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불법행위 소멸시효의 기산점: 시세조종 사건의 한국 대법원 판결과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의 한국법 적용 비교

핵심 결론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3년 단기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 발생이나 부정행위의 가능성을 막연히 알게 된 때가 아니라, 특정 가해자의 위법행위, 손해 및 인과관계 등 청구에 필요한 사실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하여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해진 때부터 진행한다.

한국 대법원은 복잡한 시세조종 사건에서 금융당국의 조사결과 발표와 검찰 기소만으로 개인투자자의 현실적·구체적 인식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도 한국법을 적용하면서, 국내은행이 특정 금융회사를 상대로 각하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 사실을 확보하기 전에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8다241403

관련 판례

한국 대법원 판결
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8다241403 판결
손해배상청구의 소

대법원 판결문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 결정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 2015. 4. 22. 결정
Woori Bank v. Citigroup Global Markets, Inc., No. 14-3329-cv
Summary Order, judgment vacated and remanded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 결정문
미국 결정은 2015년에 내려졌으므로 2018년 선고된 대법원 2018다241403 판결을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다. 두 판결은 동일한 한국법상 소멸시효 기산점 법리를 서로 다른 금융불법행위 사건에서 적용한 사례로 비교할 수 있다.
한국 대법원 시세조종 사건

사실관계

외국은행과 그 은행이 국내 금융투자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한 증권회사의 직원들은 코스피200 지수와 관련한 시세조종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이로 인해 손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들은 외국은행과 국내 증권회사를 상대로 사용자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11. 2. 23. 외국은행 계열사 직원들의 시세조종행위를 확인했다며 관련자 고발과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2011. 5. 31.경에는 증권회사에 대한 일부 영업정지 처분이 확정되었다.
검찰은 2011. 8. 19. 피고들의 직원과 국내 증권회사를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관련 언론보도와 금융기관·보험회사·외국인 투자자들의 손해배상소송도 이어졌다.
개인투자자들은 2016. 1. 26.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개인투자자들이 늦어도 금융당국의 조사결과 발표와 언론보도가 이루어진 2011. 2. 23.부터 국내 증권회사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이 확정된 2011. 5. 31.경까지는 시세조종행위의 존재와 손해 및 피고들의 책임을 인식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6. 1. 26. 제기된 소는 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보아 청구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의 법리

대법원은 민법 제766조 제1항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다음과 같은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한 때를 의미한다고 판시하였다.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위법한 가해행위가 존재한다는 사실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가해자가 누구인지
피해자가 이러한 사실을 언제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했는지는 개별 사건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한 상황까지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용자책임의 경우에는 직접 불법행위자의 행위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피해자가 다음 사실까지 인식해야 한다.
직접 행위자와 사용자 사이에 사용관계가 있다는 사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불법행위가 사용자의 사무집행과 관련하여 이루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사실
금융당국 발표와 검찰 기소만으로는 부족
대법원은 금융당국의 조사결과 발표와 검찰 기소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개인투자자들이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개인투자자들이 금융상품시장에 관한 일정한 이해와 경험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또는 검찰이 조사과정에서 확보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없었다.
피고들은 금융감독기관의 조사결과와 검찰 기소 이후에도 시세조종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였다. 외국은행 홍콩지점 직원들은 국외에 있었고, 국내 증권회사와 관련자에 대한 형사 제1심 유죄판결은 4년 이상 지난 2016. 1. 25.에야 선고되었다.
시세조종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코스피200, 지수차익거래 및 지수변동행위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였다. 형사판결문의 본문도 82면에 이를 정도로 사실관계와 법적 판단이 복잡하였다.
피고들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한 민사 제1심판결도 2015. 11. 26.경에야 선고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외국은행은 금융감독기관의 제재대상이나 검찰의 기소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개인투자자들이 그 이전에 외국은행 홍콩지점 직원들과 외국은행 사이의 사용관계 및 사무집행 관련성까지 알았다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소멸시효 기산점을 2011년 금융당국 발표 무렵으로 본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의 한국법 적용 사건

