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일인이 지배하는 발주회사와 원도급회사 사이의 법인격 부인

핵심 결론 발주회사와 원도급회사를 동일인이 지배하고 회계·자금관계가 혼재했더라도, 발주회사가 도급대금을 모두 지급하고 원도급회사의 자산이 무상 이전되지 않았다면 하도급채무 면탈을 위한 법인격 남용으로 단정할 수 없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주요 판례·법령 2022다266294
판례번호

대법원 2023. 1. 12. 선고 2022다266294 판결【공사대금】

원심: 제주지방법원 2022. 7. 6. 선고 2017나12332 판결
결론: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 파기·환송

관련 규정

민법 제2조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를 규정합니다. 채무면탈을 목적으로 별개의 회사 법인격을 이용하는 경우 법인격의 독립성을 제한하는 근거가 됩니다.

상법 제169조는 회사를 독립된 법인으로 규정합니다. 동일인이 여러 회사를 지배하거나 회사들의 사업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더라도 각 회사는 원칙적으로 별개의 권리주체입니다.

사실관계

1. 호텔 사업을 위한 발주회사의 설립


소외인은 2014년 4월 23일 제주도 소재 토지 3필지에 관광호텔을 건설·운영하기 위하여 피고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피고 회사는 호텔 사업의 시행자이자 호텔 신축공사의 발주자였습니다. 신축된 호텔과 그 운영수익도 원칙적으로 피고 회사에 귀속되는 구조였습니다.

2. 호텔 신축을 위한 건설회사의 인수


소외인은 피고 회사를 설립한 지 약 5개월 후인 2014년 9월 19일 호텔 신축공사를 수행하기 위하여 기존에 설립되어 있던 건설회사인 □□건설 주식회사를 인수하였습니다.

소외인은 피고 회사와 □□건설의 사실상 1인 주주로서 두 회사를 모두 실질적으로 경영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채무 발생 후 새 회사를 설립하여 기존회사의 영업과 재산을 이전한 전형적인 신설회사 사안과는 구조가 달랐습니다. 호텔 사업을 위한 피고 회사가 먼저 설립되었고, 그 후 기존 건설회사를 인수하여 호텔 신축공사를 맡긴 사안이었습니다.

3. 피고 회사와 □□건설 사이의 원도급계약


피고 회사는 2014년 12월 15일 □□건설에 관광호텔 신축공사를 도급하였습니다.

최초 공사대금은 55억 원이었으나 이후 공사대금이 88억 원으로 증액되었습니다.

따라서 계약 구조상 피고 회사는 발주자, □□건설은 원도급회사였습니다. 두 회사를 같은 사람이 사실상 지배하였더라도 도급계약의 당사자와 공사대금채권·채무의 귀속주체는 서로 달랐습니다.

4. 원도급회사와 하도급업체 사이의 계약


□□건설은 2015년 11월 7일 원고 회사에 호텔 신축공사 중 본관 및 별관의 창호공사 등을 하도급주었습니다.

최초 하도급공사대금은 6억 6,000만 원이었습니다. 이후 원고와 □□건설은 2017년 4월 27일 하도급공사대금을 763,070,000원으로 최종 정산하였습니다.

이 하도급계약의 직접 당사자는 원고 회사와 □□건설이었습니다. 발주자인 피고 회사는 하도급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었습니다.

5. 공사대금 지급관계


피고 회사는 2015년 3월 25일부터 2017년 10월 11일까지 □□건설에 호텔 신축공사대금을 지급하였습니다.

대법원이 확인한 기록에 따르면 피고 회사는 □□건설에 원도급 공사대금을 모두 지급하였습니다. 오히려 피고 회사가 □□건설에 이 사건 도급계약에서 정한 공사대금보다 많은 돈을 지급한 사실까지 인정되었습니다.

□□건설은 2015년 12월 1일부터 2017년 4월 27일까지 원고에게 하도급공사대금으로 합계 597,780,000원을 지급하였습니다.

최종 정산된 하도급공사대금 763,070,000원과 비교하면 약 165,290,000원이 지급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원고는 직접 계약상대방인 □□건설로부터 하도급공사대금 전액을 받지 못하자, 발주회사인 피고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 공사대금 등의 지급을 청구하였습니다.

