연번피고인의 주장판단
(2)3~11사내 교육자료핵심 항목의 설계 스펙이 수치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어 공개 자료에서 확인 불가. 향후 설계 방향 예측 가능
(3)12, 17, 18, 24~26, 29, 30, 33, 42, 47, 51, 58고객에게 이미 제공된 불량검토 자료내부 기술·분석 노하우 반영. 고객은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므로 불특정 다수인에게 알려진 것이 아님
(4)13, 31, 32, 48, 57오래된 테스트 셋업 자료지속적 참고자료로 기능. 실제 작성일은 2019~2020년으로 오래되지도 않았음
(5)14, 15, 21, 23, 28인터넷 검색 가능한 기초 개념 자료단순 개념 설명이 아니라 실제 제품에 대한 실험·분석을 통해 얻은 정밀한 내부 평가 결과
(6)19, 20실장 테스트 설명자료, 기술적 가치 무관ECC 검증 실험 양식과 내부 검증결과가 구체적 수치로 정리
(7)34~38실장 평가자료일 뿐불량 관련 조건별 테스트 결과와 구체적 수치 제시
(8)27, 49, 50, 52~56특성평가보고서, 기술적 가치 무관구체적 수치로 상세 설명
(9)41, 43~46불량분석보고서, 기술적 가치 무관제품 개발 일정, 불량, 취약점 관련 구체적 수치
모든 분류에서 판단의 축은 동일하다. 구체적 수치와 내부 분석 결과가 담겨 있는지다. 개념이나 이론이 공개되어 있더라도, 그 회사가 자사 제품에 대해 실측·분석한 수치는 보유자를 통하지 않고는 입수할 수 없다는 논리다.

라. 비밀관리성 — 물리적 보안에서 전자적 보안으로

피고인의 가장 강력한 방어는 상해 사무실에 보안검색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원심은 이를 정면으로 인정하면서도 판단의 중심을 옮겼다.
별지 범죄일람표 기재 각 문서는 모두 전자적인 형태로 보관되어 있던 문서였으므로, 비밀로 관리되는지를 평가하려면 물리적인 보안 상태도 고려되어야 하지만 그보다는 전자적인 보안 조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인정된 관리 조치는 다음과 같다.
  • 접근권한 통제 — 사내 전자문서함 J의 관련 문서함 열람 권한을 부여받거나 이메일·사내 메신저로 전달받아야만 열람 가능
  • 이상징후 탐지 체계 — 산업보안부서가 시나리오를 전산 시스템에 입력해 두고, 임직원이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면 실시간으로 보고받아 즉시 조사 또는 모니터링. 이 조치는 본사와 해외 지점을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이루어짐
  • 퇴사자 관리 — 퇴사 요청 시 보안팀장에게 통보, 포렌식 전문가를 직원으로 고용하여 동의를 받아 포렌식 실시
  • 실제 작동 — 산업보안부서는 피고인의 출력 당시 이미 보고받아 주시하고 있었다
  • 상해 사무실도 출입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고 공중에 공개된 곳은 아님
'대외비' 지정 여부의 무관성 — 피고인은 ⓐ 대외비로 지정되지 않은 문서(연번 4, 8~10, 11 일부, 14, 20, 21, 30, 35, 37, 39, 42, 48)와 ⓑ 대외비 지정 기간이 만료된 문서(연번 3, 5~7, 12, 13, 16, 19, 22, 23, 56)를 구분하여 다투었으나, 원심은 세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이상 '대외비' 지정 여부와 무관하게 영업비밀이라고 판단했다.
업무 관련성의 무관성 — 피고인은 모든 문서가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자료이므로 영업비밀이 아니라고도 주장했으나, 영업비밀 해당 여부는 비공지성·경제적 유용성·비밀관리성에 따라 결정되며 유출자의 담당 업무와의 관련성은 고려되지 않는다고 배척되었다.

마. 국외 사용 목적·인식

원심은 ⓐ 경쟁업체 K로의 이직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였으므로 문서가 K 내부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고 직무 관련성도 있는 점, ⓑ 보안 수준이 낮은 상해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자료 유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본사로 복귀할 예정이었던 점, ⓒ 피고인이 이직 과정에서 스스로 메모리 업무 담당임을 강조했고 "K 메모리 한다 이제"라고 말한 점을 근거로 목적과 인식을 인정했다.
