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식품기업 그룹의 모회사들은 거래처로부터 라면스프 원료와 포장박스 등을 공급받아 이를 라면 완제품 생산회사에 공급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룹 회장 부부는 모회사들이 공급한 물품의 일부를 이른바 페이퍼컴퍼니인 자회사들이 공급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완제품 생산회사가 지급해야 할 공급대금도 자회사 계좌로 지급받아 그중 상당액을 임의로 사용했습니다. 회장 부부는 이러한 행위로 업무상횡령죄의 유죄판결을 확정받았습니다.
세금계산서 역시 실제 거래구조와 다르게 작성되었습니다.
거래처가 실제로는 모회사에 물품을 공급했는데도 자회사를 ‘공급받는 자’로 기재하였습니다.
모회사가 실제로 완제품 생산회사에 물품을 공급했는데도 자회사를 ‘공급자’로 기재하였습니다.
모회사와 자회사 사이에는 실제 재화 공급이 없었지만 내부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세금계산서를 작성하였습니다.
과세관청은 실제 거래주체를 모회사로 보아 매입세액 공제를 부인하고, 부가가치세·법인세 및 세금계산서 관련 가산세를 부과하였습니다.
2. 쟁점
이 사건에서는 다음 두 가지가 핵심적으로 문제 되었습니다.
첫째, 실제 물품 공급은 있었지만 실제 거래주체가 아닌 자회사 명의로 발급·수취된 세금계산서를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로 보아야 하는지입니다.
둘째, 부정행위로 본세에 10년의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되는 경우 과소신고가산세·납부불성실가산세 등에도 동일한 장기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되는지입니다.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자회사들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영위한 것이 아니라 모회사들이 자회사의 명의만 빌려 해당 사업을 자기 계산과 책임으로 운영한 것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자회사 명의의 세금계산서도 실질적으로 모회사의 거래를 표시한 것이므로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원심은 이를 전제로 모회사에 대한 매입세액 공제를 인정하고 일부 세금계산서 관련 가산세 부과도 부정하였습니다.
또한 일부 과소신고가산세와 납부불성실가산세에는 5년의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4. 대법원의 판단
가. 단순한 명의대여와 제3자 명의의 위장거래는 구별해야 한다
대법원은 다음 두 유형을 구별하였습니다.
실제 사업자가 처음부터 제3자 명의로 사업자등록만 한 채 하나의 사업체를 자기 계산과 책임으로 운영한 경우에는, 세금계산서에 기재된 수량과 가격대로 실제 공급이 이루어졌다면 명의가 다르다는 사정만으로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반면 별도의 법인과 사업자등록이 이미 존재하는 상태에서 그 법인의 명의를 이용해 자기 거래를 해당 법인의 거래처럼 표시한 경우에는 실제 거래주체와 세금계산서상 명의자가 다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에 해당합니다.
즉, 실제 물품과 대금이 오갔다는 사실만으로 세금계산서상 명의의 불일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 실제 거래주체를 판단하는 기준
제3자 명의로 작성된 세금계산서임에도 실제 사업자를 세금계산서 발급·수취의 주체로 인정할 것인지는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명의자와 실제 사업자의 경력·지위 및 관계
제3자 명의의 사업자등록을 이용한 동기와 목적
명의 사용의 경위와 시기
구체적인 사업 내용과 거래 방식
수익·비용의 관리 및 자금 운영 주체
명의자의 세금계산서 발급·수취 관여 정도
명의자가 거래를 통해 얻은 경제적 이익
과세관청의 세원 포착을 곤란하게 한 정도
세금탈루의 가능성
이러한 기준은 부가가치세법상 세금계산서뿐만 아니라 법인세법·소득세법상 계산서와 매출·매입처별 합계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사업자 명의대여가 아니다
대법원은 다음 사정에 주목하였습니다.
모회사와 자회사는 서로 다른 시기에 별도로 설립되고 각각 사업자등록을 마쳤습니다. 모회사 자체의 사업자등록도 실제 사업자의 등록으로서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회사들은 자회사를 인수한 후 자회사 명의로 이미 존재하던 사업자등록을 이용하여 모회사의 매출 외형을 자회사 앞으로 이전했습니다. 그 목적도 단순한 업무 편의가 아니라 회장 부부가 자금을 횡령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모회사가 자회사 명의로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한 단순 명의대여가 아니라, 별개 법인의 명의를 이용하여 실제 거래관계와 다른 외관을 만들어 낸 경우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자회사 명의의 세금계산서는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에 해당하고, 관련 매입세액 불공제와 세금계산서 미발급·위장수취·가공발급·가공수취가산세 등이 부과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거래상대방이 해당 세금계산서가 명의 위장된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한 데 과실도 없다는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매입세액 공제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라. 가산세에도 10년의 장기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될 수 있다
대법원은 부정행위로 법인세 본세를 포탈하여 본세에 10년의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된다면, 그 본세가 유효하게 확정되어 있음을 전제로 부과되는 무신고·과소신고·납부불성실가산세에도 10년의 제척기간이 적용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부정행위로 세금계산서 관련 가산세의 부과대상이 된 경우에는 본세가 실제로 포탈되었는지 또는 납세자가 본세 포탈을 인식했는지와 관계없이 해당 가산세에 10년의 장기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5.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실질과세 원칙이 제3자 명의의 세금계산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무제한 활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실제 물품 공급과 대금 지급이 존재하더라도 세법상 다음 사항은 별도로 판단해야 합니다.
실제 공급자와 공급받는 자가 누구인지
세금계산서가 실제 거래관계를 정확하게 표시하는지
명의자가 단순한 사업자등록 명의자에 불과한지
별개 법인의 명의를 이용해 가공의 거래단계를 만든 것인지
특히 계열회사나 특수관계 법인을 거래구조에 포함한 경우에는 각 법인이 독립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거래조건을 결정하며, 비용과 위험을 부담하고, 자금을 관리하는 실질이 존재해야 합니다.
별도 법인의 명의를 이용해 매출을 이전하거나 소득의 귀속을 변경한 경우에는 매입세액 불공제에 그치지 않고 법인세 재계산, 다수의 세금계산서 관련 가산세 및 10년의 장기 부과제척기간까지 문제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무상 중요한 판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