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판례
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1도4035 판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업무상배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업무상배임]
대표이사의 횡령을 뒤늦게 알게 된 이사가 시정을 촉구한 뒤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횡령금 전액에 대한 배임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였다.
이 사건은 회사가 손해배상채권을 명시적으로 포기한 사안이 아니라, 횡령을 발견한 이사가 추가적인 보고·회수조치를 하지 않은 부작위가 문제 된 사안이다.
하급심
- 제1심: 전주지방법원 2000. 6. 30. 선고 2000고합22 판결
- 원심: 광주고등법원 2001. 7. 5. 선고 2000노443 판결
원심은 대표이사의 횡령을 발견하고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분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이 부분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별도의 공사대금 지급에 관한 업무상배임 유죄 판단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두 죄에 하나의 형이 선고되어 있었으므로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환송하였다.
따라서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가 확정된 사건으로 표시해서는 안 된다.
관련 판례
- 대법원 1986. 8. 19. 선고 85도2144 판결 법적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부작위에 의한 배임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
- 대법원 1988. 5. 24. 선고 88도542 판결 배임죄에는 임무위배의 인식뿐 아니라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키거나 그 위험을 초래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법리.
- 대법원 1996. 4. 9. 선고 95다56316 판결 주주 전원 동의에 따른 상법상 책임 면제는 위임관계에 기초한 채무불이행책임을 대상으로 하며, 별개의 불법행위책임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법리.
- 대법원 2017. 3. 9. 선고 2016다259073 판결 이사·감사의 채무불이행책임 면제와 불법행위책임을 구별하고, 불법행위채권의 소멸시효를 별도로 판단한 사례.
관련 법령
- 형법 제355조 제2항, 제356조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여 자신 또는 제3자에게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의 업무상배임죄.
- 상법 제382조 제2항, 민법 제681조 회사와 이사의 위임관계 및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 상법 제393조 이사회의 업무집행 감독에 관한 규정으로, 원심이 이사의 감독의무를 설명하면서 참조하였다.
- 상법(1995. 12. 29. 법률 제5053호로 개정된 것) 제412조의2, 부칙 제1조 이사의 감사에 대한 보고의무를 신설한 규정이다. 해당 조항은 1996년 10월 1일부터 시행되었으므로, 피고인이 횡령을 발견한 1996년 9월 23일 당시에는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사실관계
대표이사가 설비공사대금을 부풀려 차액을 횡령하였다
회사의 대표이사는 미국 업체로부터 적벽돌 제조설비를 도입하면서 실제 약정한 대금보다 높은 금액의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회사 자금을 과다 송금한 뒤 차액을 돌려받아 횡령하는 방식이었다.
피고인은 회사의 조업이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1996년 9월 23일 미국 업체가 보낸 팩스를 확인하면서 실제 약정대금이 700만 달러인데도 계약서에는 999만 7천 달러로 기재되어 있고, 이미 실제 대금을 초과한 금액이 지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고인이 알았을 때에는 문제 된 횡령이 이미 이루어진 뒤였다
피고인은 대표이사에게 시정을 요구하였지만, 이사회나 감사에게 공식적으로 보고하는 등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이 부분 공소사실의 대상인 횡령이 피고인의 인지 이전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의 사후 부작위가 기존 횡령손해를 발생시켰다고 곧바로 볼 수는 없었다.
원심은 회수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을 횡령금 전액에 연결하였다
원심은 피고인이 횡령을 발견한 이상 이사회와 감사에게 보고하고, 회계감사·횡령금 회수·대표이사 해임 등 필요한 조치가 이루어지도록 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를 하지 않아 회사가 횡령금을 즉시 회수하지 못하였으므로, 대표이사에게 횡령금 상당의 이익을 주고 회사에 같은 금액의 손해를 가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추가 손해와 그에 대한 인식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대표이사는 회사 지분 52%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록에는 감사가 누구인지, 상임으로 근무하였는지, 지배주주인 대표이사에게 실질적으로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는지 등에 관한 자료가 없었다.
