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과 2025년 개정 상법상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 서울고등법원 2025. 2. 3. 선고 2024노635 판결
— 대법원 2025. 7. 17. 선고 2025도2805 판결
1. 사건의 개요
이 사건은 2015년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와 관련하여 그룹 총수와 미래전략실 및 계열회사 임직원, 회계법인 관계자 등이 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및 위증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검사는 피고인들이 그룹 총수의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제일모직에 유리하고 구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합병비율 검토보고서와 시너지 자료를 조작하며, 자기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수하여 주가를 인위적으로 관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통하여 투자주식을 공정가치로 재평가하고,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을 제대로 공시하지 않은 행위가 고의적인 회계부정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제1심은 모든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서울고등법원도 검사의 항소와 항소심에서 추가된 예비적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여 무죄판결을 확정하였다.
2. 전자정보 압수·수색과 위법수집증거
서울고등법원은 회사의 18TB 백업 서버, NAS 서버, 외장하드 및 피고인의 휴대전화에서 확보한 일부 전자정보의 증거능력을 부정하였다.
전자정보가 저장된 서버나 저장매체가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되어 있더라도 그 안에 저장된 모든 전자정보를 제한 없이 압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은 영장에 기재된 범죄혐의와 관련된 정보만을 선별하여 압수해야 하고, 선별 과정에서 피압수자 측의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일부 폴더를 지정한 후 그 안의 파일들을 개별적으로 선별하지 않고 일괄 압수하였다. 압수가 끝난 뒤 변호인에게 일부 자료를 열람하게 하거나 DRM 해제작업을 참관하도록 한 것은 적법한 선별절차에 참여하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른 형사사건에서 압수한 휴대전화의 전자정보를 대검찰청 서버에 계속 보관하였다가 별도의 영장 없이 이 사건의 증거로 사용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항소심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뿐 아니라 이를 기초로 확보한 관계자 진술 등 2차적 증거도 위법수집증거에서 파생된 증거로 보아 증거능력을 부정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에 전자정보 압수·수색의 적법성,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 및 그 예외에 관한 법리오해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3.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와 시세조종
검사의 공소사실은 이 사건 합병이 그룹 총수의 경영권 승계를 위하여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였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합병이 그룹 총수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정과 합병 자체가 형사법적으로 부정한 거래라는 점은 구별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선행 판결에서 삼성그룹 차원의 ‘승계작업’과 이 사건 합병의 관련성이 인정되었더라도, 그것만으로 자본시장법상 위계·허위표시·부정한 수단 또는 시세조종행위가 있었다는 점까지 확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합병비율은 당시 자본시장법령에 따라 시장주가를 기준으로 산정되었다. 피고인들이 오직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얻기 위하여 합병시점을 선택하였다거나 회계법인에 가치평가 결과를 조작하도록 요구하였다는 사실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제일모직의 자기주식 매입에 관해서도, 법령상 요건과 공시절차를 준수한 자기주식 매입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시세조종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주문의 형태와 규모, 시장관여율, 경영상 필요성 및 실제 주가에 미친 영향 등을 종합하더라도 인위적인 시세조종이나 시세고정·안정의 목적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항소심의 판단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자본시장법 위반죄의 법리를 오해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4.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로 보아 연결회계처리를 하였다. 그러나 2015회계연도에는 바이오젠의 콜옵션이 실질적인 권리가 되었다고 판단하여 단독지배력을 상실하고 공동지배 관계로 전환된 것으로 회계처리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2015회계연도 회계처리 과정에서 일부 피고인이 특정한 의도나 방향성을 드러내거나 문서를 조작하는 등의 부적절한 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인 회계처리 결과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가 현실화됨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단독지배력을 상실하였다는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고, 그 판단에 이르는 근거와 과정에도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2014회계연도 콜옵션 주석 공시는 회계기준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한 미흡한 공시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회계기준 위반을 인식하면서 고의로 거짓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하였다는 점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항소심의 외부감사법 위반 무죄 판단에 법리오해, 심리미진 또는 판단누락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5. 업무상배임죄의 쟁점
검사는 삼성물산 이사들이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음에도 미래전략실의 지시에 따라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을 추진하여 회사 및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하였다.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고, 그 임무에 위배하여 자기 또는 제3자에게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며, 사무의 주체인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켰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
회사 이사가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따라서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희생하여 지배주주나 제3자에게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고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에는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합병은 소멸회사의 권리·의무가 존속회사에 포괄적으로 승계되는 회사 간 거래인 동시에 기존 주주의 지분이 합병신주로 전환되는 주주 지분의 거래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이 때문에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직접 손해를 입는 주주와 합병을 추진한 이사 사이에 배임죄상 신임관계가 인정되는지가 별도의 문제로 제기된다.
