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결의 핵심 쟁점
특수관계인 사이에서 일반적인 토지 임대료 산정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지료를 정한 경우, 그 합의가 특수관계를 이용한 이익 이전으로서 법인세법상 부당행위계산 부인의 대상이 되는지가 문제된 사안이다.
서울고등법원 2020. 12. 17. 선고 2019누62132 판결은, 특수관계인 사이의 거래라는 사정이나 세법상 보충적 임대료 산식보다 실제 지급액이 높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경제적 합리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이 판결을 단순히 “충분한 협의절차만 거치면 증여의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이해하는 것은 다소 부정확하다. 이 판결의 핵심은 협의의 형식적 존재가 아니라, 협의와 가격결정 과정 전체에서 확인되는 거래의 실질적 경제적 합리성에 있다.
2. 특수관계인 거래라는 이유만으로 부당성이 추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인세법상 부당행위계산 부인은 특수관계인 사이의 모든 거래를 정상가격으로 강제하는 제도가 아니다. 특수관계를 이용하여 조세 부담을 부당하게 감소시킨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
따라서 과세관청은 다음 사항을 증명하여야 한다.
해당 거래가 시가보다 현저히 유리하거나 불리한 조건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그 거래가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상관행에 비추어 경제적 합리성이 없는 비정상적인 거래라는 점
부당행위계산 부인의 기준이 되는 시가 또는 적정 임대료가 얼마인지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부당행위계산 부인의 적용기준이 되는 시가 또는 적정 임대료에 관한 주장·증명책임이 과세관청에 있다고 명확히 하였다.
3. 충분한 협의절차가 가지는 법적 의미
특수관계인 사이에서 충분한 협의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과세를 배제하는 독립적인 요건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정이 수반된다면, 해당 거래가 특수관계만을 이용한 일방적인 이익 제공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결정 과정의 결과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이 사건에서 당사자들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쳤다.
특수관계인 거래에 따른 부당행위계산 부인 위험을 사전에 인식하였다.
합리적인 임대료 산정과 조세분쟁 예방을 위해 2개의 감정평가법인에 평가를 의뢰하였다.
각 감정평가법인의 평가 결과를 평균하여 임대수익 배분비율을 정하였다.
토지와 건물의 평가액뿐만 아니라 건물의 잔존가치, 인테리어 공사비, 각종 부담금과 점용료, 기대수익률, 임대차기간, 복귀가치 및 장기임대차 할인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다.
10년 주기로 부동산을 재평가하여 가치 변동에 따른 당사자 간 손익을 조정하기로 하였다.
법원이 인정한 것은 단순한 당사자 간 합의가 아니라, 객관적인 외부 평가자료를 기초로 거래의 특수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장래의 가치 변동까지 조정하는 구조를 마련한 합의였다.
4. 세법상 보충적 산식이 언제나 시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세관청은 구 법인세법 시행령 제89조 제4항 제1호의 산식, 즉 토지 시가의 50%에서 보증금을 차감한 금액에 정기예금이자율을 곱하는 방식으로 적정 임대료를 산정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산식이 다음과 같은 거래의 핵심 조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였다.
50년이라는 장기 임대차기간
견고한 건물의 신축과 소유라는 임대 목적
지상권 설정을 통한 장기간 사용권 보장
토지 매입자금과 보유세 등의 부담 절감
임대차 종료 후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복귀가치
건물 소유자가 부담한 신축비와 각종 사업비
토지와 건물에서 발생하는 전체 임대수익의 배분구조
시행령의 보충적 산식은 유사한 임대사례나 감정가액 등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적용되는 보충적 평가방법이다. 따라서 해당 산식이 장기·복합적 임대차의 경제적 실질을 현저히 왜곡한다면, 그 계산 결과를 곧바로 해당 거래의 시가라고 단정할 수 없다.
실제로 과세관청이 산정한 2011년 임대료는 약 7억 원이었던 반면, 항소심 감정결과에 따른 적정 임대료는 약 49억 원이었다. 실제 지급액은 약 31억 원이었으므로, 과세관청의 산식에 따르면 토지 소유자에게 과다 지급한 것이지만 항소심 감정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과소 지급한 것이 된다. 법원은 이러한 현저한 차이를 근거로 과세관청이 산정한 금액을 시가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5. 계약당사자 모두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있었다는 점
법원은 해당 계약이 어느 일방에게만 이익을 이전하기 위한 구조가 아니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았다.
임차인은 다음과 같은 이익을 얻었다.
토지를 직접 매입하지 않고 건물을 신축·소유할 수 있었다.
건물의 사용연한에 해당하는 50년 동안 토지 사용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였다.
토지 취득자금과 토지 보유에 따른 세금·부담금을 부담하지 않았다.
