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회계장부 열람·등사청구에서 요구되는 청구이유의 구체성

핵심 결론 주주는 청구 경위와 목적을 회사가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적으면 된다. 청구이유에 관한 ‘합리적 의심’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까지 제출할 필요는 없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9다270163, 2017다270916, 2003마1575
대법원 2022. 5. 13. 선고 2019다270163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피고 회사 발행주식의 약 17%를 보유한 주주였습니다. 원고는 회사의 부적절한 자금집행 등 경영실태와 경영진의 법령 또는 정관 위반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할 목적으로 회계장부와 관련 서류의 열람·등사를 청구했습니다.

피고 회사가 이를 거부하자 원고는 회계장부 및 서류의 열람·등사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심은 원고가 주장하는 부정행위나 경영진의 법령·정관 위반행위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는다고 보아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주주에게 법률상 요구되지 않는 과도한 증명책임을 부과했다고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2. 상법상 ‘이유를 붙인 서면’의 의미


상법 제466조 제1항은 일정 지분 이상의 주주가 이유를 붙인 서면으로 회사에 회계장부와 서류의 열람·등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청구이유를 서면에 기재하도록 한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회계장부 열람은 회사의 회계·경영상 중요한 사항이므로 신중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회사가 열람·등사에 응할 의무가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셋째, 청구이유와 관련하여 어느 범위의 회계장부와 서류를 제공해야 하는지 확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청구서에는 열람·등사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와 행사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회사 경영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정도의 추상적인 문구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3. 청구이유에 관한 증명까지 필요한가


대법원은 청구이유의 기재와 그 이유가 사실이라는 증명을 명확하게 구별했습니다.

주주는 회사가 열람·등사의무의 존부와 대상 서류의 범위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청구 경위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면 충분합니다. 그 기재 내용이 사실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사정까지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주주가 청구이유를 뒷받침하는 자료나 증거를 청구서에 첨부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계장부 열람·등사청구권은 회사 내부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주주에게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고 경영진의 위법행위 여부를 확인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장부를 보기 전부터 주주에게 경영진의 부정행위를 의심할 만한 증거를 요구하면, 정보가 없기 때문에 장부를 보려는 주주에게 이미 상당한 증거를 확보하라고 요구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원심이 적용한 ‘합리적 의심’ 요건은 상법이 정하지 않은 요건을 추가하여 주주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4. 모든 회계장부 열람청구가 허용되는 것은 아님


대법원이 청구이유에 대한 입증 부담을 완화했다고 하여 주주의 청구가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청구이유의 기재 자체로 그 내용이 허위임이 명백하거나 목적이 부당하다는 점이 명확한 경우에는 적법하게 이유를 붙인 청구라고 볼 수 없습니다.

또한 특정한 경영행위나 거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 문제 될 만한 자료를 막연히 찾아내려는 모색적 자료수집은 허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회계장부 열람권 자체가 정보가 부족한 주주에게 정보획득과 자료수집의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이므로, 모색적 자료수집에 해당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5. 청구이유와 대상 장부 사이의 관련성


주주가 모든 회계장부를 포괄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청구대상 장부와 서류는 청구서에 기재한 목적 및 조사대상 행위와 객관적인 관련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임원에 대한 자금 대여의 적법성을 확인하려는 경우에는 해당 대여계약, 이사회 의사록, 계정별 원장, 자금이체 내역 및 관련 회계전표 등이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청구이유와 무관한 기간이나 거래에 관한 모든 장부를 광범위하게 요구하면 청구범위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구이유는 구체적으로 기재하되, 열람대상 자료 역시 그 이유와 연결하여 특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청구 거부사유의 증명책임


상법 제466조 제2항은 회사가 주주의 청구가 부당함을 증명하면 열람·등사를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증명책임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주는 법정 지분요건을 갖추고, 청구 경위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기재한 서면으로 청구하면 됩니다. 주주가 청구이유의 기초가 되는 경영진의 위법행위까지 미리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면 회사가 청구를 거부하려면 경쟁회사에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 회사의 영업을 방해하려는 목적, 개인적 이익을 위한 악의적 청구 등 청구가 부당하다는 사정을 증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경영진의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거나 “주주의 의혹에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는 원칙적으로 거부할 수 없습니다.

7. 기존 판례와의 관계


대법원 2018. 2. 28. 선고 2017다270916 판결은 회계장부 열람·등사청구의 대상이 되는 서류와 청구이유 사이에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대법원 2004. 12. 24.자 2003마1575 결정은 주주가 회사의 공동이익을 해치거나 경쟁회사에 정보를 제공하는 등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 회사가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판단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기존 법리를 변경한 것이 아닙니다. 그와 별도로 주주가 청구이유 단계에서 어느 정도까지 사실과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한 판결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주는 청구 경위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청구이유와 대상 장부 사이에는 객관적인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주주는 청구이유가 사실이라고 의심할 만한 증거까지 제출할 필요가 없다.
회사가 청구를 거부하려면 부당한 목적 등 거부사유를 증명해야 한다.

8. 판결의 실무적 의미


이 판결은 회계장부를 열람하기 전부터 주주에게 경영진의 부정행위에 관한 증거를 요구하던 일부 하급심의 엄격한 태도를 배척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회계장부 열람·등사청구는 이미 확인된 위법행위의 증거를 재확인하는 제도가 아니라, 정보가 부족한 주주가 경영실태와 위법행위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따라서 주주는 조사 필요성과 대상 거래를 구체적으로 밝히면 되고, 의혹이 사실이라는 점까지 선행하여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청구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정하거나 제3자 제공, 경쟁사업 이용 또는 경영권 분쟁에서의 압박 등 부당한 목적이 확인되면 청구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결국 실무상 핵심은 청구이유의 구체성, 대상 서류와의 관련성, 그리고 회사가 주장하는 부당한 목적의 증명 여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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