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5. 12. 4. 선고 2024두40387 판결
이 판결의 핵심은 신탁업자가 전산상 은행계정대 금액을 조정한 행위가 자본시장법 제246조 제5항에서 금지하는 집합투자재산 간 ‘거래’에 해당하는지입니다.
대법원은 회계시스템에 수치를 입력하여 장부상 금액을 조정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집합투자재산 간 거래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실제 재산의 이전이나 권리·의무의 변동을 발생시키려는 의사가 있었는지를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1. 사건의 개요
신탁업자인 은행은 집합투자업자가 설정한 여러 펀드의 집합투자재산을 보관·관리하였습니다.
각 펀드의 미운용현금은 집합투자업자 단위로 하나의 ‘은행계정대’에서 통합 관리되었고, 이는 신탁계정이 은행의 고유계정에 자금을 대여한 것으로 회계처리되었습니다.
펀드 투자자들의 환매가 이루어지면서 은행은 자신의 고유재산으로 판매회사에 환매대금을 먼저 지급하였습니다. 그러나 펀드가 보유한 사채의 상환금이 당일 마감시간까지 입금되지 않아 다음 두 수치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자금관리시스템상 은행계정대 변동액
은행계정시스템상 실제 입출금된 자금 변동액
은행 직원들은 일일 마감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자금관리시스템에서 해당 집합투자업자의 은행계정대를 감소시켰고, 일부 경우에는 다른 집합투자업자의 은행계정대까지 감소시키는 전산 입력을 하였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를 집합투자재산 사이의 거래로 보아 은행에 업무정지 처분을 하고 담당 임직원에 대한 징계조치를 요구하였습니다.
2. 자본시장법상 집합투자재산 간 거래금지
자본시장법 제246조 제5항은 신탁업자가 보관·관리하는 집합투자재산을 다음 재산과 거래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합니다.
신탁업자의 고유재산
다른 집합투자재산
제3자로부터 보관을 위탁받은 재산
이 규정은 집합투자재산 사이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고, 각 집합투자재산의 독립성과 운용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 조항에서 말하는 ‘거래’를 원칙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신탁업자가 보관·관리하는 집합투자재산과 다른 집합투자재산 등 사이에서 재산을 이전하거나, 재산에 관한 권리·의무를 발생·변경·소멸시키려는 의사로 행하는 일체의 재산상 행위
따라서 거래의 형식이나 명칭보다는 해당 행위가 실제로 재산 또는 권리·의무의 변동을 가져왔는지가 중요합니다.
3. ‘거래’ 해당 여부의 판단기준
집합투자재산을 대상으로 한 행위가 금지되는 거래에 해당하는지는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행위의 성질과 구체적인 내용
행위의 목적과 경위
해당 행위로 발생한 법적 효과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
신탁업자 또는 관계인이 얻은 이익
당시의 거래관행
행위 이후의 처리 및 정황
특히 단순한 장부 기재나 전산 입력이라도 실제 채권액을 감소시키거나 재산상 권리관계를 변경하려는 의사로 이루어졌다면 거래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장부상 수치가 변경되었더라도 실제 권리관계를 변경할 의사와 효과가 없다면 거래로 보기 어렵습니다.
4. 이 사건 은행계정대 조정의 성격
대법원은 이 사건 조정행위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단순한 회계상 조치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첫째, 은행 직원들은 실제 자금의 입출금 없이 자금관리시스템과 은행계정시스템의 수치를 일치시켜 당일 마감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전산 입력을 하였습니다.
둘째, 입력 과정에서 ‘기타자금’, ‘수기/해당 없음’ 등 실제 자금집행과 연동되지 않는 항목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직원들이 실제 자금을 이전하려는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정입니다.
셋째, 전산상 은행계정대를 감소시킨 이후에도 은행은 해당 집합투자업자에게 조정 전 금액을 기준으로 이자를 지급하였습니다.
넷째, 은행계정대 조정으로 신탁계정이 은행 고유계정에 대하여 보유한 대여금채권이 실제로 감소하거나 다른 펀드로 이전되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전산상 수치가 조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집합투자재산 사이에서 실제 재산이나 채권이 이전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5. 원심판결을 파기한 이유
원심은 은행계정대의 장부상 금액이 증감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집합투자재산 사이의 권리·의무가 변동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다음 사항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실제 대여금채권액이 변경되었는지
은행 직원들에게 권리관계를 변경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각 집합투자재산 사이에 경제적 가치가 실제로 이전되었는지
조정 이후 이자 지급과 회계처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에 따라 해당 전산 입력이 단순한 회계상 조치인지, 실제 재산상 권리·의무를 변동시키는 거래인지를 다시 심리하도록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6. 판결의 핵심 취지
이 판결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상 금지되는 집합투자재산 간 ‘거래’가 성립하려면 실제 재산의 이전 또는 재산상 권리·의무를 발생·변경·소멸시키려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전산시스템의 수치를 조정하거나 회계상 계정 금액을 변경하였다는 외관만으로는 부족하고, 행위자의 의사와 실제 법률적·경제적 효과를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이 판결은 회계처리의 형식과 실질적인 재산상 거래를 구별한 판결입니다. 자본시장법상 거래금지 규정의 취지를 존중하면서도, 실제 권리변동이 없는 단순한 전산·회계상 조정까지 제재대상인 거래로 확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이 해당 조정행위가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최종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단순한 회계상 조치일 가능성이 큰데도 원심이 거래의 실질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한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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