6. 서울고등법원 2024노635 판결의 판단
서울고등법원은 업무상배임에 관한 공소사실이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킨 부정한 합병이라는 자본시장법 위반 부분의 공소사실을 전제로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합병의 부정성, 불공정한 합병비율, 삼성물산의 손해 및 피고인들의 배임 고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업무상배임죄 역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항소심은 중요한 법리적 가능성을 부가적으로 언급하였다.
합병을 추진한 삼성물산 이사들이 삼성물산 전체 주주에 대한 사무처리자 지위에 있다고 인정한다면 업무상배임죄의 성립 여부를 달리 볼 여지가 있다.
그러면서도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전체 주주 개개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입법론적으로 타당한지는 별론으로 하고, 이를 형벌법규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형법상 배임죄는 신임관계를 위반한 모든 행위를 처벌하는 일반조항이 아니다. 행위자가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그 사람을 위하여 처리하는 전형적이고 본질적인 신임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형벌법규를 확장해석하여 이사를 주주 개인의 사무처리자로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대법원 2025도2805 판결은 업무상배임죄의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항소심의 판단에 법리오해가 없다고 보아 무죄를 확정하였다.
7. 2025년 개정 상법 제382조의3
2025년 7월 22일 개정된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①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②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
종전 조항이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규정한 것과 비교하면 제1항에 “및 주주”가 추가되었다. 제2항에서는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 의무를 명시하였다. 개정 조항은 2026년 7월 23일부터 시행되었다.
개정 이유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에 이해가 충돌하는 합병, 분할, 주식교환, 영업양도, 유상증자 등의 거래에서 이사가 회사의 형식적 이익만을 내세워 일부 주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을 방지하려는 데 있다. 법제처가 밝힌 개정 이유 역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고,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를 명문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8. 개정 상법에 따라 이사가 주주의 사무처리자가 되는지
개정 상법은 이사의 민사상·회사법상 의무가 주주의 이익 보호에까지 미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나 이로써 이사가 당연히 주주 개개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되어 업무상배임죄의 주체가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법상 충실의무의 상대방과 형법상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반드시 동일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법 제382조의3 제1항은 문언상 이사가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한다. 이를 근거로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 대해서도 직접 충실의무를 부담하고, 지배주주와 소수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는 거래에서는 전체 주주의 공동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개정 조항에도 불구하고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직접적인 법률관계는 기본적으로 회사와 이사 사이에 존재한다고 보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되지만 회사와 위임관계에 있고, 회사의 기관으로서 회사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사가 모든 주주와 개별적인 위임관계나 재산관리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주주를 위하여”라는 문언 역시 주주 개개인의 개별적 이익을 직접 관리하라는 의미라기보다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총주주의 공동이익을 보호하고 주주들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회사법상 직무 기준을 추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제2항이 “특정 주주”가 아니라 “총주주의 이익”과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이사의 의무는 특정 주주의 개별적인 투자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기관으로서 전체 주주의 공동이익을 고려하여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개정 상법이 이사와 개별 주주 사이에 배임죄 성립에 필요한 직접적이고 전형적인 재산관리상 신임관계를 곧바로 창설했다고 보기 어렵다.
