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쟁점의 요지
전자동 세탁기는 세탁 시 옷감에서 떨어져 나오는 보푸라기, 실밥, 먼지 등 각종 찌꺼기를 세탁수로부터 신속하고 깨끗하게 걸러내는 '이물질 걸름장치(필터)'가 필수적으로 장착됩니다.
종래의 세탁기들은 세탁조 맨 윗부분에 주머니 형태의 거름망을 매달아 두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세탁조에 물을 가득 채우지 않는 '저수위' 상태에서는 물이 거름망 높이까지 닿지 않아 먼지 채집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탁조 옆면 벽체 하단부에 길쭉한 포켓형 카트리지 필터를 매립 장착하는 기술이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탁조 벽면 하단에 필터를 달게 되자 새로운 기술적 난제들이 발생했습니다. 세탁기가 고속 회전할 때 세탁물이 튀어나온 필터 모서리에 걸려 찢어지는 손상이 생기거나, 세탁물이 필터 본체를 강하게 충격하여 필터가 케이스 밖으로 튕겨 나가는 이탈 사고가 잦았습니다. 또한 세탁이 끝나고 물이 빠질 때 필터 안에 갇혀 있던 오물이 역류하여 다시 빨래에 묻어나는 문제와, 젖은 필터를 열어 먼지를 청소할 때 손톱이 다치는 등 탈부착 및 세척의 불편함도 컸습니다.
이 사건 각 직무발명은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10건의 유기적 개량 기술입니다. 필터 외주면을 완만한 곡면으로 만들어 옷감 손상을 막고, 세탁물이 부딪혀도 빠지지 않도록 탄성 록킹(걸림) 구조를 도입했으며, 물이 빠질 때 오물이 도로 나오는 것을 차단하는 고무 체크밸브 및 전방으로 손쉽게 열어 젖은 손으로도 청소할 수 있는 힌지 오픈 구조 등을 고안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권리 승계 후 19년 만에 제기된 소송에서 회사의 사규 개정 및 퇴직으로 인해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는지 여부와, 3조 원대 세탁기 완제품 매출 속에서 거름망 부품 특허의 독점적 기여도를 산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해당 판례
대법원 2024. 5. 30. 선고 2021다258463 판결 [직무발명보상금]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본 환송 전 원심판결(특허법원 2020나1612)을 파기하고,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사건을 특허법원에 환송하였습니다.
하급심 관련판례
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7. 10. 선고 2016가합578670 판결에서는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여 직무발명보상금 1,373만 원 및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하였습니다.
환송 전 특허법원 2021. 7. 2. 선고 2020나1612 판결에서는 2001년 개정된 보상지침 시행일(2001. 1. 1.)에 권리행사의 법률상 장애가 해소되었으므로,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보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환송 후 특허법원 2025. 11. 19. 선고 2024나10645 판결(대상 하급심 판결)에서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따라 회사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을 최종적으로 배척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명확히 확정하고, 전체 세탁기 매출액 약 3조 8,465억 원을 기초로 정당한 보상금을 재산정하여 회사가 기지급한 5,800만 원 외에 추가로 1억 8,433만 원 및 지연손해금을 원고에게 지급하도록 판결하였습니다.
관련법률
발명진흥법 제15조 제1항 (구 특허법 제40조 제1항) 종업원 등은 직무발명에 대하여 특허 등을 받을 수 있는 권리나 특허권을 계약이나 근무규정에 따라 사용자에게 승계하게 한 경우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민법 제162조 제1항 (채권의 소멸시효) 및 제166조 제1항 (소멸시효의 기산점)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하며,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합니다.
특허법 제39조 제1항 (통상실시권) 사용자는 종업원의 직무발명에 대하여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승계하지 않더라도 해당 특허권에 대하여 무상의 통상실시권을 가집니다.
사실관계
대형 가전사(피고, 삼성전자)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원고는 1997년 8월경 세탁기 이물질 거름장치 관련 10건의 직무발명을 완성하여 회사에 권리를 승계하였고, 회사는 이를 국내외에 특허 등록하였습니다.
