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설계도서와 달리 누락 시공한 경우 부실시공에 해당하는지

핵심 결론 설계변경 절차 없이 구조·안전 관련 시설을 설계보다 적게 시공했다면 실제 사고나 구조상 결함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건설산업기본법상 부실시공에 해당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두65507 판결(첨부)

관련 법조문

건설산업기본법 제82조는 건설업자가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한 경우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건설산업기본법 제84조는 위반행위의 종류와 정도에 따른 영업정지 기간 및 과징금 부과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제80조 및 별표 6은 부실시공에 대한 구체적인 영업정지·과징금 부과기준을 정하고 있다.

1. 사실관계


원고는 대전광역시 건설관리본부가 발주한 공사를 수행한 건설회사였다.

원고는 교량 기초공사를 위한 흙막이 가시설을 시공하면서 설계에 포함된 엄지말뚝인 H빔 28개와 버팀보 19개를 누락하였다.

엄지말뚝과 버팀보는 굴착 과정에서 주변 토사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고 흙막이 구조를 지지하기 위한 가설구조물이다. 특히 버팀보는 토압에 의해 흙막이 벽체가 변형되거나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원고는 이와 같은 수량을 누락하면서도 사전에 발주처에 알리지 않았고, 필요한 설계변경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경기도지사는 이러한 누락시공이 고의 또는 과실로 설계상 기준에 미달하게 시공한 부실시공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원고에게 영업정지처분을 하였다.

2. 핵심 쟁점


이 사건에서는 설계도서와 다르게 일부 가시설을 누락하여 시공한 사실만으로 건설산업기본법상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한 경우’에 해당하는지가 문제 되었다.

원고 측에서는 실제 완성된 시설물의 안전성이나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설계와 다르게 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실시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다투었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부실시공의 개념을 실제 사고나 구조적 결함이 발생한 경우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설계상 기준에 미달하게 시공한 행위 자체까지 포함할 것인지를 판단하였다.

3. 설계상 기준에 미달한 시공은 부실시공에 해당한다


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업자가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한 경우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당시 적용된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별표 6은 부실시공의 한 유형으로 ‘고의나 과실로 설계상의 기준에 미달하게 시공하거나 설계에서 정한 품질 이하의 불량자재를 사용한 경우’를 명시하고 있었다.

대법원은 원고가 설계에 포함된 엄지말뚝 28개와 버팀보 19개를 누락하면서 사전에 발주처에 알리거나 설계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고의나 과실로 설계상의 기준에 미달하게 시공한 경우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원고의 행위는 건설산업기본법 제82조 제2항 제5호가 정한 부실시공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4. 실제 안전사고나 구조적 결함이 발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판결에서 중요한 점은 부실시공이 인정되기 위해 반드시 붕괴, 균열 또는 안전사고가 현실적으로 발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설계도서는 공사의 안전성과 품질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재의 종류, 규격, 수량 및 시공방법을 정한 기준이다. 건설업자가 임의로 설계상의 자재나 구조물을 누락하면 설계가 예정한 안전성과 품질이 확보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특히 교량 기초공사의 흙막이 가시설은 시공 중 토사의 붕괴와 구조물의 변형을 방지하는 안전시설이다. 엄지말뚝과 버팀보를 상당한 수량 누락한 것은 사고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이므로, 실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부실시공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

건설산업기본법상 부실시공 제재는 이미 발생한 사고의 책임만을 묻는 제도가 아니다. 설계기준을 위반한 시공에 제재를 가하여 장래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건설공사의 품질을 확보하려는 예방적 행정제재의 성격도 가진다.

따라서 실제 구조적 결함이나 인명·재산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설계상 기준에 미달한 시공 자체로 부실시공이 성립할 수 있다.

