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판례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 [손해배상(기)]
- 원고: 구 일본제철의 제철소에 동원되어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 4명
- 피고: 구 일본제철의 사업을 승계한 일본 회사
- 청구내용: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이라는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 대법원 결과: 원심판결 전부 파기·환송
하급심 및 최종 재판 결과
- 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4. 3. 선고 2005가합16473 판결
- 환송 전 원심: 서울고등법원 2009. 7. 16. 선고 2008나49129 판결
- 파기환송 판결: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
- 파기환송심: 서울고등법원 2013. 7. 10. 선고 2012나44947 판결
- 재상고심: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제1심과 환송 전 원심
제1심과 환송 전 원심은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송 전 원심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 원고 1, 2가 일본에서 같은 청구로 패소한 확정판결은 대한민국에서도 승인된다.
- 구 일본제철과 피고 회사는 별개의 법인이므로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 설령 청구권이 존재하더라도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
-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법률상 판단에 따라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피고가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명하였다.
피고가 다시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의 승소판결이 최종 확정되었다.
관련 판례
- 대법원 2005. 1. 27. 선고 2002다59788 판결 국제재판관할은 당사자와 법정지, 분쟁과 법정지 사이의 실질적 관련성을 기준으로 당사자의 공평·편의·예측가능성과 재판의 적정·신속·효율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채권자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면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 될 수 있다.
-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사건으로, 2009다68620 판결과 같은 날 동일한 기본 법리를 판시하였다.
-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자료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확정하였다.
- 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18다303653 판결 후속 강제동원 사건에서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지속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법령
- 국제사법 제2조 국제재판관할은 당사자 또는 분쟁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는 경우 인정된다.
-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 제3호 외국판결을 승인하려면 그 승인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 구 헌법(1962. 12. 26. 헌법 제6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부칙(1948. 7. 17.) 제100조
- 법례(法例)(1898. 6. 21. 법률 제10호) 제30조
- 구 섭외사법(2001. 4. 7. 법률 제6465호 국제사법으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5조
- 민법 제2조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하며 권리를 남용하지 못한다.
- 민법 제166조 제1항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한다.
-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1조, 제2조
사실관계
원고들은 1923년부터 1929년 사이 한반도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들이었다.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수행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법, 조선인 내지이입 알선 요강 및 국민징용령 등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을 일본의 군수사업장으로 동원하였다.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 및 철강통제회와 협력하여 한반도에서 노동자를 모집하였다.
원고 1, 2는 오사카제철소에서 2년간 훈련을 받으면 기술을 습득하고 한반도로 돌아와 기술자로 취업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유가 제한된 상태에서 석탄을 깨고 화로에 투입하거나 철 파이프 안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위험하고 고된 노동에 종사하였다.
임금 대부분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저축되었고, 통장과 도장은 기숙사 사감이 보관하였다. 외출은 제한되었으며 도망하려는 사람은 구타와 체벌을 받았다.
원고 1, 2는 1944년 2월경 강제로 징용된 이후 용돈조차 지급받지 못하였다. 이후 청진제철소 건설현장으로 이동하여 하루 12시간씩 토목공사에 종사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였다.
원고 3은 보국대로 동원되어 가마이시제철소에서 노동하였고, 원고 4도 군산부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노역하였다. 이들 역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도주 과정에서 구타를 당하였다.
구 일본제철은 전후 일본의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에 따라 1950년 4월 1일 해산하였다. 그 자산·영업·임직원을 기초로 여러 제2회사가 설립되었고, 합병과 상호변경을 거쳐 피고 회사가 되었다.
원고 1, 2는 1997년 일본 법원에 일본 정부와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패소하였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결정으로 2003년 10월 9일 일본판결이 확정되었다.
그 후 원고들은 2005년 2월 28일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를 상대로 각 100,000,000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법리
대한민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음
국제재판관할은 단순히 피고의 주소나 불법행위지 하나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당사자 사이의 공평·편의·예측가능성과 재판의 적정성·신속성·효율성 및 판결의 실효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다음 사정이 인정되었다.
- 강제동원과 기망행위의 일부가 한반도에서 이루어졌다.
- 피해자들이 모두 대한민국에 거주하였다.
- 피해 내용이 대한민국의 역사적·정치적 변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 대한민국이 일련의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장소 중 하나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당사자 및 분쟁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고, 대한민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된다.
