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판결
가. 최초 대법원판결 — 계약체결의무와 그 위반에 따른 책임
대법원 2002. 1. 25. 선고 99다63169 판결〔현상광고보수〕
공모 당선자가 취득한 ‘기본 및 실시설계권’의 의미와 광고자의 의무를 명확히 하였다. 계약 결렬의 책임을 피고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나. 재상고심 —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설계계약 체결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에도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환송심의 원고 패소판결이 확정되었다.
하급심
첫 대법원판결에서 파기환송되었지만, 환송심에서 별도의 쟁점인 소멸시효가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는 결정적 사유가 되었다.
관련판례
재상고심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하여 다음 판결들을 인용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위 법리를 기초로 피고가 계약체결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한 시점을 판단하였다.
관련법령
판결에서 아래 민법 규정에 관하여 별도의 ‘구법’ 표시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 표기에 따른다.
민법 제163조 제3호는 “도급받은 자, 기사 기타 공사의 설계 또는 감독에 종사하는 자의 공사에 관한 채권”을 3년의 단기소멸시효 대상으로 규정한다.
사실관계
가. 설계공모와 원고의 당선
피고는 재단법인이고, 피고 산하 교회가 교육관 신축과 본당 기능 재계획 공사를 추진하였다. 원고는 종합건축사사무소를 경영하는 개인으로서 설계공모에 참여하였다.
교회는 1993. 6. 6. 설계를 공모하면서 최우수작 당선자에게 해당 공사의 기본 및 실시설계권을 부여한다고 정하였다.
원고는 1993. 7. 30. 응모하여 1993. 8. 10. 최우수작 당선자로 선정되었다. 이후 교회의 요구에 따라 설계를 변경하고, 설계도면·설계 및 감리비용 견적서·설계계약서안 등을 제출하였다. 교구청 건축심의위원회의 요구에 따른 추가 설계변경도 진행하였다.
다만 당사자 사이에 설계대금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별도의 설계계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나. 설계·감리비 협의와 교회의 최종 통보
설계·감리비 등에 관하여 교회와 원고가 최종적으로 제시한 금액은 다음과 같았다.
원고가 1993. 11. 15. 교회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회신하자, 교회는 1993. 11. 17. 다시 통보하였다.
그 내용은 1993. 11. 20.까지 교회의 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원고에게 설계계약 체결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었다. 원고는 그 기한까지 답변하지 않았고, 이후 공사를 계속 추진하는 것을 전제로 한 구체적인 협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 공사계획 유보와 원고의 청구
이후 주임사제의 인사이동과 건축자금 마련의 어려움으로 공사계획은 장기간 유보되었다.
교회는 1996. 8. 6. 원고에게 향후 공사를 다시 추진하고 설계용역비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우선적으로 설계권을 부여하겠다는 취지로 통지하였다.
원고는 1997. 7. 3. 이 사건 소를 제기하여 5,754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청구하였다. 청구 근거는 설계보수청구권, 계약체결의무 위반에 따른 보수 상당 손해배상청구권 등이었다.
청구금액 5,754만 원은 앞서 협의한 전체 설계·감리비 9,168만 원과 구별된다. 원고는 자신이 이미 수행한 계획설계·기본설계 등에 관한 보수 또는 그에 상응하는 손해의 일부를 청구하였다.
라. 선행 최고·소송의 명의와 시효중단 다툼
원고는 1996. 7. 25.경 계약 이행 또는 용역비 정산을 최고하고, 1997. 1.경 소를 제기하였다가 취하한 후 다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시효가 중단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환송심이 확인한 것은 주식회사인 별도 건축사사무소 명의의 최고와 그 회사가 원고가 되어 제기한 선행 소송이었다. 법원은 이를 이 사건 원고 개인의 최고·소 제기로 인정하지 않았고, 시효중단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리
가. 공모 당선으로 취득하는 것은 설계계약 체결을 청구할 권리이다
최초 대법원판결은 ‘기본 및 실시설계권’을 당선된 계획설계를 기초로 기본 및 실시설계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공모 당선 사실만으로 설계계약이 이미 체결되었다거나, 당선자가 제시한 금액의 보수청구권이 곧바로 확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당선자는 계약체결을 요구할 법적 지위를 취득한다. 광고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하고, 당선자 이외의 제3자와 설계계약을 체결해서는 안 되며, 양 당사자는 계약내용을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
나. 설계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어도 계약체결의무 위반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최종 설계계약과 그에 앞서 발생한 우수현상광고에 따른 계약체결의무를 구별해야 한다.
최종 설계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더라도 광고자가 현저히 부당한 조건을 고집하거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공사를 추진하지 못하여 계약체결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문제 된다.
