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5두32673 판결
1. 문제의 소재
근로자가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서 정한 정년에 도달하면 근로관계는 원칙적으로 당연히 종료됩니다.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퇴직자를 기간제·촉탁직 근로자로 다시 채용할지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합니다.
그러나 회사가 장기간 정년퇴직자를 사실상 예외 없이 촉탁직으로 재고용해 왔다면, 개별 근로자에게도 정년 후 재고용될 것이라는 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대권이 형성된 경우 사용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근로자만 재고용하지 않는다면, 그 재고용 거절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25두32673 판결은 정년 자체의 효력을 부정하거나 일반적인 정년 연장청구권을 인정한 판결이 아닙니다. 회사의 규정과 장기간 형성된 재고용 관행에 따라 정년 후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될 기대권이 성립할 수 있고, 사용자가 이를 합리적인 이유 없이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한 판결입니다.
2. 사실관계
원고는 시내버스운송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이고, 참가인들은 원고 회사에서 버스기사로 근무하던 근로자들이었습니다.
참가인들은 2022년 2월 각각 정년에 도달하였습니다. 참가인들이 소속된 노동조합은 정년 도달 전에 회사에 참가인들의 정년 연장을 요청하면서, 정년 연장이 어렵다면 계약직 근로자로 계속 근무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회사는 이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고, 참가인들이 정년에 도달하자 근로관계를 종료하였습니다.
참가인들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모두 참가인들의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을 인정하고, 회사의 재고용 거절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회사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참가인들에게 정년 도달 직후 회사와 다시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될 것이라는 기대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원심은 설령 참가인들에게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회사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재고용을 거절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참가인들에 대한 재고용 거절을 부당해고로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하였습니다.
4. 대법원의 기본 법리
대법원은 근로계약,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서 정한 정년이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한,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당연퇴직한다고 보았습니다.
사용자가 정년 연장 등의 방법으로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할지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므로, 근로자에게 일반적인 정년 연장청구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정년퇴직자를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면, 그 규정에 따라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명시적인 규정이 없더라도 재고용 제도를 시행하게 된 경위와 기간, 해당 직종에서 정년퇴직자 중 실제 재고용된 사람의 비율, 재고용이 거절된 사례와 그 사유 등을 종합했을 때 재고용 관행이 확립되었다고 평가된다면 재고용 기대권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근로자가 정년에 도달하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될 수 있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는지가 핵심입니다.
이러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에게 정년 후 재고용될 기대권이 인정됩니다. 사용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재고용을 거절하면 그 거절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에게 효력이 없습니다.
5. 이 사건에서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한 이유
대법원은 원고 회사의 재고용 관행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2021년과 2022년에 정년퇴직한 후 촉탁직 재고용을 신청한 버스기사 중 참가인들과 다른 근로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근로자는 예외 없이 재고용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회사가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 신청을 거절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재고용이 거절된 다른 근로자가 별도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을 때 회사는 그 근로자에게도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가 그 근로자에 대한 재고용 거절을 부당해고로 인정하자 회사는 노동위원회 판정에 따라 해당 근로자를 촉탁직으로 채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대법원은 회사와 소속 버스기사들 사이에 정년퇴직자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될 수 있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참가인들에게도 정년 후 촉탁직으로 재고용될 것이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6. 재고용 거절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는지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사용자는 근로자가 재고용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재고용하기 어려운 합리적인 사유가 있으면 재고용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업무수행 능력의 현저한 부족, 중대한 징계사유, 건강상 운전업무 수행의 어려움, 객관적인 인력 감축 또는 사업폐지 등은 사안에 따라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회사는 노동조합의 재고용 요청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참가인들이 정년에 도달했다는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하였습니다.
회사가 참가인들의 촉탁직 재고용 기준 충족 여부를 실질적으로 심사한 사정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다른 정년퇴직 버스기사들의 재고용 신청은 사실상 예외 없이 받아들이면서 참가인들만 거절해야 할 특별한 사정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회사의 재고용 거절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7. 재고용 기대권과 정년 연장청구권의 구별
이 판결은 근로자가 정년에 도달한 후에도 종전의 정규직 근로관계가 그대로 연장된다는 취지가 아닙니다.
정년 연장청구권은 기존 근로계약을 정년 이후에도 동일한 조건으로 계속 유지해 달라는 권리입니다. 반면 재고용 기대권은 정년에 따라 기존 근로관계가 종료된 후 기간제 또는 촉탁직 근로계약을 새로 체결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고용이 이루어질 경우 임금, 계약기간, 담당 업무 등은 회사의 촉탁직 제도와 재고용 기준에 따라 종전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된 근로자를 합리적인 이유 없이 배제하면 그 거절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인사재량이 제한됩니다.
8. 기업의 인사·노무 관리에 미치는 영향
회사가 정년퇴직자를 장기간 반복적으로 재고용하면 명시적인 의무규정이 없더라도 그 관행 자체가 근로자의 재고용 기대권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재고용 여부를 재량적으로 판단하려면 취업규칙이나 촉탁직 운영규정에 재고용 요건과 심사절차를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상태, 업무수행 능력, 근무평가, 징계 전력, 자격 보유 여부 및 인력수요 등 판단기준을 객관적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재고용 신청자에 대해서는 동일한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거절하는 경우에는 그 사유를 구체적인 자료로 남겨야 합니다. 다른 근로자는 대부분 재고용하면서 특정 근로자만 별도의 심사 없이 배제하면 합리적인 이유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특히 노동조합이나 근로자가 정년 전에 재고용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경우 회사가 아무런 답변이나 심사 없이 근로관계를 종료하면 재고용 기대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될 위험이 큽니다.
9.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정년 후 재고용 기대권의 성립 여부를 취업규칙의 문언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업장에서 실제로 형성된 재고용 관행과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회사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재고용 여부를 심사해야 하며, 특별한 사유 없이 일부 근로자만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년퇴직자를 기간제·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장기간의 재고용 관행과 높은 재고용 비율 등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재고용될 수 있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면 근로자에게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된다. 사용자가 객관적인 심사 없이 특정 근로자만 재고용에서 배제하면 그 거절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을 수 있다.
정년 후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될 기대권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