5. 설계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부실시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판결을 모든 설계도서 불일치가 곧바로 부실시공이라는 의미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공사현장의 여건이나 기술적 필요에 따라 설계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발주자와 감리자의 승인을 받고, 변경된 시공방법이 기존 설계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안전성과 품질을 확보한다면 설계도서와 외형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실시공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반면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발주처에 미리 알리지 않았고 필요한 설계변경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또한 안전 관련 가시설을 상당한 수량 누락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단순한 현장 조정이나 경미한 시공상의 차이가 아니라, 설계상 요구된 구조물을 임의로 제외하여 설계기준에 미달하게 시공한 경우였다.

결국 부실시공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설계와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 누락된 공정이나 자재의 기능, 안전성과 품질에 미치는 영향, 설계변경 및 승인 절차의 이행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6. 고의·과실과 정당한 사유


부실시공에 따른 제재를 하려면 건설업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누락된 엄지말뚝과 버팀보의 수량이 상당했고, 원고가 발주처에 이를 알리거나 설계변경을 요청하지 않은 사정에 비추어 의무 위반을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았다.

단순한 현장 실수나 하도급업체의 시공 잘못이라는 주장만으로 건설업자의 과실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건설업자는 설계도서에 따라 공사를 수행하고 현장 시공상태를 확인·관리할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다만 발주자의 구체적인 지시, 감리자의 승인, 예측하기 어려운 현장 여건 또는 설계 자체의 오류 등으로 설계와 다르게 시공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에는 고의·과실이나 정당한 사유가 별도로 문제 될 수 있다. 그러한 사정은 회의록, 공문, 감리보고서, 설계변경 요청서 등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되어야 한다.

7. 영업정지처분의 재량권 일탈·남용 여부


당시 시행령상 고의나 과실로 설계상 기준에 미달하게 시공한 경우의 기준상 영업정지 기간은 2개월이었다.

처분청은 원고의 누락시공 동기, 부실공사의 내용과 횟수 등을 고려하여 기준상 영업정지 기간을 절반으로 감경하였다. 이에 따라 원고에게 실제로 내려진 영업정지는 1개월이었다.

원심은 부실시공을 한 건설업자를 제재하여 경각심을 높이고 안전사고를 예방할 공익이 매우 크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도 처분청이 관련 사정을 고려하여 기준보다 감경된 처분을 한 이상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즉 실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정이나 누락 부분이 가시설이라는 사정만으로 영업정지처분이 과도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8. 판결의 법리적 의미


이 판결은 건설산업기본법상 부실시공을 완성된 구조물의 결함이나 현실적인 사고 발생 여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설계도서는 공사의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이다. 건설업자가 적법한 설계변경 절차 없이 설계에서 요구하는 구조물이나 자재를 누락하였다면 그 자체로 설계상 기준에 미달한 시공에 해당할 수 있다.

특히 흙막이 가시설처럼 시공 과정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시설도 부실시공 판단의 대상이 된다. 최종 시설물에 영구적으로 남지 않는 가설구조물이라고 하여 설계도서 준수의무가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 판결은 행정제재의 목적이 이미 발생한 사고에 대한 사후 책임뿐 아니라 안전사고의 예방과 건설공사의 품질 확보에도 있다는 점을 확인한 사례이다.

9. 실무상 유의점


시공 과정에서 설계도서와 다른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발생한 경우에는 임의로 공사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 먼저 변경 필요성과 기술적 근거를 문서화하고, 발주자와 감리자에게 설계변경을 요청하여 승인을 받은 후 시공해야 한다.

현장에서는 설계변경 요청서, 기술검토서, 구조계산서, 감리자의 검토의견, 발주자의 승인 공문 및 공사회의록 등을 확보해야 한다. 구두 지시나 사후 승인만으로는 영업정지처분을 다투기 어려울 수 있다.

처분의 적법성을 다투는 경우에는 단순히 실제 사고가 없었다고 주장하기보다 변경된 시공이 기존 설계와 동등 이상의 안전성과 품질을 확보했는지, 적법한 승인절차를 거쳤는지, 누락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결국 이 판결의 핵심은 안전성·품질 저하가 현실적인 사고로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필요한 설계변경 절차 없이 설계상 요구된 구조물을 누락한 시공은 건설산업기본법상 부실시공에 해당할 수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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