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5. 12. 4. 선고 2021도11654 판결
1. 사건의 핵심
피고인은 상장회사의 임직원도 아니었고, 회사로부터 정식으로 대리권을 수여받거나 회사 내부의 공식 직함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회사 대표이사로부터 중국 투자자 또는 인수자를 물색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투자자를 소개하였을 뿐 아니라, 회사와 중국 측 투자자 사이의 의사연락과 투자조건 협상에 지속적으로 관여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취득한 중국 자본의 투자유치 및 경영권 인수 관련 정보를 지인들에게 전달하여 주식을 매수하게 하였다는 혐의가 문제 되었습니다.
쟁점은 이러한 피고인을 구 자본시장법 제174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상장법인의 대리인’으로 볼 수 있는지였습니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자본시장법상 ‘대리인’을 민법상 대리인과 동일하게 해석하였습니다.
즉, 본인의 이름과 계산으로 법률행위를 하고 그 법률효과를 본인에게 직접 귀속시킬 수 있는 대리권을 부여받은 사람만 이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피고인에게는 회사 명의로 법률행위를 할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으므로 상장법인의 대리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의 해석이 자본시장법상 대리인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본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자본시장법 제174조 제1항 제1호의 ‘대리인’은 반드시 민법상 대리권을 수여받아 회사 명의로 의사표시를 하고, 그 법률효과를 회사에 직접 귀속시키는 사람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행위의 형식이나 명칭을 불문하고, 상장법인의 업무에 관한 위임 또는 위탁에 따라 그 법인을 위한 의사로 해당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사람이면 자본시장법상 대리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계약 체결을 중개하거나 알선한 경우에도 단순히 거래 당사자들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하였다면 상장법인의 대리인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상장법인을 위하여 계약조건에 관한 조언을 한 경우
상대방과의 협상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경우
회사와 상대방 사이의 의사연락을 담당한 경우
회사의 투자유치나 계약 체결 업무를 사실상 수행한 경우
대리행위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활동한 경우
결국 형식적인 직함이나 명시적인 대리권의 존재가 아니라, 회사로부터 업무를 위임·위탁받아 실제로 회사 업무를 수행하였는지가 판단의 핵심입니다.
4. 이 사건에 대한 구체적 판단
피고인은 회사 내부의 공식적인 직함을 갖고 있지 않았고 투자유치에 관한 명시적 대리권도 수여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 사정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피고인은 회사의 중국시장 진출계획을 듣고 중국 측 관계자를 회사 대표이사에게 소개하였습니다. 이후에도 투자협상 관련 이메일과 메시지를 공유받고 의견교환에 참여했으며, 회사 대표이사에게 투자조건에 관한 조언을 하였습니다. 중국 측 관계자의 방한 일정도 피고인이 참석할 수 있는 날짜에 맞추어 조율되었습니다.
또한 피고인은 단순한 외부 소개자가 아니라 회사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협상 과정에서 피고인이 보유한 주식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인수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피고인이 회사로부터 투자유치 업무에 관한 묵시적인 위임을 받고, 회사를 위하여 중국 측 투자자와의 협상에 관여하였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을 단순한 투자자 소개자나 중개인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고, 자본시장법상 상장법인의 대리인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심의 무죄 부분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5.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자본시장법상 ‘대리인’이 민법상 대리인보다 넓은 개념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미공개중요정보 이용규제는 시장 참여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방지하고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이러한 입법목적에 비추어 보면, 공식적인 직함이나 대리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회사 업무를 사실상 수행하면서 내부정보에 접근한 사람을 규제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입니다.
다만 단순히 투자자를 소개하거나 거래 당사자 사이의 만남을 주선한 것만으로 곧바로 대리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개행위를 넘어 회사의 위임 또는 위탁에 따라 계약조건을 조율하거나 협상에 참여하는 등 회사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결국 이 판결은 자본시장법상 대리인 해당 여부를 형식적 대리권이 아니라 다음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회사 업무에 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위임·위탁이 있었는지
회사의 이익과 의사를 위하여 활동하였는지
소개나 연락 주선을 넘어 협상·조언·조건 조율 등 회사 업무를 사실상 수행하였는지
따라서 상장회사의 투자유치, 인수합병, 경영권 이전 등에 관여하는 고문, 자문인, 주주, 외부 협상 담당자 또는 비공식 중개인도 구체적인 업무수행 내용에 따라 자본시장법상 대리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무적 의미가 큰 판결입니다.
자본시장법상 미공개중요정보 이용행위의 주체인 ‘상장법인의 대리인’의 범위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