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편을 사칭한 제3자가 받은 대출 — 표현대리와 부당이득 책임을 모두 부정한 사례

핵심 결론 아내가 제3자를 남편으로 가장시켜 받은 대출에 관하여, 사칭한 제3자의 기본대리권이 입증되지 않아 남편의 표현대리책임을 부정하였다. 대출금으로 말소한 종전 근저당권도 무효였으므로 남편의 부당이득 책임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와 법령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로 연결되지 않는 판례·법령은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 등을 판결문과 원문을 직접 확보·확인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주요 판례·법령 2001다49814, 2023다232526

해당판결

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1다49814 판결〔대여금등〕
원고 금융기관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에 따라 남편을 상대로 한 대여금, 부당이득금 및 어음 관련 청구를 모두 기각한 항소심판결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성명모용에 대한 표현대리의 유추적용 요건, 무효인 근저당권 말소에 따른 부당이득의 성립 여부 및 공시송달 후 추완항소의 적법성을 함께 판단한 사례이다.
하급심

가. 제1심

서울지방법원 1998. 2. 4. 선고 97가단273687 판결
소장 부본과 변론기일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아 처음부터 공시송달로 소송을 진행하고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하였다. 판결정본도 공시송달되었다.

나. 항소심

서울지방법원 2001. 6. 26. 선고 2000나25636 판결
피고의 추완항소를 적법하다고 인정한 다음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주위적 청구와 항소심에서 추가된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 첨부 하급심 자료의 표제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위 표기는 대법원 판결의 원심 표시인 ‘서울지방법원’에 따른 것이다.

관련판례

가. 성명모용과 표현대리에 관한 선행 판례

대상판결이 성명모용과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 문제에 관하여 참조판례로 제시한 판결들이다.

나. 후속 판례 — 성명모용에도 제한적으로 표현대리 법리를 유추적용

대법원 2025. 6. 5. 선고 2023다232526 판결
본인을 사칭한 사람에게 기본대리권이 있었고, 거래상대방이 그 사람을 본인이라고 믿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26조의 법리를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명확히 하였다. 다만 해당 사건에서는 금융회사의 정당한 신뢰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 판결을 “본인 사칭에는 표현대리가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사건도 특별한 사정 아래 유추적용이 가능함을 전제로, 사칭한 제3자에게 기본대리권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부정하였다. 후속 판결은 이러한 예외적 유추적용 법리와 연결된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관련법령

가. 표현대리와 일상가사대리권

나. 부당이득

  • 민법 제741조: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의 재산 또는 노무로 이익을 얻고 그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의 반환의무.

다. 소송행위의 추완

대법원 판결의 참조조문에는 민법 제126조가 기재되어 있다. 나머지는 판결에서 다룬 쟁점을 이해하기 위한 관련 규정이며, 구 민사소송법 표시는 당시 적용 조문을 구별하기 위하여 보충한 것이다.

사실관계

가. 아내가 제3자를 남편으로 가장시켜 대출받았다

원고는 주식회사 삼보상호저축은행으로, 변경 전 상호는 주식회사 삼보상호신용금고이다. 피고는 대출명의자이자 담보부동산 소유자인 남편이다.
피고의 당시 아내 H는 남편 몰래 남편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기 위하여 제3자 L과 공모하였다.
H와 L은 피고의 주민등록증에서 피고 사진을 떼어내고 L의 사진을 붙인 다음, 그 주민등록증 사본을 금융기관에 제출하였다. L은 피고 본인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차용금증서·어음거래약정서 등에 피고의 인장을 날인하였다.
관계인역할
원고 금융기관피고 본인과 거래한다고 믿고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관
피고 남편명의를 도용당한 사람, 담보부동산 소유자
당시 아내 H대출을 계획하고 서류 위조 및 사칭에 관여한 사람
제3자 L피고 본인인 것처럼 행세한 사람
H와 피고는 대출 이후인 1995. 12. 1. 협의이혼하였다.

