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자우편으로 성립한 ICC 중재합의와 미국 중재판정의 국내 집행

핵심 결론 전자우편으로 계약을 수락하고 그 문서가 ICC 중재조항이 담긴 표준약관을 명확히 원용했다면 서면 중재합의가 성립할 수 있다. 미국에서 승인된 중재판정도 한국에서 별도로 집행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7다225084, 2012다84004, 2004다20180, 2016다203315, 2006다20290

해당 판례

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7다225084 판결 [집행판결]
  • 원고: 크레인월넛쉘링인코퍼레이티드(Crain Walnut Shelling, Inc.)
  • 피고: 주식회사 샤니
  • 중재관리기관: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재판소
  • 적용 중재규칙: ICC 중재규칙
  • 법률상 중재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몰리노스
  • 중재합의의 준거법: 미국 캘리포니아주법
  • 결과: 피고의 상고 기각
하급심
제1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16. 6. 8. 선고 2015가합204812 판결
제1심은 다음 중재판정 및 외국재판에 따른 대한민국 내 강제집행을 허가하였다.
  •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재판소 사건번호 17730/CYK/RD 사건에서 2014년 3월 18일 내려진 중재판정
  • 미국 캘리포니아주 동부연방지방법원이 2015년 1월 23일 피고에게 판결 전 이자와 변호사 비용의 지급을 명한 부분
원심
서울고등법원 2017. 4. 4. 선고 2016나2040321 판결 [집행판결]
원심은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원심은 피고의 구매담당자에게 호두공급계약과 중재합의를 체결할 실제 대리권이 있었거나, 적어도 원고가 그러한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정당한 이유가 있어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캘리포니아주법에 따라 원고의 제안서가 명확하게 원용한 표준약관이 호두공급계약에 편입되었고, 그 표준약관에 포함된 ICC 중재조항은 뉴욕협약상 서면 중재합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중재판정의 손해액 산정이 대한민국의 공공질서에 반한다는 피고의 주장도 배척하였다.
대법원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모두 정당하다고 보아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특히 대법원은 다음 두 가지 법리를 명확히 하였다.
  • 중재합의의 성립·유효성은 당사자가 지정한 법에 따르고, 지정이 없으면 중재판정지국법에 따른다.
  • 미국에서 이미 중재판정의 승인판결을 받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그 중재판정에 대한 집행판결을 다시 구할 수 있다.

관련 판례

관련 법령 및 국제협약
  •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 정식 영문명은 Convention on the Recognition and Enforcement of Foreign Arbitral Awards이며, 통상 ‘뉴욕협약’이라고 한다.
  • 뉴욕협약 제2조 제1항 중재로 해결할 수 있는 법률관계에서 발생한 분쟁을 중재에 회부하기로 한 당사자 사이의 서면합의를 승인하도록 규정한다.
  • 뉴욕협약 제2조 제2항 서면합의에는 계약서상의 중재조항과 당사자가 서명한 중재합의뿐 아니라 교환된 서신이나 전보에 포함된 중재합의도 포함된다.
  • 뉴욕협약 제4조 제1항 집행신청인은 인증된 중재판정 원본 또는 등본과 서면 중재합의 원본 또는 등본을 제출해야 한다.
  • 뉴욕협약 제4조 제2항 중재판정이나 중재합의가 집행국 공용어로 작성되지 않았다면 증명된 번역문을 제출해야 한다.
  •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a)호 중재합의가 당사자들이 지정한 준거법에 따라 무효인 경우, 지정이 없으면 중재판정지국법에 따라 무효인 경우 승인·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
  •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e)호 중재판정이 당사자를 구속하지 않거나 중재판정지국의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해 취소 또는 정지된 경우 승인·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
  • 뉴욕협약 제5조 제2항 (b)호 중재판정의 승인·집행이 집행국의 공공질서에 반하는 경우 승인·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
  • 중재법 제39조 제1항 뉴욕협약의 적용을 받는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집행은 뉴욕협약에 따르도록 한다.
  • 구 국제사법(2022. 1. 4. 법률 제18670호로 전부개정되기 전의 것) 제18조 제2항, 제3항, 제5항 대리인의 행위로 본인이 제3자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하는지는 대리인의 영업소 소재지법 또는 대리행위지법에 따르도록 하였다. 근로자인 대리인에게 별도 영업소가 없으면 본인의 주된 영업소를 대리인의 영업소로 본다.
  • 구 국제사법(2022. 1. 4. 법률 제18670호로 전부개정되기 전의 것) 제29조 제2항 계약의 방식에 관한 준거법을 적용한 결과가 모든 사정에 비추어 명백히 부당한 경우에 관한 예외를 규정하였다.
  • 민법 제126조 대리인이 권한을 넘은 행위를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본인이 책임을 부담한다.
  • 민사소송법 제217조 외국법원의 확정재판이 대한민국에서 승인되기 위한 간접관할, 송달, 공서양속 및 상호보증 등의 요건을 규정한다.
  • 민사집행법 제27조 제1항 외국재판 등에 관한 집행판결에서는 재판의 옳고 그름을 다시 심리하지 못하도록 한다.

