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자료 거래를 통한 횡령에서 횡령의 객체는 제품인가, 판매대금인가

핵심 결론 회사 제품을 무자료로 판매하고 그 대금을 빼돌린 경우, 횡령의 객체는 거래 구조와 불법영득의사의 대상을 종합하여 특정해야 한다. 정상적인 판매를 거쳐 대금을 개인적으로 영득한 사안에서는 제품이 아닌 판매대금이 횡령의 객체가 된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3도658, 2019도3113, 2004도5904, 2010도12920

해당 판결

대법원 2016년 8월 30일 선고 2013도658 판결.
대법원은 회사의 섬유제품을 무자료로 판매하여 비자금을 조성한 사안에서, 횡령의 객체를 섬유제품 자체로 본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영득하려 한 것은 제품 자체가 아니라 판매대금이므로, 판매대금에 대한 불법영득의사가 실현된 행위를 기준으로 횡령죄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하급심
  • 원심: 서울고등법원 2012년 12월 20일 선고 2012노755 판결. 회사의 섬유제품을 빼돌려 대리점에 무자료로 판매한 행위를 섬유제품에 대한 횡령으로 판단하였다.
  • 파기환송심: 서울고등법원 2017년 4월 21일 선고 2016노2750 판결. 검사가 공소사실을 섬유제품 횡령에서 판매대금 횡령으로 변경하였고, 법원은 판매대금의 전달·관리·사용 경위를 심리하여 횡령죄를 인정하였다.
  • 확정 경과: 이후 별개의 분리 선고 문제로 다시 파기환송되었으나, 판매대금 횡령에 관한 유죄 판단은 유지되었다. 서울고등법원 2019년 2월 15일 선고 2018노2924 판결에 대한 상고가 대법원 2019년 6월 13일 선고 2019도3113 판결로 기각되어 확정되었다.

관련 판례

  • 대법원 1993년 3월 9일 선고 92도2999 판결, 대법원 2004년 12월 9일 선고 2004도5904 판결 횡령죄는 불법영득의사가 외부에 인식될 수 있는 객관적 행위로 나타나야 성립한다. 단순히 내심의 의사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횡령행위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
  • 대법원 2011년 2월 10일 선고 2010도12920 판결 법인의 자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할 목적으로 빼내 비자금을 조성하였다면, 비자금 조성행위 자체로 불법영득의사가 실현될 수 있다. 그 목적은 조성 동기·방법·규모·기간, 보관방법과 실제 사용용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관련 법령

사실관계

회사 제품의 무자료 판매
피해회사는 스판덱스 등 섬유제품을 생산·판매하는 회사였다.
회사 임직원들은 실제 생산량보다 적게 생산된 것처럼 수율을 조작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을 불량품으로 폐기한 것처럼 처리하여 일부 제품을 정상적인 장부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 제품은 회사 대리점들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판매되었다.
그러나 제품의 품질, 판매방법, 가격과 거래처는 정상거래와 차이가 없었다. 무자료로 판매된 제품이 피고인의 개인적인 지배 아래 놓인 사실도 없었다.
판매대금의 별도 수령과 사적 사용
대리점 관계자들은 판매대금을 회사의 정상적인 회계에 입금하는 대신, 직접 또는 회사 관계자를 통하여 공동피고인에게 현금으로 전달하였다.
전달된 대금은 차명계좌 등으로 관리되다가 피고인과 가족들의 개인적 용도 등에 사용되었다. 제품의 무자료 거래 사실은 여러 임직원에게 알려져 있었지만, 판매대금의 전달과 사용은 소수 인원만 관여한 채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원심은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회사 섬유제품을 빼돌려 판매한 횡령으로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제품을 판매한 행위와 그 판매대금을 개인적으로 영득한 행위를 구분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법리

