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품이 달라도 보호되는 저명상표의 식별력

핵심 결론 유명한 상표는 상품의 출처가 혼동되지 않더라도 보호된다. 다른 상품에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여 그 유명상표가 특정 사업자만을 가리키는 기능이 약해질 염려가 있다면 등록을 허용할 수 없다. 의약품 상표의 ‘LEGO’ 부분도 이에 해당하였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20후11943, 2002다13782, 2015후1690

해당 판례

대법원 2023. 11. 16. 선고 2020후11943 판결
[등록무효(상)]
  • 원고: 레고 쥬리스 에이/에스(LEGO Juris A/S)
  • 피고: 주식회사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의약품류를 지정상품으로 하는 피고의 등록상표가 완구류 등에 사용된 저명상표 ‘LEGO’와 ‘레고’의 식별력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다고 보아, 등록무효심판 청구를 기각한 심결을 취소한 원심판결을 유지하였다.
하급심 및 심판
특허심판원은 완구류와 의약품류 사이에 경제적 관련성이 부족하고, 피고의 상표 사용이 선사용상표의 신용이나 식별력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무효심판 청구를 기각하였다.
특허법원은 출처 혼동이나 경쟁관계가 없더라도 저명상표의 식별력이 손상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심결을 취소하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이유 설시에 충분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보면서도, 상표의 유사성, 선사용상표의 높은 인지도와 강한 식별력, 연상 가능성 등을 종합하여 그 결론을 유지하였다.

관련 판례

관련 법령

가. 이 사건에 적용된 규정

  •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 후단 수요자에게 현저하게 인식된 타인의 상품이나 영업의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의 등록을 제한한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판단 근거이다.
  • 상표법 제34조 제2항 단서 제34조 제1항 제11호 등에 해당하는지는 상표등록출원 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 상표법 부칙(2016. 2. 29. 법률 제14033호) 제4조 개정법 시행 전에 출원되었더라도 시행 후 등록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개정된 제34조 제1항을 적용하도록 한 규정이다.
  • 상표법 제103조 상표권을 포기하면 그때부터 권리가 소멸한다는 규정이다.
  • 상표법 제117조 제2항 상표권이 소멸한 후에도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나. 구법 적용 여부

이 사건 상표는 2015년 11월 24일 출원되었지만, 등록결정은 전부개정 상표법 시행 후인 2018년 9월 10일 이루어졌다.
따라서 출원일이 개정 전이라는 이유만으로 구 상표법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원심은 위 부칙 제4조에 따라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와 제13호가 적용된다고 명시하였다.
당사자들과 특허심판원은 구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10호·제12호를 전제로 주장하거나 판단하였으나, 원심은 적용 조문을 바로잡았다. 다만 개정 전후 규정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같아 그 오류 자체가 심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3호의 부정한 목적도 주장되었지만, 법원은 제11호 후단의 식별력 손상만으로 무효사유를 인정하여 나머지 주장까지 판단하지 않았다.

사실관계

가. 완구류에 사용된 선사용상표

원고의 선사용상표는 ‘LEGO’ 문자 부분을 포함하는 표장과 한글 ‘레고’ 표장이었다. 주로 완구류와 블록 완구에 사용되었다.
원심은 장기간의 사용, 국내외 판매실적, 사전과 백과사전의 소개, 언론 보도, 영화 등에서의 사용을 종합하여 출원 당시 국내 일반 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진 저명상표라고 인정하였다.
피고도 저명성 자체는 다투지 않았지만, ‘레고’가 블록이나 생산방식 등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어 식별력이 약해졌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법원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다.

나. 의약품 상표의 출원과 등록

피고는 2015년 11월 24일 ‘LEGOCHEMPHARMA’ 문자로 구성된 상표를 출원하였다.
지정상품은 약제용 시럽·정제·캡슐, 백신, 비타민제, 항생제, 항암제 등 제5류의 의약품류였다. 상표는 2018년 9월 10일 등록결정을 받아 같은 해 11월 26일 등록되었다.

다. 원고의 등록무효 주장과 피고의 반박

원고는 피고의 상표가 저명한 선사용상표를 연상시키고 그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으며, 부정한 목적으로 출원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피고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 상표는 ‘레고켐파마’ 또는 ‘레고켐’으로 인식되므로 ‘레고’와 다르다.
  • 완구류와 의약품류는 경제적 관련성이 없어 출처 혼동이 발생하지 않는다.
  • ‘Lego chemistry’는 블록을 조립하듯 화합물을 합성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학술용어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기술적 특징을 표현한 것이다.
  • 의약품은 허가와 검증 절차를 거치므로 선사용상표의 좋은 이미지를 훼손할 가능성도 낮다.
특허심판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으나, 특허법원은 식별력 손상을 인정하였다.