대표이사에게 일부 부동산이 있었지만, 이후 경매대금은 선순위 근저당권과 체납임금 등에 배당되어 소진되었다. 피고인이 즉시 조치했더라면 회사가 실제로 회수할 수 있었는지, 피고인의 부작위로 그 가능성이 사라졌는지도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서 피고인에게 임무위배와 그로 인한 손해 발생의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법리
먼저, 책임추궁이나 채권보전조치를 할 법적 의무가 있어야 한다
배임죄의 책임을 지는 주체는 추상적인 의미의 ‘회사’가 아니라,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이사 등이다.
그 사람이 당시 직무와 권한,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어떤 조치를 취할 법적 의무가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이사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소송이나 회수조치를 직접 할 수 있었다고 전제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에서는 보고의무를 정한 상법 제412조의2가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는 점과 실제 감독·시정 체계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함께 고려되었다. 이는 당시 이사에게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는 판단과는 구별된다.
이미 발생한 손해와 사후 부작위로 생긴 새로운 손해를 구별해야 한다
대표이사가 이미 횡령한 돈은 선행 횡령행위로 발생한 손해이다.
이를 나중에 알게 된 다른 이사의 부작위를 별도의 배임죄로 처벌하려면, 그 부작위 때문에 다음과 같은 새로운 손해 또는 손해의 위험이 발생해야 한다.
-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가 위태로워진 경우
- 손해배상채권의 집행가능성이 없어지거나 위태로워진 경우
대법원은 이러한 추가적인 손해나 위험을 확인하지 않고 기존 횡령금 전액을 사후 부작위에 따른 배임액으로 인정한 판단을 배척하였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여기서 새로운 손해는 반드시 회사 돈이 다시 유출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존 손해를 회복할 수 있었던 채권의 가치나 회수 가능성이 부작위로 훼손되는 것도 문제 될 수 있다.
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과 회수 가능성의 악화 사이에 연결이 있어야 한다
회사가 결과적으로 돈을 회수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검토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당시 필요한 조치를 했더라면 보전·회수할 수 있었던 재산이나 권리가 있었는가? 그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사라지거나 위태로워졌는가?
이 사건에서는 대표이사의 부동산이 있었지만 선순위 채권 등으로 경매대금이 소진되었다. 따라서 재산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회사의 회수 가능성을 인정하거나, 그 회수 실패를 피고인의 부작위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불법행위를 알았다는 사실과 새로운 손해의 위험을 알았다는 사실은 다르다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에게 다음 인식이 있어야 한다.
- 자신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임무에 위배된다는 인식
- 그로 인해 회사에 새로운 재산상 손해나 위험이 생긴다는 인식
따라서 “대표이사가 횡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배임의 고의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시정을 촉구한 사실이 있었고, 추가 조치를 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채권의 집행가능성이 위태로워진다는 점까지 인식하였다고 볼 자료가 부족하였다.
앞선 책임 면제 판례와는 판단 단계가 다르다
앞서 정리한 95다56316 및 2016다259073 판결은 원래 불법행위를 한 이사·감사의 민사책임이 남아 있는지에 관한 판결이다.
반면 이 사건은 그 책임을 추궁하지 않은 다른 이사에게 새로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관한 판결이다.
따라서 가해 이사의 불법행위책임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추궁하지 않은 다른 이사의 배임죄가 자동으로 성립하지는 않는다.
실무적 유의점
- 부작위의 내용을 특정해야 한다. 보고, 이사회 소집 요구, 채권보전, 소송 등 어떤 조치를 누가 언제 할 수 있었고 해야 했는지 구체화해야 한다.
- 당시의 회수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가해자의 재산뿐 아니라 선순위 담보권, 우선채권, 실제 잔여가치 등을 검토해야 한다.
- 추가 손해를 별도로 입증해야 한다. 기존 횡령액을 그대로 책임추궁을 하지 않은 이사의 배임액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 고의와 단순한 업무상 소홀을 구별해야 한다. 불법행위 인지 여부 외에, 방치로 인한 권리 상실·회수 곤란의 위험을 알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 시효 완성이나 재산 처분을 방치한 경우에는 구체적인 경위를 살펴야 한다. 그러한 사정은 새로운 손해·위험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배임죄가 당연히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결과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 판결의 기준은 당시 법적 의무와 조치 가능성, 부작위로 인한 추가 손해, 이에 대한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