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간접증거에 의한 유죄 인정과 항소심의 제1심 무죄판결 번복 기준 — 대법원 2026. 7. 16. 선고 2026도892 판결의 형사소송법적 의미

2026.07.28
대법원 2026도892 판결은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에도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면서도, 그 증명은 직접증거에 의한 경우에 버금갈 정도로 엄격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특히 제1심이 핵심 증인들을 직접 신문한 후 무죄를 선고하였는데도 항소심이 아무런 추가 증거조사 없이 동일한 증거를 다르게 평가하여 유죄를 선고한 것은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에 반한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1. 사건의 개요와 심급별 판단

피고인은 서울특별시경찰청 소속 경찰공무원으로서, 축구선수에 대한 압수수색검증영장 집행 정보를 친분 관계에 있던 변호사에게 두 차례 누설하였다는 공무상비밀누설죄로 기소되었다.

검사가 주장한 정보 전달 경로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 → 변호사 공소외 2 → 공소외 3 → 수사대상자인 공소외 1

그러나 피고인이 변호사에게 압수수색정보를 전달하였다는 직접증거는 없었다. 검사는 피고인과 관계인들 사이의 친분 관계, 인터넷 사용기록, 통화내역 및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범위 등 간접증거를 제시하였다.

제1심은 공소외 2와 공소외 3에 대한 증인신문, 피고인신문 등 상당한 증거조사를 거친 뒤, 간접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정보 누설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반면 항소심은 별도의 증거조사를 하지 않고 제1회 공판기일에서 변론을 종결한 다음, 제1심과 동일한 증거를 다르게 평가하여 제1심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항소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다.

2.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가
가. 간접증거에 의한 유죄 인정 자체는 가능하다

형사재판에서 반드시 자백, 목격자 진술, 녹음파일과 같은 직접증거가 있어야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증거가 없더라도 여러 간접사실을 종합하여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간접증거에 의한 사실인정도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이 요구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도달해야 한다. 간접증거라고 하여 증명 기준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간접증거는 그 자체로 주요사실을 직접 증명하지 않고 추론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추론 과정과 대안적 가능성에 대한 더욱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

나. 각각의 간접사실부터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한다

간접증거에 의한 유죄 인정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개별 간접증거 → 간접사실 인정 → 간접사실들의 결합 → 공소사실 추론

따라서 최종적인 공소사실뿐만 아니라 그 전제가 되는 개별 간접사실도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대법원은 간접사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요건을 제시하였다.

개별 간접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간접사실 상호 간에 모순이나 저촉이 없어야 한다.
간접사실로부터 주요사실을 추론하는 과정이 논리법칙과 경험법칙에 부합해야 한다.
과학적 증거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 추론이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
범행 동기, 범행수단, 범행에 이르는 과정 및 범행 전후의 태도 등 전체 사정이 피고인의 범행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필요하다

이 판결에서 가장 주목할 표현은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피고인이 범행하였다고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다.

이는 단순히 검사의 설명이 피고인의 설명보다 개연성이 높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민사재판에서의 우월한 개연성이나 증거의 우세만으로는 형사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

검사의 시나리오가 상당히 의심스럽거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과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다른 합리적 설명이 현실적으로 남아 있다면 무죄추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무죄추정을 번복하기 위한 간접증거의 증명력이 “직접증거가 존재할 경우에 버금가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3. 이 사건 간접증거가 유죄 인정에 부족했던 이유
가. 정보 전달의 직접증거가 전혀 없었다

피고인이 공소외 2에게 압수수색정보를 누설하였다는 직접증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소외 2가 다시 공소외 3에게 이를 전달하였다는 직접증거도 없었다.

오히려 정보 전달 경로의 핵심 인물인 공소외 2와 공소외 3은 제1심 법정에서 정보 누설 또는 전달 사실이 없다고 증언하였다.

따라서 검사는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정보 전달 경로 전체를 간접증거만으로 증명해야 했다. 전달 단계가 늘어날수록 각 단계가 독립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므로 추론의 불확실성도 커진다.