최초 대법원판결은 다음 사정을 지적하였다.
- 원고는 당선 이후에도 교회의 요구에 따라 구체적인 설계변경 작업을 수행하였다.
- 보수 제안액 차이는 1,100여만 원이었는데, 교회는 합의 도출을 위한 별다른 노력 없이 자기 안의 수용을 일방적으로 요구하였다.
- 교회 측 사정과 자금 부족으로 공사계획 자체가 수년간 유보되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피고의 책임을 쉽게 부정할 수 없다고 보고 추가 심리를 명하였다. 다만 이 단계에서 원고가 청구한 손해액 전부를 인정하거나 지급을 명한 것은 아니다.
다. 계약체결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에도 설계보수채권의 3년 시효가 적용된다
재상고심의 핵심은 아직 설계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는데도 그 계약에서 발생할 보수채권의 단기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있는지였다.
원고는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청구권이므로 10년의 시효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계약체결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계약이 체결되었다면 취득하였을 이행청구권과 실질적·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그 이행청구권에 적용되는 시효기간을 따른다.
설계계약이 체결되었다면 원고가 취득할 설계보수채권에는 민법 제163조 제3호의 3년 시효가 적용된다. 따라서 그 계약체결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도 3년의 시효가 적용된다.
이는 이미 성립한 설계계약의 불이행뿐 아니라, 설계계약을 체결할 의무 자체를 위반한 경우에도 적용된 법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라. 이 사건의 시효는 명백한 이행거절을 기준으로 진행하였다
대법원은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채무불이행 시부터 진행한다는 법리를 제시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이미 거절한 조건을 다시 제시하면서 불과 3일 안에 수용하지 않으면 계약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통보하고, 이후 구체적인 협의도 진행하지 않은 사정이 중요하였다.
법원은 이를 피고가 계약체결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한 행위로 보았다.
판결은 이행거절 의사표시 다음 날 또는 회신기한 다음 날을 기산점으로 들었으며, 늦어도 다음과 같이 시효가 완성된다고 판단하였다.
원고는 소 제기로 계약을 해지하였으므로 그때부터 시효가 진행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사계획이 계속 유보되어 있었다는 사정도 이미 발생한 이행거절에 따른 시효 진행을 늦추는 근거가 되지 않았다.
마. 시효중단을 위한 권리행사는 채권의 귀속 주체와 일치해야 한다
환송심은 원고 개인의 권리행사와 별도 법인의 권리행사를 구별하였다.
최고나 선행 소송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구의 채권을 누구 명의로 행사하였는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회사 명의의 최고와 회사가 제기한 소송을 원고 개인의 권리행사로 볼 근거가 인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원고가 주장한 최고·선행 소송·재소의 연결을 통한 시효중단도 인정되지 않았다.
바. 계약체결의무 위반과 다른 책임 근거도 구별해야 한다
환송심은 원고가 추가로 주장한 책임도 별도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민법 제535조의 적용이 부정되었다는 이유로, 계약교섭 단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이 부정된 사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실무적 유의점
가. 공모 당선자의 권리와 최종 계약의 성립을 구분해야 한다
공모지침에서 약속한 것이 상금인지, 설계계약 체결권인지, 우선협상권인지에 따라 권리 내용이 달라진다. 이 사건은 기본 및 실시설계권을 부여하기로 한 우수현상광고에 관한 판단이다.
당선 이후 추가 작업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작업 범위와 보수, 최종 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때의 정산 기준을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
나. 손해배상청구로 구성하더라도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있다
청구 명칭이 손해배상이라는 이유만으로 10년의 시효를 전제해서는 안 된다. 계약이 체결되었다면 취득할 채권의 성질과 손해배상청구권 사이의 실질적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설계보수채권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계약체결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에도 3년의 시효가 적용되었다.
다. 재협의 가능성과 이미 발생한 이행거절을 구별해야 한다
향후 사업이 재개되면 계약을 검토하겠다는 통지가 있어도 기존 채무불이행에 따른 시효가 계속 진행할 수 있다. 최종 통보의 문언, 협의 중단 경위와 이후의 실제 교섭 내용을 기준으로 이행거절 시점을 확인해야 한다.
라. 개인과 법인의 명의, 최고와 재소의 요건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개인 채권을 관련 회사 명의로 청구하면 시효중단 효과가 부정될 수 있다. 최고 후 소송을 제기하거나 소를 취하한 뒤 재소하는 경우에도 권리 주체의 동일성과 법정기간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소 취하가 있더라도 민법 제170조 제2항의 요건을 갖추면 최초 재판상 청구의 시효중단 효과가 인정될 수 있으므로, 이 사건을 ‘소를 취하하면 언제나 시효중단 효과를 회복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일반화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