일본판결은 대한민국에서 승인할 수 없음
민사소송법 제217조에 따라 외국판결을 승인하려면 그 승인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공서양속 위반 여부는 외국판결의 주문만 보아서는 안 된다. 다음 사항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 외국판결의 이유
- 외국판결이 전제한 역사적·법적 인식
- 외국판결을 국내에서 승인할 경우 발생하는 결과
- 사건과 대한민국의 관련성
- 대한민국 헌법질서가 보호하는 핵심 가치
일본판결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전제에서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이 한반도 주민에게 유효하게 적용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으로 불법적인 강점이며, 이를 합법으로 전제한 일본판결은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따라서 일본판결을 승인한 결과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위반되므로 그 기판력을 인정할 수 없다.
일본법이 지정되더라도 공서양속에 반하면 적용을 배제함
구 일본제철과 피고 회사의 동일성 및 채무 승계 여부는 원칙적으로 법인의 설립준거지법 또는 본거지법인 일본법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저촉규범인 법례 제30조와 구 섭외사법 제5조는 외국법을 적용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공공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에 반하면 그 적용을 배제하도록 하였다.
일본의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을 적용하면 피고는 구 일본제철의 강제동원 관련 채무를 승계하지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피고는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제철소·임원·종업원을 실질적으로 승계하여 같은 사업을 계속하였다. 그럼에도 전후 배상책임을 처리하기 위해 제정된 일본의 특별법을 적용하여 대한민국 피해자에 대한 채무만 면탈하게 하는 결과는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상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일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구 일본제철과 피고 회사의 법적 동일성을 판단해야 한다.
구 일본제철과 피고 회사는 실질적으로 동일함
구 일본제철은 형식상 해산되었으나, 주요 영업재산과 제철소, 임원 및 종업원은 제2회사들에 이전되었고 동일한 사업이 계속되었다. 이후 회사들은 상호변경과 합병을 거쳐 피고 회사가 되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실질적인 인적·물적 연속성을 고려하여 구 일본제철과 피고를 법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였다.
따라서 피해자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을 피고 회사에 행사할 수 있다.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음
한일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기초하여 한일 양국 사이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협정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한일 양국은 식민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및 식민지배와 직결된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없다.
설령 특정 개인청구권이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국가가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조약으로 개인의 권리를 직접 소멸시키려면 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 자체를 소멸시킨다는 명확한 규정이나 양국 정부의 의사 합치가 없었다.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사건 청구권을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으로 특정하고, 그 청구권은 애초에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최종적으로 확정하였다.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임
소멸시효 항변권도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
채권자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면, 채무자가 시효 완성을 주장하여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경우 그 주장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애사유가 있었다.
- 한일 국교정상화 전까지 양국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다.
-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청구권협정과 일본의 재산권조치법으로 인해 권리행사 가능성이 불명확하였다.
- 구 일본제철과 피고 회사의 법적 동일성을 부정하는 일본의 특별법이 존재하였다.
- 대한민국 정부도 오랫동안 개인청구권의 행사 가능성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관련 외교문서가 공개되고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공식 견해가 나오기 전까지 사법적 구제 가능성이 불확실하였다.
따라서 적어도 원고들이 2005년 2월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때까지는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
그러한 역사적·법적 장애를 야기하거나 이용한 구 일본제철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
결론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 대한민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다.
-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전제로 한 일본판결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하므로 승인할 수 없다.
- 일본 회사법을 적용하여 구 일본제철의 강제동원 채무가 피고에게 승계되지 않는다고 보는 결과도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한다.
- 구 일본제철과 피고는 실질적·법적으로 동일한 회사이다.
- 피해자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는다.
-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
파기환송심은 피고에게 원고별 100,000,000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하였다. 재상고심인 대법원 2018년 10월 30일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이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피해자들의 승소가 최종 확정되었다.
실무상 유의점
- 외국판결의 승인 여부는 주문뿐 아니라 판결 이유와 그 판결이 전제한 역사적·규범적 인식까지 심사해야 한다.
- 외국법이 준거법으로 지정되더라도 그 적용 결과가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와 공서양속에 반하면 외국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
- 외국법인의 분할·재편 과정에서 채무가 형식적으로 승계되지 않았더라도, 책임재산·영업·인력의 실질적 연속성과 외국법 적용 결과의 공서 위반 여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은 청구권은 일반적인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 청구가 아니라,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과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청구권이라는 점을 명확히 특정해야 한다.
-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 여부는 단순히 장기간이 지났다는 사실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권리행사를 가로막은 객관적·역사적·법적 장애와 채무자의 관여 정도를 구체적으로 심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