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신이 이행할 의무를 어겨 조건 성취를 막았다면 계약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핵심 결론 임대인의 동의를 조건으로 식당을 양수한 사람이 자신이 부담할 추가보증금과 원상회복 보증을 제공하지 않아 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조건 불성취를 이유로 대가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 상대방은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8다223054

해당 판례

대법원 1990. 11. 13. 선고 88다카29290 판결 [소유권이전등기]
대법원은 식당 양수인들이 자신들이 이행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임대인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이를 이유로 약정한 국내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피고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여 원고 승소판결을 유지하였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하급심
대구고등법원 1988.10.1. 선고 87나183 판결
원심은 피고들이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 성취를 방해하였으므로 원고가 조건 성취를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인용하였다.
아래 사실관계는 대법원 판결문에 기재된 원심의 인정 사실을 바탕으로 정리하였다.

관련 판례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8다223054 판결
계약에서 정당하게 기대되는 협력을 신의성실에 반하여 거부한 경우에도 민법 제150조 제1항을 유추적용할 수 있다. 다만 조건 성취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실관계나 계약에서 정하지 않은 법률효과까지 의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과 비교하면, 88다카29290 판결은 이미 구체적으로 약정한 부동산 이전의무를 인정한 사건이고, 2018다223054 판결은 협조의무 위반을 이유로 상대방의 직접 매수의무까지 새롭게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본 사건이다. law.go.kr
위 판례는 비교를 위한 후속 판례이며, 대상 판결이 직접 인용한 판례는 아니다.

관련 법령

  • 민법 제150조 제1항 조건의 성취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하여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에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이 판결이 직접 참조한 조문이다.
  • 민법 제147조 제1항 정지조건이 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부터 효력이 생긴다. 조건부 계약의 효력을 이해하기 위한 관련 규정이다.
  • 민법 제2조 제1항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조건 성취 방해를 제한하는 법리의 기초가 되는 규정이다.
판결은 적용 조문을 민법 제150조 제1항으로 표시하며, 특정 개정 전의 구법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사실관계

식당을 넘겨받는 대가로 국내 부동산을 이전하기로 하였다.
기존 운영자는 당시 서독 본(Bonn)시에 있는 식당을 임차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기존 운영자와 피고들은 1984년 8월 18일 식당의 임차권과 영업권 일체를 125,000마르크에 양도하기로 하였다.
피고들은 현금 대신 자신들이 한국에 소유한 부동산을 같은 금액, 당시 한화 약 3,500만 원으로 평가하여 기존 운영자 또는 그가 지정하는 사람에게 이전하기로 하였다.
또한 피고들은 임대인에게 기존 보증금 외에 추가보증금 10,000마르크를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 양도계약은 임대인의 동의를 조건으로 하였다.
임대인 동의를 받기 전에 식당을 인도받고 내부공사를 하였다.
기존 운영자는 1984년 8월 31일 피고들에게 식당을 인도하였다.
피고들은 한국식 식당이던 내부를 한국식·중국식 겸용으로 개조하였다. 이에 임대인은 임대차 종료 시 원상회복을 담보하기 위하여 35,000마르크 상당의 보증을 추가로 요구하였다.
임대인은 다음 두 가지가 이행될 때까지 임차권·영업권 양도에 대한 동의를 유보하였다.
  • 당초 약정한 추가보증금 10,000마르크 지급
  • 피고들의 내부공사로 필요하게 된 원상회복 보증 35,000마르크 상당의 제공
국내 부동산은 원고에게 매도되었다.
피고들은 1984년 12월 7일 기존 운영자의 어머니에게 국내 부동산의 매매 등 처분권한을 위임하고, 등기권리증과 매도증서 등도 교부하였다.
그 어머니는 위임에 따라 1985년 3월 12일 원고에게 부동산을 1,000만 원에 매도하였고, 소유권이전등기는 피고들로부터 원고에게 직접 이전하기로 약정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 원고는 식당의 기존 운영자가 아니라, 위임받은 대리인을 통하여 국내 부동산을 매수한 사람이다.
피고들은 보증금 등을 제공하지 못한 채 영업을 중단하였다.
피고들은 임대인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형식상 기존 운영자의 고용원 자격으로 1984년 10월 1일부터 식당을 직접 경영하였다.
그러나 영업이 부진하여 추가보증금과 원상회복 보증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물품대금과 가스·전기요금도 지급하지 못하다가 1985년 4월 27일 영업을 중단하였다.
임대인은 같은 해 7월 식당을 다른 사람에게 새로 임대하였다.
피고들은 임대인 동의가 없었다며 부동산 이전을 거절하였다.
원고가 국내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자, 피고들은 다음과 같이 항변하였다.
임대인의 동의를 받지 못했으므로 식당 양도계약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고, 그 대가로 부동산을 이전할 의무도 발생하지 않았다.
법원은 이러한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리

