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판결
가. 대법원 1990. 8. 28. 선고 90다카9619 판결
대법원은 원고의 사원지위 확인청구를 소멸시효 완성과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기각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
파기사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하지 않았는데도 원심이 이를 인정하였다.
- 사원지위 확인청구의 대상인 기본적 고용관계를 민법 제162조 제1항의 채권으로 잘못 판단하였다.
-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경위와 피고의 신뢰가 정당한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였다.
파기환송 후 판결 및 최종 확정 여부는 미확인이다.
나. 서울고등법원 1990. 2. 28. 선고 89나46310 판결
〔사원확인〕 — 파기된 원심판결
원심은 사원지위 확인청구를 고용계약상 채권·채무관계의 확인으로 보아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원고가 약 10년 10개월 동안 법적 구제절차를 취하지 않았고, 피고가 새로운 인사체계를 구축하였다는 이유로 권리행사가 신의칙에도 반한다고 보았다.
이에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으나, 대법원에서 파기되었다.
다.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1989. 11. 2. 선고 89가합12702 판결
원고 승소 판결이다. 피고가 항소하여 원심에서 결론이 바뀌었으나, 대법원은 그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제1심의 구체적인 판단 이유는 첨부된 원심판결과 대법원판결만으로 확인되는 범위를 넘어 단정하지 않는다.
관련판례
가. 대법원 1988. 4. 27. 선고 87누915 판결
실효의 법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파생되는 원칙으로서,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장기간 행사하지 않아 상대방에게 권리가 행사되지 않을 것이라는 정당한 신뢰가 형성된 경우, 뒤늦은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법리라고 설명하였다.
이 사건은 위 법리를 고용관계에 적용하면서, 단순히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권리행사를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는지와 상대방의 신뢰가 정당한지를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관련법령
가. 민법 제2조 — 신의성실과 권리남용 금지
민법 제2조
실효의 원칙의 근거가 되는 규정이다.
이 사건에서는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근로자의 사원지위 확인청구를 신의칙에 따라 제한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다.
나. 민법 제162조 제1항 — 채권의 소멸시효
민법 제162조 제1항
채권을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는 규정이다.
대법원은 기본적인 고용관계 자체의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청구에는 위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 민사소송법 제188조 — 판결 당시 조문
판결의 참조조문에는 민사소송법 제188조로 기재되어 있다.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은 사항에 관하여 판결할 수 없다는 당시 규정으로, 현재의 민사소송법 제203조에 대응한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판결 이유에서, 피고가 하지 않은 소멸시효 항변을 원심이 인정한 것은 변론주의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다.
판결 원문에는 위 조문에 개정일자와 법률번호를 붙인 구법 표시가 없으므로 이를 판결의 표기인 것처럼 추가하지 않았다. 현재의 민사소송법 제188조와는 구분하여야 한다.
사실관계
가. 회사가 사직서 제출 여부에 따라 처리방식을 달리하는 징계결의를 하였다
원고는 한국전력공사 성동지점의 송배전원으로 근무하던 직원이다. 당시 회사의 상호는 한국전력주식회사였다.
회사는 원고가 전기 수용가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이유로 1978년 6월 16일 징계심사위원회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 1978년 7월 5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면 의원면직으로 처리한다.
-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징계해임으로 처리한다.
회사는 같은 해 6월 28일 이를 원고에게 통지하였다. 원고는 7월 5일 사직서를 제출하여 의원면직으로 처리되었고, 퇴직금을 수령하였다.
나. 원고는 징계절차의 하자가 의원면직의 효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원고의 주장에 따르면 회사의 취업관리요령은 원칙적으로 징계 대상자를 출석시켜 진술을 듣도록 하고, 첫 심리기일에 결석하면 한 차례 심리를 연기하도록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는 원고가 첫 기일에 출석하지 않았음에도 심리를 연기하지 않고 징계결의를 하였다.
원고는 이 절차 위반으로 조건부 징계해임결의가 무효이고, 이에 따라 이루어진 의원면직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무효이므로 여전히 회사의 사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원고가 주장한 무효사유이며, 이 대법원판결에서 그 무효가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다. 유사한 처분을 받은 다른 직원들의 소송이 계속되었다
원고와 비슷한 시기에 처분을 받은 다른 직원들은 1980년경부터 소송을 제기하였다. 일부 직원은 승소하였으나, 초기 승소 사례들이 원고처럼 사직서를 제출하여 의원면직된 경우와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원고와 같은 경위로 의원면직된 직원들의 소송은 1984년경부터 이어졌고, 하급심의 판단도 엇갈렸다.
그러다가 1988년 4월 25일 다른 의원면직 직원의 승소가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확정되었다.
라. 원고는 의원면직 후 약 10년 10개월이 지나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는 위 관련 소송의 최종 결과를 지켜본 뒤 1989년 5월 8일 사원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의원면직일부터는 약 10년 10개월이 지났고, 유사한 의원면직 사건의 대법원판결부터는 약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피고는 원고가 오랫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더 이상 처분의 효력을 다투지 않을 것으로 믿고 인사질서를 형성하였으므로, 뒤늦은 소송 제기는 신의칙에 반한다고 주장하였다.
법리
가. 신의칙 위반 주장과 소멸시효 항변은 별개의 방어방법이다
피고가 주장한 것은 장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뒤늦게 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원심은 이 주장에 소멸시효 항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명확히 부정하였다.
‘오랫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와서 행사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는 주장과 ‘법정 시효기간이 완성되었으므로 권리가 소멸하였다’는 주장은 다르다.