사실관계

국내은행은 2007. 3. CGMI로부터 Armitage ABS CDO Ltd.가 발행한 부채담보부증권인 Armitage CDO에 미화 2,500만 달러를 투자하였다. 이후 CDO 시장이 붕괴하면서 투자금의 가치가 거의 소멸하였다.
국내은행은 2012. 5. 15. CGMI가 상품의 구조와 위험, 기초자산 및 관련 거래에 관하여 허위 또는 오해를 유발하는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하며 사기, 사기에 의한 계약 유도, 과실에 의한 부실표시 및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은 국내은행이 2009. 5. 15. 이전의 언론보도, 다른 민사사건의 소장 및 공개자료를 통하여 CGMI에 대한 청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민법 제766조 제1항의 3년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보아 CGMI의 motion to dismiss를 인용하였다.
한국법상 판단기준
당사자들은 한국의 소멸시효법이 적용된다는 점과 민법 제766조 제1항의 시효가 피해자의 현실적·구체적 인식 이후 진행한다는 점을 다투지 않았다.
항소법원은 한국 판례와 양측 한국법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피해자가 다음 사항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보았다.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피고의 위법행위 또는 부작위
위법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가해자의 신원
항소법원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한국법상 모든 기산점 법리를 일반적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다고 전제하였다. 다만 최소한 국내은행이 피고를 상대로 법적으로 성립 가능한 청구를 제기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을 인식하기 전에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실제 청구가 가능해야 시효가 진행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 제9조 (b)는 사기청구에 관하여 사기의 구체적인 내용과 정황을 상세하게 주장하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원고가 구체적인 사실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기청구를 각하하면서, 동시에 그보다 앞선 시점부터 한국법상 소멸시효가 진행했다고 본다면 원고는 소를 제기할 수도 없고 구체적 사실이 공개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모순된 상황에 놓인다.
항소법원은 한국법이 이러한 결과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적어도 motion to dismiss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법적 청구를 구성할 구체적인 사실이 확보되어야 시효가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motion to dismiss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이라는 기준은 한국 대법원 판례의 직접적인 문언이 아니다. 한국법상 ‘현실적·구체적 인식’과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한 상황’을 미국 연방민사소송절차에 맞추어 적용한 것이다.
언론보도와 제3자의 소장만으로는 부족
CGMI는 2009. 5. 15. 이전에 공개되었거나 국내은행이 보유한 69개의 자료를 제출하였다. 항소법원은 이를 직접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69개 자료 중 40개는 Citigroup이나 CGMI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료는 금융위기와 CDO 시장의 일반적인 문제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구체적인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17개 자료는 Citigroup 또는 CGMI를 상대로 제기된 다른 민사사건의 소장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객관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사기 주장에 불과하였다. 제3자의 소장에 근거 없는 의혹이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피해자가 자신의 불법행위청구를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나머지 언론보도와 회사 공시도 Citigroup의 서브프라임 자산 노출이나 금융위기로 인한 손실을 설명했을 뿐, CGMI가 국내은행과의 거래에서 구체적으로 허위표시를 했거나 사기의 고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국내은행이 2007년부터 CGMI의 투자설명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그 내용이 허위였다는 점까지 인식했다고 볼 수도 없었다.
항소법원은 2009. 5. 15. 이전의 자료만으로는 국내은행이 CGMI의 허위표시와 사기적 인식상태를 구체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다고 법률상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소를 각하한 제1심 판결을 취소·환송하였다.
다만 국내은행의 청구가 시효에 걸리지 않았다고 최종 확정한 것은 아니다. 실제 기산점이 2011년 금융위기조사위원회 보고서 또는 SEC 소장과 합의안의 공개 시점인지도 판단하지 않았다.
두 판결의 공통 법리
단순한 의심과 현실적·구체적 인식의 구별
두 판결은 모두 피해자가 부정행위의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었다는 사정과 손해배상청구에 필요한 요건사실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했다는 사정을 구별하였다.
금융당국의 조사결과, 검찰의 기소, 언론보도 및 다른 피해자의 민사소송은 피해자가 조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특정 피고의 위법행위, 손해와의 인과관계 및 책임귀속에 관한 현실적·구체적 인식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손해배상청구의 현실적 가능성