사실관계

당사자와 거래 개시
원고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호두를 가공·판매하는 법인이었고, 피고는 대한민국에서 제과류를 제조·판매하는 법인이었다.
피고의 구매담당자는 2009년경부터 피고의 원료구매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는 2009년 9월 16일 피고의 상무이사를 비롯한 직원 4명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원고를 방문하여 거래관계를 시작하였다.
피고의 상무이사는 원료구매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서 2010년 1월경 구매담당자에게 원고와 직접 호두공급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하였다. 그 후 구매담당자가 원고와의 호두거래 협상과 연락을 전담하였다.
두 차례의 현물구매계약
구매담당자의 협의를 통하여 원고와 피고는 2010년 2월과 4월 두 차례 현물구매계약을 체결하였다.
  • 2010년 2월 거래금액: 미화 1,175,940달러
  • 2010년 4월 거래금액: 미화 1,579,620달러
두 거래에서 원고는 호두를 정상적으로 공급하였고 피고도 대금을 모두 지급하였다.
특히 두 번째 현물거래에서도 원고가 표준약관이 포함된 매매계약 확인서를 구매담당자에게 보냈지만 피고가 서명하여 반환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원고는 호두를 공급하였고 피고는 대금을 전액 결제하였다.
이러한 종전 거래방식은 원고가 피고 구매담당자에게 계약체결 권한이 있다고 믿게 된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연간 호두 수량 제안
원고는 2010년 3월 19일 피고 구매담당자에게 2009년산 호두의 공급 가능 물량과 확정가격을 기재한 연간 수량 제안서를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원심은 이 문서를 ‘주문서’라고도 표현하였다.
제안서에는 원고의 매매계약 확인서에 기재된 표준약관이 적용된다는 취지의 문구가 명시되어 있었다.
피고의 상무이사는 2010년 3월 26일 구매담당자에게 2010년 2월의 첫 번째 현물거래와 같은 조건으로 원고의 연간 수량 제안에 관한 계약을 추진하라고 지시하였다.
구매담당자는 같은 날 원고에게 다음 취지의 전자우편을 보냈다.
원고가 피고를 위해 제안한 제안서상의 수량을 구매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다.
구매담당자는 이 전자우편에 원고의 제안서 사본을 첨부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전자우편의 교환으로 원고의 청약에 대한 피고의 승낙이 이루어져 호두공급계약이 성립했다고 판단하였다.
표준약관의 송부
원고는 2010년 4월 6일 구매담당자에게 매매계약 확인서 사본을 보냈다.
매매계약 확인서에는 그 문서에 서명하여 7일 이내에 반환하지 않거나 호두를 인도받으면 확인서 뒷면의 표준약관을 수락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표준약관도 확인서에 첨부되어 있었다.
구매담당자는 매매계약 확인서를 피고의 상무이사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피고는 정해진 기간 내에 서명된 확인서를 반환하지 않았고 표준약관의 적용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표준약관의 준거법 및 중재조항
표준약관 제12조는 호두공급계약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법을 적용하도록 정하였다.
표준약관 제13조는 계약에서 발생하는 모든 분쟁을 ICC 중재규칙에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몰리노스에서 중재로 최종 해결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 중재관리기관: 프랑스 파리 소재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재판소
  • 중재규칙: ICC 중재규칙
  • 법률상 중재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몰리노스
  • 주된 계약의 준거법: 미국 캘리포니아주법
  • 중재합의의 준거법: 미국 캘리포니아주법
중재관리기관인 ICC 국제중재재판소의 소재지와 법률상 중재지는 구별된다. ICC가 프랑스 파리에 소재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정한 법률상 중재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몰리노스이다.
계약 이행 전제의 협의와 피고의 이행거절
원고 담당자와 피고 구매담당자는 환율변동으로 호두가격이 하락하기 전까지 선적 일정과 리베이트 프로그램의 활용방법 등을 논의하였다. 이는 양측이 호두공급계약의 성립과 이행을 전제로 행동한 정황이었다.
그러나 피고 구매담당자는 2010년 8월 27일 원고에게 다른 공급원으로부터 호두를 구매하기로 결정했으므로 원고가 제안한 호두를 공급받지 않겠다고 통보하였다.
피고는 원고가 중재를 신청할 때까지 구매담당자의 계약체결 권한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제상업회의소 중재판정
원고는 피고의 계약 불이행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재판소에 중재를 신청하였다.
사건번호는 17730/CYK/RD이고, 중재인은 조지 엠 블라비아노스(George M. Vlavianos)였다.
중재인은 2014년 3월 18일 피고에게 다음 금액을 지급하도록 판정하였다.
  • 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금 미화 726,023.50달러
  • 중재판정 전 이자 미화 258,384.09달러
  • 중재절차 관련 비용 및 변호사 보수 미화 332,507.19달러
  • 중재판정비용 미화 75,000달러
손해배상금 산정
원고는 이 사건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2009년산 호두를 확보해 두었다. 그 호두의 계약대금은 미화 3,301,050.50달러였다.
피고가 호두의 인수를 거절하자 원고는 확보해 둔 호두 전량을 다른 회사에 미화 2,723,586.25달러에 매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원고는 새로운 구매회사 라벨을 붙이는 데 필요한 포장비용과 포장 유실 등에 따른 추가 손실을 부담하였다. 중재판정부는 이러한 차액과 추가비용을 종합하여 원고의 손해를 미화 726,023.50달러로 인정하였다.
미국 법원의 중재판정 승인
피고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동부연방지방법원에서 중재조항의 효력 등을 다투었다.
원고는 미국 소송절차에서 다음 사항을 신청하였다.
  • ICC 중재판정의 승인
  • 2011년 4월부터 2014년 7월 10일까지 미국 소송에 지출한 변호사 보수
  • 중재판정일부터 미국 법원 판결일까지의 판결 전 이자
미국 법원은 2015년 1월 23일 다음과 같은 재판을 하였다.
  • ICC 중재판정을 승인한다.
  • 미화 726,023.50달러에 대하여 2014년 3월 18일부터 2015년 1월 23일까지 연 10%의 판결 전 이자를 지급한다.
  • 피고는 원고에게 미국 소송의 변호사 비용 미화 148,058.50달러를 지급한다.
피고가 미국 연방민사소송법상 30일의 불복기간 안에 불복하지 않아 위 재판은 확정되었다.
대한민국에서의 집행판결 청구
원고는 대한민국에서 다음 두 부분의 강제집행을 구하였다.
  • ICC 중재판정 전체
  • 미국 법원 재판 중 판결 전 이자와 미국 소송의 변호사 비용 지급을 명한 부분
원고는 한국 법원에 중재판정 원본과 번역문, 중재합의가 포함된 제안서·매매계약 확인서·표준약관의 인증등본 및 번역문을 제출하였다.

