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탁회사가 위탁자로부터 사업부지를 신탁받고 사업주체 명의까지 양수한 경우 수탁자의 민사상 책임 문제

2026.07.27
1. 문제의 소재
종전 시행사는 공동주택 개발사업을 위하여 매도인으로부터 사업부지를 매수하면서, 매매대금 외에 별도의 이주비 상당 약정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매도인은 약정금을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종전 시행사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었고, 같은 날 수탁회사 앞으로 담보신탁등기가 이루어졌다.
그 후 종전 시행사가 사업주체로 고시된 지 약 1개월 만에 사업주체가 수탁회사로 변경되었다. 사업의 명칭, 사업부지, 사업규모 및 사업비 등은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매도인과 종전 시행사 사이의 계약 제10조 제2항은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매수인이 사업 추진상 필요에 따라 매수인 변경을 요청할 경우 매도인은 이를 조건 없이 승낙하여야 하고, 매수인이 변경되는 경우 계약상의 권리와 의무도 동일하게 승계되는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은 경우 쟁점은 ① 수탁회사가 사업주체 지위를 승계하면서 매매계약상 매수인의 지위와 이주비채무까지 인수하였는지, ② 종전 시행사와 수탁회사가 연대책임을 부담하는지, ③ 수탁회사의 책임이 신탁재산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고유재산에도 미치는지에 있다.
결론적으로, 수탁회사가 사업부지에 관한 담보신탁을 인수하고 동일 개발사업의 사업주체 지위까지 승계하였다면, 계약 제10조 제2항에 따라 매수인의 계약상 지위와 이주비 상당 약정금채무를 함께 인수한 것으로 볼 상당한 근거가 있다. 또한 종전 시행사를 면책한다는 매도인의 명시적 의사표시가 없는 이상 병존적 채무인수로 평가하여 양자의 연대책임을 인정할 수 있고, 별도의 유효한 책임제한 특약이 없다면 수탁회사는 고유재산으로도 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수 있다.
2. 계약 제10조 제2항에 따른 계약상 지위 승계
가. 사업 추진을 위한 계약인수의 사전승낙
계약 제10조 제2항은 단순히 소유권이전등기의 명의자를 제3자로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아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매수인이 변경될 수 있다는 점과, 변경된 매수인에게 계약상의 권리·의무가 동일하게 승계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정하고 있다.
계약당사자의 지위를 이전하는 계약인수는 당사자 3인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관계 당사자 중 2인의 합의와 나머지 당사자의 동의 또는 승낙으로도 성립할 수 있다.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다45221, 45238 판결도 이를 명시적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제10조 제2항은 매도인이 장래의 매수인 변경과 계약상 지위 이전에 관하여 미리 한 승낙으로 평가할 수 있다. 종전 시행사와 수탁회사 사이에서 매수인 또는 사업주체의 지위를 이전하기로 한 합의가 인정된다면, 매도인의 별도 사후승낙 없이도 계약인수가 성립할 수 있다.
나. 수탁회사가 ‘변경된 매수인’에 해당하는지
수탁회사는 단순히 사업부지의 등기명의만 이전받은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지위를 함께 취득하였다.
• 사업부지의 대외적 소유권
• 신탁재산에 관한 관리·처분권
• 종전 시행사가 보유하던 사업주체 지위
• 동일한 개발사업을 계속 시행할 권한
• 개발사업에 따른 사업상 이익의 귀속 기반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와 수탁회사 앞으로의 담보신탁등기가 같은 날 이루어졌고, 종전 시행사가 사업주체로 고시된 후 약 1개월 만에 수탁회사로 사업주체가 변경되었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담보신탁과 사업주체 변경은 서로 독립된 우연한 거래라기보다 처음부터 예정된 하나의 개발사업 구조가 실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수탁회사는 계약 제10조 제2항에서 예정한 ‘사업 추진상 필요에 따라 변경된 매수인’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여지가 크다.
3. 이주비 상당 약정금채무의 승계
가. 사업부지 취득에 결부된 채무
이주비 상당 약정금은 종전 시행사가 사업과 무관하게 부담한 독립적인 고유채무가 아니다. 매도인으로부터 사업부지의 소유권과 현실적 인도를 확보하기 위한 대가로 약정된 금전채무이다.
매도인은 소유권을 먼저 이전하고, 시행사로부터 이주비 등을 지급받아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한 후 부동산을 인도하는 구조를 예정하였다. 따라서 이주비채무는 다음 사항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사업부지 소유권의 취득
• 매도인의 이주
• 부동산의 현실적 인도와 명도
• 공동주택 개발사업의 원활한 시행
수탁회사가 사업부지의 소유권과 사업주체 지위를 취득하면서 사업부지 취득에 따른 권리와 이익은 승계하되, 미지급 반대급부만 종전 시행사에 남겨두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계약 제10조 제2항의 “권리 및 의무의 동일한 승계”라는 문언과 부합하기 어렵다.
나. 동일 사업에 관한 선행 확정판결의 의미
동일 개발사업에서 매도인과 동일한 지위에 있던 다른 부동산 소유자가 종전 시행사를 상대로 제기한 약정금 사건에서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 이주비채무는 이미 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
• PF 대출 실행은 채무 발생의 조건이 아니라 지급시기에 관한 불확정기한이다.