특히 ⓑ의 논증 구조가 주목할 만하다. 본사 복귀 직전에 보안이 허술한 해외 사무실에서 대량 출력이 이루어졌다는 시점의 선택 자체가 목적을 드러내는 정황으로 평가되었다.
유출 사실의 인정 — 정황증거의 구조
직접증거는 쇼핑백을 들고 퇴근하는 사진뿐이었다. 피고인은 문서를 사무실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았고 출력 후 일독한 뒤 파쇄했다고 다투었다. 법원이 이를 배척한 논리 구조는 유출 사건 실무에서 반복 활용될 만하다.
출력 행태 자체의 이례성
  • 퇴직 직전 4일간 4,000쪽 넘는 분량을 출력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
  • 2022. 6. 26.까지는 거의 출력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집중 출력. 공부 목적이라면 이직이 확정된 6월 중순부터 차근차근 출력하는 것이 일반적
  1. 17:43:39부터 19:27:51까지 약 1시간 40분 동안 원본 기준 약 1,660페이지를 출력. 그 시간 안에 읽고 파쇄하는 것이 시간상 가능한지 의문
  • 마지막 문서 출력 직후 곧바로 퇴근(6. 27.은 5분, 6. 28.은 3분 후)
변소의 자기모순
  • 피고인은 나누어 출력한 것이 파쇄 후 재출력의 증거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오히려 한 번에 출력하면 동료의 의심을 살 수 있어 나누어 출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고, 실제로 직원들은 대량 출력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
  • 파쇄 주장에 대해서도, 일독 후 즉시 파쇄했다면 하루에 수차례 파쇄를 해야 하는데 아무도 이를 목격하지 못했다는 점이 오히려 강한 의심의 근거
  • HKMG 공부 목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피해회사가 관련 문의를 본사 주요부서·개발부서 팀장이 대응하도록 하고 있고, 출력 내용이 고객에게 공개하는 정도를 넘어선 구체적 내용이라는 점에서 배척
  • 인수인계 목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실제 인수인계에 사용한 문서는 3~4건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
  • 다운로드 후 곧바로 파일 삭제 — 정당한 목적이라면 다운로드 사실을 은폐할 이유가 없음
임의제출·입국 등 사후 태도의 해석
피고인은 휴대폰·아이패드를 임의제출하고 비밀번호를 알려주었으며 한국에 여행을 왔다는 점을 결백의 정황으로 내세웠다. 법원은 이를 다음과 같이 뒤집었다.
  • 휴대폰 제출은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나 조사를 거부한 뒤, 제출하지 않으면 즉시 형사조치가 이루어질 것을 우려해 동의한 것이고, 동의서에도 **"거부할 경우 외부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으며, 동의 직후 도주했다
  • 입국은 "법적조치는 다 철회됐다"는 메시지를 읽고 안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
  • 임의제출한 기기는 범행일시로부터 약 21개월 경과 후의 것이고, 휴대폰은 **재직 당시 사용하던 모델(A2220)과 다른 모델(A1901)**이며, 태블릿은 재직 당시 보유 여부조차 불명
양형
처단형의 범위: 징역 3년~30년, 벌금 15억 원 이하
적용 양형기준(공소제기 2024. 5. 10. 기준)
  • [유형] 지식재산권 > 03. 영업비밀침해행위 > [제2유형] 국외침해
  • [특별가중인자] 산업기술보호법상의 산업기술 또는 국가·사회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영업비밀에 관한 범행, 비밀유지에 대한 특별한 의무가 있는 자
  • [권고형] 특별가중영역 징역 2년~9년 → 처단형 하한에 따라 징역 3년~9년
원심은 참고 사항을 덧붙였다. 2024. 7. 1. 이후 기소된 사건에 적용되는 현행 양형기준에 따르면 [제4유형] 국가핵심기술 등 국외침해의 가중영역은 징역 5년~12년으로, 양형기준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는 것이다.
불리한 정상 — 국가경제안보 관점에서 엄한 처벌 필요, 유출된 기술이 국외에 유출되고 회수되지 아니하여 손해액을 가늠조차 하기 힘든 점, 비밀유지에 특별한 의무가 있음에도 유출한 점, 적발 때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는 점, 피해회사의 엄벌 탄원
유리한 정상 —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
결론적으로 검사가 구형한 대로 징역 5년 및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했다.