나. 범행 동기와 목적이 뚜렷하지 않았다

항소심은 피고인과 공소외 2, 공소외 2와 공소외 3 사이의 친분 관계에서 정보 누설의 동기를 추단하였다.

그러나 친분 관계는 정보 전달의 기회나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을 뿐, 곧바로 실제 누설의 동기와 목적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친분 관계와 정보 누설 사이에는 별도의 추론 단계가 필요하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친분 관계만으로 피고인과 공소외 2의 정보 누설·전달 동기나 목적이 뚜렷하게 밝혀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다. 인터넷 사용기록은 의사연락의 내용까지 증명하지 못했다

피고인과 공소외 2 사이에 인터넷 사용시간이 중복되는 기록이 있었지만, 이는 양자가 특정 시각에 인터넷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 기록만으로 두 사람이 실제로 연락하였다는 사실, 나아가 연락의 내용이 압수수색정보였다는 사실까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통신기록이나 디지털 기록을 통한 간접사실 인정에서는 다음 사항을 구별해야 한다.

동일 시간대에 기기를 사용하였다는 사실
상호 간 연락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특정한 내용의 의사연락이 있었다는 사실
그 의사연락이 공무상 비밀의 누설이었다는 사실

앞 단계의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하여 뒷단계의 사실이 당연히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라. 전화통화에는 합리적인 대안적 설명이 존재했다

공소외 2와 공소외 3 사이에는 전화통화 내역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2024. 1. 25. 저녁 함께 출국하기로 한 미국 여행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일치하여 진술하였다.

그 진술을 뒷받침하는 일부 자료도 제출되어 있었다. 따라서 해당 통화에서 압수수색정보가 전달되었다는 검사의 설명 외에 여행 일정에 관한 대화였다는 합리적인 대안적 가능성이 존재하였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그 대안적 가능성을 완전히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상 그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면 검사의 증명이 부족한 것이다.

4. 항소심의 구조: 사후심적 속심

대법원은 현행 형사 항소심의 성격을 “사후심적 속심”이라고 설명하였다.

항소심은 제1심의 기록만을 법률적으로 심사하는 순수한 사후심은 아니다. 새로운 증거를 조사하고 사실을 다시 인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속심적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항소심은 제1심 재판을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반복하는 절차도 아니다. 제1심의 사실인정과 증거가치 판단을 심사하는 사후심적 기능도 함께 수행한다.

따라서 항소심이 새로운 증거조사를 하지 않은 채 제1심과 동일한 증거만으로 판단하는 경우에는 제1심의 사실인정을 존중할 필요성이 커진다.

5. 항소심이 제1심의 사실인정을 번복할 수 있는 기준

항소심이 추가 증거조사 없이 제1심의 사실인정을 뒤집으려면 다음과 같은 합리적 사정이 있어야 한다.

제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하게 잘못된 경우
제1심의 사실인정에 이르는 논증이 논리법칙이나 경험법칙에 어긋나는 경우
그 밖에 제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사정이 있는 경우

이는 항소심이 제1심과 다른 심증을 가졌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항소심이 동일한 증거를 보고 “제1심보다 유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는 것만으로는 무죄판결을 번복할 수 없다. 제1심 판단 자체에 명백한 오류 또는 현저한 부당성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6. 특히 제1심 무죄판결을 유죄로 번복할 때 더욱 엄격한 이유

제1심 무죄판결을 항소심이 유죄로 변경하는 것은 피고인의 법적 지위를 본질적으로 변경한다. 더욱이 형사소송법상 검사는 유죄판결에 대하여 사실오인을 이유로 상고할 수 없으므로, 항소심에서 최초로 유죄가 선고되면 그 사실인정에 대한 통상적인 심급심사의 기회도 제한된다.

따라서 항소심이 제1심 무죄판결을 유죄로 변경하려면 다음 두 가지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첫째, 실체법적으로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증명되어야 한다.

