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판결
가. 대상판결
사건명은 손해배상(기)이다.
대법원은 형사재판 과정에서 이루어진 두 차례의 공탁을 공탁금 초과 손해배상채무에 대한 승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하였다.
나. 원심판결
원심은 피고의 공탁으로 손해배상채무 전부에 대한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원고에게 위자료 1,00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한 제1심판결을 유지하면서 원고와 피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대상 대법원판결에서 파기되었다.
다. 제1심 및 확정 여부
대상 민사사건은 대법원의 파기환송까지 확인되며, 환송 후 재판 결과 및 확정 여부는 미확인이다.
관련판례
가.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 채무를 승인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채무자가 시효완성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하였다고 추정하던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다.
이 판결은 시효완성 후의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것이다. 대상판결이 다룬 시효완성 전 채무승인의 성립 범위와는 쟁점을 구분해야 한다.
나. 대법원 2015. 4. 9. 선고 2014다85216 판결
대상판결을 인용하면서, 형사사건과 관련한 공탁이 공탁금 초과 채무의 승인에 해당하는지는 공탁원인사실, 공탁 경위와 목적, 채무의 존부에 관한 다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확인하였다.
또한 시효중단 사유인 채무승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주장하는 채권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다. 대법원 2009. 11. 12. 선고 2009다51028 판결
채무자가 이자나 지연손해금의 지급에 갈음하여 채권자로 하여금 부동산을 사용·수익하게 한 경우, 계속적인 일부 변제로 보아 피담보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대상사건의 원심은 이 판결의 일부 변제 법리를 원용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사공탁의 구체적인 의미를 살피지 않고 그 효력을 손해배상채무 전부로 확장한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 대법원 2026. 1. 22. 선고 2023다285162 전원합의체 판결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에는 민법 제766조 제1항과 함께 제166조 제1항도 적용되므로,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더라도 권리행사의 객관적·합리적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의 국가배상청구권이 문제 된 사건이다. 형사공탁의 승인 범위에 관한 대상판결을 변경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유사 사건의 시효 기산점을 검토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한다.
관련법률
사실관계
가. 불법행위와 형사재판
피고는 원고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및 공갈 등의 범죄사실로 기소되었다. 피고는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을 다투며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러면서도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제1심 선고 전인 2006. 2. 14. 원고를 위하여 손해배상금 1,000만 원을 공탁하였다. 제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자 항소하였고, 항소심 선고 전인 2006. 8. 17. 다시 1,000만 원을 공탁하였다.
형사 항소심에서는 일부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검사의 상고에 따른 파기환송과 환송심을 거쳐 형사 제1심판결이 확정되었다.
나. 공탁의 내용과 공탁금 수령
피고는 두 차례의 공탁 모두에서 공탁금이 전체 손해배상금의 ‘일부’라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
각 공탁서에는 피해자의 동의가 없으면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공탁금 회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공탁금 회수제한신고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원고는 2007년경 이의를 유보하고 공탁금 합계 2,000만 원을 수령하였다.
다. 민사소송과 소멸시효 다툼
원심은 원고가 피고를 특정하여 고소한 2005. 12. 20.경에는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원고가 손해배상금 8,000만 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날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9. 3. 27.이었다.
피고는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였고, 원고는 피고의 공탁이 채무승인에 해당하여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고 반박하였다.
결국 공탁의 효력이 이미 지급된 금액을 넘는 손해배상채무에까지 미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다.
법리
가. 채무승인은 채무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뜻을 표시하는 행위이다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승인은 채무자가 채권자 또는 그 대리인에게 채무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한다.
특별한 형식은 필요하지 않으며, 명시적인 표현뿐 아니라 묵시적인 행동으로도 가능하다. 다만 그 행동에서 어느 채무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하는지가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금전을 지급하거나 공탁하였다는 외형만으로, 채권자가 주장하는 모든 채무를 승인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 형사공탁이 공탁금 초과 채무의 승인인지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은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 공탁서에 적힌 공탁원인사실의 내용
- 공탁에 이르게 된 경위와 목적
-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을 다투고 있었는지
- 손해배상채무의 성격과 액수
- 손해배상채무액과 공탁금액의 차이
- 공탁 전후 당사자의 행동과 그 밖의 사정
핵심은 공탁자가 공탁금을 넘는 채무까지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그 뜻을 피해자에게 표시하였는지이다.
