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3. 6. 1. 선고 2020도2884 판결
1. 판결의 핵심 결론
이 판결의 취지를 단순히 “예탁결제원에 예탁된 주식은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고 정리하면 정확하지 않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실제로 주권이 발행되어 예탁결제원에 예탁된 경우: 그 주권은 유가증권이자 재물이므로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
주권이 발행되지 않은 채, 주권불소지제도나 일괄예탁제도에 따라 예탁된 것으로 취급되고 계좌대체 방식으로 거래되는 주식: 주식 또는 주주권에 불과하여 재물이 아니므로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횡령죄의 성립 여부를 가르는 핵심은 ‘증권계좌에 입고되어 계좌대체가 가능한가’가 아니라, 그 주식에 관하여 실제로 ‘주권이 발행되었는가’이다.
2.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주식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피해자 소유의 회사 주식 375,933주를 자신의 명의 등으로 주주명부에 등재하여 보유하고 있었다.
회사가 코넥스시장에 상장될 예정이 되면서 해당 주식은 피고인 등의 증권계좌에 입고되었고, 예탁결제원에 예탁된 것으로 취급되어 계좌 간 대체기재 방식으로 양도할 수 있게 되었다.
피고인은 그중 일부 주식을 매도하고, 나머지 주식에 대해서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면서 피해자에게 반환하지 않았다. 검사는 피고인이 약 40억 원 상당의 피해자 소유 주식을 횡령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하였다.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주권이 발행되지 않은 주식에 관한 명의신탁약정만으로는 명의수탁자를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해당 주식이 예탁결제원에 예탁되어 계좌 간 대체기재 방식으로 양도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를 위하여 유가증권 등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원심은 피고인이 증권계좌에 입고된 주식을 매도하고 반환을 거부한 행위에 대하여 횡령죄를 인정하였다.
4.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원심이 ‘주식’과 ‘주권’을 구별하지 않고 계좌대체가 가능하다는 사정만으로 횡령죄의 객체인 재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가. 주식과 주권은 법적으로 구별된다
상법상 주식은 다음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된다.
회사 자본의 구성단위
주주가 회사에 대하여 가지는 주주의 지위 또는 주주권
반면 주권은 이러한 주주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이다.
주식 또는 주주권은 물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체물이 아니라 권리 또는 법적 지위에 해당한다. 반면 주권은 주주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이므로 형법상 재물에 해당할 수 있다.
따라서 횡령죄의 객체라는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
주권: 유가증권이므로 재물에 해당
주식 또는 주주권: 권리 또는 법적 지위이므로 재물에 해당하지 않음
나. 계좌대체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재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식이 증권계좌에 입고되고 계좌 간 대체기재 방식으로 양도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주식이 형법상 재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주권불소지제도 또는 일괄예탁제도 아래에서는 실제 주권이 발행되지 않았는데도 주식이 예탁결제원에 예탁된 것처럼 취급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계좌에 기록되어 이전되는 대상은 실물 유가증권인 주권이 아니라 주식에 관한 권리 또는 주주권이다.
대법원은 거래 방식이 전자적 계좌대체 방식이라는 외형보다 실제 주권의 발행 여부를 기준으로 횡령죄의 객체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 실제 주권이 발행되어 예탁된 경우에는 결론이 달라진다
실제 주권이 발행된 후 그 주권이 예탁결제원에 예탁되었다면, 예탁된 주권은 여전히 유가증권으로서 재물에 해당한다.
비록 투자자가 실물 주권을 직접 점유하지 않고 계좌 간 대체기재 방식으로만 거래하더라도, 그 기초에 실제 발행된 주권이 존재한다면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판결은 예탁결제원에 예탁된 모든 주식 또는 주권의 횡령죄 객체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실제 발행된 주권이 존재하는지를 기준으로 객체성을 구별한 것이다.
5. 주권 발행 여부에 관한 증명 문제
이 사건에서 검사는 범행 당시 해당 주식에 관하여 주권이 실제로 발행되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였다.
반면 피고인은 주권이 발행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해당 회사 대표이사의 확인서를 제출하였다.
대법원은 원심이 다음 사항을 구체적으로 심리했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해당 회사가 실제 주권을 발행했는지
발행된 주권이 예탁결제원에 예탁되었는지
단지 주권불소지 또는 일괄예탁제도에 따라 예탁된 것으로 취급된 것인지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하여 실제 주권이라는 재물을 보관한 것인지
그럼에도 원심이 계좌대체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피고인을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판단한 것은 횡령죄의 재물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보았다.
6. 횡령죄의 객체에 관한 죄형법정주의적 의미
형법상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할 때 성립한다. 여기서 재물은 원칙적으로 유체물 및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을 의미한다.
주식, 주주권, 채권, 예금채권과 같은 재산상 권리는 경제적 가치가 있더라도 그 자체로는 횡령죄의 객체인 재물이 아니다.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상 권리까지 횡령죄의 객체로 확장하면 재물죄의 체계와 죄형법정주의에 반할 수 있다.
이 판결은 전자등록 또는 계좌대체 방식으로 거래되는 금융자산에 대해서도 경제적 실질만을 이유로 횡령죄의 객체성을 인정할 수 없으며, 형법이 정한 ‘재물’의 개념에 해당하는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7.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형사책임이 모두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주권이 발행되지 않은 주식은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없지만, 이를 임의로 처분한 행위가 언제나 형사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고, 그 임무에 위배하여 주식을 처분함으로써 자신 또는 제3자에게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명의신탁자에게 손해를 가하였다면 배임죄 또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가 문제 될 수 있다.
다만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별도로 다음 요건이 증명되어야 한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할 것
주식의 보관·관리·반환에 관한 구체적인 임무가 존재할 것
피고인이 그 임무에 위배하여 주식을 처분하거나 반환을 거부했을 것
피고인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을 것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 또는 구체적인 손해 발생 위험이 생겼을 것
피고인에게 배임의 고의와 불법이득의사가 인정될 것
이 사건에서도 공소장에는 배임죄가 예비적 죄명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 대법원판결은 주위적 공소사실인 횡령죄의 객체성에 관한 원심의 법리오해를 이유로 파기환송한 것이므로, 판결 자체가 예비적 배임죄의 성립을 확정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8. 판결의 법리적 의의
이 판결의 핵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식과 주권을 횡령죄의 객체라는 관점에서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주식은 주주의 지위 또는 권리이고, 주권은 그 권리를 표창하는 유가증권이다.
둘째, 예탁결제원에 예탁되어 계좌대체 방식으로 거래된다는 사정만으로 횡령죄의 객체인 재물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셋째, 실제 주권이 발행되어 예탁된 경우에는 주권이 재물에 해당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였다.
넷째, 주권이 발행되지 않은 주식의 무단처분은 횡령죄가 아니라 배임죄의 구조로 검토해야 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9. 결론
이 판결은 “예탁결제원에 예탁된 주식은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는 일반적인 법리를 선언한 판결이 아니다.
정확한 판결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실제 주권이 발행되어 예탁결제원에 예탁된 경우 그 주권은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주권이 발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탁된 것으로 취급되고 계좌대체 방식으로 거래되는 주식은 주주권이라는 재산상 권리에 불과하므로 횡령죄의 객체인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에서는 먼저 주권 발행 여부를 확인한 후, 주권이 발행되지 않았다면 횡령죄가 아니라 배임죄의 성립 여부를 중심으로 공소사실을 구성해야 한다.
예탁결제원에 예탁된 주식과 횡령죄의 객체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