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와 매수인의 불안의 항변권

2026.08.04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와 매수인의 불안의 항변권

— 대법원 2023. 12. 7. 선고 2023다269139 판결

1. 판결의 핵심

이 판결의 핵심 쟁점은 임차인이 잔금 지급 직전에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여 매도인의 장래 현실인도가 현저히 불확실해진 경우, 잔금을 먼저 지급하기로 한 매수인이 민법 제536조 제2항의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하여 잔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가이다.

대법원은 이를 긍정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매도인의 현실인도의무가 잔금 지급일보다 뒤에 이행하기로 약정되어 있더라도, 그 의무가 장래 이행될 것인지 현저히 불확실해졌다면 매수인은 매도인의 이행이 확실해질 때까지 선이행의무인 잔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이 매수인의 잔금 지급 거절이 곧바로 정당하다고 확정한 것은 아니다. 불안의 항변권 성립 여부와 그에 따른 매도인의 해제권 발생 여부를 구체적으로 심리하지 않은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2. 사실관계

매수인은 실거주할 목적으로 임차인이 거주 중인 아파트를 매수하였다.

매매계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규정되어 있었다.

잔금 지급 및 소유권이전등기일: 2021. 4. 22.
부동산 인도일: 2021. 4. 22.
특약상 실제 명도일: 2021. 12. 6.

계약 체결 당시 임차인은 임대차기간이 만료되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아파트를 인도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그런데 임차인은 잔금 지급일 직전에 입장을 바꾸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고 2년 더 거주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실거주를 목적으로 매수한 매수인은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매도인은 매수인의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하였고, 매수인은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였다.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매도인의 실제 명도의무 이행일이 2021. 12. 6.이므로, 그보다 앞선 잔금 지급일인 2021. 4. 22.에는 매도인이 아파트를 현실적으로 인도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장래 현실인도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매수인이 잔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고, 매수인의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한 매도인의 계약 해제가 유효하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원심이 계약의 내용과 불안의 항변권에 관한 법리를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판단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4. 첫 번째 쟁점: 매도인의 ‘인도의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가. 현실인도와 간접점유 이전을 구분해야 한다

대법원은 매매계약상 인도의무를 하나의 단일한 의무로만 보지 않고 다음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잔금 지급일의 인도: 임차인에 대한 목적물반환청구권 양도를 통한 간접점유의 이전
특약상 실제 명도일의 인도: 임차인을 퇴거시키고 매수인에게 점유를 현실적으로 이전하는 현실인도

따라서 잔금 지급일인 2021. 4. 22.에는 매도인이 임차인에 대한 반환청구권을 매수인에게 이전하여 간접점유를 넘기고, 2021. 12. 6.에는 임차인이 퇴거한 상태로 아파트를 현실적으로 인도하기로 약정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원심처럼 특약상 현실인도일만을 근거로 잔금 지급일에는 어떠한 인도의무도 없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 계약의 문언뿐 아니라 거래 목적을 고려해야 한다

대법원은 계약해석에 관한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였다. 계약서 문언은 계약해석의 출발점이지만, 문구에만 얽매여서는 안 되고 다음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계약의 형식과 전체 내용
계약 체결의 동기와 경위
계약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거래 관행
사회 일반의 상식과 거래 통념

이 사건에서는 매수인이 아파트에 직접 거주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했고,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을 전제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따라서 일정한 시점에 임차인이 퇴거하고 매수인이 현실적으로 입주할 수 있다는 점은 계약의 중요한 기초였다.

5. 두 번째 쟁점: 불안의 항변권의 성립요건
가. 불안의 항변권이란

일반적인 동시이행항변권은 쌍방의 채무가 같은 시점에 이행되어야 할 때 상대방의 이행 제공이 있을 때까지 자신의 이행을 거절하는 권리이다.

반면 민법 제536조 제2항의 불안의 항변권은 자신이 먼저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더라도, 상대방의 후이행채무가 장차 제대로 이행될 것인지 현저히 불확실해진 경우 자신의 선이행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나. 성립요건

대법원이 제시한 불안의 항변권의 요건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당사자 사이에 서로 대가적 관계에 있는 채무가 존재해야 한다.
항변권을 행사하는 당사자가 선이행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계약 성립 후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하다고 볼 현저한 사정변경이 발생해야 한다.
상대방의 이행 여부가 현저히 불확실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선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해야 한다.
그 불안사유가 선이행채무의 이행거절 당시 존재해야 한다.

상대방 채무의 이행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사정은 불안의 항변권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이행채무가 장래 이행될지 현저히 불확실하기 때문에 인정되는 항변권이다.

