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개요(대법원 2025. 9. 4. 선고 2024도7386 판결)
피고인은 아파트의 종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었고, 피해자는 새로 선임된 후임 회장이었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임기가 시작되었음에도 자신이 보관하던 입주자대표회의 은행거래용 인감도장을 인도하지 않았고, 사업자등록증 원본의 반환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검사는 피고인이 인감도장과 사업자등록증 원본의 인계를 거부함으로써 후임 회장의 입주자대표회의 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하였다고 보아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과 원심은 인감도장 등이 후임 회장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필요한 물건이라는 이유로 피고인의 인계 거부를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다.
2. 핵심적인 법적 쟁점
이 사건의 핵심은 종전 회장이 후임 회장에게 업무에 필요한 인감도장과 사업자등록증 원본을 인계하지 않은 소극적인 행위가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에 해당하는지에 있다.
업무방해죄는 원칙적으로 위계 또는 위력이라는 적극적인 수단으로 타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이다. 일정한 경우에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부작위로도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지만, 단순한 업무인계 거부만으로 곧바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3. 부작위에 의한 업무방해죄의 성립요건
대법원은 업무방해죄와 같이 작위를 내용으로 하는 범죄를 부작위로 범하는 부진정 부작위범이 성립하려면, 그 부작위를 실행행위인 작위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업무인계 거부와 같은 소극적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려면 다음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그 인계 거부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둘째, 피해자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위력의 존재 여부는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
업무인계를 거부한 동기와 목적
인계 거부의 구체적인 방법과 지속기간
인계 대상 물건이나 자료의 업무상 중요성
종전 회장과 후임 회장의 지위 및 관계
후임 회장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의 존재 여부
인계 거부로 업무수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해졌는지
단순한 인계 거부를 넘어 적극적인 방해행위가 있었는지
4. 업무인계 의무 위반과 업무방해죄의 구별
종전 회장이 후임 회장에게 인감도장과 관련 서류를 인계할 직무상 또는 법률상 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무 위반만으로 업무방해죄가 당연히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두 가지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첫째, 종전 회장에게 업무자료나 물건을 인계할 의무가 있었는지의 문제이다.
둘째,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행위가 형사상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는지의 문제이다.
업무인계 의무 위반은 민사상 반환청구, 손해배상책임 또는 공동주택 내부의 행정·징계상 책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려면 업무인계 거부가 후임 회장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저지한 행위와 동일하게 평가될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이 별도로 인정되어야 한다.
5. 대법원이 업무방해죄의 성립을 부정한 이유
가. 단순한 인계 거부에 머문 점
피고인은 후임 회장의 지위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보관하던 인감도장 등의 인도를 거부했을 뿐이다.
피고인이 인감도장을 사용하여 계속 회장 행세를 하거나, 금융기관 또는 행정기관에 허위 신고를 하거나, 후임 회장의 권한 행사를 적극적으로 저지했다는 사정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피고인의 행위는 적극적인 업무방해라기보다 소극적인 인계 거부에 머물렀다.
나. 물리력이나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은 점
사업자등록증 원본은 피고인이 관리소장의 승낙을 받아 교부받은 것이었다. 이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관리소장이나 후임 회장을 상대로 물리력 또는 강제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피고인의 행위가 후임 회장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다. 후임 회장에게 대체수단이 있었던 점
후임 회장은 기존 인감도장과 사업자등록증 원본이 없어도 다음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였다.
입주자대표회의 개최와 의결
의결사항의 입주민 공고
입주자대표회의 구성·변경 신고
변경된 대표자 명의의 사업자등록증 발급
금융기관에 대한 대표자 변경 신고
입주자대표회의 명의의 예금 청구 및 세금 납부
후임 회장은 인감도장 등의 반환을 요구한 때부터 약 10일 만에 새로운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고 금융기관의 대표자 변경절차도 완료하였다.
따라서 기존 인감도장과 사업자등록증 원본은 후임 회장의 업무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유일한 수단이 아니었다.
라. 실제 업무수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지 않았던 점
후임 회장은 임기 개시 이후 입주자대표회의를 개최하고 각종 의결사항을 심의·의결하는 등 회장 업무를 수행하였다.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행정기관과 금융기관에서 필요한 대표자 변경절차도 모두 마쳤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피고인의 업무인계 거부로 후임 회장의 업무수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6. 판결의 핵심 취지
대법원은 종전 회장이 후임 회장에게 인감도장이나 사업자등록증 등 업무 관련 물건을 인계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업무방해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였다.
업무인계 거부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
인계 대상이 후임자의 업무수행에 필수불가결할 것
후임자에게 다른 현실적인 업무수행 수단이 없을 것
인계 거부로 업무수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해질 것
인계 거부가 후임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에 이를 것
적극적인 업무방해 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질 것
이 사건에서는 후임 회장이 대체절차를 이용하여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고, 피고인도 단순한 인계 거부를 넘어 후임 회장의 권한 행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하지 않았다. 따라서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7.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업무인계 의무 위반과 형사상 업무방해죄를 구별하는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업무인계를 거부한 행위가 부당하거나 민사상·행정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인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인계 거부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려면 인계 대상의 업무상 중요성, 대체수단의 존재, 실제 업무수행에 미친 영향, 인계 거부의 방법과 목적 등을 종합하여 적극적인 업무방해 행위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핵심 법리
종전 담당자가 후임자에게 인감도장이나 업무 관련 서류를 인계하지 않았더라도, 후임자가 대체수단을 통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고 그 업무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해지지 않았다면, 단순한 업무인계 거부를 업무방해죄의 위력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후임 회장에 대한 업무인계 거부의 업무방해 해당 여부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