원고는 1998년 9월 30일 퇴사하였는데, 원고 재직 당시 시행 중이던 1995년 '직무발명 보상지침'은 등록 특허가 제품에 적용되어 회사 경영에 현저히 공헌한 경우 평가·심의·재가를 거쳐 실시보상금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원고 퇴사 후인 2001년 1월 1일 보상지침을 개정하면서 실시보상금 규정 자체를 삭제하였습니다.
회사는 1999년부터 2017년까지 해당 필터가 장착된 세탁기를 판매하여 3조 8천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원고는 2015년 11월 보상금을 신청하여 2016년 12월 5,800만 원을 수령하였으나, 금액이 부당하게 적다고 판단하여 2016년 12월 21일 직무발명보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회사는 발명 승계 시점(1997년)이나 퇴사 시점(1998년), 늦어도 보상 규정이 삭제된 개정 지침 시행일(2001년 1월 1일)부터 10년의 소멸시효가 지나 권리가 이미 소멸하였다고 항변하였습니다.
법리
직무발명보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권리를 승계한 시점에 발생하지만, 사내 근무규정에서 보상금의 지급시기를 별도로 정해둔 경우에는 그 정해진 지급시기가 도래해야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그때부터 비로소 소멸시효가 진행됩니다.
종업원이 퇴직한 이후에 사용자가 근무규정을 불리하게 변경한 경우, 퇴직한 종업원이 개정 규정을 적용받기로 합의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정 규정은 퇴직자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퇴직 당시의 근무규정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따라서 2001년 개정 지침에서 실시보상금 규정이 삭제되었더라도 퇴직자인 원고에게는 1995년 지침이 적용되므로, 개정 지침 시행일(2001. 1. 1.)에 법률상 장애가 해소되어 시효가 기산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1995년 지침상 지급시기인 '지적재산부서 평가, 심의위원회 심의, 대표이사 재가'라는 절차가 회사가 주장하는 기산점(1997년, 1998년, 2001년)에 도래하였다는 점을 회사가 입증하지 못하였으므로, 원고의 직무발명보상금 청구권은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직무발명보상금 산정에서 '사용자가 얻을 이익'은 무상의 통상실시권을 넘어 독점적·배타적으로 실시하여 얻은 이익입니다. 속지주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국내 및 주요 등록국의 특허권 덕분에 경쟁사의 해외 수출을 차단하여 특허비등록국 매출 증대에 기여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비등록국 매출도 매출액 산정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다만 완제품 중 일부 부품 발명인 점, 선행기술 개량 수준, 마케팅 기여도 등을 종합하여 [매출액 × 기여도 7% × 가상실시료율 3% × 독점권기여율 10% × 발명자공헌도 30%]로 정당한 보상금을 도출해야 합니다.
실무적유의점
사규에 '경영 공헌 시 평가 및 대표이사 재가를 거쳐 지급한다'는 식의 조건부 절차가 기재되어 있다면, 퇴직 후 10년이 훨씬 지난 시점이라도 해당 절차가 정식으로 진행되지 않은 이상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아 퇴직 연구원이 수십 년 뒤에도 정당한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기업(사용자)은 직무발명 보상 규정을 축소·폐지하더라도 이미 퇴직한 직원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퇴직 시점에 직무발명 권리관계 정산서나 부제소 합의를 명시적으로 체결해 두지 않으면 사규 개정만으로는 시효 완성을 유도하거나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직무발명자가 수조 원대 완제품 매출을 기반으로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더라도, 법원은 부품 가격 비중(1% 미만), 경쟁사의 대체기술 존재 여부, 회사의 브랜드 파워 등을 엄격히 분리하여 특허 기여율을 보수적(5~10% 선)으로 산정하므로, 양 당사자 모두 발명 자체의 독점력과 기여율을 입증할 구체적 근거 자료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