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문제의 소재
부동산이 신탁되면 대내외적인 소유권은 원칙적으로 수탁자에게 이전됩니다. 이에 따라 수탁자는 신탁부동산의 법률상 소유자로서 점유자에게 인도·명도를 청구하거나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신탁 전에 위탁자와 제3자 사이에 형성된 모든 거래관계가 당연히 단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위탁자가 신탁 후에도 부동산을 실질적으로 점유·관리하면서 개발사업이나 명도 업무를 수행하고, 수탁자는 담보목적상 소유명의만 보유하는 경우에는 수탁자와 제3자의 법률관계를 형식적인 소유명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의 소유자라는 이유만으로 위탁자와 제3자 사이의 기존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항변을 모두 차단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제3자가 그 거래관계의 실질을 근거로 수탁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는가.
## 2. 수탁자가 신탁등기로 대항할 수 있는 범위
대법원 2025. 2. 13. 선고 2022다233164 판결은 신탁등기의 대항력 범위를 명확히 제한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수탁자가 신탁등기로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항은 해당 부동산이 수탁자의 고유재산과 구별되는 신탁재산이라는 점에 한정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신탁원부에 위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비용부담이나 책임분담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더라도, 수탁자는 그 내부약정을 이유로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는 신탁원부의 기재 내용 전체가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을 갖는다는 종전의 넓은 해석을 부정한 것입니다.
[대법원 2022다233164 판결](https://www.law.go.kr/LSW/precInfoP.do?mode=0&precSeq=613171)
## 3. 2022다233164 사건의 구체적인 경과
위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하급심의 판단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 가. 제1심의 판단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6. 16. 선고 2020가단5326560 판결의 사안은 담보신탁된 집합건물의 관리비 부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신탁계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 위탁자가 신탁부동산을 계속 점유·사용한다.
* 위탁자가 신탁부동산의 실질적인 보존·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 신탁부동산의 유지·관리비 등은 위탁자가 부담한다.
제1심은 위탁자가 부동산을 실질적으로 점유·관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신탁원부에 관리비를 위탁자가 부담한다고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수탁자가 이를 제3자인 관리단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관리단의 수탁자에 대한 관리비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 나. 항소심의 판단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4. 22. 선고 2021나40098 판결은 민사소송법 제420조에 따라 제1심의 이유를 그대로 인용하고 관리단의 항소를 기각하였습니다.
### 다. 대법원의 파기
그러나 대법원은 위 판단을 파기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신탁계약상 비용부담 약정만으로 수탁자의 책임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신탁계약의 내용과 관계없이 관리비의 성격과 관리단 규약 등 신탁 외부의 실질적인 법률관계를 심리하여 수탁자의 관리비 부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위탁자가 부동산을 실질적으로 점유·관리하고 있더라도 제3자와 수탁자의 법률관계는 위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내부약정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외부적 요소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제3자와 위탁자 사이에 형성된 거래관계
* 문제된 채권이나 채무의 성격
* 수탁자가 행사하는 권리의 실질
* 관련 법령이나 규약
* 신탁이 설정된 목적과 경위
* 위탁자와 수탁자의 실제 업무분담
파기환송 후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나5536호로 진행되었고, 2025. 8. 12. 원고의 소 취하, 피고의 동의 및 소송총비용 각자 부담을 내용으로 하는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져 확정되었습니다. 환송심에서 별도의 실체판단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신탁계약상 내부약정만으로 제3자의 권리를 배제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법리 판단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 4. 제3자가 위탁자와의 거래관계를 원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수탁자가 신탁계약상 내부약정을 근거로 제3자에게 대항하는 것과, 제3자가 신탁의 경위와 거래의 실질을 근거로 수탁자에게 권리나 항변을 주장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대법원 2022다233164 판결은 전자를 제한한 판결입니다. 즉 수탁자가 “신탁계약상 비용은 위탁자가 부담하기로 하였다”는 이유로 제3자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제3자가 신탁계약의 목적과 경위를 고려하여 수탁자가 행사하는 권리의 실질을 밝히고, 위탁자와의 외부 거래관계에서 취득한 항변을 수탁자에게 주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는 신탁계약상 권리·의무 자체를 수탁자에게 직접 적용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수탁자가 행사하는 청구가 실질적으로 누구의 사업과 이익을 위한 것인지, 그 청구와 제3자의 채권이 동일한 거래관계에서 발생하였는지를 판단하자는 것입니다.
