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신청회사와 상대방 회사는 모두 부산·경남 지역에 영업기반을 두고 오랫동안 경쟁관계를 유지해 온 회사였습니다.
상대방 회사는 경영상 어려움으로 자본금을 약 139억 원에서 약 33억 원으로 대폭 감자하였고, 계속된 자본잠식으로 대부분의 보통주가 상장폐지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경쟁회사인 신청회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방 회사의 주식을 액면가의 약 5배에 이르는 가격으로 매입하여 주주가 되었습니다.
신청회사는 주식 취득과 동시에 공개적으로 상대방 회사의 경영권 인수를 표방하고, 지분 50% 이상을 확보하기 위한 공개매수에 착수하였습니다. 또한 상대방 회사의 전 대표이사 비위, 미수금 채권 및 상장폐지 문제 등을 내세워 다음과 같은 조치를 병행하였습니다.
이사회 의사록 및 회계장부의 열람·등사청구
임원 해임 요구
손해배상청구
상대방 회사의 주주와 채권자에 대한 설득
경영진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
신청회사는 상대방 회사의 부실경영과 경영진의 위법행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사회 의사록 및 회계장부와 서류의 열람·등사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하였습니다.
2. 핵심 쟁점
이 사건의 핵심은 경쟁회사가 상대방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여 형식상 주주가 된 후,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면서 회계장부와 영업정보의 열람·등사를 청구한 경우 이를 정당한 주주권 행사로 볼 수 있는지입니다.
특히 다음 사항이 문제 되었습니다.
회사가 장부열람청구를 거부하려면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
주주의 주식 취득 동기와 열람 목적을 고려할 수 있는지
적대적 경영권 인수 목적이 장부열람청구를 부당하게 만드는지
경쟁회사가 취득한 정보를 경업에 이용할 위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3. 대법원이 제시한 부당성 판단기준
대법원은 상법 제391조의3 제3항 및 제466조 제1항에 따른 이사회 의사록과 회계장부·서류의 열람·등사청구가 있으면, 회사는 그 청구가 부당하다는 점을 증명하여 거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당성은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주주가 열람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
주식을 취득한 동기와 시기
회계장부를 열람하려는 실제 목적
회사 또는 경영진에 대한 악의성
열람청구 전후에 주주가 취한 행동
열람이 회사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에 미치는 영향
주주 공동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
주주와 회사 사이의 경업관계
취득한 정보를 경업에 이용할 우려
회사에 지나치게 불리한 시기를 의도적으로 선택했는지
특히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정당한 목적을 결여한 부당한 청구가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회사 업무의 운영을 방해하거나 해치는 경우
주주 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경쟁자인 주주가 취득한 정보를 경업에 이용할 우려가 있는 경우
회사에 지나치게 불리한 시기를 선택하여 청구하는 경우
4. 이 사건에서 부당한 목적이 인정된 이유
가. 정상적인 투자 목적으로 주식을 취득한 것이 아니었다
신청회사는 상대방 회사가 대규모 감자와 계속된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된 이후에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액면가의 약 5배에 이르는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주식 취득이 회사의 경영성과에 따른 배당이나 투자수익을 얻기 위한 통상적인 투자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 주식 취득과 동시에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였다
신청회사는 주식을 취득한 직후 상대방 회사의 경영권 인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지분 50% 이상을 확보하기 위한 공개매수에 착수하였습니다.
또한 기존 경영진의 해임, 손해배상청구, 주주와 채권자에 대한 설득 등 경영권 인수를 위한 여러 조치를 동시에 추진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일련의 행동에 비추어 장부열람청구의 실제 목적이 회사의 경영감독이나 주주 공동의 이익 보호보다는 상대방 회사의 경영권 인수를 용이하게 하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 경쟁회사로서 영업비밀을 이용할 위험이 있었다
두 회사는 동일한 지역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경쟁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회계장부와 이사회 의사록에는 거래처, 원가, 매출구조, 자금사정, 채권·채무관계 및 경영전략 등 경쟁상 민감한 정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신청회사의 구체적인 이용 의도와 관계없이 경쟁회사가 이러한 정보를 취득하면 경업에 악용될 객관적인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5. 결론
대법원은 신청회사의 장부열람청구가 주주로서 회사 경영을 감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주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방 회사를 압박하고 궁극적으로 적대적 경영권 인수를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신청회사가 상대방 회사의 직접적인 경쟁자이므로 취득한 영업정보가 경업에 이용될 위험도 인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열람청구는 정당한 목적을 결여한 부당한 권리행사라고 보아 가처분신청을 배척한 원심결정을 유지하고 재항고를 기각하였습니다.