한국 대법원은 피해자가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했는지를 판단할 때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도 이 법리를 적용하여, 적어도 국내은행이 법적으로 성립 가능한 청구를 제기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을 확보해야 시효가 진행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두 판결 모두 정보가 형식적으로 공개된 시점보다 피해자가 그 정보에 기초하여 실제 청구를 구성할 수 있었는지를 중시한다.
불법행위의 각 요건에 관한 인식
두 판결 모두 손해 발생을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피해자는 특정 피고의 위법행위, 손해 및 양자 사이의 인과관계를 함께 인식해야 한다.
시세조종 사건처럼 사용자책임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사용자와 직접 행위자 사이의 사용관계 및 사무집행 관련성까지 인식해야 한다.
사기 사건에서는 피고의 표시가 허위라는 사실뿐 아니라 피고에게 사기 또는 과실에 해당하는 책임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복잡한 금융사건의 특수성
시세조종 사건에서는 코스피200과 지수차익거래 및 지수변동행위에 관한 전문성이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국내은행의 CDO 투자 사건에서도 복잡한 상품구조, 피고의 내부 포지션과 이해상충 및 주관적 인식상태는 일반적인 금융위기 보도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복잡한 금융사건에서는 손해가 발생하거나 시장에 의혹이 제기된 시점과 불법행위청구가 현실적으로 가능해진 시점 사이에 상당한 간격이 있을 수 있다.
두 판결의 차이
한국 대법원 사건의 원고들은 전문 금융투자업자가 아닌 개인투자자였다. 대법원은 이들이 일정한 투자경험을 가지고 있더라도 금융당국이나 검찰이 확보한 정보를 모두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미국 사건의 원고는 국내은행이었다. 그럼에도 항소법원은 전문 금융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개된 모든 정보와 CGMI의 내부사정을 인식했다고 간주하지 않았다. 공개자료가 특정 피고의 구체적인 위법행위와 책임요소를 실제로 뒷받침하는지를 개별적으로 검토하였다.
시세조종 사건에서는 금융당국의 조사결과와 검찰 기소라는 공식적인 판단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피고들이 혐의를 계속 다투었고, 시세조종의 위법성과 인과관계 및 사용자책임을 판단하려면 전문적인 분석이 필요했다.
미국 사건에서는 제3자들이 제기한 여러 민사소송과 언론보도가 존재했지만, 대부분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나 금융시장 전반의 문제에 관한 정보였다. 특정 피고의 사기행위를 뒷받침하기에는 자료 자체의 구체성과 신뢰성이 부족하였다.
절차단계도 다르다. 한국 대법원은 원심의 본안판결이 소멸시효 기산점을 잘못 판단했다고 보아 파기·환송하였다.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은 motion to dismiss 단계에서 소장의 사실과 합리적 추론을 원고에게 유리하게 보아야 한다는 전제에서 판단하였다. 따라서 미국 결정은 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최종판단이 아니라, 현 단계의 자료만으로 시효 완성을 법률상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종합 법리
두 판결을 종합하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3년 단기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 발생을 알거나 특정인을 가해자로 의심하기 시작한 때가 아니라, 특정 가해자의 위법행위, 손해 및 상당인과관계와 책임귀속에 필요한 사실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하여 손해배상청구를 사실상 제기할 수 있게 된 때부터 진행한다.
그 판단에서는 다음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금융당국이나 감독기관의 조사결과 발표
행정제재와 검찰 기소
언론보도의 구체성과 신뢰성
다른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의 주장과 객관적 근거
형사·행정·민사소송의 진행상황
피고가 혐의를 인정했는지 계속 다투었는지
사건의 전문성과 복잡성
피해자의 전문지식 및 정보접근 가능성
사용자책임·고의·인과관계 등 추가 책임요소를 파악할 수 있었는지
실제 소송에서 청구요건을 구체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는지
다만 형사 유죄판결이나 선행 민사판결이 선고되어야만 언제나 소멸시효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판결은 현실적·구체적 인식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객관적 사정이지만 필수요건은 아니다. 피해자가 그 이전에 이미 청구의 각 요건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확보했다면 그 시점부터 시효가 진행할 수 있다.

판결의 의의

한국 대법원 판결은 금융당국의 조사결과나 검찰 기소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복잡한 금융불법행위의 단기소멸시효를 곧바로 진행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 결정은 이 법리를 국제금융소송에 적용하면서,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다는 것은 적어도 적용되는 소송법상 각하되지 않을 정도로 구체적인 청구를 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결국 두 판결은 피해자가 막연한 의심이나 일반적인 공개정보만으로 완성도 낮은 소를 서둘러 제기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공통된 취지를 가진다. 동시에 시효 기산점은 피해자의 주관적인 주장만으로 늦춰지는 것이 아니라, 당시 확보할 수 있었던 객관적 정보, 사건의 전문성, 피고의 대응 및 실제 청구 가능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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