나. 원고가 청구한 대출은 두 종류였다

구분거래 내용원고가 주장한 원금
제1대출1995. 6. 15. 실행된 대출. 5억 3,000만 원과 1억 원으로 나누어 실행630,000,000원
제2대출1995. 9. 6. 어음거래약정에 따른 약속어음 2장의 할인85,000,000원
합계주위적 청구의 원금715,000,000원
제2대출의 대상 어음은 액면 3,000만 원과 5,500만 원의 약속어음이었다. 이후 두 어음은 지급거절되었다.
원고는 위 대출들이 피고에게 효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출원리금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관련 서류가 피고의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이 아니라 위조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 담보부동산에는 이전부터 무단 담보설정이 반복되어 있었다

제1대출의 부당이득 문제를 이해하려면 다음 거래들을 구분해야 한다.
단계담보설정 및 차입 경위자금의 사용
최초 거래1993. 12. 21. H와 L이 피고 몰래 피고 부동산에 제일상호신용금고 명의의 근저당권 설정. 채무자는 주식회사 예동, 채권최고액은 6억 3,000만 원예동이 대출받음
중간 거래예동이 부도나자 같은 방법으로 M·N·O 명의의 근저당권 설정. 채무자는 H, 채권최고액은 8억 2,500만 원예동의 종전 채무를 대위변제
이 사건 제1대출1995. 6. 14. 같은 방법으로 원고 명의의 근저당권 설정. 채무자는 피고로 표시, 채권최고액은 9억 4,000만 원다음 날 실행된 대출금으로 M·N·O에 대한 채무 변제
세 단계 모두 피고의 허락 없이, 제3자가 피고를 사칭하고 서류를 위조하는 방법으로 담보가 설정되었다. 위 표의 채권최고액은 각 단계의 실제 대출원금과 구별해야 한다.

라. 원고는 종전 근저당권이 말소되었으므로 피고가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하였다

제1대출금으로 M·N·O에 대한 채무가 변제되었고, 이들 명의의 근저당권은 1995. 6. 16. 말소되었다.
원고는 대출계약이 피고에게 효력이 없더라도, 대출금 중 599,580,000원이 피고 부동산의 담보채무 변제에 사용되었으므로 피고가 그만큼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하였다.
제2대출에 관해서는 피고 명의의 어음 배서를 근거로 8,500만 원의 배서인책임 또는 연대보증책임을 주장하였다.

마. 피고는 공시송달로 선고된 판결을 뒤늦게 알고 추완항소하였다

피고는 제1심 소송과 판결을 알지 못하다가, 별도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소송에서 2000. 3. 29. 제1심판결문이 증거로 제출되면서 그 판결이 공시송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고는 2000. 4. 10. 추완항소를 제기하였다. 항소심은 이를 적법하다고 인정하고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으며, 대법원은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법리

가. 대리행위와 본인 사칭은 구별된다

통상적인 표현대리는 대리인이 본인을 위하여 행위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대리의사를 가지고 권한을 넘는 행위를 한 경우에 문제 된다.
반면 이 사건의 L은 “피고의 대리인”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피고 본인인 것처럼 행세하였다. 금융기관도 대리인과 거래한다고 인식한 것이 아니라 피고 본인과 거래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민법 제126조를 통상적인 대리행위와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고, 표현대리 법리의 유추적용 요건을 검토해야 한다.

나. 기본대리권은 실제로 본인을 사칭한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유추적용을 인정하려면 다음 사정이 필요하였다.
  • 피고를 사칭한 L에게 피고를 대리할 기본대리권이 있었을 것
  • 원고가 L을 피고 본인이라고 믿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었을 것
원고는 H에게 남편을 대리할 권한이나 일상가사대리권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H에게 어떤 권한이 있었는지와 L에게 기본대리권이 있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법원은 L에게 피고를 대리할 기본대리권이 있었다는 주장·입증이 없다고 보았다. 원고가 H와 L의 행위를 전체적으로 하나로 보아 표현대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모자 중 한 사람에게 대리권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다른 공모자인 사칭행위자에게도 기본대리권이 있는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 진짜 도장이 찍혀 있어도 본인이 작성한 문서라고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 관련 서류의 인영이 피고의 도장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은 다툼이 없었다.
그러나 항소심은 H와 L이 피고 몰래 그 도장을 사용하여 서류를 위조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해당 서류를 피고의 대출계약 체결이나 어음 배서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로 사용하지 않았다.
도장이 진짜라는 사실과 그 문서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작성되었다는 사실은 구별된다.