6. 적대적 인수 목적이면 항상 부당한 것은 아니다
이 결정을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주주의 장부열람청구는 모두 부당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대법원은 이후 대법원 2014. 7. 21.자 2013마657 결정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주주라도 이사의 책임추궁, 위법행위 유지청구 또는 해임청구 등 정당한 주주권 행사를 위해 자료가 필요하다면 원칙적으로 열람청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따라서 부당한 목적의 판단은 단순히 경영권 인수를 추진한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집니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경영감독 목적이 중심이면 원칙적으로 허용
회사 압박, 경쟁상 정보 취득 또는 경영권 인수의 편의만을 위한 목적이면 거부 가능
정당한 목적과 부당한 목적이 함께 존재하면 주된 목적과 자료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판단
부당성은 이를 주장하는 회사가 증명
7. 대법원 2017다270916 판결과의 관계
대법원 2018. 2. 28. 선고 2017다270916 판결은 이 결정의 기준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주주대표소송 수행과 주식매수가액 산정을 위한 장부열람청구는 정당하지만 개인적인 금전채권을 보전하기 위한 사해행위취소소송의 자료 수집 목적은 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두 판례를 종합하면 핵심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주로서 회사와 주주 공동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정당
개인 채권의 회수, 제3자 이익 또는 경쟁사업을 위한 목적: 부당할 수 있음
회사에 대한 단순한 적대감이나 분쟁의 존재: 부당성 판단의 한 요소
경업 이용의 구체적·객관적 위험: 부당성을 강하게 뒷받침
장부열람의 부당성에 대한 증명책임: 회사
8.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열람청구
이 결정의 법리에 따르면, 주주가 회사의 회계장부를 열람한 후 그 정보를 제3의 경쟁자나 주식 매수희망자에게 제공하려는 경우에도 그 목적의 정당성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 사정이 인정되면 회사는 부당한 목적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장부열람의 목적이 주주권 행사가 아니라 제3자 매각을 위한 기업가치 평가인 경우
취득한 자료를 제3자에게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
제3자가 회사의 경쟁자이거나 경업에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비밀유지약정 없이 영업상 민감한 자료를 외부에 제공하려는 경우
주식 매각 후 회사와 이해관계를 단절할 예정인 주주가 광범위한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
요구 자료가 주주의 경영감독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
다만 이 부분은 2003마1575 결정의 직접적인 사안은 아닙니다. 위 결정이 제시한 ‘경업 이용 위험’, ‘주주 공동의 이익 침해’ 및 ‘청구의 실제 목적’이라는 기준을 제3자 제공 목적의 장부열람청구에 적용한 해석입니다.
9. 판결의 의의
이 결정은 주주의 회계장부 열람·등사청구권이 강력한 정보취득권이지만 무제한적인 권리는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형식적으로 주주의 지위를 갖추었더라도 장부열람의 실질적인 목적이 다음과 같다면 회사는 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경쟁상 민감한 정보의 취득
경영권 인수를 위한 회사 압박
회사 업무의 방해
주주 공동의 이익을 해치는 사적 이익 추구
회사에 불리한 시기를 이용한 협상력 확보
결국 부당한 목적의 판단에서는 청구서에 기재된 표면적 이유보다 주식 취득 경위, 당사자의 경쟁관계, 열람 전후의 행동 및 정보의 예상 이용방식 등 객관적인 사정을 통해 확인되는 실제 목적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