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번호
사건명: 양수금
원심: 서울고등법원 2013. 10. 23. 선고 2012나81496 판결
결과: 원심판결 중 회사 패소 부분 파기환송
관련 판례
아직 원시정관이 작성되지 않아 발기인 자격을 취득하기 전이라도, 장래 설립될 회사를 위하여 재산을 양수하기로 약정한 사람이 이후 발기인이 되었다면 그 약정은 상법 제290조 제3호의 재산인수에 해당한다. 정관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하지 않은 재산인수는 무효이다.
다만 회사 설립 후 2년 이내에 회사가 영업을 위하여 계속 사용할 재산을 자본금의 2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대가로 취득한 경우에는 상법 제375조의 사후설립에 해당할 수 있고,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그 취득을 승인할 수 있다.
상대방이 일정한 법률상태를 신뢰하는 것이 정당하고, 그 신뢰에 반하는 권리행사가 정의관념상 용인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르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그 권리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
법률관계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정당한 신뢰를 저버리거나 형평에 반하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해서는 안 되며,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는 강행규정이므로 당사자가 이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
관련 법령
민법 제2조 ―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상법 제290조 제3호 ― 회사 설립 후 양수할 재산의 종류·수량·가격과 양도인의 성명
상법 제375조 ― 회사 설립 후 영업용 재산 취득에 관한 사후설립
민법 제245조 제2항 ― 등기부취득시효
사실관계
1. 개인사업체의 운영
원고는 장기간 혼자 또는 동업자와 함께 캔바스 제조업체를 운영하였다.
원고는 자신의 생질인 공동피고에게 개인사업체인 동일캔바스의 영업권을 비롯한 일체의 자산과 채무를 포괄적으로 양도하기로 하였다.
사업양도양수계약은 1996년 10월 31일을 기준으로 자산과 채무를 이전하고, 양도대금은 자산과 채무의 차액인 202,674,520원으로 정하여 1996년 12월 31일까지 지급받는 내용이었다. 계약서상 계약일은 1996년 10월 30일이었다.
2. 회사 설립과 토지 이전 약정
원고는 회사가 설립되기 전 생질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약정을 체결하였다.
생질이 장차 캔바스 제조업을 목적으로 설립·운영할 회사에 원고가 공장 부지인 토지를 현물로 출자하거나, 설립된 회사가 원고로부터 그 토지를 매수하기로 하였다.
원고는 그 무렵 다른 회사 또는 동업자들로부터 토지와 그 지상 건물에 관한 일체의 권리를 양수하였다.
3. 회사 설립과 소유권이전등기
피고 회사는 1996년 9월 12일 원고의 생질을 대표이사로 하여 설립등기를 마쳤다.
원고가 운영하던 개인사업체의 영업권과 자산·채무는 원고로부터 생질을 거쳐 피고 회사에 귀속되었다.
피고 회사 설립 후인 1996년 10월 29일,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1996년 10월 22일자 매매를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가 피고 회사 앞으로 마쳐졌다.
1997년 1월 14일에는 토지 위 공장 건물에 관하여 피고 회사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가 마쳐졌다.
4. 원고의 회사 설립 및 경영 참여
원고는 단순히 토지를 양도한 외부 거래당사자가 아니었다.
원고는 개인사업체의 영업권과 자산·채무를 양도하는 방식으로 피고 회사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회사 설립 후에도 생질의 동업자 또는 피고 회사의 직원으로 활동하였다.
원고는 2008년경까지 회장 또는 고문이라는 직함으로 약 12년 동안 피고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였다.
5. 토지의 사용
이 사건 토지는 캔바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건물의 부지로서 피고 회사의 영업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재산이었다.
토지는 회사 설립 무렵부터 계속하여 피고 회사의 공장 부지로 사용되었다. 원고 역시 이러한 사용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원고는 피고 회사 설립 후 약 15년 동안 토지 양도와 회사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의 효력을 문제 삼지 않았다.
6. 뒤늦은 무효 주장
원고는 사업양도양수계약에 따른 양도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자 생질을 상대로 양도대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의 생질에 대한 사업양도대금채권은 이미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한 상태였다.
