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판례
도라산역 벽화를 철거·소각한 대한민국의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원고에게 위자료 1,00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한 원심판결을 유지하였다.
하급심
벽화 폐기에 따른 동일성유지권 침해는 부정하였으나, 저작자의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격적 이익을 침해한 불법행위는 인정하였다. 제1심판결 중 일부를 취소하고 위자료 1,000만 원과 지연손해금 지급을 명하였다. 원고가 청구한 나머지 금액과 중앙일간지·통일부 홈페이지에 광고문을 게재하라는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 청구기각. 제1심의 사건번호와 판단 결과는 첨부된 항소심판결에서 확인된다.
관련판례
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및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0다95666 판결.
국가배상책임의 ‘법령 위반’은 명시적인 법령상 의무 위반에 한정되지 않고, 공무원이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위반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경우도 포함한다는 법리이다. 이 사건 대법원이 직접 인용하였다.
헌법상 기본권이 민법의 일반조항을 통하여 사법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법리와 관련하여 원심이 인용하였다. 원심은 이를 기초로 예술에 관한 인격적 법익의 침해가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판단하였다.
관련법령
저작권법 제13조: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에 관한 동일성유지권.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공무원의 직무상 위법행위에 대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배상책임.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민법 제751조 제1항: 정신적 고통 등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
대한민국헌법 제22조: 예술의 자유 및 저작자·예술가 등의 권리 보호.
저작권법 제127조: 저작인격권 침해에 대한 명예회복 등의 청구.
민법 제764조: 명예훼손에 대한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
사실관계
원고는 국가의 의뢰를 받아 도라산역사 내 벽면과 기둥에 포토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벽화 14점을 제작하여 2007년 5월경 설치하였다. 이 작품들은 반복·재현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벽체에서 분리하기도 쉽지 않은 미술저작물이었다.
도라산역은 통일의 염원을 상징하는 공공장소였다. 국가는 방문객에게 민족의 동질성과 남북교류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작품을 의뢰하였고, 제작 과정에서 전문가 회의 등을 거쳤으며 설치 후에는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소개하는 홍보자료도 배포하였다.
그러나 국가는 설치 후 약 3년 만에 벽화의 철거를 결정하였다. 손상을 최소화할 방법에 관하여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거나 원고에게 통보하여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물을 분사하고 벽화를 작게 절단하여 벽체에서 분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작품이 크게 손상되었다.
국가는 철거 이후 원고에게 벽화를 보관하고 있다고 회신하였고 제1심 변론에서도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다. 하지만 원고가 보관 상태를 확인하려고 도라산역을 방문하자, 이미 소각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원고는 동일성유지권 및 예술에 관한 인격적 이익의 침해를 주장하면서 3억 원과 명예회복을 위한 광고문 게재를 청구하였다.
법리
가. 저작인격권과 일반적 인격권의 보호는 구별된다
저작권법이 공표권·성명표시권·동일성유지권을 규정하고 있다고 하여, 저작자가 작품에 관하여 가지는 인격적 이익이 그 규정의 보호 범위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작품의 폐기가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폐기의 경위와 방식에 따라 저작자의 일반적 인격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 대법원은 동일성유지권 침해를 부정하면서 일반적 인격권 침해를 인정한 원심판단이 모순된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나. 원심의 동일성유지권 판단과 대법원의 판시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
원심은 동일성유지권의 보호 대상이 원칙적으로 저작물의 내용 등에 관한 동일성이고, 저작물이 구현된 유형물 자체의 존속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동일성유지권 침해를 부정하였다.
다만 대법원의 핵심 판시는 작품의 폐기가 언제나 동일성유지권 침해에서 제외된다는 일반명제를 확정한 데 있지 않다. 동일성유지권 침해 여부와 별개로 일반적 인격권 침해에 따른 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참고한 주석서에 의하면,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동일성유지권 침해 여부 자체를 판단하지 않고 일반적 인격권 침해에 따른 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주석서는 작품 파괴를 동일성유지권으로 보호할 것인지에 관한 해석론·입법론도 별도로 검토한다(저작권법 주석서, 제13조, 「6. 원작품을 소훼, 파괴한 경우」, 문단번호 10 참조).
다. 국가배상책임의 위법성은 명시적 법령 위반에 한정되지 않는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법령 위반’에는 명시적인 행위의무 위반뿐 아니라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 등 공무원이 지켜야 할 규범을 위반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잃은 경우도 포함된다.
따라서 작품의 폐기를 직접 금지하는 법조항이 없다는 사정만으로 국가배상책임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라. 작품의 성격과 폐기의 경위·절차·방법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대법원은 저작물의 종류와 성격, 이용 목적과 형태, 설치 장소의 개방성과 공공성, 국가가 작품을 선정·설치한 경위, 폐기 이유와 결정 과정, 폐기 방법 등을 종합하도록 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국가가 통일을 상징하는 장소에 작품을 의뢰하고 홍보까지 하였으므로, 원고에게 상당 기간 전시·보존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가 있었다. 국가는 단기간의 철거가 작가의 명예감정 등에 미칠 영향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설치 전부터 알고 있던 작품의 난해성·색채 등을 이유로 철거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보존 가능성을 검토하거나 작가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훼손·소각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위법행위로 판단하였다.
마. 위자료 인정과 명예회복 조치의 필요성은 별개이다
원심은 작가의 경력과 사회적 지위, 작품의 제작 경위와 보존가치, 전시기간, 폐기 방법과 경위, 정신적 고통 등을 고려하여 위자료를 1,000만 원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위자료 배상에 더하여 광고문 게재까지 명할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일반적 인격권 침해에 따른 정신적 손해가 인정된다고 하여 명예회복 조치까지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무적 유의점
가. 작품의 소유권 취득만으로 작가의 인격적 이익에 관한 검토가 끝나지 않는다.
작품의 물리적 소유권과 저작자의 인격적 이익은 구분된다. 공공장소에 설치한 작품을 철거·폐기하려면 소유권 외에도 설치 목적, 작가와의 약정, 작품의 보존가치 및 폐기의 필요성을 검토해야 한다.
나. 철거 필요성과 폐기 방법의 상당성을 각각 검토해야 한다.
시설 운영상 철거가 필요하더라도 곧바로 소각·파괴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전문가 검토, 이전·보관 가능성, 작가에 대한 사전 통지와 의견 확인, 인수 또는 반환 협의 등을 거치고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이 판결의 판단 요소를 반영한 실무적 조치이며, 모든 사건에서 작가의 동의를 필수요건으로 인정하였다는 뜻은 아니다.
다. 청구원인을 동일성유지권 침해에만 한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의 변경·훼손·폐기 사건에서는 저작인격권 침해와 일반적 인격권 침해에 따른 불법행위책임을 구분하여 주장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의 직무상 행위라면 국가배상책임의 요건과 객관적 정당성 결여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라. 작품의 영구보존청구권을 인정한 판결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이 판결은 모든 작품을 영구히 전시·보존할 의무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 공공미술작품의 특성과 정당한 보존 기대, 철거·소각의 불합리성이 결합한 사안이다. 사인이 소유한 작품의 폐기에 적용할 때에도 국가배상책임과 구분하여 민법상 불법행위 요건과 당사자의 이익을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