6. 세 번째 쟁점: 불안의 원인은 상대방의 신용불안에 한정되는가

민법 제536조 제2항은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라고 규정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계약 체결 후 상대방의 신용이 악화되거나 재산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경우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불안의 항변권이 반드시 경제적 신용불안이나 자력 악화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사건의 불안사유는 매도인의 자력 악화가 아니라 제3자인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였다. 임차인의 적법한 권리 행사로 매도인이 약정한 날짜에 아파트를 현실적으로 인도하기 어려워졌다면, 이 역시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불안의 항변권은 상대방의 ‘지급능력’뿐 아니라 계약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채무의 ‘사실상·법률상 이행 가능성’이 현저히 불확실해진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7. 네 번째 쟁점: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는 현저한 사정변경인가

대법원은 다음 사정을 중요하게 보았다.

매수인이 실거주를 목적으로 아파트를 매수한 점
계약 체결 당시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
이를 전제로 실제 명도일을 정한 점
임차인이 잔금 지급일 직전에 태도를 바꿔 갱신요구권을 행사한 점
그 결과 약정된 실제 명도일에 현실인도가 이루어질지 현저히 불확실해진 점
이러한 불안상태가 매도인의 계약 해제권 행사 시까지 해소되지 않은 점

이러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매수인에게 계약 내용대로 잔금 전액을 먼저 지급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공평과 신의칙에 반할 수 있다.

특히 매수인이 잔금을 모두 지급하고 소유권을 취득하더라도 장기간 입주하지 못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에서, 계약의 핵심 목적이 좌절될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8. 다섯 번째 쟁점: 잔금 지급 거절과 매도인의 계약 해제

불안의 항변권이 성립하면 매수인의 잔금 미지급은 정당한 이행거절이 된다. 따라서 매수인은 잔금 지급의 이행지체에 빠지지 않는다.

그 결과 매도인은 매수인의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법률관계를 단계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임차인의 갱신요구권 행사로 현실인도가 현저히 불확실해진다.
매수인에게 불안의 항변권이 성립한다.
매수인의 잔금 지급 거절이 정당화된다.
매수인은 이행지체에 빠지지 않는다.
매도인의 이행지체를 이유로 한 계약 해제는 효력이 인정되기 어렵다.

다만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불안의 항변권이 확정적으로 성립한다고 단정하지 않고, 원심이 관련 사실을 추가로 심리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9. 불안의 항변권과 동시이행항변권의 차이

이 사건에서 매수인의 잔금 지급의무는 매도인의 현실인도의무보다 먼저 이행해야 하는 선이행의무였다. 따라서 현실인도의무와 잔금 지급의무가 원래부터 동시이행관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은 기존의 이행순서를 변경하여 두 채무가 당연히 동시이행관계가 된다고 본 것이 아니다. 매도인의 후이행채무가 현저히 불확실해졌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매수인이 선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두 항변권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동시이행항변권: 계약상 대가적 채무의 이행기가 동시에 도래한 경우
불안의 항변권: 자신의 채무가 선이행채무이지만 상대방의 후이행채무가 현저히 불확실해진 경우

불안의 항변권은 상대방의 이행이 확실해질 때까지 인정되는 일시적 이행거절권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10. 판결의 실무적 의미

이 판결은 임차인이 있는 부동산을 실거주 목적으로 매매할 때 계약서 작성과 잔금 지급의 위험 배분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매수인의 관점

임차인의 퇴거가 거래의 중요한 전제라면 계약서에 다음 사항을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수인의 실거주 목적
임차인의 퇴거 예정일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할 경우의 처리 방법
현실인도를 잔금 지급의 조건으로 할 것인지
현실인도가 불확실해진 경우 잔금 지급을 유보할 수 있다는 조항
현실인도 불이행 시 해제권과 손해배상책임
매도인의 관점

임차인의 갱신요구권 불행사 의사만을 신뢰하여 무조건적인 현실인도를 보장하면 상당한 계약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임차인의 의사 변경 가능성을 고려하여 현실인도 보장의 범위와 위험부담을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

소송상 주장·증명

불안의 항변권을 주장하는 당사자는 단순한 주관적 우려를 넘어 다음 사항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상대방이 부담하는 후이행채무의 내용
계약 체결 당시 그 채무의 이행을 전제로 하였다는 점
계약 후 발생한 객관적인 사정변경
상대방의 이행이 단순히 불편해진 정도가 아니라 현저히 불확실해졌다는 점
그러한 불안이 자신의 이행거절 당시와 상대방의 해제권 행사 당시에도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
11. 판결의 의미

이 판결은 불안의 항변권을 상대방의 신용불안이나 자력 악화에 한정하지 않고, 제3자의 권리 행사로 계약의 핵심적인 후이행채무가 사실상 또는 법률상 곤란해진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핵심 법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실거주를 전제로 한 임차 부동산 매매에서 임차인이 잔금 지급 직전에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여 매도인의 장래 현실인도가 현저히 불확실해졌다면, 매수인은 민법 제536조 제2항에 따라 현실인도가 확실해질 때까지 선이행의무인 잔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그 이행거절이 정당하다면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한 매도인의 계약 해제도 인정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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