다. 이 사건에서는 공탁금 초과 채무의 승인이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피고가 계속 무죄를 주장하면서 유죄판결에 대비하여 공탁하였다는 점, 공탁원인사실에 손해배상금의 일부라는 표시가 없었다는 점, 회수제한신고서의 내용 등을 고려하였다.
또한 피고가 선처를 구하며 공탁하였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후 추가로 공탁한 경위와, 위자료채무의 액수를 형사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산정하기 어려웠다는 사정도 함께 살폈다.
이를 종합하면 피고가 공탁금을 넘는 손해배상채무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뜻을 표시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형사공탁의 채무승인 효력을 일률적으로 부정한 판단이 아니다. 이 사건 공탁을 근거로 공탁금 초과 채무까지 승인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라. 2025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하는지
대상판결의 승인 범위에 관한 법리는 2025년 전원합의체 판결과 배치되지 않는다.
2025년 전원합의체는 채무승인만으로 시효완성에 대한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하는 법리를 폐기하였다. 시효완성 전 승인의 시효중단 효력 자체를 없앤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변경되었다고 해석할 근거는 없다. 실제로 2025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별개의견에서도 대상판결을 형사공탁에 의한 승인 범위를 제한한 사례로 언급하였다. 다만 이를 다수의견이 직접 인용한 것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시효완성 후에 공탁한 사건이라면, 승인 범위를 판단한 다음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의사까지 표시하였는지를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
마. 2026년 전원합의체 판결과 시효 기산점의 관계
2026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다는 사정 외에 권리행사가 객관적·합리적으로 기대될 수 있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대상사건의 원심이 고소 무렵을 기산점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모든 유사 사건에서 고소일부터 반드시 3년의 시효가 진행한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다만 형사재판이 계속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권리행사의 장애가 인정되거나 기산점이 형사판결 확정일로 늦춰지는 것은 아니다. 대상사건에서 그러한 장애가 있었는지는 별도의 사실관계 검토가 필요하다.
결국 2026년 판결도 대상판결의 형사공탁에 관한 승인 법리를 변경한 것은 아니다. 현재의 사건에서는 시효 기산점을 먼저 검토하고, 이후 공탁에 따른 중단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무적 유의점
가. 공탁금 지급과 공탁금 초과 채무의 승인을 구분해야 한다
공탁금이 손해배상에 충당된다는 문제와, 그 공탁으로 나머지 손해배상채무의 시효까지 중단되는지는 구별해야 한다.
공탁서뿐 아니라 합의 제안, 준비서면, 문자메시지 등에서 전체 채무를 인정한 표현이 있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손해배상금의 일부’라는 문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승인 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나. 피해자의 이의유보만으로 초과 채무의 승인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면서 이의를 유보하였다는 사실은 채무자가 나머지 채무까지 승인하였다는 사실과 다르다.
시효중단을 주장하려면 채무자 측의 표시와 행동을 통해 초과 채무에 대한 승인까지 증명해야 한다.
다. 형사재판과 민사상 소멸시효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가해자가 공탁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민사소송 제기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
손해와 가해자를 인식한 시점, 권리행사 장애의 유무, 공탁과 통지의 내용, 그 밖의 시효중단 사유를 시간순으로 확인해야 한다.
라. 시효완성 후의 일부 변제나 공탁에는 변경된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
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면 일부 변제나 공탁만으로 나머지 채무에 대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할 수 없다.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그 이익을 포기하려는 의사를 표시하였는지를 구체적인 경위와 언동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마. 판결의 결론과 확정 여부를 정확히 표시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 판결이다. 대법원이 직접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다거나, 피고의 최종 승소가 확정되었다고 소개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의 확정 여부는 환송 후 재판 결과가 확인되기 전까지 미확인으로 표시하는 것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