조건 성취에 필요한 의무를 누가 부담하는지가 출발점이다.
임대인이 동의를 유보하였다는 사실만으로 피고들에게 책임을 물은 것은 아니다. 법원은 동의를 얻기 위해 요구된 조치를 피고들이 이행할 의무가 있었는지를 먼저 판단하였다.
추가보증금 10,000마르크는 계약에서 피고들이 부담하기로 명시한 금액이었다.
원상회복 보증 35,000마르크 상당은 피고들이 자신들의 영업을 위해 내부공사를 하였기 때문에 요구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보증 역시 피고들이 제공해야 한다고 보았다.
자신의 의무 불이행으로 조건 성취를 막는 행위도 방해행위가 될 수 있다.
조건 성취 방해는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방해하는 경우에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처럼 조건 성취를 위해 자신이 이행해야 할 의무를 신의성실에 반하여 이행하지 않아 조건이 성취되지 못하게 한 경우에도 민법 제150조 제1항이 적용될 수 있다.
피고들은 보증금과 보증을 제공해야 임대인 동의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부동산 이전의무를 부정하였다.
법원은 이러한 행태를 자신의 의무 불이행으로 생긴 조건 불성취를 이용하여 계약상 부담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았다.
조건이 성취되지 않으면 의무를 면하는 사람은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에 해당한다.
피고들은 임대인 동의가 없으면 국내 부동산을 이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였다.
뒤집어 보면 임대인 동의라는 조건이 성취될 경우 피고들은 부동산을 이전해야 한다. 따라서 피고들은 민법 제150조 제1항에서 정한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에 해당하였다.
원고는 피고들에 대하여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법원은 피고들의 의무 불이행으로 임대인 동의라는 조건이 성취되지 못하였으므로 원고가 조건 성취를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피고들은 실제로 임대인의 동의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면할 수 없었다.
다만 이 판결이 임대인의 실제 동의 자체를 만들어 내거나 임대인에게 임차권 양도를 승인할 의무를 부과한 것은 아니다. 판단 대상은 피고들이 원고에 대한 국내 부동산 이전의무를 거절할 수 있는지였다.
이미 약정된 의무를 인정한 사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들이 부담할 대가가 국내 부동산의 이전으로 정해져 있었고, 부동산의 처분권한 위임과 원고에 대한 매매도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보았을 때 발생할 법률효과가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있었다.
이는 매수인이나 거래조건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협조를 이유로 새로운 매수계약의 성립까지 의제하려 한 2018다223054 판결의 사안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실무상 유의점

  • 승인·동의 조건과 그 취득을 위한 의무를 구분해야 한다. 보증금 지급, 자료 제출, 담보 제공 등 누가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계약에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 동의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결론을 정해서는 안 된다. 동의 유보의 구체적인 이유와 그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를 확인해야 한다.
  • 단순한 미이행만으로 조건 성취가 언제나 의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행의무의 존재, 조건 불성취와의 인과관계, 신의칙 위반을 함께 살펴야 한다.
  • 청구는 약정된 법률효과에 맞추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이미 정해진 부동산 이전의무를 청구하였으며, 조건 성취 의제로 계약에 없는 의무를 새로 부과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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