따라서 피고가 장기간의 경과를 언급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이 소멸시효 항변까지 한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나.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는 당사자의 항변 없이 인정할 수 없다
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하였더라도, 시효의 이익을 받는 사람이 시효완성을 항변하지 않는 한 법원은 그 의사에 반하여 권리소멸의 효과를 인정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의 준비서면에 신의칙 주장이 있었을 뿐,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한 흔적이 없었다.
대법원은 원심이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소멸시효를 적용한 데 변론주의 위반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법원이 적용할 법률을 판단하는 문제와 구분된다. 법원이 법률을 해석·적용할 권한을 가진다고 하여, 당사자가 행사하지 않은 시효항변까지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 사원지위 자체와 그 지위에서 발생하는 개별 채권은 구분된다
사원지위 확인청구는 근로관계에서 발생하는 개별적인 금전채권의 확인을 구하는 청구가 아니다.
대법원은 임금청구권·재해보상청구권·휴업수당청구권·퇴직금청구권 등과 그 권리들이 발생하는 기초인 고용관계 자체를 구분하였다.
따라서 사원지위 확인에 10년의 채권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과 과거 임금 전부를 기간 제한 없이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 사건의 ‘사원’은 회사의 직원이라는 뜻이며, 회사법상 출자자나 구성원의 지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라.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더라도 실효의 원칙은 별도로 검토할 수 있다
사원지위 자체가 채권 소멸시효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사정에서도 권리행사가 제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실효의 원칙에 따라 권리행사가 제한될 가능성 자체는 인정하였다. 다만 다음 사정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보았다.
- 권리자에게 권리행사의 기회가 있었고, 그 행사를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는지.
- 그럼에도 권리를 장기간 행사하지 않았는지.
- 상대방에게 이제는 권리가 행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정당한 사유가 생겼는지.
- 그 상태에서 뒤늦게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지.
기간이 오래 지났다는 사실은 판단 요소이지만, 그것만으로 실효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마. 유사 사건의 판단이 엇갈렸던 사정은 권리행사 지연을 평가할 때 고려된다
원심은 원고가 무효를 몰랐거나 승소를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사정을 단순한 주관적 동기로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관련 소송의 구체적인 경과를 달리 평가하였다.
초기의 승소 사례는 원고와 같은 의원면직 사례가 아니었고, 이후 같은 유형의 소송에서도 하급심의 승패가 엇갈렸다. 원고는 그 최종 결과를 지켜보다가 유사 사건의 승소가 확정된 후 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서 권리행사의 지체를 단순히 원고 개인의 주관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판례가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면 언제나 실효가 배제된다거나, 그때부터 소멸시효가 새로 진행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사건에서는 실효 판단을 위한 구체적인 사정으로 고려된 것이다.
바. 관련 소송이 계속되고 있었다면 회사의 신뢰도 당연히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회사는 원고가 장기간 다투지 않았으므로 고용관계 종료를 신뢰하고 새로운 인사질서를 구축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동일하거나 유사한 징계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이 계속 제기되었고, 일부에서는 회사의 패소가 확정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사가 원고도 앞으로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그 신뢰에 정당한 근거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실효의 원칙이 보호하는 것은 상대방의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정에 비추어 보호할 만한 정당한 신뢰이다.
사. 퇴직금 수령만으로 처분의 무효를 알고 승인하였다고 볼 수 없다
원고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직금을 수령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 사실만으로 원고가 징계결의 절차에 하자가 있어 결의 자체가 무효라는 점까지 알고 이를 승인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퇴직금 수령을 곧바로 무효 주장 포기나 분쟁 종결의 의사표시로 해석할 수는 없다. 어떠한 경위와 인식 아래 이를 수령하였는지 함께 검토하여야 한다.
아. 대법원은 무효사유에 대한 본안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은 소멸시효와 실효를 이유로 청구를 배척하면서, 원고가 주장한 징계절차의 하자와 의원면직의 효력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그 두 가지 배척 사유가 타당하지 않으므로, 원고가 주장하는 무효사유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심리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이 판결의 결론은 원고의 사원지위가 확정적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소멸시효와 실효만을 이유로 청구를 배척할 수 없으므로 징계 및 의원면직의 무효 여부를 심리하라는 것이다.
실무적 유의점
가. 지위확인청구와 금전청구를 나누어 검토하여야 한다
근로자 지위확인과 미지급 임금·퇴직금 등의 지급을 함께 구하는 경우, 지위 자체에 대한 판단과 개별 금전채권의 소멸시효를 구분하여야 한다.
지위확인청구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과거 금전채권도 모두 보전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나. 소멸시효와 실효를 주장하려면 각각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여야 한다
시효항변을 하려는 당사자는 대상 채권, 기산점, 적용 기간과 시효완성의 효과를 주장한다는 취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실효를 주장하려면 기간 경과에 더하여 상대방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사정, 권리 불행사를 신뢰하게 된 근거, 그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법률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다. 장기간 권리행사를 하지 않은 경위는 객관적인 자료로 정리하여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유사 사건의 제소와 판결 경과, 의원면직 사건과 징계해임 사건의 차이, 하급심 판단의 불일치, 관련 승소판결의 확정 시점이 중요하였다.
단순히 무효인지 몰랐다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권리행사를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는지 판단할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 실효를 일률적인 제소기간처럼 적용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에서 10년 이상 지난 소송이 허용되었다고 하여 모든 장기 지연 소송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10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권리가 실효되는 것도 아니다.
실효 여부는 기간의 길이뿐 아니라 권리행사 가능성, 지연 경위, 상대방의 인식과 신뢰 형성 과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