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투자자의 사전동의권과 그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약정의 효력

핵심 결론 투자자에게 회생절차 개시신청에 관한 사전동의권을 부여한 약정은 주주평등 원칙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액이 투자원금과 같더라도 실질이 의무이행 확보라면 곧바로 투자금 보장약정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주요 판례·법령 2023다210670, 2018다9920, 2018다236241

관련 판례

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3다210670 판결
회사가 전환상환우선주를 발행하면서 투자자에게 회생절차 개시신청에 관한 사전동의권을 부여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투자원금과 가산금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사전동의권과 손해배상약정이 모두 주주평등 원칙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본 원심을 파기하였습니다. 사전동의권이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감시·감독 수단으로 기능하고, 손해배상약정이 실제로 동의절차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면 예외적으로 유효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8다9920·9937 판결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 다른 주주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경제적 이익을 부여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어 무효라는 기본 법리를 제시하였습니다.
대법원 2020. 8. 13. 선고 2018다236241 판결
회사가 신주인수대금을 전액 보전하거나 법정 배당 외의 별도 수익을 특정 투자자에게만 지급하기로 한 약정은 투자위험을 제거하고 특정 주주에게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므로 무효라고 판시하였습니다.
대상판결은 위 판례들과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투자원금 반환약정과 유효한 사전동의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약정을 구분하여, 후자는 구체적 사정에 따라 유효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한 것입니다.
위 판례들은 모두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독립된 판례 상세 페이지가 실제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관련 법령

민법 제105조는 당사자가 임의규정과 다른 의사를 표시한 경우 그 의사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사적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을 규정합니다.
민법 제398조 제1항·제2항은 당사자가 채무불이행에 관한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 그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한 경우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도록 합니다.
상법 제369조 제1항은 1주마다 1개의 의결권을 인정합니다. 이는 주주가 보유주식 수에 비례하여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주주평등 원칙의 근거가 됩니다.
상법 제462조는 회사가 배당가능이익의 범위에서만 이익배당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상법 제464조는 이익배당을 원칙적으로 각 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에 따라 하도록 규정합니다.
상법 제538조는 회사 청산 시 잔여재산을 주식 수에 따라 주주에게 분배하도록 규정합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46조와 제217조는 회생절차에서 주주·지분권자의 후순위적 지위 및 권리변경에 관한 사항을 규율합니다.

사실관계

원고인 기술보증기금은 2013년 8월 30일 피고 회사가 발행하는 전환상환우선주 17,850주를 9억 9,960만 원에 인수하고 주식인수대금을 납입하였습니다. 투자 결과 원고는 피고 회사 발행주식의 약 5%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투자계약에는 피고 회사가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하려면 사전에 원고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회사가 이를 위반하면 원고가 위반사유의 소명과 시정을 최고하고, 회사가 최고일부터 2주 이내에 소명하거나 시정하지 않을 경우 원고가 투자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회사가 정해진 기간 안에 소명이나 시정을 하지 못하면 원고에게 다음 금액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도록 약정하였습니다.
주식인수대금 9억 9,960만 원
주식인수대금 납입일부터 회수일까지 약정 비율로 계산한 가산금
피고 회사는 2016년 5월 30일 원고의 서면동의를 받지 않고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하였습니다. 원고는 2016년 7월 4일 회사에 2주 이내에 신청 경위를 소명하고 위반상태를 시정하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 7월 14일 회사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되었고, 2017년 2월 15일 회생계획이 인가되었습니다. 회생절차는 2019년 12월 10일 종결되었습니다.
원고는 회생절차에서 투자원금 9억 9,960만 원과 가산금 약 3억 2,950만 원을 합한 약 13억 2,910만 원을 손해배상채권으로 신고하였습니다. 회사가 이를 부인하고 회생법원이 채권 부존재 결정을 내리자 원고는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에 대한 이의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사전동의권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약정이 회사가 일부 주주인 원고에게만 다른 주주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손해배상금이 실질적으로 투자원금과 가산금 전액을 회수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자본충실 및 출자환급금지 원칙에 반하고, 주주를 일반채권자와 같은 지위에 두어 채무자회생법상 주주의 후순위적 지위에도 반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원심은 사전동의권 및 손해배상약정이 모두 무효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법리

1. 일부 주주에 대한 차등대우도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음

주주평등의 원칙상 회사가 특정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는 약정은 원칙적으로 무효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차등대우가 있다는 형식만으로 곧바로 약정을 무효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그 차등대우가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고 정의와 형평에 맞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차등대우의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
약정 체결의 경위와 목적
회사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자금조달에 필요했는지
투자유치를 위해 특별한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는지
다른 주주에게 발생하는 손해나 불이익
회사의 법정 기관이 갖는 의사결정 권한을 과도하게 제한하는지
다른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는지
회사의 규모, 지배구조, 사업현황 및 재무상태
투자자가 회사의 경영감시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기여하는지