• PF 실행이 무산된 것으로 확정되면 지급기한이 도래한다.
• 이주비는 매도인의 이주와 부동산 인도를 위한 비용이다.
• 이주비 지급의무와 부동산 인도의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 이주비 지급 전까지 매도인의 무상거주가 허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다른 매도인이나 수탁회사에 직접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일 사업, 동일 종전 시행사 및 동일한 부지매입 구조에 관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이주비채무의 성격과 계약당사자의 합리적 의사를 밝히는 유력한 간접사실이 된다.
특히 수탁회사가 승계한 사업에는 이미 확정적으로 발생한 사업부지 취득 관련 채무가 존재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4. 사업주체 지위를 승계한 수탁자의 대외적 책임
가. 대법원 2012두26166 판결
대법원 2014. 9. 4. 선고 2012두26166 판결은 부동산신탁에서 수탁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이루어지면 소유권이 대내외적으로 수탁자에게 완전히 이전되고, 위탁자에게 소유권이 유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나아가 수탁자가 사업시행자 지위까지 승계하여 신탁된 토지에서 개발사업을 시행한 경우에는 토지가액 증가에 따른 개발이익이 토지소유자이자 사업시행자인 수탁자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되므로, 이에 대응하는 개발부담금도 수탁자가 부담한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인 대구고등법원 2012누1243 판결도 수탁자가 위탁자와의 내부관계에서는 신탁계약상 제한을 부담하더라도, 제3자와의 관계에서는 완전한 소유권자이자 법률행위의 주체라고 보았다. 신탁계약상 비용을 위탁자 또는 수익자가 부담하기로 한 약정은 내부적인 정산관계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나. 민사상 채무에 대한 적용
위 판결은 개발이익환수법상 개발부담금에 관한 것이므로, 사업주체 변경만으로 모든 민사상 채무가 당연히 승계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계약 제10조 제2항이 매수인 변경과 권리·의무 승계를 명시적으로 예정하고 있다. 따라서 위 대법원 판례는 수탁회사가 단순한 담보권자나 명의자가 아니라 대외적 소유자이자 사업주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법리로 원용할 수 있다.
즉, 다음과 같은 논증이 가능하다.
수탁회사는 사업부지의 대외적 소유권과 종전 시행사의 사업주체 지위를 함께 승계하였으므로 단순한 담보관리자가 아니라 동일 개발사업의 대외적 사업시행자이다. 계약 제10조 제2항은 이러한 사업상 매수인 변경이 이루어질 경우 권리와 의무가 동일하게 승계된다고 명시하였다. 이주비 상당 약정금은 바로 그 사업부지의 취득과 인도에 결부된 채무이므로 수탁회사가 승계한 사업상 권리·의무에 포함된다.
수탁회사와 종전 시행사 사이의 내부 신탁계약에서 기존 사업비나 채무를 위탁자 부담으로 정하였더라도, 그것만으로 매도인에 대한 수탁회사의 대외적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5. 종전 시행사와 수탁회사의 연대책임
가. 종전 시행사의 면책 여부
계약 제10조 제2항은 변경된 매수인이 계약상의 권리·의무를 승계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 종전 매수인이 이미 발생한 채무에서 면책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매도인은 이주비 상당 약정금을 지급받지 않은 상태에서 소유권을 먼저 이전하였다. 이러한 매도인이 종전 시행사를 면책하고 수탁회사만을 새로운 채무자로 받아들이거나, 책임재산이 신탁재산으로 제한되는 것까지 승인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제10조 제2항에 의한 채무승계는 적어도 종전 시행사가 채무자로 남고 수탁회사가 새로운 채무자로 추가되는 병존적 채무인수로 해석할 수 있다.
나. 병존적 채무인수와 연대책임
대법원 2014. 8. 26. 선고 2013다49428, 49435 판결은 병존적 채무인수에서 채무자와 인수인이 원칙적으로 연대채무관계에 있다고 판시하였다. 인수인이 채무자의 부탁을 받지 않고 채권자와의 계약으로 채무를 인수하여 주관적 공동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부진정연대관계가 성립한다.
이 사건에서는 수탁회사가 종전 시행사와의 담보신탁 및 사업주체 변경관계에 따라 사업상 지위를 인수했으므로, 종전 시행사의 요청 또는 양자 사이의 사업약정에 따른 채무인수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법률관계를 구성할 수 있다.
• 종전 시행사: 이주비 상당 약정금의 원채무자
• 수탁회사: 사업부지 및 사업주체 지위 승계에 따른 병존적 채무인수인
• 대외관계: 양자의 연대채무
• 내부관계: 신탁계약 또는 사업약정에 따라 최종 부담자를 결정
• 매도인: 어느 채무자에게든 채무 전액을 청구할 수 있음
다만 법원이 제10조 제2항에 따른 완전한 계약인수로 보아 종전 시행사가 계약관계에서 탈퇴했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소송상으로는 병존적 채무인수에 따른 연대책임을 주위적으로 주장하고, 완전한 계약인수에 따른 수탁회사의 단독책임을 예비적으로 주장하는 구조가 적절하다.
