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괄 제출한 사직서의 효력과 강제 면직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핵심 결론 사용자의 지시로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면직 가능성을 알았더라도 실제 사직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강제 면직에 따른 손해배상채권의 시효는 이 사건에서 각 급료·퇴직금 지급일부터 진행한다고 판단하였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와 법령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로 연결되지 않는 판례·법령은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 등을 판결문과 원문을 직접 확보·확인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해당판결

대법원 1991. 7. 12. 선고 90다11554 판결〔해고무효확인등〕
원고들의 사직 의사표시가 비진의 의사표시에 해당하고, 의원면직의 실질이 해고라는 판단은 유지하였다. 다만 원고 1에 대한 부분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하고, 피고의 나머지 상고는 기각하였다.
하급심

가. 서울고등법원 1990. 9. 25. 선고 90나20703 판결

원고들이 실제 사직 의사 없이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피고도 이를 알고 수리하였다고 인정하였다.
원고 1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는 1988년 12월경 국회 청문회에서 면직처분이 불법행위임을 알게 되었다고 보아, 그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는 이유로 피고의 시효항변을 배척하였다. 대법원은 이 기산점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련판례

가. 판결이 직접 참조한 선행판례

사직 의사표시의 진의 여부와 관련하여 참조판례로 제시되어 있다.

나. 대법원 1996. 7. 30. 선고 95누7765 판결

사직서의 내용과 근로자의 태도 등을 종합하여 실제 사직 의사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른 근로관계 종료를 해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 판결을 인용하면서도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내린 사례이다. 사용자의 사직 권유나 근로자의 불만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모든 사직서 제출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함께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관련법령

가. 민법 제107조 제1항

진의 아닌 의사표시는 원칙적으로 유효하지만, 상대방이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이다.

나. 구 근로기준법 제27조 제1항 — 판결 당시 조문

판결은 해고 제한의 근거로 당시 구 근로기준법 제27조 제1항을 참조하였다. 판결 원문에는 특정 개정일이나 법률번호를 붙인 구법 표시가 없다.
현재 이에 대응하는 해고 제한 규정은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이다

다. 민법 제766조 제1항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에 관한 규정이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언제 알았는지가 문제 되었다.

사실관계

가. 원고들의 사용자는 한국방송공사와 별개의 법인인 새마을금고였다

원고 2명은 한국방송공사 새마을금고의 직원이었다. 피고는 한국방송공사 자체가 아니라, 방송공사의 임직원과 금고 직원 등을 회원으로 하는 별도의 법인이었다.
다만 한국방송공사 사장이 피고 금고의 이사장을 맡고, 방송공사 임원들이 금고의 다른 임원직도 담당하는 등 두 법인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나. 언론인 강제해직조치에 병행하여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게 하였다

1980년 8월 초순경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언론인 강제해직조치가 이루어지면서 피고 금고도 병행하여 인사조치를 하게 되었다.
원고들은 금고 임원들의 지시에 따라 다른 일반직 직원 20여 명과 함께 사직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법원은 원고들에게 실제 사직 의사가 없었고, 피고 역시 그 사직 의사표시가 진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였다.

다. 피고는 사직서를 수리하여 의원면직 처리하였다

피고는 1980. 8. 8. 원고들의 사직서를 수리하여 의원면직 처리하였다.
원고들이 사직서를 제출할 때 그 사직서가 수리되어 면직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였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대법원은 그러한 인식만으로 실제 사직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라. 원고 1의 손해배상청구에서는 소멸시효가 별도로 문제 되었다

원고 1은 1980. 9. 1.부터 정년인 1982. 9. 26.까지의 일실급료와 일실퇴직금 상당액을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청구하였다.
피고는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였다.
원심은 원고 1이 1988년 12월경 국회 문교공보위원회의 청문회를 통하여 면직처분이 불법행위라는 점을 비로소 알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청문회에서 알게 된 내용은 이미 알고 있던 강제 면직의 경위와 배경에 관한 이면사정이라고 판단하였다.