법리

뉴욕협약의 적용
대한민국은 1973년 2월 8일 뉴욕협약에 가입·비준하였고, 1973년 5월 9일 조약 제471호로 발효되었다.
대한민국은 다음 범위에서 협약을 적용한다는 유보선언을 하였다.
  • 다른 체약국에서 내려진 중재판정일 것
  • 대한민국 법상 상사관계에서 발생한 분쟁일 것
미국도 뉴욕협약의 체약국이고, 이 사건은 미국의 호두 판매업체와 대한민국 제과업체 사이의 상품공급계약에 관한 분쟁이었다. 따라서 뉴욕협약이 적용된다.
대리권과 중재합의의 준거법은 구별됨
이 사건에서는 서로 다른 법률문제에 서로 다른 준거법이 적용되었다.
피고 구매담당자의 행위가 피고에게 효력을 미치는지는 대리권의 문제이다. 구매담당자는 피고의 근로자로서 별도 영업소가 없었고, 본인인 피고의 주된 영업소와 구매담당자가 승낙 의사표시를 한 장소가 모두 대한민국이었다.
따라서 구 국제사법 제18조에 따라 대리권 및 표현대리 성립 여부에는 대한민국 법이 적용되었다.
반면 중재합의의 성립과 유효성은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a)호에 따라 당사자가 지정한 법에 의한다. 이 사건에서는 주된 계약의 준거법을 캘리포니아주법으로 정하였으므로, 중재합의에도 캘리포니아주법을 적용하기로 묵시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보았다.
결국 다음과 같이 법률관계를 나누어 판단하였다.
  • 구매담당자의 대리권: 대한민국 법
  • 호두공급계약의 성립·효력: 캘리포니아주법
  • 표준약관의 계약 편입: 캘리포니아주법
  • 중재합의의 성립·유효성: 캘리포니아주법
  • 외국 중재판정의 국내 승인·집행: 뉴욕협약
  • 미국 법원 재판의 국내 승인: 대한민국 민사소송법 제217조
구매담당자의 실제 대리권 또는 표현대리
법원은 구매담당자에게 실제 계약체결 권한이 있었거나, 적어도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 구매담당자는 피고 상무이사의 지시에 따라 원고와 거래를 시작하였다.
  • 구매담당자는 2009년 피고 임직원들과 원고의 미국 사업장을 방문하였다.
  • 원고와의 모든 계약협상과 연락을 구매담당자가 전담하였다.
  • 구매담당자를 통하여 두 차례 호두 현물거래가 체결·이행되었다.
  • 상무이사는 구매담당자에게 종전 거래와 같은 조건으로 연간 계약을 추진하라고 지시하였다.
  • 구매담당자는 원고와의 연락 내용을 상무이사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였다.
  • 피고는 계약 확인서와 표준약관을 보고받고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 양측은 선적 일정과 리베이트 등 계약 이행을 전제로 협의하였다.
  • 피고는 원고가 중재를 신청할 때까지 구매담당자의 권한을 문제 삼지 않았다.
상사거래 및 국제거래에서는 회사의 구매담당자가 반복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회사가 이를 이행해 왔다면 상대방은 그 담당자에게 유사한 거래를 체결할 권한이 있다고 신뢰할 수 있다.
따라서 구매담당자에게 내부적으로 추가 승인이 필요했더라도, 그러한 내부적 제한을 알지 못한 원고에게 대항하기 어려웠다.
그룹회사 접수인이 찍혔다는 사정
피고는 구매담당자가 회신한 제안서에 계열회사 유통본부의 접수인이 찍혀 있으므로 계약당사자가 피고가 아니라 계열회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구매담당자는 원고에게 계열회사는 여러 브랜드회사로 구성되어 있고, 호두거래에서 실제 수입회사는 피고로 정해졌으며 계열회사 명칭은 구매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종전 두 차례 거래도 원고와 피고 사이에서 이루어졌고, 매매계약 확인서의 고객 및 목적지에도 피고의 상호와 주소가 기재되어 있었다.
따라서 접수인만으로 계약당사자를 계열회사라고 볼 수 없었다.
전자우편으로 호두공급계약이 성립함
원고는 공급물량과 확정가격이 기재된 제안서를 전자우편으로 발송하였다. 구매담당자는 제안서상 수량을 구매할 의사를 확인한다는 전자우편에 해당 제안서 사본을 첨부하여 회신하였다.
이는 원고의 청약에 대한 피고의 서면 승낙이었다. 따라서 별도의 정식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더라도 호두공급계약은 유효하게 성립하였다.
표준약관의 계약 편입
캘리포니아주법상 다른 문서의 조건을 계약에 편입하려면 원용 문구가 명확하고, 상대방에게 통지되었으며, 상대방이 해당 문서를 알고 있거나 쉽게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사건 제안서는 원고의 표준약관이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표시하였다. 피고는 원고에게 요청하여 표준약관을 쉽게 받을 수 있었고, 해당 제안서를 조건 없이 수락하였다.
