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행정상 공표의 위법성과 주주의 주가하락 손해

2026.07.28
1. 판결의 쟁점

대법원 2025. 5. 15. 선고 2020다296604 판결은 한국소비자원이 특정 상장회사의 백수오 원료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공표하면서, 해당 회사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가짜 백수오를 사용한 것처럼 표현한 사안입니다.

소비자원의 공표 이후 회사 주가가 급락하자 주식을 저가에 매도한 주주들이 소비자원과 담당 직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행정기관이 공익을 목적으로 조사 결과를 공표한 경우 그 공표행위의 위법성을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입니다.

둘째, 공표 대상인 회사가 아니라 그 회사의 주주가 주가하락으로 입은 손해에 대하여 행정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입니다.

2. 행정상 공표의 위법성 판단 기준
가. 일반적인 위법성 조각요건

행정기관이 일정한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보도자료 등을 통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실명을 공개하여 명예 또는 신용을 훼손한 경우에도 일반적인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 법리가 적용됩니다.

따라서 공표 내용이 진실한 사실이거나, 진실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공표 주체가 이를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표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원칙적으로 위법성이 조각됩니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공표에 대해서는 일반 사인이나 언론기관의 경우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이 적용됩니다.

나. 행정기관에 요구되는 엄격한 상당성 기준

행정기관은 일반 사인보다 광범위한 사실조사 권한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은 행정기관이 공식적으로 공표한 내용을 진실한 것으로 강하게 신뢰합니다. 행정기관의 공표는 대상 기업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래관계 단절, 매출 감소, 주가 폭락 등 사실상의 제재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대법원은 행정기관이 공표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수준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공표 사실이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이고도 타당한 확증과 근거

단순한 의심이나 개연성, 일부 검사 결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행정기관은 공표 전에 사실관계를 충분히 조사하고, 공표 대상자에게 불리한 사실뿐만 아니라 반대 자료와 다른 원인의 가능성도 검토해야 합니다.

다. 확인된 사실과 추측·평가의 구별

순수한 의견이나 평가만을 표명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판단된다”, “추정된다”는 형식으로 표현했더라도, 그 표현 속에 의견의 기초가 되는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묵시적으로 포함되어 있고 그것이 대상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킨다면 사실 적시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소비자원은 이엽우피소의 검출 사실만 확인했을 뿐 다음 사실까지 조사·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엽우피소가 혼입된 양
혼입 경위
회사가 혼입 사실을 인식했는지
회사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혼입했는지
해당 제품이 실제로 인체에 위해한지

그럼에도 소비자원은 “백수오 제품 상당수가 가짜”, “가짜 백수오를 백수오로 둔갑시켜 유통·제조·판매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표현이 단순한 평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소비자를 기망했다는 기초 사실까지 암시한다고 보았습니다.

라. 공익적 목적만으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은 아님

소비자 안전 및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공표에는 명백한 공익성이 있습니다. 소비자기본법 제35조 제3항도 소비자 권익증진과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필요한 사실에 관하여 한국소비자원에 원칙적인 공표 의무를 부과합니다.

그러나 공표의 목적이 공익적이라는 것과 공표의 내용 및 방법이 상당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검출 사실과 주의 필요성을 공표할 수 있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고의·동기·혼입 경위까지 단정적으로 발표하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공익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공표인지는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공표 내용의 구체성 및 정확성
공표의 필요성과 긴급성
실명 공개의 필요성
공표 대상과 범위
표현의 강도와 방법
공표로 달성되는 소비자 보호의 이익
대상 기업이 입게 되는 명예·신용 침해의 정도
마. 이 사건 공표에 대한 판단

대법원은 소비자원이 혼입량과 혼입 경위를 확인하지 않았고, 회사가 원가 절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엽우피소를 사용했다고 볼 객관적인 자료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혼입 가능성을 배제한 채 “판단된다”는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가짜”, “둔갑시켜” 등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하여 마치 조사로 확인된 사실처럼 공표했습니다.

더욱이 회사가 신청한 공표금지 가처분의 심문기일이 지정되어 있었음에도, 소비자원은 심문기일 전에 공표를 강행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이 사건 공표의 중요한 부분에 관하여 의심의 여지없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확증과 근거가 있었다거나, 공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상당한 범위 내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공표행위의 위법성을 부정한 원심판결에는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보았습니다.

3. 증명책임의 분배

대법원은 행정상 공표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에서도 명예훼손에 관한 일반적인 증명책임 법리를 적용했습니다.

원고가 공표 내용이 허위라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그 허위성에 대한 증명책임을 원고가 부담합니다.

반면 피고가 공표 내용이 진실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고, 공표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항변하는 경우에는 그 위법성 조각사유를 피고가 증명해야 합니다.

