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벌은 과다하더라도 감액할 수 있는가
— 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018다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1. 판결의 핵심
이 판결은 위약금 약정이 실질적으로 ‘위약벌’에 해당하는 경우, 그 금액이 과다하다는 이유만으로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하여 감액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으로 재확인한 판결이다.
다만 위약벌이 지나치게 과중하여 공서양속에 반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와 일부 무효의 법리에 따라 그 전부 또는 일부가 무효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위약벌에 대한 법원의 통제는 ‘재량적 감액’이 아니라 ‘효력 통제’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 기본적인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원고가 사업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피고가 그곳에 골프연습시설을 설치하여 10년 동안 운영하면서 수익을 절반씩 분배하는 공동사업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에는 다음과 같은 두 조항이 별도로 존재하였다.
제10조: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된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손해액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한다.
제11조: 손해배상금과 별도로, 의무를 불이행한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10억 원을 지급한다.
공사 진행 중 원고가 운영주체와 운영기간 등 계약내용의 변경을 요구하였고, 피고가 이를 거절하자 원고는 인터넷과 유선통신 사용을 제한하는 등 공사를 방해하였다. 피고는 원고의 귀책사유를 들어 계약을 해지하고, 별도로 약정된 10억 원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원심은 계약 해지가 적법하고, 제11조의 10억 원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아니라 위약벌에 해당하므로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감액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판단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3. 첫 번째 쟁점: 위약금 약정의 법적 성격
가. 위약금은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된다
민법 제398조 제4항은 “위약금의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계약서에 단순히 ‘위약금’이라고만 기재되어 있다면 일단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는 법률상 추정에 불과하므로 계약의 내용과 체결 경위 등에 따라 위약벌로 인정될 수 있다.
나. 명칭이 아니라 약정의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위약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는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계약서 등 처분문서의 문언
계약의 체결 경위와 교섭 과정
위약금 약정을 두게 된 목적
위약금으로 이행을 확보하려는 의무의 성격
위약금 이외에 실제 손해배상을 별도로 청구할 수 있는지
위약금이 예상 손해를 전보하기 위한 것인지, 의무위반 자체를 제재하기 위한 것인지
따라서 계약서에서 ‘위약벌’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하여 당연히 위약벌이 되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위약금’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더라도 실질이 제재적 성격이라면 위약벌이 될 수 있다.
다. 손해배상 조항과 별도의 위약금 조항이 있으면 위약벌로 볼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은 하나의 계약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를 위약벌 인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실제 손해의 배상을 전제로 하는 손해배상 조항이 따로 있고
그와 별도로 일정액의 위약금을 지급하도록 정하며
위약금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하면 사실상 이중배상이 되는 경우
이 사건 계약에서는 제10조가 실제 손해의 배상을 규정하고, 제11조가 “손해배상금과는 별도로” 10억 원을 지급하도록 명시하였다. 따라서 제11조는 손해를 전보하기 위한 약정이 아니라 계약이행을 강제하고 의무위반을 제재하기 위한 위약벌이라고 판단되었다.
4. 두 번째 쟁점: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의 차이
가. 손해배상액의 예정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지급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하는 약정이다.
그 주된 기능은 다음과 같다.
손해 발생 및 손해액에 대한 증명의 곤란을 줄이는 것
분쟁을 신속하고 간명하게 해결하는 것
채무자에게 심리적 경고를 주어 계약이행을 확보하는 것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실제 손해배상청구를 대체한다. 따라서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채권자는 예정된 금액과 별도로 실제 손해를 중복하여 청구할 수 없다.
나. 위약벌
위약벌은 손해의 전보가 아니라 채무이행을 확보하고 의무위반을 제재하기 위한 약정이다.
위약벌은 손해배상과 별개의 제재이므로 채권자는 원칙적으로 다음을 함께 청구할 수 있다.
약정된 위약벌
채무불이행으로 실제 발생한 손해의 배상
이와 같이 양자는 모두 계약이행을 확보하는 기능을 갖지만,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손해배상의 간이화에 주된 목적이 있고, 위약벌은 의무위반에 대한 독립적인 제재에 주된 목적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5. 세 번째 쟁점: 위약벌에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할 수 있는가
가. 다수의견: 위약벌은 감액할 수 없다
민법 제398조 제2항은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이 규정을 위약벌에 유추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법 제398조는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그 밖의 위약금, 즉 위약벌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대해서만 감액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위약벌의 감액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법적 결단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위약벌은 손해배상과 관계없이 의무위반에 대한 제재로서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약정한 것이다. 사적 자치와 계약 구속력의 원칙에 따라 그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셋째, 위약벌의 감액을 쉽게 인정하면 계약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위약벌의 본질적 기능이 약화된다.
