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판례
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다7865 판결 [임대차보증금]
기존 공동임대인 중 한 사람이 임대목적물을 매수하면서 임대인의 지위를 넘겨받기로 한 경우, 임차인이 그 계약인수를 묵시적으로 승낙하여 나머지 임대인들이 보증금 반환책임에서 벗어났는지가 문제 된 사건이다.
대법원은 묵시적 승낙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이 사건의 쟁점은 일부 당사자의 명시적 반대가 아니라, 기존 임대인들을 면책시키는 계약인수에 대한 임차인의 승낙을 인정할 수 있는지이다.
하급심 및 파기환송심
- 제1심: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2000. 3. 16. 선고 99가합8343 판결
- 환송 전 원심: 서울고등법원 2000. 12. 15. 선고 2000나19351 판결
- 파기환송심: 서울고등법원 2002. 8. 22. 선고 2001나64969 판결
환송 전 원심은 근저당권 설정으로 기존 임대인들의 보증금 반환채무가 소멸하였거나, 임차인의 묵시적 승낙 아래 임대인의 지위가 새 소유자에게 면책적으로 이전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두 판단 모두 잘못이라고 보았다.
파기환송심은 기존 임대인들의 면책 주장을 배척하고, 피고들이 각자 미반환 보증금 중 원고가 청구한 4억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판결 이유에서는 상법 제57조 제1항에 따른 연대책임을 인정하였다.
관련 판례
- 대법원 1996. 9. 24. 선고 96다25548 판결 계약상 지위의 이전은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계약자유와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인정될 수 있다.
- 대법원 1996. 2. 27. 선고 95다21662 판결
- 대법원 1992. 3. 13. 선고 91다32534 판결
- 대법원 1987. 9. 8. 선고 85다카733, 85다카734 판결 계약인수는 세 당사자의 합의뿐 아니라, 두 당사자가 합의하고 나머지 당사자가 동의하거나 승낙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 대법원 2006. 4. 28. 선고 2005다62808 판결 이후 대상 판결을 인용하면서, 계약인수에 명시적으로 부동의하면 그 당사자와의 관계에서 계약인수는 확정적으로 무효가 되고, 나중에 일방적으로 부동의를 번복하여 종전 계약인수를 승낙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법령
계약인수의 성립요건은 민법에 직접적인 명문 규정이 없어 판례가 구체화하고 있다. 다음은 이 사건의 쟁점과 관련된 조문이다.
- 민법 제105조 당사자의 의사에 따른 법률관계 형성과 관련된 규정이다.
- 민법 제147조 제2항 해제조건이 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되면 효력을 잃는다. 다만 임대차의 효력 상실과 보증금 반환채무의 소멸은 구별해야 한다.
- 민법 제618조 임대차계약의 기본적인 내용을 규정한다.
- 상법 제57조 제1항 여러 사람이 그중 한 사람 또는 전원에게 상행위가 되는 행위로 채무를 부담하면 연대하여 변제할 책임이 있다. 파기환송심이 피고들의 연대책임을 인정한 직접적인 근거이다.
사실관계
공동사업자 28명이 상가를 건축하고 은행에 2층을 임대하였다
피고 27명과 소외인 1명은 토지를 공동으로 분양받아 상가를 건축·분양하기로 하고 상가조합을 결성하였다.
은행은 1995년 8월 21일 이들 공동사업자로부터 당시 건축 중이던 상가의 지상 2층 전체를 임차하였다.
임대차보증금은 7억 원이고, 지급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은행은 먼저 계약금과 중도금 합계 2억 4,000만 원을 지급하였다. 공동사업자 중 3명은 은행 명의의 근저당권이 설정될 때까지 이 금액의 반환채무를 연대보증하였다.
공동임대인 중 한 사람이 2층을 매수하면서 보증금 반환채무를 인수하였다
공동임대인 중 한 사람인 소외인은 1995년 10월 18일 조합으로부터 상가 2층을 7억 원에 매수하였다.
그는 매매대금 7억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대신, 은행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7억 원의 반환채무를 인수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기존 공동임대인들과 매수인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산을 약정한 것이다.
매수인이 2층을 넘겨받는 대신, 은행에 돌려줄 보증금 7억 원을 부담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부 약정만으로 은행에 대한 기존 임대인들의 책임까지 없어지는지는 별도의 문제였다.
은행은 매수인 명의의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받았다
1995년 11월 22일 매수인 앞으로 2층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다.
같은 달 24일 매수인은 은행에 보증금 반환채무를 담보하는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다. 근저당권의 채무자는 매수인 본인, 채권최고액은 9억 1,000만 원이었다.
은행은 근저당권 설정 직후 보증금 잔금 4억 6,000만 원을 기존 임대인들에게 지급하였다.
다만 은행과 매수인 사이에 새로운 임대차계약서가 작성되지는 않았다.