따라서 제안서가 수락된 단계에서 표준약관도 계약에 편입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설령 당시 표준약관이 제안서에 첨부되지 않아 즉시 편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이후 표준약관을 첨부한 매매계약 확인서를 보냈고 피고는 이를 보고받고도 정해진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원심은 캘리포니아주 상법 제2207조에 따라 상인 사이에서 추가 조건이 기재된 서면확인이 합리적인 기간 내에 이의 없이 수령된 경우 그 조건이 계약 내용에 편입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단순한 침묵만으로 중재합의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다음 사정을 종합하였다.
  • 선행 거래관행
  • 제안서의 명확한 표준약관 원용
  • 전자우편에 의한 조건 없는 수락
  • 표준약관의 후속 송부
  • 피고 내부의 보고
  • 피고의 무이의
  • 계약 이행을 전제로 한 후속 협의
뉴욕협약상 서면 중재합의
뉴욕협약 제2조 제2항의 서면 중재합의는 양 당사자가 하나의 계약서에 직접 서명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는다.
교환된 서신이나 전보에 중재합의가 포함된 경우에도 서면요건을 충족한다. 이 사건에서는 전자우편으로 교환된 제안서, 매매계약 확인서 및 표준약관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표준약관 제13조에는 모든 분쟁을 ICC 중재규칙에 따라 캘리포니아주 로스몰리노스에서 중재로 최종 해결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전자우편과 첨부문서 전체에 의해 뉴욕협약상 서면 중재합의가 성립하였다.
집행요건에 관한 제한적 재심사
집행국인 대한민국 법원은 중재판정부가 판단한 계약위반이나 손해액의 타당성을 다시 심리할 수 없다. 이를 실질 재심사 금지의 원칙이라고 한다.
다만 다음 사항은 집행요건 자체에 관한 것이므로 대한민국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 서면 중재합의가 존재하는지
  • 구매담당자에게 본인을 구속할 대리권이 있었는지
  • 중재판정이 당사자를 구속하는지
  • 뉴욕협약상 집행거부사유가 존재하는지
따라서 법원은 계약위반 여부를 다시 심리한 것이 아니라 서면 중재합의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범위에서 구매담당자의 대리권과 표현대리를 심리하였다.
손해배상액은 공공질서에 반하지 않음
피고는 원고가 호두를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제3자에게 매각하여 손해를 인위적으로 확대했으므로 중재판정의 집행이 대한민국 공공질서에 반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원고가 보유한 것은 곧 새 수확분이 출시될 예정인 2009년산 호두였다. 당시 제3자 매각 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었고, 매각을 늦추었다면 더 낮은 가격으로 처분해야 할 가능성이 컸다.
중재판정부는 단순히 계약대금과 전매가격의 차액만 인정한 것이 아니라 라벨 교체 등 포장비용과 포장 유실액을 함께 고려하여 미화 726,023.50달러의 손해를 산정하였다.
이에 원심은 중재판정의 집행 결과가 대한민국의 기본적 도덕관념이나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공공질서 위반 여부는 국내법과 결론이 다르거나 손해액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국제거래질서의 안정성을 고려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미국에서 승인판결을 받아도 한국에서 집행할 수 있음
뉴욕협약은 중재판정이 최종적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하여 중재판정지국에서 먼저 집행판결이나 집행가능선언을 받을 필요가 없도록 하였다. 이를 이중집행판결 또는 이중집행허가의 폐지라고 한다.
그렇다고 중재판정지국에서 이미 승인판결을 받으면 다른 체약국에서 중재판정의 집행을 구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원고가 미국에서 ICC 중재판정의 승인판결을 받았더라도, 피고의 재산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 중재판정 자체에 대한 집행판결을 다시 구할 수 있다.
미국 법원의 별도 금전명령
원고는 미국 법원의 중재판정 승인 부분을 다시 한국에서 집행해 달라고 청구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별도로 집행을 구한 미국 법원 재판의 대상은 다음과 같다.
  • 중재판정일부터 미국 법원 판결일까지 연 10%의 판결 전 이자
  • 미국 소송절차에서 발생한 변호사 비용 미화 148,058.50달러
이 부분은 ICC 중재판정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 법원의 독립적인 금전 지급명령이다. 따라서 중재판정과 미국 법원 재판을 중복하여 집행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미국 법원의 재판은 민사소송법 제217조가 정한 외국재판 승인요건도 충족하였다.

