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계열회사 지원과 배임죄의 경계(2)

핵심 결론 계열회사 지원으로 손실이 발생했다고 곧바로 배임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원 회사에도 이익이 돌아올 합리적 전망이 있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 다만 상대 회사의 변제능력 상실을 알면서 회수 대책 없이 지원을 계속했다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5도12633, 2004도5742, 2009도1149, 2013도5214, 2012도2628

해당 판례

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5도12633 판결
이 사건의 중심 쟁점은 그룹 차원의 계열회사 지원이 합리적인 경영판단인지, 지원한 회사에 대한 업무상배임인지이다.
대법원은 통합구매, 고철 외상거래 및 계열회사 자금대여에 관한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환송하고, 검사의 상고는 기각하였다. 다만 다른 횡령·배임 등의 유죄 판단까지 모두 잘못되었다고 본 것은 아니다. 여러 범죄에 하나의 형이 선고되어 유죄 부분 전체가 파기된 것이다.
하급심 및 파기환송심
파기환송심은 통합구매와 고철 외상거래는 무죄로 판단하였다. 계열회사 자금대여는 회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었던 시기의 지원과 변제능력 상실이 명백해진 뒤의 지원을 구분하였다.
그 결과 그룹 회장 A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자금담당 임직원 B와 C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이는 아래에서 설명하는 일부 횡령·배임 등 유죄 부분을 종합한 형이다.

관련 판례

관련 법령

사실관계

1. 조선업 중심의 기업집단에서 계열회사 간 지원이 이루어졌다

A는 기업집단의 회장이었고, B와 C는 그룹의 자금을 관리·집행하는 임직원이었다. 그룹에는 조선회사와 원자재·단조제품 등 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 있었다.
계열회사들은 공장을 신설하고 생산설비를 확충하면서 자금이 필요해졌다. 이에 그룹 차원에서 원자재를 대신 구매해 주거나, 거래대금 지급을 늦춰 주거나, 직접 자금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지원하였다.
검사는 이러한 지원이 지원 회사에 손해를 입힌 배임행위라고 보았다. 피고인들은 계열회사들의 사업을 연결하고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경영상 판단이라고 주장하였다.

2. 원자재를 통합구매하고 계열회사들로부터 어음을 받았다

조선회사 AE는 계열회사들이 사용할 철강재 등 원자재를 한꺼번에 구매하여 공급하였다. 구매 규모를 모아 원가를 낮추려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현금으로 대금을 받았으나, 계열회사들의 공장 건설 등으로 자금이 부족해지자 2010년 2월경부터 점차 어음으로 결제받았다. 결과적으로 AE가 계열회사들의 원자재 구매자금을 지원하는 효과가 발생하였다.
파기환송심은 다음 사정을 중요하게 보았다.
  • 통합구매는 채권단과의 자율협약 이전부터 원가 절감을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 AE는 회계상 자본잠식 상태였지만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다.
  • 자본잠식의 원인이 된 파생상품 관련 결제기일도 연장되어 있었다.
  • 지원받은 계열회사들이 생산·판매를 통해 대금을 지급하고, 사업 성장으로 그룹 내 관련 회사들에도 이익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통합구매와 어음 결제만으로 AE에 손해를 가하려는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3. 계열회사에 고철을 외상으로 공급하였다

AE는 2008년 1월경부터 계열회사 AH와 고철 거래를 해 왔다. 검사는 2010년 5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약 176억 원 상당의 고철을 외상으로 넘겨 AH가 그 처분대금을 사용하도록 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파기환송심은 이를 기존 거래관계에서 대금 지급을 유예하는 형태의 지원으로 보았다. 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들 사이의 공동이익을 기대할 여지가 있었고, AE의 부담능력을 초과했다거나 변제 불가능을 알면서 거래를 계속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무죄로 보았다.

