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판결
대법원 1999년 4월 13일 선고 98다51077, 98다51084 판결〔손해배상(기)·손해배상〕
하급심 및 사건 경과
- 원심: 서울고등법원 1998년 9월 24일 선고 98나1968, 1975 판결. 임차인의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하고, 임차인의 임대차목적물 반환의무 불이행에 따른 임대인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하였다.
- 대법원: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다.
관련 법령
- 민법 제390조: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 민법 제391조: 이행보조자의 고의·과실을 채무자의 고의·과실로 보는 규정.
- 민법 제623조: 임대인의 목적물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 유지의무.
- 민법 제756조: 불법행위에 관한 사용자책임. 이 사건의 이행보조자 법리와 구별하여 검토할 규정이다.
사실관계
가. 임대인이 설치하기로 약속한 시설을 외부 공사업자가 시공하였다
임차인은 1996년 1월 1일 임대인 소유의 메추리농장 일체를 임차하였다. 임대차가 종료되면 메추리 성계와 새장을 임차 당시의 상태로 반환하기로 하였다.
임대인은 임대차계약에 따라 계분이송기 등 농장 운영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 주기로 약정하였다. 실제 설치공사는 임대인이 도급을 준 외부 공사업자들이 수행하였다.
나. 시설공사 중 화재가 발생하여 농장과 메추리가 전소되었다
공사업자들은 전력 공급용량이 3㎾인 산란장에 5㎾ 전기용접기를 연결하여 사용하였다. 용접기 사용 이후 퓨즈가 녹아 끊어지고 누전차단기가 두 차례 내려가는 등 과부하 징후도 나타났다.
그러던 중 1996년 4월 6일 산란장 천장 부근에서 불이 나 농장 건물과 사육 중이던 메추리가 전소되었다.
다. 임차인과 임대인이 서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임차인은 임대인이 맡긴 시설공사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며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반대로 임대인은 임차인이 농장과 메추리 등을 반환할 수 없게 되었다며, 반환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반소로 청구하였다.
법리
가. 독립된 공사업자도 임대인의 이행보조자가 되는가? — 계약상 의무를 대신 이행했다면 해당한다
대법원은 민법 제391조의 이행보조자에 해당하려면 채무자의 의사관여 아래 그 채무의 이행에 속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다음 사정은 필수 요건이 아니다.
- 채무자와 고용계약을 체결한 직원일 것.
- 채무자의 구체적인 지시·감독을 받을 것.
- 채무자에게 종속된 지위에 있을 것.
이 사건에서 공사업자들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약속한 시설 설치의무를 대신 수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독립된 수급인이더라도 임대인의 이행보조자에 해당한다.
임대인이 공사를 도급한 시점이 임대차계약 체결 전이었다는 사정도 결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해당 공사가 임대차계약상 설치의무를 이행하는 활동이라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법원-98다51077
나. 직접 지시·감독하지 않았다면 임대인은 면책되는가? — 그 사정만으로 면책되지 않는다
원심은 임대인이 공사업자들을 구체적으로 지시·감독하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사용자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약상 채무불이행책임을 별도로 판단했어야 한다고 보았다.
공사업자의 과실은 민법 제391조에 따라 임대인의 과실로 평가된다. 따라서 임대인이 공사 현장을 직접 감독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계약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이 판결의 핵심은 ‘이행보조자 자신의 책임’보다 ‘이행보조자의 잘못에 대한 채무자의 책임’에 있다.
다. 이행보조자라는 이유만으로 화재에 대한 책임이 인정되는가? — 공사업자의 과실과 화재의 인과관계도 필요하다
대법원은 공사업자가 이행보조자라는 점에 더하여, 화재 원인과 공사업자의 과실도 검토하였다.
구체적으로 전력용량을 초과하는 용접기를 사용하였고, 이미 퓨즈 단절과 차단기 작동 등 과부하 징후가 있었으며, 달리 화재 원인이 될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이에 따라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용접기의 계속된 사용으로 인한 과부하와 전선 발열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소방서와 경찰이 정확한 발화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민사상 과실과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다만 이는 이 사건의 구체적인 간접사실을 종합한 판단이다.
라. 화재이므로 공사업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어야 하는가? — 이 사건의 채무불이행책임에는 필요하지 않다
원심은 당시 실화책임에관한법률을 적용하여 공사업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책임 부정의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은 해당 법률이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이행보조자인 공사업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어야만 임대인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여기서 중과실이 없는 실화자의 불법행위책임을 제한한다는 설명은 판결 당시 법률에 관한 것이다. 해당 법률은 2009년 5월 8일 전부개정되었으므로 현재의 실화책임 일반에 그대로 옮겨 설명해서는 안 된다.
마. 임대인의 이행보조자가 일으킨 화재인데 임차인에게 반환 불능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 이 사건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
원심은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임차인이 보존의무를 다하였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차인에게 목적물 반환의무 불이행에 따른 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화재가 임대인의 이행보조자 과실로 발생하였다면 임대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 화재로 농장 등을 반환하지 못하게 된 책임을 임차인에게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행보조자의 과실을 누구에게 귀속시키는지가 임차인의 손해배상청구와 임대인의 반소 모두의 결론을 바꾼 사건이다.
관련 판례
- 대법원 1987년 12월 8일 선고 87다카898 판결 이 사건이 직접 인용한 판례이다. 당시 실화책임에관한법률은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청구 취지를 불법행위책임으로만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 대법원 2013년 8월 23일 선고 2011다2142 판결 이행보조자의 범위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후속 판례이다. 별도의 대관계약에 따라 공연장을 사용한 국립오페라단은 다른 대관자에 대한 공연장 운영자의 채무를 이행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 관계에서는 이행보조자가 아니라고 보았다. 제3자와 계약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해당 채권자에 대한 채무 이행을 담당해야 한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실무적 유의점
이행보조자 책임을 주장할 때는 먼저 상대방이 계약상 어떤 의무를 부담하는지, 외부업체가 그 의무의 이행을 맡았는지를 특정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임대차계약서의 시설 설치 약정이 중요한 근거였다.
또한 외부업체의 과실, 손해 및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그 과실이 민법 제391조에 따라 계약 당사자에게 귀속된다는 구조로 주장해야 한다. 직접적인 지시·감독 관계가 불분명하더라도 계약상 책임이 성립할 수 있으므로, 사용자책임과 함께 채무불이행책임을 명확히 구분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