오히려 제3자를 보호하려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수탁자가 내부 신탁계약이나 형식적인 소유명의를 이용하여 제3자가 기존 거래관계에서 취득한 권리와 항변을 차단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습니다.
## 5. 선행사건과 유사한 법률구조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2022다233164 판결의 법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 담보신탁 후에도 위탁자가 부동산을 계속 점유·관리하는 경우
* 위탁자가 개발사업, 임대, 시설관리 또는 명도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경우
* 수탁자는 자금조달과 우선수익자에 대한 담보제공을 위하여 소유명의만 보유하는 경우
* 제3자가 위탁자의 사업수행 과정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채권을 취득한 경우
* 수탁자가 제3자를 상대로 인도·명도 또는 금전 지급을 청구하는 경우
* 수탁자의 청구와 제3자의 위탁자에 대한 채권이 동일한 사업 또는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경우
이러한 경우 선행사건과 현재 문제되는 사건 사이에 청구의 방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대법원 판결의 적용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선행사건은 제3자인 관리단이 수탁자를 상대로 관리비 지급을 청구한 사건이었습니다. 반면 수탁자가 제3자를 상대로 인도를 청구하고 제3자가 위탁자에 대한 채권으로 항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법률구조가 같습니다.
* 담보신탁이 설정되어 있다.
* 위탁자가 부동산을 실질적으로 점유·관리한다.
* 수탁자는 담보목적상 소유명의를 보유한다.
* 위탁자와 제3자 사이에 신탁 외부의 거래관계가 존재한다.
* 제3자와 수탁자의 권리·의무를 누구의 업무인지에 관한 내부약정이 아니라 외부 거래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제3자가 수탁자에게 이행을 청구하는 경우뿐 아니라 수탁자의 청구에 대하여 위탁자와의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항변을 제출하는 경우에도 같은 판단기준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 6. 동시이행항변이 인정되는 기준
제3자가 위탁자에 대한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언제나 수탁자의 인도청구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탁자의 청구와 제3자의 채권 사이에 대가적 의미와 이행상 견련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에 관한 중요한 판례가 대법원 2006. 6. 9. 선고 2004다24557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동시이행항변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 두 채무가 쌍무계약상 고유한 대가관계에 있는 채무가 아니더라도, 구체적인 계약관계와 약정 내용에 따라 서로 대가적 의미가 있고 이행상의 견련관계를 인정해야 할 사정이 있으면 공평의 관념과 신의칙상 동시이행항변권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사건에서 위탁자 또는 수익자의 신탁비용·신탁보수 지급의무와 수탁자의 신탁재산 이전의무는 하나의 쌍무계약에서 직접 교환되는 고유한 대가채무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다음 사정을 고려하여 동시이행관계를 인정하였습니다.
* 양 채무가 동일한 신탁관계에서 발생하였다.
* 신탁비용과 보수는 신탁재산의 관리·처분과 관련하여 발생하였다.
* 수탁자는 비용과 보수를 회수하기 위하여 신탁재산을 매각하거나 유치할 수 있었다.
* 신탁재산을 반환받으면서 그 재산과 관련된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형평에 반한다.
결국 수탁자는 신탁비용과 보수를 지급받거나 그 이행제공을 받을 때까지 신탁재산의 이전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대법원 2004다24557 판결](https://www.law.go.kr/LSW/precStmdInfoP.do?precSeq=179717)
## 7. 위 두 판례를 종합한 판단기준
2022다233164 판결과 2004다24557 판결은 각각 다음과 같은 판단기준을 제시합니다.