원고는 피고 회사도 공동피고로 삼아, 토지 이전약정이 정관에 기재되지 않은 재산인수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근거로 피고 회사 명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하였다.
핵심쟁점
첫째, 회사 설립 전 장래 설립될 회사에 토지를 현물출자하거나 매도하기로 한 약정이 상법 제290조 제3호의 재산인수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다.
둘째, 재산인수 사항이 정관에 기재되지 않은 경우 약정과 소유권이전의 효력이 인정되는지가 문제되었다.
셋째, 무효인 재산인수에 따라 토지를 취득한 회사가 등기부취득시효를 주장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다.
넷째, 재산인수 약정이 상법 제290조 제3호 위반으로 무효이더라도, 회사 설립과 토지 이전에 직접 관여한 원고가 약 15년 후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되는지가 핵심적으로 문제되었다.
재산인수에 관한 법리
1. 재산인수의 의미
상법 제290조 제3호의 재산인수란 발기인이 회사 성립을 조건으로 다른 발기인, 주식인수인 또는 제3자로부터 일정한 재산을 회사가 양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말한다.
매매 형식으로 재산을 취득하는 경우뿐 아니라 회사 설립을 전제로 현물출자 또는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재산을 취득하는 약정도 포함된다.
2. 발기인 자격 취득 전의 약정
약정 체결 당시 원시정관이 아직 작성되지 않아 형식상 발기인 자격이 없더라도, 장래 설립될 회사를 위하여 재산을 양수하기로 약정한 후 실제로 회사의 발기인이 되었다면 그 약정은 재산인수에 해당한다.
따라서 회사 설립 전에 생질이 원고와 체결한 토지 현물출자 또는 매수 약정은 상법 제290조 제3호의 재산인수에 해당하였다.
3. 정관 미기재의 효과
재산인수는 회사 설립 당시 회사의 자본충실을 해치거나 현물출자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위험이 있다.
이에 상법 제290조 제3호는 다음 사항을 정관에 기재하도록 요구한다.
회사가 양수할 재산의 종류
재산의 수량
재산의 가격
재산 양도인의 성명
위 사항이 정관에 기재되지 않으면 재산인수 약정은 무효이다.
이 사건 회사의 정관에는 토지 인수에 관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원심이 토지 이전약정을 무효라고 본 판단은 정당하였다.
등기부취득시효에 관한 판단
등기부취득시효가 성립하려면 등기명의인이 자기 소유라고 믿고 점유를 개시한 데 과실이 없어야 한다.
무과실은 등기부취득시효를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해야 한다.
피고 회사는 토지 취득의 원인이 된 약정이 정관에 기재되지 않은 재산인수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토지를 회사 소유라고 믿은 데 과실이 없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웠다.
대법원은 피고 회사의 등기부취득시효 주장을 배척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관한 법리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정당한 신뢰를 저버리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형식상 권리가 존재하더라도 그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
권리자가 상대방에게 일정한 법률상태에 관한 신뢰를 형성한 경우
상대방이 그 법률상태를 신뢰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정당한 경우
이후의 권리행사가 종전의 태도와 모순되는 경우
그 권리행사를 허용하는 것이 형평과 정의관념상 용인하기 어려운 경우
신의칙 위반과 권리남용금지는 강행규정이므로 법원은 당사자의 명시적인 주장이 없더라도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
대법원의 구체적 판단
1. 원고가 회사의 신뢰를 형성하였다
원고는 피고 회사의 설립에 직접 관여하고, 토지 이전약정을 체결·이행하였다.
회사 설립 후에는 회장 또는 고문으로 장기간 회사 경영에 참여하였다. 원고는 약 15년 동안 토지 이전과 회사 명의 소유권이전등기의 효력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 아래 피고 회사는 원고가 토지 이전의 효력을 뒤늦게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당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2. 토지는 회사의 핵심 영업재산이었다
토지는 피고 회사의 공장 부지로서 회사 영업에 반드시 필요한 재산이었다.
회사는 설립 무렵부터 약 15년 동안 해당 토지를 회사의 유효한 자산으로 취급하여 영업을 계속하였다.
원고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회사 경영에 참여하였다.
