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판례
대법원은 통상사용권자가 판매장소 제한 약정을 위반하여 공급한 시계에 대해서도 상표권이 소진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피고인이 계약조건 위반을 인식하였다는 증명도 부족하다고 보아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하급심
환송 전 항소심: 서울남부지방법원 2018. 8. 24. 선고 2017노496 판결
환송 전 항소심은 판매장소 제한 약정을 위반한 공급에는 권리소진 원칙을 적용할 수 없고, 피고인에게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보아 유죄로 판단하였다.
파기환송심: 서울남부지방법원 2020. 7. 14. 선고 2020노255 판결
파기환송심은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상표권 소진으로 피고인의 판매행위를 침해로 볼 수 없고, 계약조건 위반에 관한 피고인의 인식도 합리적인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무죄의 근거 조문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이다.
관련판례
-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도3445 판결: 상표권자 또는 그 동의를 얻은 자가 국내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양도하면 해당 상품에 관한 상표권이 소진되어, 이후의 사용·양도·대여 등에 상표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법리이다.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이 직접 인용하였다.
- 대법원 2020. 2. 13. 선고 2017후2178 판결: 사용권자가 적법하게 사용허락을 받았더라도 구체적인 사용형태가 종전 사업자의 상품과 혼동을 일으키는 부정사용이면 등록취소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례이다. 이 사건이 ‘정품 유통 후 권리소진’을 다룬 것과 달리, ‘사용권자의 상표 사용방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관련법령
- 구 상표법(2016. 2. 29. 법률 제14033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97조: 상표권 또는 전용사용권 침해행위의 처벌에 관한 규정이다. 공소사실의 행위기간은 전부개정법 시행 전이며, 현행 대응 조문은 상표법 제230조이다.
- 구 상표법(2016. 2. 29. 법률 제14033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57조 제1항·제2항: 통상사용권의 허락과 설정행위로 정한 범위 내에서의 사용권한에 관한 규정이다.
-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 범죄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 무죄를 선고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파기환송심이 직접 적용하였다.
상표권 소진은 위 판결에서 판례법리로 설시되었다. 구 상표법 조항은 사건 당시 관련 규정을 정리한 것이다.
사실관계
상표권자는 시계 제조·판매회사에 상표사용료를 받는 조건으로 팔목시계 등을 개발·판매할 통상사용권을 부여하였다. 계약에는 판매장소를 제한하는 약정이 있었다.
전문점·백화점·면세점 등 합의된 매장에서 판매하고, 할인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려면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였다. 재래시장 판매는 금지하였다.
계약 종료 무렵에는 잔여 재고의 판매기간을 연장하면서 상표사용료를 받기로 하였다. 이때 특정 아울렛과 상표권자의 직영몰, 백화점 쇼핑몰 6곳에서의 판매를 추가로 허용하였다.
피고인은 온라인 시계판매업체의 실질적 대표자로서 위 통상사용권자로부터 시계를 공급받아, 상표권자가 승인하지 않은 온라인몰이나 오픈마켓 등에서 판매하였다. 검사는 이 판매행위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기소하였다.
그러나 판매된 시계 자체는 상표권자의 허락을 받아 적법하게 상표를 부착하여 제조한 정품이었다. 공급회사는 피고인에게 정식 라이선스로 제조한 정품이고 정식 유통이 가능하다는 확인서도 작성해 주었다.
법리
① 권리소진은 적법하게 유통된 개별 상품에 대한 추가적인 상표권 행사를 제한한다.
상표권자 또는 그 동의를 얻은 자가 국내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양도하면, 그 상품에 관한 상표권은 목적을 달성하여 소진된다.
이는 상표권 자체가 소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양도된 해당 상품의 후속 사용·재판매·대여 등에 상표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② 사용권의 범위 초과와 계약상 부수조건 위반을 구별해야 한다.
지정상품·존속기간·지역 등 사용허락의 범위를 넘는 상표 사용은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계약상 부수적인 조건을 위반한 양도까지 모두 동의 없는 양도로 보아 권리소진을 배제할 수는 없다.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
- 상품출처표시·품질보증 기능의 훼손 여부
- 상품 판매로 상표권자에게 보상이 이루어졌는지
- 추가 유통을 금지할 상표권자의 이익
- 상품을 구입한 수요자를 보호할 필요성
참고한 주석서에 의하면, 계약상 부수조건을 위반한 경우 사용권자의 계약위반 책임과 상품 양수인에 대한 상표권 행사는 구별하여야 하며, 그 위반만으로 권리소진이 일률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③ 이 사건 판매장소 위반은 권리소진을 배제할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은 다음 사정을 중시하였다.
판매된 시계는 적법하게 제조된 정품이므로, 승인되지 않은 온라인몰에서 판매했다는 사실만으로 출처표시나 품질보증 기능이 훼손되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인터넷 판매 자체가 전면 금지된 것도 아니었다. 일부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판매가 허용되었고, 피고인의 쇼핑몰이 그곳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정도 없었다. 인터넷 판매라는 이유만으로 상표의 명성이나 이미지가 손상된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또한 사용료 지급약정 아래 공급회사가 피고인에게 대가를 받고 상품을 공급했으므로, 법원은 상표권자에게 금전적 보상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하였다. 이에 비해 추가 유통을 금지할 이익은 크지 않고, 상품을 구입한 수요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공급회사가 피고인에게 시계를 공급한 시점에 해당 상품에 관한 상표권이 소진되었다고 판단하였다.
④ 판매자의 고의도 별도로 엄격하게 증명해야 한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계약조건을 위반하여 상품이 공급되었다는 사실을 피고인이 인식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판매장소 제한 약정을 사전에 알려주었다는 증거가 없었다. 상표권자가 보냈다는 경고문은 수령 여부가 다투어졌고, 그 내용에도 판매장소 제한 위반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공급회사는 정품이며 정식 유통이 가능하다는 확인서를 교부하였다.
따라서 피고인의 시계판매 경력이나 상표권 관련 경험만으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파기환송심도 같은 이유로 고의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실무적 유의점
① 유통계약 위반을 곧바로 상표권 침해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공급회사가 판매처 제한을 위반했다면 계약상 책임이 문제 될 수 있다. 그러나 정품을 공급받은 재판매자에게 상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권리소진 법리에 따라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이 판결은 판매장소 제한 약정 자체를 무효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② ‘승인되지 않은 판매처’라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정품 여부, 제조·판매 권한, 해당 유통방식의 허용 정도, 품질관리 차이, 상표 기능의 훼손 및 사용료 구조를 확인해야 한다. 모든 판매장소 제한 위반에 권리소진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확대해서도 안 된다.
③ 재판매자는 공급자의 권한과 정품·유통 확인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정품 확인서, 생산 확인서, 공급계약, 세금계산서와 관련 연락자료는 상품의 출처 및 판매자의 인식을 입증하는 데 중요하다. 다만 확인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적법한 유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④ 권리소진과 고의 부재를 구별하여 방어해야 한다.
권리소진은 후속 판매에 상표권의 효력이 미치는지에 관한 문제이고, 고의는 형사책임의 주관적 요건이다. 이 사건은 두 쟁점 모두에서 유죄판단의 근거가 부정되었고,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