건물 소유권과 상당한 가치의 건물 임대권을 취득하였다.
토지 소유자 역시 장기간의 임대수익과 임대차 종료 후 토지의 복귀가치를 확보하였다.
이처럼 계약 전체의 구조에서 양 당사자가 각자의 투자와 위험 부담에 상응하는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면, 임대료 또는 수익배분비율 중 일부가 어느 당사자에게 다소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거래 전체의 경제적 합리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6. 사적자치와 조세법적 통제의 관계
법원은 토지 소유자와 건물 소유자가 전체 임대수익의 일정 비율을 토지 임대료로 지급하기로 하는 방식도 사적자치의 원칙상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반드시 정액 지료, 감정평가액에 일정 비율을 곱한 금액 또는 시행령상 보충적 산식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들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정액 지료 방식
토지가액에 일정 수익률을 곱하는 방식
건물 임대수익의 일정 비율을 배분하는 방식
최소보장 지료와 매출연동 지료를 결합하는 방식
일정 주기마다 감정평가를 실시하여 조정하는 방식
중요한 것은 산정방식의 명칭이나 형식이 아니라, 그 방식을 선택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거래의 전체 조건에 비추어 일방적인 이익 이전이라고 볼 수 없는지이다.
7. ‘증여의제’와 ‘부당행위계산 부인’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판결은 엄밀하게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증여 또는 증여의제를 판단한 판결이 아니라, 법인세법상 부당행위계산 부인을 다룬 판결이다.
두 제도 모두 특수관계인 사이의 무상 또는 저가·고가 거래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는 관련성이 있지만, 법적 요건과 효과는 다르다.
법인세법상 부당행위계산 부인은 법인의 소득금액을 정상적인 거래조건에 따라 다시 계산하는 제도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증여과세는 특정인에게 무상 또는 현저히 낮거나 높은 대가로 경제적 이익이 이전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이 판결을 증여세 사건에 원용하려면, “충분한 협의가 있었으므로 증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는 것이 정확하다.
당사자들은 특수관계와 무관하게 각자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실질적인 협상을 하였고, 복수의 객관적 평가자료와 장기 임대차의 특수한 조건을 반영하여 거래조건을 결정하였다. 그 결과가 어느 일방에게 경제적 이익을 무상으로 이전하려는 의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독립된 당사자 사이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거래구조에 해당한다.
다만 증여세법에 저가·고가 거래에 관한 구체적인 정량 기준과 증여이익 계산규정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경제적 합리성이나 협의절차만으로 과세가 당연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법정 요건 충족 여부를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8. 이 판결에서 도출되는 실무상 판단기준
특수관계인 사이의 지료 합의가 조세법상 존중받기 위해서는 다음 요소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합의 이전에 거래조건과 이해관계를 충분히 검토한 자료가 있어야 한다. 회의록, 제안서, 수정안, 의견교환 문서 등을 남겨야 한다.
둘째, 복수의 감정평가, 임대사례, 기대수익률, 토지·건물 가치 및 전체 사업수익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감정평가 결과를 기계적으로 채택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이유와 조정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넷째, 장기 임대차기간, 지상권, 갱신권, 매수청구권, 보증금, 건물 귀속, 복귀가치 등 지료에 영향을 주는 전체 계약조건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다섯째, 어느 한쪽에만 이익이 귀속되는 구조가 아니라 각 당사자가 얻는 경제적 이익과 부담하는 위험을 비교하여야 한다.
여섯째, 일정 주기의 재평가 및 지료 조정조항을 두어 장기간의 가격 변동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곱째, 의사결정권자 또는 지배주주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각 당사자의 별도 의사결정 절차를 거쳤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9.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의 핵심 법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특수관계인 사이에서 합의로 정한 지료가 세법상 보충적 산식에 따른 금액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행위계산 부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들이 거래의 특수성과 각자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객관적인 평가자료를 기초로 실질적인 협의절차를 거쳤고, 그 거래가 어느 일방에 대한 무상 이익 이전이 아니라 쌍방에게 경제적 효용이 있는 합리적인 거래라면, 사적자치에 따른 지료 약정은 원칙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과세관청이 이를 부인하려면 객관적인 시가와 경제적 합리성의 결여를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이 판결은 “협의절차를 거치면 과세되지 않는다”는 판결이라기보다, 객관적인 자료에 기초한 실질적 협상, 계약조건 전체의 경제적 분석, 쌍방의 이익과 위험 부담 및 사후 조정장치가 확인된다면 특수관계인 사이의 합의도 정상적인 거래로 평가될 수 있다는 판결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특수관계인 사이의 합의에 따른 지료 산정과 부당행위계산 부인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