6. 수탁회사의 고유재산 책임
가. 신탁재산 한정책임이 원칙은 아니다
수탁회사가 이주비채무를 인수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그 책임이 신탁재산에만 한정되는지는 별도의 문제이다.
대법원 2004. 10. 15. 선고 2004다31883, 31890 판결은 수탁자가 신탁사무를 처리하면서 수익자 외의 제3자에게 부담한 채무에 관한 이행책임은 신탁재산의 한도 내로 제한되지 않고 수탁자의 고유재산에도 미친다고 판시하였다.
해당 판결에서도 수탁자가 신탁사업을 수행하면서 수분양자들에게 부담한 지체상금 등 금전채무가 문제 되었고, 대법원은 채권자가 신탁재산뿐 아니라 수탁자의 파산재단에 대하여도 채권 전액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의 이주비채무도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 수익자에 대한 내부적 신탁채무가 아니다.
• 사업부지 매도인이라는 제3자에 대한 채무이다.
• 신탁부동산의 취득과 개발사업의 시행에 직접 관련된 채무이다.
• 수탁회사가 사업주체 및 매수인 지위를 승계하면서 인수한 채무이다.
따라서 수탁회사의 책임이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수탁회사의 고유재산에도 그 책임이 미친다.
나. 책임제한 특약의 부재
수탁자와 거래 상대방 사이에 수탁자의 책임을 신탁재산으로 제한하는 별도의 특약이 있다면 그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매도인과 종전 시행사 사이의 계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없다.
• 수탁회사의 책임을 신탁재산 범위로 제한한다는 조항
• 수탁회사의 고유재산에 대한 청구를 포기한다는 조항
• 매수인이 수탁회사로 변경되는 경우 책임재산이 축소된다는 조항
• 신탁재산이 부족한 경우 나머지 채권을 포기한다는 조항
오히려 제10조 제2항은 변경된 매수인이 계약상의 권리와 의무를 동일하게 승계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신탁원부에 책임제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더라도 신탁등기의 대항력은 원칙적으로 해당 재산이 신탁재산에 속한다는 점에 미칠 뿐, 신탁계약의 개별 조항 전부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25. 3. 13. 선고 2023다296643 판결도 이를 확인하였다.
따라서 매도인이 별도로 신탁재산 한정책임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수탁회사는 위탁자와의 내부 신탁약정만을 근거로 고유재산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7. 종합 결론
이 사건에서는 다음과 같은 법리 구성이 가능하다.
첫째, 매도인과 종전 시행사 사이의 계약은 공동주택사업의 사업부지 취득을 목적으로 하고, 제10조 제2항은 사업 추진상 매수인이 변경되면 계약상의 권리·의무도 동일하게 승계된다고 명시하였다. 이는 매도인이 장래의 계약인수에 관하여 한 사전승낙이다.
둘째,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와 수탁회사 앞으로의 담보신탁등기가 같은 날 이루어졌고, 종전 시행사가 사업주체가 된 후 약 1개월 만에 수탁회사로 사업주체가 변경되었다. 사업의 실체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므로, 수탁회사는 담보수탁자의 지위를 넘어 동일 개발사업의 사업부지 소유권과 사업주체 지위를 일체로 승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셋째, 이주비 상당 약정금은 종전 시행사의 독립적인 고유채무가 아니라 사업부지의 소유권과 인도를 확보하기 위한 반대급부이다. 동일 사업에 관한 선행 확정판결도 이주비채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였고 부동산 인도의무와 동시이행관계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넷째, 대법원 2012두26166 판결과 대구고등법원 2012누1243 판결에 따르면 토지소유권과 사업주체 지위를 승계한 수탁자는 단순한 명의자가 아니라 대외적인 토지소유자이자 사업시행자이다. 따라서 수탁회사는 제10조 제2항이 예정한 변경된 매수인으로서 사업부지 취득에 수반되는 이주비채무도 인수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매도인이 종전 시행사를 면책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사실이 없으므로 수탁회사의 채무인수는 적어도 병존적 채무인수로 해석할 수 있다. 대법원 2013다49428, 49435 판결에 따라 종전 시행사와 수탁회사는 원칙적으로 연대책임을 부담한다.
여섯째, 대법원 2004다31883, 31890 판결에 따르면 수탁자가 신탁사무 처리 과정에서 제3자에게 부담하는 채무는 원칙적으로 수탁자의 고유재산에도 책임이 미친다. 매도인이 신탁재산 한정책임에 동의한 사실이 없다면 수탁회사는 신탁재산뿐 아니라 고유재산으로도 이주비 상당 약정금을 지급할 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종전 시행사와 수탁회사를 공동채무자로 보아 연대책임을 청구하되, 사실상 지급능력이 없는 종전 시행사보다 수탁회사의 고유재산을 실질적인 책임재산으로 파악하는 법리 구성이 가능하다. 소송에서는 병존적 채무인수에 따른 연대책임을 주위적으로 주장하고, 완전한 계약인수에 따른 수탁회사의 단독책임을 예비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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