4. 같은 계열회사에 대한 대여도 시기에 따라 결론이 달라졌다

AD는 단조제품 생산회사 AI에 자금을 대여하였다. AI는 조선업과 원자력·풍력발전 분야에 필요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대규모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금융기관과 평가기관의 사업전망이 긍정적이었고 실제 외부 대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투자협상 결렬, 일본 원전사고,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사업 여건이 악화되었다.
파기환송심은 지원 시기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지원 시기판단핵심 이유
2010년 7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약 605억 원 대여무죄지원 당시 사업 성장과 대여금 회수를 기대할 객관적 사정이 있었음
2012년 1월부터 4월까지 153억 원 대여유죄2011년 말 이미 재무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변제능력 상실을 인식할 수 있었는데도 담보 없이 지원함
AI는 2011년 말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1,539억 원 초과하고 손실도 급증하였다. 파기환송심은 적어도 2012년 1월경부터는 피고인들이 대여금 회수가 어려워졌음을 충분히 알았다고 보았다.

5. 회장 개인과 아들 소유 회사의 이익을 위한 자금 사용도 문제 되었다

A는 개인적으로 부담할 주식매수대금 261억 원을 회사 자금으로 지급하였다. 법원은 차용 형식을 취했더라도 회사 자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횡령을 인정하였다.
또한 회사 자금 183억 원을 A의 아들이 주식 전부를 소유한 회사에 담보 없이 대여한 부분도 배임으로 판단하였다. 지원 회사가 얻을 수 있다는 물류비 절감 등의 이익만으로는 대규모 지원의 부담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법리

1. 그룹을 위한 지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임책임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계열회사는 각각 독립된 법인이다. 각 회사에는 자신의 주주와 채권자가 있으므로, 이사는 그룹 전체의 이익뿐 아니라 자금을 내주는 회사 자체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그룹을 살리기 위한 지원이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원 회사에도 어떤 이익이 돌아오고, 부담한 위험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2. 지원의 합리성은 다섯 가지 사정을 함께 판단한다

판단 요소쉽게 풀어 쓴 의미
회사들 사이의 실질적 연계자본·영업 관계상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인가
지원의 목적지원 회사에도 이익이 되는가, 특정인이나 특정 회사만을 위한 것인가
지원 대상과 규모왜 이 회사가 이만큼 부담해야 하는지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가
지원 방법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와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
보상 가능성지원 회사가 부담과 위험에 상응하는 이익을 얻을 객관적 전망이 있었는가
이 사정들을 종합하여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범위에 속한다면, 결과적으로 손실이 발생했더라도 배임의 고의를 쉽게 인정할 수 없다.

3. 지원 당시의 정보와 전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업이 나중에 실패했다는 결과만으로 과거의 지원을 배임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에서도 초기의 적자나 자본잠식만으로 지원이 부당하다고 보지 않았다. 실제 영업이익, 자금 만기 연장, 외부기관의 사업성 평가, 투자 및 대출 가능성 등을 함께 고려하였다.
다만 처음에 합리적이었던 지원도 사정이 바뀌면 계속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음을 알면서 별다른 대책 없이 추가 자금을 투입했다면 그때부터 배임이 될 수 있다.

4. 회계상 자본잠식과 실제 지원능력은 구분해야 한다

회계상 자본잠식 상태라고 해서 언제나 다른 회사에 대한 지원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평가손실이나 환차손이 자본잠식에 미친 영향, 실제 영업현금흐름, 채무의 지급시기, 금융기관과의 협약 등을 확인해야 한다. 반대로 장부상 수치만으로 회수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5. 담보가 없다는 사정 하나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회수 전망이 사라진 뒤의 무담보 지원은 다르다

계열회사 간 거래에서 담보가 없었다고 언제나 배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원 당시 회수 가능성이나 지원 회사에 돌아올 이익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 회사의 변제능력 상실이 명백하고 다른 보상도 기대하기 어려운데 담보나 회수 대책 없이 지원을 계속하였다면, 경영판단이라는 주장만으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실무상 유의점

  • 지원 회사의 이익을 구체화해야 한다. 그룹 전체의 이익이라는 추상적 설명보다 원가 절감, 공급망 유지, 투자수익 등 해당 회사에 돌아올 이익이 중요하다.
  • 의사결정 당시의 근거를 남겨야 한다. 사업성 평가, 현금흐름, 회수계획, 지원 규모의 산정 근거가 판단 자료가 된다.
  • 추가 지원 때마다 상황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최초 지원이 합리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 지원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 지배주주 개인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을 구분해야 한다. 개인 채무의 변제나 가족 소유 회사에 대한 편중 지원은 별도로 엄격하게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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