첫째, 2022다233164 판결은 위탁자가 실질적인 부동산 업무를 수행하는 담보신탁에서도 제3자와 수탁자의 외부관계를 신탁계약상 내부약정이 아니라 거래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합니다.
둘째, 2004다24557 판결은 그 외부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두 채무가 고유한 대가채무가 아니더라도 대가적 의미와 이행상 견련성이 인정되면 공평의 관념과 신의칙상 동시이행항변을 인정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다음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는 제3자가 위탁자에 대한 동시이행항변으로 수탁자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1. 수탁자의 청구가 실질적으로 위탁자의 사업수행이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일 것
2. 제3자의 위탁자에 대한 채권이 같은 사업 또는 거래관계에서 발생하였을 것
3. 수탁자의 청구와 위탁자의 채무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가질 것
4. 두 채무 사이에 이행상 견련성이 있을 것
5. 위탁자의 채무는 이행하지 않은 채 수탁자의 청구만 먼저 인용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할 것
6. 신탁설정이 기존 거래관계나 제3자의 항변을 배제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될 수 없을 것
## 8. 모든 위탁자 채무를 수탁자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결을 “위탁자의 모든 채무를 수탁자가 부담한다”는 의미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제3자의 대항이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 위탁자에 대한 채권이 신탁부동산이나 수탁자의 청구와 무관한 경우
* 채권이 신탁설정 후 위탁자와 별도로 체결한 계약에서 발생한 경우
* 수탁자가 해당 계약에 동의하거나 관여하지 않았고 법률상 승계관계도 없는 경우
* 수탁자의 청구와 위탁자의 채무 사이에 대가적 의미나 이행상 견련성이 없는 경우
* 신탁 전에 제3자의 대항력을 인정할 수 있는 외부적 법률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
예컨대 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다44879, 44886 판결은 담보신탁 후 위탁자가 수탁자의 동의 없이 체결한 임대차계약의 대항력에 관한 사안입니다. 이 판결은 위탁자와의 거래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수탁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대법원 2018다44879, 44886 판결](https://www.law.go.kr/LSW/precInfoP.do?precSeq=206299)
따라서 제3자의 대항 가능성은 신탁의 선후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거래가 체결된 시점, 신탁의 목적, 위탁자의 실질적인 업무, 수탁자 청구의 성격, 권리·의무의 승계 여부 및 두 채무의 견련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 9. 결론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의 법률상 소유자라는 사정만으로 위탁자와 제3자 사이의 기존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항변이 모두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탁자가 신탁등기로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항은 원칙적으로 해당 부동산이 신탁재산이라는 점에 한정됩니다. 수탁자는 위탁자와의 내부적인 비용·책임분담 약정을 이유로 제3자의 권리나 항변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위탁자가 신탁 후에도 부동산을 실질적으로 점유·관리하면서 사업과 명도 업무를 수행하고, 수탁자는 위탁자의 자금조달 및 우선수익자에 대한 담보제공을 위하여 소유명의를 보유하는 경우에는 거래의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수탁자의 인도·명도청구가 실질적으로 위탁자의 사업을 위한 것이고, 제3자의 위탁자에 대한 채권이 바로 그 인도나 명도의 대가로 발생하여 양자 사이에 이행상 견련성이 인정된다면, 제3자는 공평의 관념과 신의칙상 위탁자에 대한 동시이행항변으로 수탁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신탁은 기존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정당한 항변권을 소멸시키거나 수탁자 명의의 청구를 통하여 우회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수탁자가 위탁자의 사업을 위하여 신탁재산의 인도를 구한다면, 그 인도와 실질적으로 결부된 위탁자의 채무를 신탁재산에서 이행하거나 현실적으로 이행제공하는 것과 상환으로만 인도를 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공평의 관념과 신의칙에 부합합니다.
제3자는 위탁자와의 거래관계를 이유로 수탁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가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