라. 소송 중 상표권 포기

피고는 소송 중인 2020년 7월 29일 상표권을 포기한 뒤, 더 이상 소의 이익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특허법원은 포기는 장래에 대해서만 효력이 있으므로, 등록 후 포기 전까지 존재했던 상표권의 무효를 다툴 이익은 남아 있다고 판단하였다.

법리

가. 출처 혼동이 없어도 저명상표의 식별력을 보호한다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 후단은 소비자가 두 상품을 같은 회사의 제품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없더라도 적용될 수 있다.
저명상표가 지닌 고객흡인력과 판매력 등의 재산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피고의 의약품을 레고 완구회사가 만든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LEGO’라는 표시가 여러 사업자의 상품에 사용되면서 더 이상 특정한 하나의 출처만을 강하게 가리키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이처럼 단일한 출처와의 연결이 약해질 염려가 ‘식별력 손상’의 문제이다.

나. 저명상표와의 유사성만으로 기계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다음 요소를 종합하여 식별력 손상 염려를 판단하도록 하였다.
  • 등록상표와 저명상표의 동일·유사 정도
  • 저명상표의 인지도와 식별력의 강도
  • 출원인이 저명상표와의 연상 작용을 의도하였는지
  • 두 상표 사이에 실제 연상 작용이 발생하는지
따라서 저명상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이 소비자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연상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다. ‘CHEM’과 ‘PHARMA’를 붙여도 ‘LEGO’의 요부성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등록상표의 ‘LEGO’ 부분을 독립적인 출처표시기능을 수행하는 요부로 보았다.
‘CHEM’은 화학 또는 화학물질을 뜻하는 단어의 약칭이고, ‘PHARMA’는 약학 또는 제약을 뜻하는 단어의 약칭으로 볼 수 있었다. 의약품류와의 관계에서 이러한 부분은 식별력이 없거나 미미하였다.
반면 ‘LEGO’는 선사용상표의 저명성 때문에 강한 식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출된 자료만으로 상표가 반드시 ‘LEGOCHEM’ 전체로만 인식·사용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등록상표의 요부는 선사용상표와 외관 또는 호칭이 같아 상표의 유사성이 인정되었다.

라. 학술용어에서 따왔다는 주장만으로 연상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Lego chemistry’가 의약합성기법을 뜻하는 일반적인 학술용어로 널리 사용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피고가 신약 연구·개발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그 용어의 약칭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사정과 선사용상표의 높은 인지도·강한 식별력을 고려하면, 피고가 레고 상표와의 연상 작용을 의도하고 출원하였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소비자가 ‘LEGO’ 부분을 통해 선사용상표를 실제로 연상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았다.

마. 식별력 손상과 명성 손상은 구별된다

피고는 의약품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상품이 아니고 허가·검증 절차를 거치므로 레고 상표의 명성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의 판단 근거는 저질 상품이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명성이 훼손된다는 것이 아니라, ‘LEGO’가 하나의 출처를 가리키는 기능이 약해질 염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상품의 품질이 양호하거나 완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식별력 손상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바. 상표권을 포기해도 과거 등록의 무효를 다툴 수 있다

상표권 포기는 그때부터 권리를 소멸시킨다. 등록 당시부터 권리가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반면 등록무효는 과거의 권리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포기 전 상표권의 유효성을 다툴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는 무효심판과 심결취소소송의 이익이 남는다.
원심은 이러한 이유로 피고의 소의 이익 소멸 주장을 배척하였다.

결론

대법원은 ‘LEGOCHEMPHARMA’의 요부인 ‘LEGO’가 완구류의 저명상표와 유사하고, 소비자에게 그 상표를 연상시켜 단일한 출처표시기능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완구와 의약품 사이에 출처 혼동이나 경쟁관계가 없다는 사정만으로 등록을 허용할 수는 없었다.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등록무효심판 청구를 기각한 심결을 취소한 원심판결이 확정되었다.

실무상 유의점

  • 저명상표와의 충돌은 동일·유사 상품뿐 아니라 다른 업종에서도 검토해야 한다.
  • 저명상표 뒤에 업종을 나타내는 약칭을 붙여도 그 부분의 식별력이 약하면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 학술용어라는 주장은 출원 당시의 실제 사용례와 일반적인 의미를 뒷받침해야 한다.
  • 출처 혼동, 식별력 손상, 명성 손상은 서로 다른 쟁점으로 구분해야 한다.
  • 이 판결은 특정 등록상표의 무효에 관한 판단이므로, 회사명이나 모든 관련 표장의 사용금지까지 직접 명한 것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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