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판결
대법원 2008년 9월 18일 선고 2007두2173 전원합의체 판결 — 휴업급여부지급처분취소
하급심·확정
이 사건은 파기환송 사건이 아니다. 다만 전원합의체는 같은 유형의 사안에서 시효항변을 허용했던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였다.
관련 판례
- 대법원 2006년 2월 23일 선고 2005두13384 판결 — 변경된 판례 같은 사안에서 휴업급여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그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종전 판결을 변경하였다. 대법원-2007두2173
- 대법원 2002년 10월 25일 선고 2002다32332 판결 추가 퇴직금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객관적인 사실상 장애사유를 인정하여 사용자의 소멸시효 항변을 제한한 사례이다. 이 사건에서 소멸시효 항변의 신의칙 위반에 관한 일반 법리의 근거로 인용되었다.
관련 법령
사실관계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휴업급여를 별도로 청구하지 않았다
원고는 기계제작업체에서 드릴·태핑 작업을 하던 근로자였다. 2001년 7월 22일 집에서 마비증세가 발생하여 뇌경색 진단을 받고, 업무상 재해라며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요양을 불승인하였다. 원고는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였고, 공단의 항소도 기각되어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원고가 청구한 휴업급여는 2001년 7월 23일부터 2005년 6월 20일까지의 기간에 관한 것이었다. 공단은 그중 2001년 7월 23일부터 2002년 7월 20일까지의 급여는 청구 당시 이미 3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며 지급을 거절하였다. 이 일부 부지급처분이 이 사건의 소송 대상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별도로 청구해도 거절될 것이 명백한 공단의 처리 관행이 있었다
당시 공단은 요양급여 신청이 승인된 경우에만 휴업급여를 지급하고, 요양이 불승인된 상태에서는 휴업급여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을 가지고 있었다.
원고는 이러한 상황에서 휴업급여를 별도로 청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믿고, 우선 요양불승인처분을 다투었다. 선행 소송에서 승소한 뒤에는 약 한 달 만에 휴업급여를 청구하였다.
쟁점은 이러한 경위로 별도 청구를 하지 않은 근로자에게 공단이 시효완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였다.
법리
소멸시효 항변도 신의칙과 권리남용 금지의 제한을 받는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정 아래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 채무자가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그런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한 경우
-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
- 시효완성 후 채무자가 시효를 주장하지 않을 듯한 태도를 보여 채권자가 이를 신뢰한 경우
-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과 다른 채권자에 대한 변제 등 구체적 사정에 비추어 이행거절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경우
이 사건에서 중심이 된 것은 두 번째 유형인 객관적인 사실상 장애사유이다.
법률상 청구할 수 있었더라도, 일반인의 입장에서 청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면 사실상 장애가 인정될 수 있다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는 별개의 청구권이다. 요양승인을 먼저 받아야만 법률상 휴업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급여는 모두 업무상 재해인지 여부를 공통 요건으로 한다. 여기에 요양불승인 상태에서는 휴업급여도 지급하지 않던 공단의 관행이 결합되어, 선행 요양불승인처분의 취소가 휴업급여 지급의 사실상 전제가 되었다.
대법원은 이런 상황에서 휴업급여의 별도 청구는 거절될 것이 명백하여,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이를 청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별도 청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인정하였다.
단순히 권리를 몰랐다는 사정이 아니라, 공단의 실제 처리 관행에 비추어 권리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판단의 근거이다.
채무자의 적극적인 방해나 시효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수의견은 공단이 원고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시효중단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시효항변이 제한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권리행사 방해와 객관적 사실상 장애가 서로 구별되는 판단 사유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는 지급 관행, 두 급여의 공통 전제, 선행 소송의 경과를 종합하여 후자의 사유를 인정하였다.
권리행사를 계속했고, 장애가 해소된 뒤 신속히 청구한 사정이 중요하다
원고는 장기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휴업급여 지급의 사실상 전제가 되는 업무상 재해 여부를 소송으로 계속 다투었다. 승소판결이 확정된 뒤에는 신속히 휴업급여를 청구하였다.
고현철 대법관의 보충의견도 이러한 근로자를 자신의 권리를 방치한 사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강조하였다. 공단의 관행상 실익이 없는 별도 청구까지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효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실질적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효 기산점이나 중단 여부와 시효항변의 신의칙 위반은 구분해야 한다
이 판결의 결론은 시효완성을 이유로 지급을 거절하는 공단의 항변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는 안 된다.
- 요양불승인 취소소송을 제기하면 휴업급여의 시효가 당연히 중단된다.
- 취소소송이 진행된 기간은 법률상 언제나 시효기간에서 제외된다.
- 휴업급여의 시효는 요양승인이나 승소판결 확정일부터 비로소 진행한다.
판결에서 쟁송기간을 제외하면 기간 내 권리행사를 하였다고 본 것은 신의칙 위반을 판단하는 사정이다. 별도의 시효중단 규칙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핵심 차이
반대의견은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였고, 다수의견과 보충의견은 공단의 관행을 신뢰하면서 선행 권리구제절차를 성실히 진행한 근로자의 보호를 중시하였다.
실무적 유의점
- ‘선행 소송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소송의 결과가 후속 청구의 사실상 전제가 되었는지, 별도 청구가 거절될 것이 명백한 처리 관행이 있었는지 구체화해야 한다.
- 주관적인 법률 오해와 객관적인 장애를 구별해야 한다. 기관의 안내, 반복된 지급·거절 사례, 내부 처리기준 등 객관적인 자료가 중요하다.
- 장애가 해소된 뒤의 권리행사 경과를 제시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승소확정 후 약 한 달 만에 청구한 사정이 고려되었다. 판결이 별도의 일반적 유예기간을 정한 것은 아니다.
- 청구권의 발생·시효 기산점·시효중단·신의칙 위반을 구분하여 주장해야 한다. 이 판결의 직접적인 법리는 마지막 단계인 시효항변의 제한에 있다.
- 다른 채권에 적용할 때에는 동일한 사정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채무자가 권리의 존재를 부인했다거나 소송이 오래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시효항변이 당연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