9. 민사상 책임의 확대와 형사상 배임책임의 구별
개정 상법 제382조의3은 민사상 이사 책임을 판단하는 데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합병이나 분할, 주식교환, 제3자배정 유상증자 등에서 이사가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위하여 거래조건을 정하고 일반주주의 이익을 부당하게 희생시킨 경우, 회사 또는 주주는 이사의 충실의무 및 공평대우의무 위반을 근거로 손해배상책임을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주주가 이사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아니면 회사가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고 주주는 대표소송을 통하여 이를 행사해야 하는지는 손해의 성격에 따라 구분될 것이다.
회사 재산의 감소를 통하여 주식가치가 하락한 경우라면 주주의 손해는 원칙적으로 회사 손해의 반사적 결과이므로 회사가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거나 주주대표소송으로 책임을 추궁하는 방식이 우선될 수 있다.
반면 불공정한 합병비율이나 특정 주주에 대한 차별적 취급으로 인해 주주가 회사와 구별되는 직접적인 손해를 입은 경우에는 개정 상법을 근거로 이사에 대한 직접적인 손해배상청구가 인정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사상 충실의무와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배임죄가 당연히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형사책임을 인정하려면 이사가 주주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주주를 위하여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는 점, 그 임무에 위배하였다는 점, 자기 또는 제3자에게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였다는 점 및 주주에게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켰다는 점이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한다.
10. 개정 상법의 삼성물산 합병 사건에 대한 적용 여부
개정 상법 제382조의3은 2025년 개정되어 2026년 7월 23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사건 합병은 2015년에 이루어졌으므로 개정 조항을 피고인들의 행위에 소급하여 적용할 수 없다.
특히 개정 조항을 근거로 과거에는 인정되지 않던 주주에 대한 사무처리자 지위를 새롭게 인정하여 업무상배임죄를 구성하는 것은 형벌법규 불소급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
따라서 개정 상법이 이 사건에 적용되었다면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했을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 판결은 행위 당시의 상법과 형법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고, 개정법은 향후 유사한 기업거래에서 이사의 민사상 의무 및 형사상 지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관한 새로운 쟁점을 제시한 것이다.
11. 개정법하에서 업무상배임죄가 문제 되는 경우
향후 합병 등에서 지배주주에게 유리하고 일반주주에게 불리한 거래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우선 이사의 행위로 회사 자체에 손해가 발생하였는지를 살펴야 한다.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현저히 낮은 가격에 처분하거나, 회사에 불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면서 지배주주 또는 제3자에게 이익을 제공한 경우라면 이사는 회사의 사무처리자로서 회사에 대한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개정 상법을 통하여 이사를 주주의 사무처리자로 인정할 필요가 없다.
반면 회사의 자산 자체에는 직접적인 손해가 없지만,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인해 일반주주의 지분가치가 지배주주에게 이전된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 경우 직접적인 손해의 귀속 주체가 회사가 아니라 주주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개정 상법 제382조의3을 근거로 이사가 주주의 사무처리자에 해당한다고 본다면 주주에게 발생한 직접손해를 배임죄상 손해로 평가할 수 있다. 반대로 이사의 의무 상대방은 여전히 회사이고 주주에 대한 의무는 회사법상 직무수행의 기준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주주의 직접손해만으로 업무상배임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결국 개정법하에서 중요한 것은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고려할 의무가 있는가”라는 문제와 “이사가 형법상 주주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무처리자인가”라는 문제를 구별하는 것이다. 전자는 개정 조항에 따라 명확히 긍정될 수 있지만, 후자는 별도의 형법적 판단이 필요하다.