은행은 매수인에게 반환을 요구했지만 보증금을 모두 회수하지 못하였다
임대차기간이 끝나자 은행은 매수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고, 1998년 1월 12일 상가 2층을 인도하였다.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자 은행은 근저당권을 실행하여 경매절차에서 299,999,701원을 배당받았다.
남은 금액은 다음과 같다.
은행이 파산한 뒤 파산관재인들은 기존 공동임대인 27명을 상대로 미반환 보증금 중 4억 원을 청구하였다.
기존 임대인들은 은행이 자신들의 면책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였다
피고들은 은행이 매수인에게서 근저당권을 설정받고, 그 후 매수인에게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한 점 등을 들어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은행도 매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넘겨받는 데 묵시적으로 동의했으므로, 기존 임대인들은 더 이상 보증금을 반환할 책임이 없다.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리
묵시적 승낙에는 계약인수의 효과를 받아들인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계약인수에 대한 승낙은 반드시 서면이나 명시적인 말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을 통해서도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는 구별해야 한다.
- 계약인수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사정
- 계약인수의 법률효과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 행동
대법원은 첫 번째 사정만으로 두 번째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내심으로 동의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는 묵시적 승낙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는 은행이 매수인에게서 담보를 받는 것을 넘어, 기존 임대인들의 반환책임을 없애는 효과까지 받아들였는지가 중요하였다.
새 소유자에게서 담보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존 임대인의 면책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근저당권 설정 당시 상가 2층은 이미 매수인 소유였으므로, 은행이 그 부동산을 담보로 받으려면 매수인에게서 근저당권을 설정받아야 했다.
또한 매수인은 원래 공동임대인 28명 중 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 사람을 근저당권의 채무자로 표시한 사정만으로 나머지 공동임대인들의 책임을 없애기로 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보증금 반환을 위한 담보를 확보하는 행동과 기존 채무자들을 면책시키는 행동은 구별된다는 것이다.
공동임대인 한 사람에게 반환을 요구한 것은 나머지 사람들의 책임을 포기한 것과 다르다
은행이 계약 종료 무렵과 그 후 매수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한 사실도 묵시적 승낙의 근거로 부족하였다.
매수인은 기존 공동임대인이면서 근저당권설정자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에게 먼저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기존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행동만으로 다른 임대인들에 대한 반환청구권까지 포기하거나, 그들을 면책시키는 계약인수를 승낙했다고 추단할 수는 없다.
사무착오로 새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승낙을 대신하지 못한다
환송 전 원심은 은행이 사무착오로 매수인과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대법원은 사무착오 때문에 의사표시를 하지 못했다면 그 의사표시를 요소로 하는 법률행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지, 사무착오라는 이유로 하지 않은 의사표시가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즉,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과 실제 승낙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다르다.
임대차가 종료되어도 보증금 반환채무는 소멸하지 않는다
환송 전 원심은 은행 명의로 근저당권이 설정되면 임대차가 종료되는 해제조건이 있었고, 조건 성취로 기존 임대인들의 반환채무도 소멸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이 논리를 부정하였다.
임대차가 기간 만료·해지·해제·취소·무효 등으로 효력을 잃으면, 계약이나 원상회복·부당이득에 기초한 보증금 반환 문제가 발생한다. 임대차가 효력을 잃었다는 이유로 보증금 반환채무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파기환송심은 그러한 해제조건 약정 자체를 인정할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파기환송심은 공동사업자들의 연대책임을 인정하였다
피고들은 보증금 반환책임이 남더라도 연대책임까지 부담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파기환송심은 상가를 건축·분양하는 동업관계에서 공동으로 임대한 행위가 조합원 전원을 위한 상행위라고 보았다. 이에 상법 제57조 제1항을 적용하여 연대책임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피고들의 부담은 각자의 지분에 따라 4억 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미반환액 중 청구된 4억 원 전부에 대하여 책임지는 구조이다. 다만 어느 피고가 변제하면 그 범위에서 나머지 피고들의 채무도 소멸하므로 중복 회수할 수는 없다.
파기환송심은 4억 원에 대하여 1998년 1월 13일부터 2002년 8월 22일까지 연 6%, 그 다음 날부터 완제일까지 연 25%의 지연손해금 지급을 명하였다. 이는 해당 판결 당시 적용된 이율이다.
실무상 유의점
- 계약인수로 기존 당사자가 면책되었다고 주장하려면, 상대방이 그 효과를 받아들였다고 볼 구체적인 말이나 행동을 제시해야 한다.
- 새 소유자에게서 담보를 받거나 그에게 먼저 이행을 청구했다는 사실만으로 기존 채무자의 책임이 없어졌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 인수인과 양도인 사이의 내부 약정, 소유권 이전, 상대방의 계약인수 승낙을 구분하여 확인해야 한다.
- 이 사건은 약정에 따른 계약인수의 승낙을 판단한 사례이다. 특별법에 따라 임대인의 지위가 법정승계되는 경우에는 그 적용요건을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 상가 공동사업에서 발생한 채무는 조합원별 지분만으로 책임 범위를 판단하지 말고, 상법 제57조에 따른 연대책임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