결론

원고와 피고는 종전 두 차례 호두거래와 같은 방식으로 전자우편을 교환하여 연간 호두공급계약을 체결하였다. 피고의 구매담당자는 상무이사의 지시를 받아 계약을 추진했고, 원고는 반복된 거래관행과 피고의 태도에 비추어 그에게 계약체결 권한이 있다고 정당하게 신뢰하였다.
제안서에는 원고의 표준약관이 적용된다는 문구가 있었고, 피고는 제안서를 전자우편으로 수락하였다. 이후 표준약관이 첨부된 매매계약 확인서를 보고받고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에 캘리포니아주법상 표준약관과 그 안의 ICC 중재조항이 계약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전자우편, 제안서, 매매계약 확인서 및 표준약관을 종합하면 뉴욕협약이 요구하는 서면 중재합의가 존재한다.
피고의 계약 불이행으로 원고가 확보한 호두를 제3자에게 할인 매각하면서 발생한 손해를 미화 726,023.50달러로 인정한 중재판정도 대한민국의 공공질서에 반하지 않는다.
원고가 미국에서 중재판정의 승인판결을 받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그 중재판정에 대한 집행판결을 다시 구할 수 있다. 미국 법원이 별도로 지급을 명한 판결 전 이자와 미국 소송의 변호사 비용도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요건을 충족하므로 대한민국에서 집행할 수 있다.
이에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ICC 중재판정과 미국 법원의 별도 금전 지급명령에 대한 국내 강제집행을 최종적으로 허용하였다.

목록으로 업무분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