특히 행정기관은 일반 사인보다 엄격한 조사·확인의무를 부담하므로, 공표 당시 확보한 자료와 검증 절차를 통하여 객관적이고 타당한 확증이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4. 위법한 공표와 주주의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가. 위법성과 손해배상책임은 별개의 문제

행정상 공표가 위법하다는 사실만으로 공표로 인한 모든 경제적 손실이 배상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위법한 공표와 피해자가 주장하는 구체적인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상당인과관계는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그러한 손해가 일반적으로 발생할 개연성
공표 관련 법령과 주의의무가 보호하려는 법익
공표행위의 내용과 방법
침해된 이익의 성질
손해의 직접성
다른 원인의 개입 가능성
피해자의 독립적인 투자·거래 결정
나. 회사의 손해와 주주의 손해의 구별

위법한 공표의 직접적인 대상이 회사인 경우, 우선 문제 되는 것은 회사 자체의 명예·신용 및 영업상 손해입니다.

회사는 공표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신용과 브랜드 가치의 훼손
제품 판매 감소
거래처 이탈과 계약 해지
제품 회수·폐기비용
기업가치 하락
사태 수습 및 신용 회복 비용

이에 비하여 주주의 주가하락 손해는 회사의 신용·영업가치가 하락하고 그것이 주식의 시장가격에 반영되어 발생하는 손해라는 점에서 간접적 성격을 가집니다.

원심은 이 사건 공표의 직접적인 상대방과 직접 피해자는 회사이고, 주주들이 입은 주가하락 손해는 회사의 자산가치 상실에 따른 반사적 손실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의 이유 중 다소 부적절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지만, 이 사건 공표와 주주들이 주장하는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한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이 판결을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 대법원이 주주의 주가하락 손해를 언제나 반사적 손실로 보아 배상 가능성을 일률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

둘째, 그러나 공표 대상이 회사인 경우, 주주의 주가하락 손해는 회사의 명예·신용 및 기업가치 훼손을 매개로 발생하는 간접적 손해이므로 상당인과관계가 쉽게 인정되지 않습니다.

셋째, 공표 직후 주가가 급락했다는 시간적 선후관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가는 공표 이외에도 후속 검사 결과, 수사 및 행정조치, 제품 판매 중단, 시장의 투매, 회사의 대응, 전반적인 증시 상황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넷째, 주주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회사의 손해와 구별되는 주주 고유의 직접손해와 구체적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합니다.

5. 주주 손해가 인정되기 위한 추가적 증명

주주가 위법한 행정상 공표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적어도 다음 사항이 구체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공표가 해당 회사를 직접 대상으로 한 것에 그치지 않고 주식거래의 판단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포함했다는 점
공표가 주가하락의 실질적이고 지배적인 원인이었다는 점
후속 검사·수사·행정처분 및 일반적인 시장 변동 등 다른 원인의 영향이 분리될 수 있다는 점
주주의 매도 결정이 위법한 공표에 직접 기인했다는 점
주주가 입은 손해가 회사의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손해와 구별되는 고유한 손해라는 점
공표가 없었을 경우의 정상 주가와 실제 매도가격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산정할 수 있다는 점
주주의 손해가 공표 관련 법령과 주의의무가 보호하려는 손해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공표행위가 위법하더라도 주주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6.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행정상 공표에 관한 두 가지 법리를 하나의 사건에서 함께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행정기관의 공표행위에 대해서는 일반 사인이나 언론의 공표보다 엄격한 위법성 판단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 행정기관의 조사능력과 공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고려하여, 공표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확증을 요구했습니다.

둘째, 행정상 공표가 위법하더라도 공표로 인한 모든 파생적 손해가 배상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공표 대상 회사의 주주가 주장하는 주가하락 손해에 대해서는 직접성 및 상당인과관계를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셋째, 행정상 공표의 위법성과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을 구별했습니다. 이 사건 공표에는 위법성이 인정될 여지가 컸지만, 주주들이 주장하는 손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결국 손해배상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7. 핵심적 평가

이 판결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대법원은 행정기관의 실명 공표가 대상자의 명예와 신용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을 고려하여, 공표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려면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확증과 근거가 필요하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동시에 위법한 공표의 직접적인 대상과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회사이고, 주주의 주가하락 손해는 회사 가치의 하락을 매개로 발생하는 간접적·반사적 손실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이 사건 공표와 주주들이 주장하는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였다. 다만 주가하락 손해가 언제나 배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일반 법리를 선언한 것은 아니며, 개별 사안에서 주주 고유의 직접손해와 구체적인 상당인과관계가 증명되는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결국 이 판결은 행정상 공표행위의 위법성은 엄격하게 판단하면서도, 그 공표로부터 파생된 주주의 투자손실에 대해서는 손해의 직접성과 상당인과관계를 별도로 엄격하게 요구한 판결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