법리

가. ‘사직서가 수리될 수 있다는 인식’과 ‘실제로 사직하겠다는 의사’는 구별된다

비진의 의사표시인지 여부는 표시된 법률효과에 대응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사건에서 구별한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구분의미
면직 가능성에 대한 인식제출한 사직서를 사용자가 수리하여 퇴직 처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사직의 효과의사자신의 의사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겠다는 의사를 갖는 것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면서 그 위험을 예상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하려는 의사까지 인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 법리는 단순히 “계속 근무하고 싶었다”는 희망만으로 사직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직서 제출 경위와 당시의 언행을 통해 실제 근로관계 종료 의사가 있었는지 판단해야 한다.

나. 비진의 사직 의사표시의 무효에는 사용자의 인식도 중요하다

근로자에게 실제 사직 의사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민법 제107조에 따른 무효가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인 사용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도록 지시하였고, 원고들의 사직 의사표시가 진의가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수리하였다고 인정되었다.
따라서 근로자의 진의 부재와 사용자의 인식이 함께 인정된 사례이다.

다. 의원면직이라는 형식을 취하더라도 실질이 일방적인 근로관계 종료라면 해고이다

사용자가 사직서를 받아 수리하는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만으로 자발적인 퇴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직할 의사가 없는 근로자에게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게 하고 이를 근거로 근로관계를 종료시켰다면,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따른 해고에 해당한다. 그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부당해고가 된다.
판단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 사직 의사표시가 유효한지 판단한다.
  • 사직 의사표시가 무효라면 사용자의 근로관계 종료 조치가 실질적인 해고인지 판단한다.
  • 해고라면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검토한다.

라. 강제 면직의 위법성과 손해배상채권의 시효 완성 여부는 별개이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사직 의사표시가 비진의 의사표시이고 의원면직의 실질이 해고라는 판단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 판단만으로 손해배상청구가 당연히 인용되는 것은 아니다.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는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원고 1에 관한 파기환송은 강제 면직이 적법하다는 취지가 아니라,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마. 불법행위의 배경을 나중에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시효 기산점이 늦춰지지는 않는다

이 사건에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핵심 사실은 피고가 원고의 의사에 반하여 사직서를 제출하게 하고, 그 사직서를 근거로 면직 처리하였다는 점이었다.
대법원은 원고 1이 이러한 사실을 면직 당시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보았다. 이후 국회 청문회를 통하여 알게 된 강제해직의 배경이나 경위는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에 필요한 요건사실과 구별하였다.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 배후 사정이 나중에 밝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때부터 새로 시효가 진행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바. 일실급료와 일실퇴직금의 지급 시점을 기준으로 손해 인식 시점을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원고 1이 일실급료와 일실퇴직금 상당의 손해 발생을 각 급료 또는 퇴직금을 지급받을 날에 알았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대법원의 판단
강제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면직된 사실을 안 때면직처분 당시
일실급료·일실퇴직금 상당 손해의 발생을 안 때각 급료·퇴직금을 지급받을 날
국회 청문회에서 추가로 알게 된 내용강제 면직의 경위·배경에 관한 이면사정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의 시효 기산점각 급료·퇴직금을 지급받을 날
따라서 손해 전부의 시효가 면직일에 일괄하여 시작한다고 본 것도 아니고, 1988년 청문회 때까지 시효 진행이 미뤄진다고 본 것도 아니다.

실무적 유의점

가. 사직서의 존재보다 제출 경위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일괄 제출 지시, 사직서 양식 배포, 제출 거부의 가능성, 사용자의 발언, 근로자의 이의 제기, 제출 전후의 근무 태도 등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사용자가 실제 사직 의사가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중요하다.

나. 해고무효에 따른 임금청구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구별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파기 사유가 된 청구는 원고 1의 일실급료·일실퇴직금 상당 손해배상청구이다. 근로관계 존속을 전제로 하는 임금청구와는 청구원인 및 시효 적용을 구별해야 한다.

다. 뒤늦은 조사 결과가 무엇을 새로 밝혔는지 특정해야 한다

나중에 발표된 조사 결과나 청문회 내용이 가해자 또는 손해 발생에 관한 새로운 사실인지, 이미 알고 있던 행위의 배경을 보충하는 내용인지 구분해야 한다. 이 판결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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