2. 회생절차 개시신청에 관한 사전동의권의 유효성

회생절차 개시신청은 회사의 존립과 주주·채권자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입니다. 원칙적으로 이사회 결의가 필요한 중요 업무이지만, 정관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주주총회 결의사항은 아닙니다.
따라서 특정 투자자에게 사전동의권을 부여하면 이사회 등 회사 기관의 권한을 상당히 제한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주주의 의결권을 직접 침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약 5%의 지분을 보유하였습니다. 이는 회생절차 개시를 직접 신청할 수 있는 10%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주제안권·주주총회 소집청구권·이사해임청구권·회계장부열람권 등 상법상 여러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3%를 초과했습니다.
대법원은 원고가 납입한 약 10억 원이 회사의 유동성 확보와 자본 증가에 상당히 기여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원고에게 회생절차 개시신청에 관한 감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다른 소수주주와 회사 전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특히 원고는 기술력이 있으나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사전동의권이 대주주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공공 투자금의 적정한 운용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점도 고려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사전동의권은 일부 주주에게 우월한 권리를 부여한 것이지만, 차등대우를 정당화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사전동의권은 회사에 대한 절대적 거부권과 동일하지 않음

이 판결은 투자자가 어떠한 이유로든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절대적으로 저지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회사에는 회생절차 신청 전 투자자에게 재정상태와 신청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기 위해 합리적인 노력을 할 의무가 있습니다. 긴급한 사정으로 사전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사후 최고에 따라 소명하거나 시정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전동의권의 실질은 회사의 회생절차 신청을 무조건 봉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로 하여금 투자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협의하도록 하는 절차적 통제장치에 있었습니다.

4. 투자자의 동의 거절에도 신의칙과 권리남용 법리가 적용됨

회생절차 개시신청이 불가피하고 회사 전체의 이익에 명백히 부합하는 상황에서 회사가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충분한 노력을 했는데도, 투자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동의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회사가 투자자의 동의 없이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더라도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따라서 사전동의권은 투자자에게 부여된 무제한적인 경영거부권이 아닙니다. 투자자 역시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여 신의성실하게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회사가 원고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기 위해 합리적이고 충분한 노력을 했다고 볼 자료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회사의 책임을 부정할 특별한 사정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5. 손해배상약정과 투자원금 보장약정의 구별

회사가 투자자에게 언제든지 투자원금 전액을 반환하기로 약정했다면 이는 특정 주주의 투자위험을 제거하는 절대적 원금 보장약정으로서 무효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은 단순히 회생절차가 개시되었다는 결과만으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요건이 충족되어야 발생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회사가 스스로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할 것
사전에 투자자의 서면동의를 받지 않았을 것
투자자가 위반사유의 소명과 시정을 최고할 것
회사가 2주 이내에 소명하거나 시정하지 않을 것
회생절차가 그대로 진행될 것
대법원은 이러한 구조라면 손해배상약정의 실질은 투자원금의 무조건적 반환이 아니라 사전동의 및 설명의무의 이행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손해배상 예정액이 투자원금과 같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투자원금 회수보장약정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6. 자본충실 및 출자환급금지 원칙에도 당연히 반하지 않음

이 사건 손해배상금은 주주라는 지위만으로 지급되는 돈이 아닙니다. 회사가 유효한 사전동의절차를 위반하고, 최고 후에도 이를 소명하거나 시정하지 않은 채 회생절차를 진행한 채무불이행에 따라 발생합니다.
따라서 이를 배당가능이익이 없는 상태에서 주주에게 출자금을 환급하는 것과 동일하게 볼 수 없습니다. 투자자를 단순히 주주에서 일반채권자로 변경시켜 채무자회생법상 후순위 원칙을 회피하는 구조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대법원은 자본충실 원칙과 채무자회생법상 주주의 후순위적 지위를 이유로 약정을 무효라고 본 원심판단에도 법리오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7. 약정이 유효해도 손해배상 예정액은 감액될 수 있음

손해배상약정이 유효하다고 하여 투자자가 약정액 전부를 반드시 회생채권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하면 법원은 이를 감액할 수 있습니다. 특히 투자원금과 동일한 금액을 손해배상액으로 정한 경우에는 사실상 투자원금 회수보장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엄격한 심사가 필요합니다.
법원은 다음 사정을 고려하여 감액 여부와 범위를 판단해야 합니다.
사전동의권과 손해배상약정을 체결한 경위
투자자가 실제로 입은 손해
회사가 동의절차를 위반하게 된 이유
회사가 사전 또는 사후에 설명·설득을 위해 노력했는지
투자자의 권리행사가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했는지
약정액과 실제 손해 사이의 차이
약정액이 사실상 투자원금 회수보장으로 기능하는지

결론

대법원은 사전동의권과 손해배상약정이 주주평등 원칙, 자본충실 원칙 및 채무자회생법상 주주의 후순위 원칙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습니다.
다만 대법원이 원고의 회생채권 약 13억 2,910만 원 전부를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사전동의권을 정당화하는 구체적인 사정, 손해배상약정의 실질, 투자자가 실제로 입은 손해 및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 여부를 다시 심리해야 합니다.
이 판결은 벤처투자계약상 투자자 보호조항을 모두 주주평등 원칙 위반으로 무효화하지 않고, 그 기능과 실질에 따라 구별해야 한다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투자자의 경영감시와 절차적 협의를 확보하기 위한 사전동의권 및 그 이행확보를 위한 손해배상약정은 유효할 수 있지만, 무조건적인 투자원금 반환이나 투자손실 보장으로 설계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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