실무적 유의점

변호인 측
  1. "국가핵심기술인 줄 몰랐다"는 고의 부인은 법률의 부지로 정리되어 통하지 않는다. 인식의 대상은 법적 지정 사실이 아니라 기술의 실질적 가치다. 따라서 다투려면 "지정 사실을 몰랐다"가 아니라 "그 기술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 줄 몰랐다"를 입증해야 하는데, 피고인의 학력·경력·담당 업무가 있으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신입사원이나 비전공 직군이 아닌 한 이 방어선은 포기하고 다른 쟁점에 자원을 집중하는 편이 낫다.
  2. 해외 사무실의 보안 미비는 영업비밀의 비밀관리성에는 유효한 공격이지만 산업기술에는 통하지 않는다. 산업기술에는 비밀관리성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2013도12266). 따라서 국가핵심기술 부분과 영업비밀 부분을 분리하여 다른 방어논리를 세워야 한다.
  3. 비밀관리성을 다툴 때는 전자적 보안조치를 먼저 확인하라. 원심은 "문서가 전자적 형태로 보관되어 있었으므로 물리적 보안보다 전자적 보안을 살펴야 한다"고 판시했다. 출입통제나 검색대 부재만 지적하면 접근권한 제한·이상징후 탐지·퇴사자 포렌식 체계의 존재로 반박된다. 공격 지점은 권한 관리가 형해화되어 있었는지(전 직원이 사실상 전체 열람 가능했는지 등)다.
  4. '대외비 미지정'과 '지정기간 만료' 주장은 단독으로는 무력하다. 세 요건을 충족하면 표시 여부와 무관하게 영업비밀이다. 다만 회사 규정 자체가 "모든 정보자산을 대외비로 관리"하는 구조라면(이 사건 산업보안 규정 제9조 제2항), 그 규정이 실질적 선별 없는 형식적 규정임을 입증하는 방향은 여전히 시도할 만하다.
  5. 문서별 개별 판단 주장은 하되, 스스로 유리한 유형 분류를 제시하는 것은 신중하라. 이 사건 피고인은 58개 문서를 유형별로 분류해 다투었는데, 법원은 그 분류를 그대로 받아 유형별로 배척했다. 분류 제시가 오히려 법원의 판단 작업을 구조화해 준 셈이다. 개별 판단을 요구하되 문서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 반박자료를 갖추지 못했다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6. "고객에게 제공된 자료"라는 주장은 고객의 비밀유지의무로 차단된다. 실효성을 가지려면 비밀유지약정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되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7. 자료의 노후화 주장은 작성일자를 먼저 확인하라.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오래된 자료"라고 주장한 문서들의 실제 작성일이 2019~2020년으로 확인되어 주장 자체가 무너졌다. 작성일자를 확인하지 않은 주장은 신빙성 전반을 훼손한다.
  8. 임의제출·자진입국 등 사후 태도를 결백의 정황으로 내세울 때는 시간 간격과 기기 동일성을 확인하라. 이 사건에서는 ⓐ 21개월 경과, ⓑ 재직 당시와 다른 모델의 휴대폰, ⓒ 태블릿의 재직 당시 보유 여부 불명이라는 점이 모두 반박 재료가 되었다. 오히려 제출 경위(강요적 상황인지)까지 파헤쳐져 도주 정황의 근거로 전환되었다.
  9. 양형기준 개정 추세를 반드시 확인하라. 원심은 기소 시점에 따라 적용 기준이 달라진다는 점을 명시하면서, 현행 기준이 징역 5년~12년임을 참고로 설시했다. 2024. 7. 1. 이후 기소 사건은 사실상 선고형의 출발점이 크게 높아졌다.
  10. 부인 전략의 양형상 비용을 계산하라. 원심이 불리한 정상의 앞자리에 둔 것이 "적발 때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는 점"이었다. 증거 구조상 유죄가 유력한 사건에서 끝까지 부인하면, 국외 유출로 회수 불가능하다는 사정과 결합해 양형이 급격히 올라간다.
기업(피해회사) 측
  1. 해외 사업장의 물리적 보안이 미흡해도 전자적 보안으로 보완이 가능하다. 이 사건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 문서함 단위의 열람권한 부여, ⓑ 이상징후 시나리오 기반 실시간 탐지, ⓒ 본사와 해외 지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체계, ⓓ 퇴사자 보안모니터링 내규다. 이 네 가지를 갖추면 검색대 부재는 극복된다.