횡령의 객체는 불법영득의사의 대상과 실제 거래 구조를 종합하여 특정해야 한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에 대한 소유권 등 본권을 보호하는 범죄이다. 따라서 무엇을 횡령한 재물로 특정하는지에 따라 다음 사항이 달라진다.
  • 그 재물이 타인의 소유인지.
  • 피고인에게 위탁관계에 기초한 보관자의 지위가 있는지.
  • 피해자가 누구인지.
  • 그 재물에 대한 반환청구가 가능한지.
여러 단계의 거래에서 제품과 판매대금 등이 순차적으로 등장한다고 하여 어느 재물이든 횡령의 객체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재물의 소유관계와 성상, 위탁관계의 내용, 보관·처분 방법 및 행위자가 어떤 재물을 영득하려 했는지를 종합하여 횡령의 객체를 확정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무자료 판매라는 사정만으로 제품 자체의 횡령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섬유제품 자체의 횡령을 부정한 핵심 근거는 다음과 같다.
판단 요소이 사건의 사정
제품의 지배관계제품이 회사와 무관한 피고인의 개인적 지배 아래 놓이지 않았다.
판매의 실질판매방법·가격·거래처 등이 정상거래와 다르지 않았다.
행위의 목적제품 자체를 영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판매대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려는 목적이었다.
회사 이익의 침해제품 판매 자체보다 판매대금을 회사에 귀속시키지 않은 행위에서 회사 이익 침해가 나타났다.
장부에서 매출을 누락하거나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행위가 위법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제품에 대한 불법영득의사가 실현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법원은 제품 자체를 횡령한 것으로 보면, 비자금의 조성 목적이나 사용용도와 관계없이 무자료 판매만으로 언제나 횡령죄가 성립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하였다.
소유자를 위한 재물 처분과 소유자에게 반하는 재물 영득을 구별해야 한다
불법영득의사는 보관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할 목적으로, 위탁의 취지에 반하여 타인의 재물을 자기 소유인 것처럼 권한 없이 처분하려는 의사이다.
따라서 소유자의 이익을 위하여 재물을 처분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재물에 대한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는 회사 제품을 정상적인 조건으로 판매한 행위 자체를 회사의 이익에 반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반면 그 판매대금을 회사에 귀속시키지 않고 개인적으로 취득·사용한 행위는 회사의 이익에 반하였다.
이에 따라 횡령의 객체는 ‘판매된 섬유제품’이 아니라 ‘회사에 귀속되어야 할 판매대금’으로 특정되었다.
횡령의 성립 시점은 판매대금에 대한 불법영득의사가 객관적으로 실현된 때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판매대금이 비밀리에 현금으로 전달되거나, 전달된 대금이 개인적 목적으로 소비되었을 때 판매대금에 대한 영득의사가 외부에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실제로 돈을 소비해야만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처음부터 개인적으로 착복하거나 피해회사와 무관한 용도로 사용할 목적으로 회사 자금을 빼내 비자금을 조성하였다면, 그 조성행위 자체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판단의 초점은 실제 소비 여부만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회사 자금을 권한 없이 개인적으로 지배·처분하려는 의사가 객관적인 행위로 나타났는지에 있다.
파기환송심은 판매대금의 사적 지배를 인정하여 유죄로 판단하였다
파기환송심은 공소장 변경 후 다음 사정을 종합하였다.
  • 무자료 판매대금이 공동피고인에게 전달된 사실.
  • 그 돈을 회사 회계에 편입하지 않고 현금이나 차명채권 등으로 관리한 사실.
  • 거래내역을 폐기하고 사용내역을 체계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사실.
  • 가족의 보험 가입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사실.
  • 일부를 다른 계열회사를 위하여 사용하였다는 주장도 피해회사 자체를 위한 사용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
법원은 이를 근거로 비자금 조성 당시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제품 횡령이라는 법률구성은 잘못되었지만, 판매대금 횡령은 증명되었다는 결론이다.

실무적 유의점

제품의 반출·판매와 판매대금의 수령·관리를 단계별로 구분해야 한다. 제품이 누구의 지배 아래 있었는지, 누구의 거래로 판매되었는지, 대금이 누구에게 귀속되고 어떤 경위로 회사에서 분리되었는지를 특정해야 한다.
또한 무자료 거래와 비자금 조성이라는 표현만으로 횡령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회사 운영을 위한 자금인지, 개인적 착복이나 피해회사와 무관한 사용을 위한 자금인지 조성 목적과 관리·사용 실태를 확인해야 한다.
횡령의 객체가 판매대금으로 특정되면 그 대금의 발생과 수령, 전달, 불법영득행위 및 금액에 관한 증명이 필요하다. 다만 객체가 제품에서 판매대금으로 변경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횡령액이 당연히 줄어들거나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그룹 전체를 위한 사용과 피해회사 자체를 위한 사용은 구별해야 한다. 다른 계열회사를 지원했다는 사정만으로 피해회사 자금의 유출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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