3. 원고의 양도대금채권은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
원고가 생질에게 갖고 있던 사업양도대금채권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다.
원고는 양도대금채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이후 피고 회사와 직접적인 채권관계가 없음에도 토지 이전의 무효를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무효 주장이 시효로 소멸한 양도대금채권의 손실을 회사 소유 토지의 회수로 전가하려는 결과가 된다고 보았다.
4.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승인할 수 있었던 사안이었다
토지 이전은 회사 설립 후 회사의 영업을 위해 계속 사용할 재산을 취득한 것으로서 상법 제375조의 사후설립에도 해당할 수 있었다.
토지 취득대가는 회사 자본금의 20분의 1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였던 생질은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고 주식 전부를 실질적으로 소유한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회사가 재산인수의 무효를 알았다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토지 취득을 승인하는 데 특별한 장애가 없었다.
5. 상법 제290조의 보호목적과도 부합하지 않았다
상법이 재산인수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재산의 과대평가로 인한 회사 자본의 부실 방지
현물출자 규제의 잠탈 방지
주주와 회사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보호
그러나 이 사건 토지는 실제로 회사에 이전되어 장기간 핵심 영업재산으로 사용되었다. 토지 취득의 효력을 인정하더라도 회사 자본충실을 해할 우려가 없었다.
회사 주주나 채권자가 토지 취득을 문제 삼았다는 자료도 없었다.
오히려 원고의 무효 주장을 받아들여 회사의 핵심 영업재산을 반환하게 하는 것이 회사·주주·채권자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었다.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 차이
원심
원심은 토지 이전약정이 정관에 기재되지 않은 재산인수에 해당하므로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피고 회사의 등기부취득시효 주장도 점유 개시 당시 무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이에 따라 피고 회사 명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명하였다.
대법원
대법원도 다음 두 가지 원심판단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토지 이전약정은 정관에 기재되지 않은 재산인수이므로 무효이다.
피고 회사의 등기부취득시효는 무과실이 증명되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원고의 무효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지는 별도로 판단했어야 한다고 보았다.
원고가 회사의 설립과 토지 이전에 직접 관여하고 장기간 경영에 참여한 후, 약 15년이 지나 양도대금채권이 시효로 소멸하자 비로소 토지 이전의 무효를 주장한 것은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원심판결 중 피고 회사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다.
결론
이 사건 토지 이전약정은 정관에 기재되지 않은 재산인수이므로 상법 제290조 제3호에 따라 무효이다.
그러나 재산인수의 무효와 그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고는 회사 설립과 토지 이전에 직접 관여하고, 토지가 회사의 공장 부지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약 12년 동안 회사 경영에 참여하였다. 약 15년간 토지 이전의 효력을 문제 삼지 않다가 사업양도대금채권이 시효로 소멸한 뒤 토지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무효 주장은 피고 회사가 형성한 정당한 신뢰를 저버리고 상법 제290조의 이해관계인 보호 목적에도 배치되므로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정관에 기재되지 않은 재산인수 자체가 유효해진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다. 재산인수 약정은 여전히 무효이지만, 구체적인 사정상 특정 당사자가 그 무효를 주장하는 권리행사만 신의칙에 따라 제한된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이 판결을 정관에 기재되지 않은 재산인수를 일반적으로 사후 추인하거나 유효화할 수 있다는 의미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다만 다음 사정이 중첩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재산인수의 무효 주장이 제한될 수 있다.
무효를 주장하는 사람이 회사 설립과 재산인수에 직접 관여한 경우
재산을 회사에 이전하고 장기간 그 효력을 문제 삼지 않은 경우
회사 경영에 장기간 참여한 경우
회사가 해당 재산을 핵심 영업재산으로 계속 사용한 경우
회사·주주·채권자가 재산 취득의 유효성을 장기간 신뢰한 경우
무효 주장이 상법 제290조의 이해관계인 보호 목적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그 목적에 반하는 경우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인 법률행위라도 무효 주장자의 선행행위, 상대방의 정당한 신뢰, 권리행사의 경위 및 법률이 보호하려는 이익을 종합하면 그 무효 주장이 신의칙상 제한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