12. 향후 판례의 정립 방향에 관한 전망
개정 상법 시행 이후 법원은 합병·분할·주식교환·유상증자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는 사건에서 상법 제382조의3을 적극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민사 영역에서는 이사회가 거래의 목적, 대안, 가치평가, 거래조건 및 주주별 이해관계를 충분히 검토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이사회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하기 위한 절차를 실질적으로 거쳤는지를 중심으로 충실의무 위반 여부가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거래위원회 구성, 독립적인 외부평가, 이해관계 있는 이사의 의결 배제, 소수주주에 대한 정보제공 및 거래대안 검토 여부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형사 영역에서는 개정 상법의 문언만으로 이사를 주주 개개인의 사무처리자로 곧바로 인정하는 데 신중한 태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단순히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가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정 상법이 이사의 민사상 충실의무 범위를 확대했다는 사실과 형법상 사무처리자 지위를 창설했다는 결론 사이에는 여전히 상당한 법리적 간격이 있다.
따라서 향후 판례는 다음과 같은 방향 중 하나로 정립될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회사 중심 해석이다. 이사의 직접적인 충실의무 상대방은 여전히 회사이고, “주주를 위하여”라는 문언은 회사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총주주의 공동이익과 공평대우를 고려해야 한다는 직무수행 기준을 추가한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 경우 주주에 대한 민사상 보호는 강화되지만, 이사가 당연히 주주의 사무처리자가 되어 배임죄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는 제한적 주주 사무처리자론이다. 일반적인 경영활동에서는 이사의 의무 상대방을 회사로 보되, 합병·분할·주식교환과 같이 회사의 손익과 별도로 주주의 지분가치가 직접 이전되고 이사가 그 거래조건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사가 전체 주주의 재산적 이해를 관리하는 사무처리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주주에 대한 직접적 신임관계를 폭넓게 인정하는 해석이다. 개정법이 명시적으로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라고 규정한 이상 이사는 주주에 대해서도 직접 충실의무를 부담하고, 이를 중대하게 위반하여 특정 주주에게 이익을 이전하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만 이 해석은 죄형법정주의와 배임죄의 과도한 확장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가운데 현행 배임죄 법리와 형벌법규 엄격해석의 원칙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는 첫 번째 해석을 기본으로 하면서 개별 거래의 성격에 따라 두 번째 해석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판례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즉 개정 상법은 이사의 민사상 책임과 이사회 절차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데에는 직접적인 규범적 근거가 되지만, 업무상배임죄의 적용범위까지 자동으로 확대하는 조항으로 해석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13. 종합적인 평가
서울고등법원 2024노635 판결은 이사가 전체 주주에 대한 사무처리자라면 업무상배임죄의 성립을 달리 볼 여지가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당시 법률 아래에서 이를 형벌법규의 해석으로 새롭게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2025도2805 판결은 이러한 무죄 판단을 확정하였다.
이후 개정된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명문화하였다. 이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는 기업거래에서 이사의 의무를 강화하는 중요한 변화이다.
그러나 개정 조항에도 불구하고 이사가 부담하는 의무의 직접적인 상대방은 기본적으로 회사이고, 주주에 대한 의무는 회사기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회사법상 기준이라고 보는 해석이 타당하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개정 조항만으로 배임죄 성립에 필요한 이사와 주주 사이의 직접적이고 전형적인 재산관리상 신임관계가 새롭게 창설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향후 개정 상법은 우선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주주대표소송, 합병 등 조직재편행위의 공정성 심사 및 이사회 의사결정절차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규범으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업무상배임죄에 관해서는 회사의 손해와 주주의 직접손해를 구별하고, 개별 거래에서 이사가 실제로 주주의 재산적 이해를 관리하는 지위에 있었는지를 엄격하게 심사하는 방향으로 판례가 정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개정 상법의 의미는 “이사가 주주의 사무처리자가 되었으므로 곧바로 배임죄의 적용범위가 확대되었다”는 데 있기보다, 지배주주의 이익과 전체 주주의 공동이익이 충돌할 때 이사회가 어떠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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