  2. 퇴직 신청 시 보안모니터링을 내규화하라. 이 사건의 적발 단서가 퇴직예정자 분류 → 보안모니터링 실시였다. 내규로 명문화해 두면 적법성 시비도 줄어든다.
  3. 출력·다운로드 로그를 장기간 보존하라. 유출 자체에 직접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유죄를 뒷받침한 것은 일자별·시각별 출력 로그(초 단위까지), 다운로드 후 삭제 기록, 그리고 이를 퇴근 시각과 대조한 자료였다.
  4. 입사 시 영업비밀보호 서약서에 '비밀 분류 여부를 묻지 않는다'는 문언을 넣어라. 이 사건 서약서의 "비밀로 분류되어 있는지를 묻지 아니하고"라는 문구가 대외비 미지정 문서의 영업비밀성을 뒷받침했다.
  5. 교육자료·세미나자료에도 영업비밀성이 인정될 수 있다. 다만 ⓐ 사내 교육용으로 한정되고, ⓑ 접근권한자만 열람 가능하며, ⓒ 수강자에게 비밀준수 서약을 받는다는 세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Public' 표기가 있어도 사내 한정이면 무방하다.
  6. 국가핵심기술 취급 부서임을 직원들에게 인식시켜라. 증인 Q의 "D램 관련 부서는 국가핵심기술 취급 부서로 호명하고 있다"는 진술이 고의 인정의 근거가 되었다. 개별 문서에 표시하지 않더라도 부서 단위의 고지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7. 직원에게 "법적조치가 철회됐다"는 식의 메시지가 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라. 이 사건에서 피해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의 메시지가 피고인의 입국 동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체포로 이어졌으나, 반대로 자진 출석 유도로 오해되면 임의성 다툼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수사·공판 실무
  1. 직접증거가 없는 유출 사건에서 정황증거의 구성 축은 네 가지다. ⓐ 출력 행태의 이례성(시점 집중, 분량, 출력 직후 퇴근), ⓑ 이직 동기와 대가(메시지, 연봉 격차), ⓒ 변소의 자기모순(파쇄 주장 vs 목격자 부재, 인수인계 주장 vs 실제 사용 문서 수), ⓓ 은폐 행위(다운로드 파일 삭제, 급작스러운 출국).
  2. 연봉 격차는 유출 대가의 정황으로 활용된다. 원심은 기존 연봉 7,057만 원 대비 이직 후 세전 160만 위안(약 3억 2천만 원)이라는 격차를 두고 "유출에 대한 대가가 포함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3. 죄수 판단은 직권조사사항이므로 반드시 검토하라. 이 사건에서 항소심 파기의 유일한 사유가 죄수 오류였고, 그 결과 양형 전체가 다시 열렸다. 피고인 측이 죄수를 다투지 않았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한다.
인용상
  1. 대법원 2025도7729는 법리 판시가 없는 상고기각 판결이다. 2면 분량으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만 설시했으므로, 실질적 법리는 수원고등법원 2024노1363 판결에서 인용해야 한다. 표기는 **(수원고등법원 2025. 5. 7. 선고 2024노1363 판결, 대법원 2025도7729로 확정)**이 정확하다.
  2. 양형부당 상고 제한을 유의하라.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상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금고가 선고된 사건에서만 양형부당 상고가 허용된다. 이 사건 피고인은 "양형판단에 법리오해·심리미진이 있다"고 구성했으나, 대법원은 결국 양형부당 주장이라고 보아 배척했다. 형식만 바꾸어도 통하지 않는다.
  3. 구법 표기 — 이 사건에 적용된 것은 구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2023. 1. 3. 법률 제1916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6조 제1항, 제14조 제2호이고, 영업비밀 정의규정은 구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2015. 1. 28. 법률 제1308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2호이며, 처벌조항은 현행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1항 제1호 나목이다. 원심이 세 가지를 구분해 표기했으므로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4. 원심 판결문의 오류에 유의하라. 영업비밀 정의조항 연혁 부분에서 2015. 1. 28. 개정을 "법률 제11963호"로 적고 있으나, 같은 문단 앞부분에서 개정 전 법률을 "2015. 1. 28. 법률 제1308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이라고 표기한 것과 모순된다. 2015. 1. 28. 개정 법률번호는 제13081호이므로 제11963호는 오기로 보인다. 인용 시 확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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