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제그룹 해체 과정의 주식매매계약 — 위헌적 공권력 행사와 계약의 무효·취소를 구별한 사례

핵심 결론 국제그룹 해체를 위한 공권력 행사가 위헌이더라도, 그 과정에서 체결된 주식매매계약이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계약의 반사회성, 대가의 불균형, 불법한 강박 여부를 각각 심사하여 계약의 효력을 인정하였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와 법령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로 연결되지 않는 판례·법령은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 등을 판결문과 원문을 직접 확보·확인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해당판결

대법원 1996. 4. 26. 선고 94다34432 판결〔주식인도〕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주식매매계약의 불성립·무효 및 강박에 의한 취소 주장을 배척한 원심판결이 유지되어, 원고 패소로 확정된 사례이다.
하급심
서울고등법원 1994. 5. 4. 선고 92나13501 판결
주식대금의 구체적인 액수가 계약 당시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사후 확정 기준과 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었으므로 계약이 성립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반사회질서 법률행위, 불공정한 법률행위 및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련판례

가. 계약 체결 과정의 불법과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의 구별

대법원 1992. 11. 27. 선고 92다7719 판결
계약의 성립 과정에 불법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민법 제103조에 따른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법리와 관련하여 인용되었다.

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의 판단 기준

대법원 1979. 1. 16. 선고 78다1968 판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가 되려면 불법한 해악의 고지로 공포를 느끼고 의사표시를 하였어야 한다는 법리와 관련하여 인용되었다.

다. 국제그룹 해체를 위한 공권력 행사의 위헌성

헌법재판소 1993. 7. 29. 선고 89헌마31 결정
국제그룹 해체를 위하여 재무부장관이 주거래은행에 행사한 공권력의 위헌성을 인정한 결정이다. 이 사건 대법원판결은 그 위헌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사인 사이에 체결된 주식매매계약의 효력은 별도로 판단하였다.

관련법령

판결의 참조조문에는 위 민법 조항들에 별도의 구법 표시가 없다.

사실관계

가. 당사자와 관계인의 지위

구분지위와 역할
원고국제상사의 주주이자 당시 경영자로서 주식을 양도한 사람
피고 한일합성섬유공업 주식회사국제상사의 주식과 건설부문을 제외한 사업부문 경영권을 인수한 회사
국제상사주식 및 경영권 양도의 대상이 된 회사
제일은행국제그룹의 주거래은행이자 주채권자로서 매각 협상과 실사·정산을 주도한 은행
재무부장관국제그룹 해체 방침을 제일은행에 전달하고 추진하도록 한 공권력 행사 주체
주식매매계약의 매도인은 원고 등 주주들이고, 매수인은 피고 측이다. 제일은행은 주식매매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 채권자이자 거래를 주도한 관계인이었다.

나. 국제그룹의 경영 악화와 주식·경영권 양도 추진

국제그룹은 만성적인 적자와 자금 부족으로 경영이 악화되었고, 금융기관의 계속적인 지원 없이는 도산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재무부장관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제그룹 해체 방침을 정하여 제일은행에 전달하였다. 제일은행은 정리방안의 일환으로 국제상사의 주식 및 경영권을 피고 측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였다.

다. 먼저 인수하고 실사 후 가격을 정산하는 계약 체결

1985년 3월 작성된 주식 및 경영권 양도 가계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원고 등 주주들은 국제상사의 발행주식 전부를 피고 또는 피고가 지정하는 제3자에게 양도한다.
  • 국제상사 중 건설부문을 제외한 사업분야의 경영권을 피고에게 양도한다.
  • 주식가격은 일단 1주당 1원으로 정하되, 자산·부채 실사 결과에 따라 협의·조정하여 정산한다.
  • 매도인·매수인·제일은행이 협력하여 실사하고, 정산에 관하여 별도로 합의한다.
1986년 2월에는 주식대금란을 공란으로 둔 주식매매계약서가 작성되었다. 원고는 고문변호사의 검토를 거쳐 서명날인하였고, 제일은행에 자산·부채의 실사 및 정산 권한을 위임하였다.

라. 실사 결과와 1주당 1원의 가격 확정

공동 실사 결과 국제상사의 해당 사업부문에는 원고 재산의 처분대금을 반영한 후에도 약 3,616억 원의 결손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주식의 자산적 가치가 음수라고 보아 매매가격을 1주당 1원으로 확정하였다.
당시 장외에서는 국제상사 주식이 1주당 100원 내지 200원에 거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피고는 인수와 관련하여 약 1,808억 원의 채무를 보증하는 등 정상화를 위한 부담을 지고 있었다.