넷째, 위약벌에 대한 별도의 감액규정이 없다고 하여 법률의 흠결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과도한 위약벌은 민법 제103조와 일부 무효의 법리에 따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위약벌에 대한 통제 방법: 감액이 아니라 전부 또는 일부 무효
위약벌에는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른 재량적 감액이 허용되지 않지만, 그 효력이 무제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위약벌이 의무이행을 통해 채권자가 얻는 이익에 비하여 과도하게 무거운 경우에는 공서양속에 반하여 그 전부 또는 일부가 무효가 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위약벌의 일부 무효를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단순히 다음과 같은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위약벌의 절대적인 금액이 크다는 사정
실제 발생한 손해보다 위약벌이 많다는 사정
계약 체결 후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계약이 해지되었다는 사정
채무자에게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사정
위약벌의 전부 또는 일부 무효가 인정되려면 위약벌의 금액, 계약 목적, 당사자의 지위, 계약 체결 경위, 이행확보의 필요성, 위반행위의 내용과 정도, 채권자가 얻을 이익, 예상 손해 등을 종합하여 그 제재가 현저히 과중하고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대한 ‘부당히 과다함’과 위약벌에 대한 ‘공서양속 위반’은 서로 다른 기준이다. 후자가 훨씬 엄격하다.
7. 반대의견
6인의 대법관은 위약벌에도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하여 감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그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은 모두 채무이행을 확보하는 기능을 가진다. 실제 기능이 유사한데도 계약의 형식이나 해석에 따라 감액 가능 여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둘째, 위약벌에 대해 민법 제103조를 적용하여 일부 무효로 처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감액과 유사한 결과를 얻기 위한 우회적인 방법이다.
셋째, 민법 제103조의 공서양속 위반 요건은 민법 제398조 제2항의 ‘부당히 과다한 경우’보다 훨씬 엄격하다. 그 결과 과도한 위약벌에 대해 적절한 조정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넷째, 금전으로 정한 하나의 위약벌 약정 가운데 일부 금액만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보아 일부 무효로 처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자연스럽지 않다.
반대의견은 위약벌의 약정 자체는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면서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적정액으로 감액하는 것이 공평의 관념과 분쟁해결의 효율성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8. 판결의 실무적 의미
가. 계약서의 문구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졌다
실제 손해배상과 별도로 위약벌을 인정받으려면 계약서에 다음 사항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해당 금액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아니라 위약벌이라는 점
위약벌이 계약이행의 확보와 의무위반의 제재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
위약벌과 별도로 실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
위약벌이 적용되는 의무위반의 유형
위약벌과 계약 해제·해지권을 중복 행사할 수 있는지
다만 ‘위약벌’이라는 명칭만 붙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별도의 손해배상 조항, 계약의 목적, 이행확보의 필요성 등 계약 전체의 구조가 위약벌의 성격을 뒷받침해야 한다.
나. 위약벌 지급의무자가 취할 수 있는 방어방법
위약벌 청구를 받은 당사자는 단순히 금액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감액을 주장하기보다 다음 순서로 주장하는 것이 적절하다.
첫째, 해당 약정은 실질적으로 위약벌이 아니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므로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감액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위약벌에 해당하더라도 계약해석상 해당 의무위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셋째, 위약벌의 발생요건 또는 귀책사유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넷째, 위약벌이 채권자가 얻는 이익에 비해 현저히 과중하여 민법 제103조에 반하므로 전부 또는 일부 무효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단순한 ‘감액 주장’보다는 위약금의 법적 성격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재구성하거나, 공서양속 위반에 관한 구체적인 사정을 충분히 주장·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 위약벌과 손해배상의 중복청구가 가능하다
위약금이 진정한 위약벌로 인정되면 채권자는 위약벌과 별도로 실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사건처럼 계약서에 실제 손해배상 조항과 별도의 위약벌 조항이 병존하는 경우에는 채무불이행 당사자가 부담할 전체 책임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손해를 이중으로 전보하는 결과가 아니라, 손해배상과 계약위반에 대한 제재가 병존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9. 종합 평가
이 판결은 위약벌의 독자적 법적 성격과 계약당사자의 사적 자치를 강조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위약벌이 과다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의 예정처럼 재량적으로 감액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공서양속 위반에 따른 전부 또는 일부 무효만 가능하다고 정리하였다.
핵심적인 법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실제 손해배상과 별도로 계약위반에 대한 일정한 금전제재를 정하였다면 위약벌로 볼 수 있고, 위약벌은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감액할 수 없다. 다만 채권자가 계약이행으로 얻을 이익에 비하여 제재가 현저히 과중한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따라 전부 또는 일부가 무효가 될 수 있다.
다만 13명의 대법관 중 6명이 감액을 허용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현행 판례는 위약벌의 감액을 부정하지만, 위약벌과 손해배상액의 예정 사이의 경계가 반드시 명확한 것은 아니고, 지나치게 과중한 위약벌을 어떠한 방식으로 통제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도 여전히 남아 있다.
위약벌은 과다하더라도 감액할 수 있는가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