라. 무효인 근저당권이 말소되었다고 곧바로 부당이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부당이득반환청구가 성립하려면 원고의 손해뿐 아니라 피고가 실제로 이익을 얻었다는 점도 인정되어야 한다.
원고의 대출금이 종전 채무 변제와 근저당권 말소에 사용된 사실은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 종전 근저당권 역시 피고의 허락 없이 성명모용과 서류 위조로 설정된 것이어서 피고에게 효력을 주장할 수 없는 담보권이었다.
따라서 종전 근저당권이 말소되었다고 하여 피고가 유효하게 부담하던 담보책임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었다. 법원은 달리 피고가 제1대출로 이익을 얻었다는 증거도 없다고 판단하였다.
확인할 사항이 사건의 판단
대출금이 종전 채무 변제에 쓰였는가인정
종전 담보가 피고에게 유효한 부담이었는가부정
그 말소로 피고가 채무액 상당의 이익을 얻었는가부정

마. 말소등기의 형식적 원인보다 종전 담보권의 실체적 효력이 중요하다

원고는 종전 근저당권이 원인무효를 이유로 말소된 것이 아니라 채무 변제에 따라 말소되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대법원은 말소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졌는지와 종전 근저당권이 피고에게 유효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보았다.
종전 등기가 실체적으로 무효인 이상, 변제를 이유로 말소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피고가 채무액 상당의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이다.

바. 어음 배서와 연대보증책임도 인정되지 않았다

원고는 제2대출 관련 어음에 피고 명의의 배서가 있으므로 피고가 배서인 또는 연대보증인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피고 명의 배서 부분 역시 진정하게 작성된 것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피고가 직접 배서하였다는 다른 증거도 없었다. 이에 따라 8,500만 원에 대한 어음 관련 청구도 기각되었다.
이 판단을 “어음에 배서하면 언제나 민사상 연대보증도 성립한다”는 취지로 읽어서는 안 된다. 법원은 피고의 배서행위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구를 배척하였다.

사. 처음부터 공시송달된 소송에서는 추완항소의 기산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법원은 소송이 처음부터 공시송달로 진행되었고 피고가 이를 알지 못한 사정에 비추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에게 책임질 수 없는 사유가 있다고 보았다.
원고가 다른 경매절차에 제1심판결문을 제출한 사실만으로는 피고가 그 판결이 공시송달되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는 2000. 3. 29. 공시송달 사실을 알게 된 후 2000. 4. 10. 제기한 추완항소가 법정기간 내의 적법한 항소로 인정되었다.

실무적 유의점

가. 사칭한 사람과 대리권을 가진 사람을 정확히 특정해야 한다

배우자·직원·중개인이 서류를 전달하고 다른 사람이 본인을 사칭하였다면, 각 사람의 행위와 권한을 나누어 검토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대리권이 있었다는 주장만으로 실제 사칭자의 기본대리권이 보충되지는 않는다.

나. 담보채무를 갚았다는 사실만으로 소유자의 부당이득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금 사용처뿐 아니라 종전 채무의 채무자, 담보설정의 유효성 및 소유자가 실제 부담하던 책임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무단 담보설정이 반복된 사건에서는 최초 거래부터 추적해야 한다.

다. 이 판결은 금융기관의 정당한 신뢰만을 심사하여 책임을 부정한 사건이 아니다

표현대리 유추적용을 배척한 직접적인 이유는 사칭한 L의 기본대리권에 관한 주장·입증이 없었다는 점이다. 본인확인 절차가 충분했는지와 별개로 이 요건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

라. 본인에 대한 청구 기각과 위조·사칭 관여자의 책임은 별개이다

이 사건은 명의를 도용당한 남편에 대한 청구가 기각된 사건이다. 위조와 사칭에 관여한 H·L의 불법행위책임이나 금원을 실제 취득한 사람에 대한 반환청구까지 부정한 판결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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