마. 원고의 주식인도 청구

원고는 대금이 확정되지 않아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고, 위헌적인 기업 해체 과정에서 체결된 계약이므로 반사회질서 법률행위 또는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식의 인도를 구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리

가. 매매대금은 계약 체결 당시 액수까지 확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매매계약은 재산권을 이전하고 그 대가를 지급한다는 의사의 합치로 성립한다. 목적물이나 대금이 계약 당시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나중에 확정할 수 있는 방법과 기준이 정해져 있으면 계약이 성립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가계약에서 잠정가격을 정하고 자산·부채 실사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기로 합의하였다. 따라서 본계약의 대금란이 공란이었다는 사정만으로 계약의 성립을 부정할 수 없었다.
또한 주식과 경영권을 먼저 이전하고 대금을 나중에 정산하는 방식도 당사자의 합의로 정할 수 있다. 선인수 후정산이라는 거래구조 자체가 계약의 불성립이나 불공정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나. 공권력 행사의 위헌성과 사인 사이 계약의 반사회성은 별도로 판단한다

민법 제103조에 따른 무효는 계약의 권리·의무 내용, 조건이나 대가관계,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동기 등에 반사회성이 있는 경우에 문제 된다.
반면 계약이 체결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계약 자체가 곧바로 반사회질서 법률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불법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강박 등 의사표시의 하자로 검토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구별하였다.
판단 대상판단 내용
재무부장관의 국제그룹 해체 지시위헌적인 공권력 행사라는 점을 전제로 함
원고와 피고 사이 주식매매계약계약의 내용과 표시된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지 별도로 심사함
원고의 매도 의사표시불법한 해악의 고지에 따른 강박이 있었는지 별도로 심사함
법원은 주식매매계약의 내용 자체가 반사회적이지 않고, 표시된 동기도 부실기업의 정상화였다고 보았다. 따라서 공권력 행사의 위헌성만으로 계약의 무효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 우월적 지위의 악용은 무효 사유가 될 수 있지만, 구체적인 부당이득과 부담을 확인해야 한다

대법원은 일방 당사자가 독점적·우월적 지위를 악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얻고 상대방에게 과도한 반대급부나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계약은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정부와의 사전 협의를 거쳐 인수자로 선정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우월적 지위의 악용이나 부당한 이득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제일은행이 우월적 지위에서 거래를 주도한 점도 인정하였으나, 제일은행은 매수인이 아니었다. 법원은 채권자인 제일은행의 거래 주도와 매수인인 피고의 우월적 지위 악용을 구별하였다.

라. 1주당 1원이라는 가격만으로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는 장외거래가격과 매매가격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단순한 가격 비교만으로 대가의 현저한 불균형을 인정하지 않았다.
장외의 소규모 주식거래가격에는 피고의 인수, 채무보증, 정부와 금융기관의 지원에 따른 정상화 기대가 반영되어 있었다. 반면 피고는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그 정상화를 위한 부담을 직접 져야 했다.
이에 법원은 주식의 자산적 가치가 음수라는 실사 결과와 피고의 채무보증 부담 등을 고려하여, 1주당 1원의 가격이 현저하게 불균형한 대가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이 사건의 부실기업 인수구조에 따른 판단이다. 모든 경영권 거래에서 시장가격이나 장래 수익가치를 배제하고 순자산가치만 적용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평가 원칙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또한 피고의 채무 부담은 인수 과정에서의 보증 등 구체적인 약정에 따른 것이다. 주식을 매수하면 회사의 채무가 주주에게 당연히 이전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계약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강박이 인정되지는 않는다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가 되려면 불법한 해악의 고지로 공포를 느끼고 의사표시를 하였어야 한다.
법원은 제일은행이 부실기업에 무한정 자금을 지원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제3자 인수를 추진한 것 자체를 강박으로 보지 않았다. 원고나 가족의 신상에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이 있었다는 주장도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아울러 원고가 상당한 기간 협상하고, 고문변호사의 조언을 받으며, 담보 해지·관계인 보증채무 면책·생활보장 등의 조건을 요구하여 타협한 사정이 고려되었다.
따라서 원고에게 경제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좁았다는 점과, 불법한 강박 때문에 매도 의사표시를 하였다는 점은 구별하였다.
다만 판결은 은행이 매각 방안을 관철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하고 매도인을 강요하였다면 강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다.

바. 강박 자체가 부정되었으므로 취소 제한과 추인 문제는 결론의 근거가 아니다

대법원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상, 민법 제110조 제2항에 따른 취소 제한이나 법정추인에 관한 원심의 가정적 판단은 더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판결을 “강박은 있었지만 매수인이 몰랐거나 원고가 추인하여 취소할 수 없었던 사건”으로 정리하면 정확하지 않다.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자체가 부정된 사건이다.

실무적 유의점

가. 계약 불성립·무효·취소 주장을 구분해야 한다

대금 합의의 부재는 계약의 성립 문제이고, 반사회성이나 불공정성은 무효 문제이며, 강박은 의사표시 취소 문제이다. 각 주장에 필요한 사실과 증거를 나누어 구성해야 한다.

나. 가격의 사후 확정 조항을 구체화해야 한다

선인수 후정산 거래에서는 평가 기준일, 실사 범위, 회계기준, 우발채무 반영 방법, 정산 권한 및 의견 불일치 해결 절차를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추후 협의한다”는 문구와 객관적인 확정 기준을 정한 약정은 구별해야 한다.

다. 강박 주장에서는 압박의 구체적인 내용과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정부나 금융기관의 영향력이 컸다는 사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가 어떤 해악을 고지하였는지, 그 고지가 왜 불법한지, 그 때문에 계약을 체결하였는지를 특정해야 한다.

라. 부실기업 인수에서는 매매대금과 인수자의 추가 부담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

명목상 주식가격만으로 헐값 매각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대상회사의 재무상태, 인수자의 채무보증 및 정상화 부담, 시장가격에 반영된 지원 기대를 구분하여 검토해야 한다.
이 글이 다룬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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