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발적으로 체결한 독점거래 조건도 배타조건부 거래가 되는지 여부

핵심 결론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않는 조건은 강제로 부과된 경우뿐 아니라 자발적 합의도 포함한다. 일련의 배타적 거래장치는 전체적으로 경쟁제한성을 심사해야 한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대법원 2025. 6. 5. 선고 2020두54074 판결
시정명령등취소청구의소 ― 일부 파기환송

사실관계

원고는 국내 유일의 전업 재보험사로서 국내 일반항공보험 재보험시장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원수보험사는 일반항공보험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원고와 특약재보험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 계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원수보험사가 재보험을 통해 분산하려는 위험 전량을 원고에게 출재하는 전량출재의무
원수보험계약 체결 시 원고가 제공하는 보험요율을 사용하는 요율구득의무
해외 재보험사의 참여 범위를 원고가 정한 재재보험 패널로 제한하는 구조
원수보험사가 해외 재보험사로부터 별도로 요율을 받거나 거래하려는 경우 이를 저지하는 행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러한 거래구조가 해외 재보험사의 국내시장 진입을 봉쇄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및 불공정거래행위라고 보아 시정명령과 약 7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습니다.

주요 쟁점

이 사건에서는 다음 사항이 문제 되었습니다.

거래상대방이 자발적으로 동의한 독점거래 조건도 배타조건부 거래가 되는지
전량출재의무와 요율구득의무가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않을 조건에 해당하는지
계약조항과 계약 외의 방어행위를 개별적으로 판단할 것인지, 전체적으로 판단할 것인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의 부당성과 경쟁제한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원심의 판단

원심은 국내 원수보험사들이 업무의 편의성과 안정적인 위험 분산 등을 위해 해당 특약재보험 구조를 선호하였고, 원고가 전량출재의무와 요율구득의무를 강제로 부과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원수보험사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한 계약조건은 공정거래법상 배타조건부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의 상당 부분을 취소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타조건부 거래의 성립을 부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습니다.

1. 배타조건은 강제로 부과된 경우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구 공정거래법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경쟁사업자를 부당하게 배제하기 위해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그 유형으로 거래상대방이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않을 조건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일방적·강제적으로 부과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거래상대방과의 합의로 설정된 경우도 포함됩니다.

거래상대방이 자발적으로 합의하였더라도 그 결과 경쟁사업자의 시장 진입이나 거래기회가 봉쇄된다면, 경쟁제한 효과를 심사해야 할 필요성은 강제로 설정된 경우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법리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뿐 아니라 불공정거래행위로서의 배타조건부 거래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2. 전량출재의무는 전형적인 배타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원수보험사가 재보험으로 분산하려는 위험 전량을 원고에게 출재하도록 하는 조건은 특약재보험계약이 존속하는 동안 다른 재보험사와 동일한 위험에 관한 거래를 어렵게 합니다.

원수보험사가 편의성이나 안정성을 이유로 이 조건을 선호하여 합의했더라도, 그 합의가 해외 재보험사의 거래기회를 봉쇄한다면 배타조건부 거래의 심사 대상이 됩니다.

3. 요율구득의무도 실질적으로 경쟁 재보험사와의 거래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원고가 제공하는 요율만을 원수보험계약에 사용하도록 하면, 원수보험사가 해외 재보험사로부터 별도의 요율을 받아 보험을 설계하거나 그 재보험사와 거래하는 것이 사실상 제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율구득의무가 원수보험사의 해외 재보험사 접촉과 거래를 차단하는 기능을 하였다면, 전량출재의무와 결합하여 배타조건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4. 관련 행위를 분절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다음 행위들이 경쟁사업자를 배제하려는 하나의 의사 아래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인지 전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전량출재의무
요율구득의무
재재보험특약
해외 재보험사 패널 구성
해외 재보험사 또는 중개사의 시장 진입에 대한 방어행위

각 조항이나 행위를 따로 떼어 놓으면 합리적인 계약조건 또는 위험관리행위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호 결합하여 경쟁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봉쇄하는 하나의 거래구조로 기능하였다면 전체적으로 경쟁제한성을 판단해야 합니다.

5. 부당성에는 경쟁제한의 목적과 객관적 우려가 필요합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배타조건부 거래가 위법하려면 독점을 유지·강화하려는 의도 또는 목적과 객관적인 경쟁제한 우려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상품 또는 서비스 가격의 상승
공급량 감소
혁신 저해
유력한 경쟁사업자 수의 감소
상품과 거래방식의 다양성 감소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 봉쇄

현실적으로 이러한 효과가 발생하였다면 경쟁제한의 우려와 목적을 사실상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 효과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도 행위의 경위·동기·태양, 시장 특성, 인접시장 및 경쟁사업자의 존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다만 배타조건부 거래는 그 성질상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이므로, 통상 그 행위 자체에 경쟁을 제한하려는 목적이 포함된 것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판결의 의미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거래상대방의 자발적 동의가 배타조건부 거래의 성립을 부정하는 사유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데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은 계약조건이 강요되었는지만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이 시장에서 경쟁사업자의 거래기회와 진입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지를 심사합니다.

따라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와 거래상대방 사이에 경제적 합리성과 상호 편익이 존재하더라도, 독점거래 구조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경쟁사업자의 시장접근을 차단하였다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 전체를 최종적으로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원심이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타조건부 거래를 부정하고 각 행위를 분절적으로 판단한 법리오해를 지적하여 다시 심리하도록 한 판결입니다.

실무상 시사점

시장점유율이 높은 사업자의 독점·전속거래계약은 당사자 모두가 자발적으로 체결했다는 사정만으로 안전하지 않습니다. 다음 사항을 점검해야 합니다.

경쟁사업자와의 거래를 직접 또는 사실상 금지하는지
계약상 전량구매·전량공급 의무가 존재하는지
가격·요율 결정권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 집중되는지
계약조항과 계약 외 행위가 결합하여 시장 진입을 봉쇄하는지
독점조건의 기간·적용범위 및 시장봉쇄율이 과도한지
효율성이나 소비자 편익을 덜 제한적인 방법으로 달성할 수 있는지

결국 이 판결은 계약의 자발성보다 시장에서 나타나는 배타적 구조와 경쟁제한 효과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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