둘째, 절차법적으로 제1심 판단을 번복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정이 존재하거나, 항소심이 직접 추가 증거조사를 실시하여 새로운 심증 형성의 기초를 확보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두 요건 모두 충족되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7.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제1심은 공소외 2와 공소외 3을 직접 증인으로 신문하고 피고인신문도 실시하였다. 제1심 법관은 증인의 진술 내용뿐 아니라 진술 태도, 질문에 대한 반응, 진술의 일관성 등을 법정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하여 항소심은 증인들을 다시 신문하지 않고 제1심 조서와 기록만을 토대로 증언의 신빙성과 간접증거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였다.

대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항소심이 제1심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핵심은 제1심이 직접 조사한 증거의 가치를 항소심이 다시 평가하면서도, 그 평가를 변경할 수 있는 절차적 기초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공판중심주의는 유죄·무죄에 관한 심증이 공개된 법정에서의 심리를 통하여 형성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는 사실을 인정하는 법관이 법정에서 직접 조사한 증거를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항소심이 증인을 직접 신문하지 않은 채 서면 기록만 보고 제1심의 신빙성 판단을 뒤집는다면 이러한 원칙이 형해화될 수 있다.

8. 항소심이 취했어야 할 절차

대법원은 항소심이 제1심 무죄판단에 의문을 가졌다면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고 보았다.

첫째, 공소외 2와 공소외 3을 다시 증인으로 신문하여 정보 전달 여부와 통화 내용 등을 직접 확인했어야 한다.

둘째, 피고인과 공소외 2의 관계, 인터넷 사용기록의 구체적인 의미 및 피고인 진술의 의문점 등에 관하여 석명권을 행사했어야 한다.

셋째, 필요한 경우 추가 증거조사를 통하여 제1심 심증을 변경할 만한 객관적 사유가 새롭게 드러나는지를 확인했어야 한다.

항소심이 이러한 절차를 거쳐 새로운 증거 또는 새로운 객관적 사정을 확보하였다면 제1심 판단을 번복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판결은 제1심 사실인정에 절대적 구속력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번복에는 그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심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9. 판결의 핵심 법리

이 판결의 법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에도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간접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어야 하고, 간접사실 상호 간에 모순이 없어야 하며, 그 전체가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피고인의 범행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합리적 대안이 배제되지 않는다면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제1심이 증인신문 등 직접적인 증거조사를 거쳐 무죄를 선고한 경우, 항소심이 추가 증거조사 없이 동일한 증거의 가치만을 달리 평가하여 유죄로 번복하려면 제1심의 증거평가가 명백히 잘못되었거나 그 논증이 논리와 경험칙에 위배되어 제1심 판단을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합리적 사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정이 없다면 항소심은 핵심 증인을 다시 신문하거나 석명권을 행사하는 등 추가 심리를 거쳐야 하며, 이를 하지 않고 제1심 무죄판결을 유죄로 변경하는 것은 공판중심주의,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및 항소심의 심리구조에 관한 법리를 위반한 것이다.

10. 이 판결의 실무적 의미

이 판결은 직접증거가 없는 공무상비밀누설, 내부정보 유출, 공모관계, 뇌물수수, 배임 및 선거범죄 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통화내역, 접속기록, 위치정보, 인간관계 및 사건 전후의 행동은 서로 결합하여 강력한 간접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적 선후관계나 연락 가능성이 확인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체적인 의사연락의 내용까지 추정할 수는 없다.

간접증거 사건에서는 검사가 제시한 하나의 서사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각 간접사실에 대하여 다른 합리적 설명이 존재하는지, 그 설명이 객관적 자료에 의하여 배제되는지를 단계별로 심사해야 한다.

또한 항소심에서 제1심의 무죄판결을 다투는 경우에는 단순히 동일한 증거를 재해석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제1심의 논증상 명백한 오류를 특정하거나, 항소심에서 추가 증거조사를 신청하여 제1심 심증을 변경할 객관적 기초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적인 소송전략이 된다.

결국 이 판결은 “간접증거도 증거”라는 원칙과 “의심만으로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원칙을 함께 확인한 판결이다. 동시에 항소심의 사실인정 권한이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에 의하여 절차적으로 통제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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