원고의 주장

원고는 피고 회사와 □□건설이 외형상 별개의 회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회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소외인이 두 회사의 사실상 1인 주주이자 실질적 경영자이고, 두 회사가 오직 호텔의 건설과 운영이라는 하나의 사업을 위하여 이용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원고는 피고 회사가 □□건설과 별개의 법인격을 내세워 하도급공사대금 지급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건설의 채무면탈을 위한 회사제도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피고 회사와 □□건설 사이의 법인격 독립을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원심이 법인격 남용을 인정한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동일인의 지배와 사업목적의 일체성


피고 회사와 □□건설은 모두 소외인이 호텔 건설 및 경영을 위하여 마련한 회사였습니다.

소외인은 두 회사의 사실상 1인 주주이자 실질적인 경영자로서 두 회사의 의사결정을 지배하였습니다.

2. 회계처리와 금전거래의 혼재


□□건설의 회계업무는 피고 회사 직원이 처리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피고 회사, □□건설 및 소외인 사이에는 지급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금전거래가 존재하였습니다. 두 회사가 서로 상대방의 채무를 대신 변제한 사정도 있었습니다.

호텔 공사가 완료된 후에도 피고 회사와 □□건설 사이에 구체적인 공사내역과 비용에 관한 최종 정산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었습니다.

3. □□건설의 책임재산 부족


□□건설은 이 사건 호텔 신축공사 외에는 별도의 공사실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피고 회사로부터 받은 호텔 공사대금이 사실상 원고 등 하도급업체가 강제집행할 수 있는 유일한 책임재산이었습니다.

4. 피고 회사의 호텔 보유와 수익 취득


피고 회사는 □□건설에 송금한 돈 중 일부를 다시 반환받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건설은 하도급대금을 전부 지급하지 못한 반면, 피고 회사는 완공된 호텔을 계속 영업하면서 수익을 취득하고 있었습니다.

원심은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 회사가 □□건설의 채무면탈을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법리

1. 법인격 부인은 채무면탈 목적이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된다


기존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기업의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 기존회사와 신설회사가 별개의 법인이라는 주장은 채권자와의 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채권자는 기존회사와 신설회사 어느 쪽에도 기존회사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2. 기존에 설립된 다른 회사를 이용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 사건에서 하도급채무를 부담한 □□건설은 피고 회사를 설립한 후 새로 설립된 회사가 아니라 소외인이 기존 회사를 인수한 것이었습니다.

대법원은 법인격 부인론이 채무면탈을 위하여 새 회사를 설립한 경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어느 회사가 이미 설립되어 있던 다른 회사를 인수·지배하면서 그 회사를 기존회사의 채무를 면탈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경우에도 동일한 법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의 설립 순서가 아니라 특정 회사의 법인격이 다른 회사의 채무면탈 수단으로 실제 이용되었는지입니다.

3. 실질적 동일성과 채무면탈 목적은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두 회사가 동일한 사람의 지배를 받고 동일한 사업을 수행한다는 사정은 기업 형태와 내용의 실질적 동일성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두 회사가 실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정만으로 법인격 남용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두 요건이 모두 인정되어야 합니다.

첫째, 두 회사의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해야 합니다.

둘째, 한 회사의 채무를 면탈하기 위하여 다른 회사가 설립되거나 이용되었어야 합니다.

따라서 동일인이 두 회사의 1인 주주이고 회계처리를 함께 했다는 사정만으로 다른 회사에 채무를 부담시킬 수는 없습니다.

4.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다른 회사로 이전되었는지가 핵심이다


채무면탈 목적을 판단할 때에는 채무를 부담한 회사의 폐업 당시 경영상태와 자산상황, 다른 회사로 이전·유용된 자산의 유무 및 그 정도, 자산 이전에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법인격 부인의 핵심은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다른 회사로 부당하게 이전되어 채권자의 강제집행이 곤란해졌는지입니다.

다른 회사가 사업의 성과나 수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수익이나 자산이 원래 채무자에게 귀속되어야 할 재산이었는데 정당한 대가 없이 다른 회사로 이전되었다는 점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5. 발주회사는 원도급회사에 공사대금을 모두 지급하였다


이 사건에서 피고 회사는 □□건설에 원도급 공사대금을 모두 지급하였습니다. 오히려 계약에서 정한 공사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지급한 사실도 인정되었습니다.

따라서 피고 회사가 지급해야 할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자신의 재산으로 보유함으로써 □□건설의 책임재산을 감소시켰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하도급공사대금 미지급의 직접적인 원인은 원도급회사인 □□건설이 피고 회사로부터 받은 공사대금을 원고에게 전부 지급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발주회사와 원도급회사를 동일인이 지배한다는 이유만으로 원도급회사가 받은 돈의 사용 결과를 발주회사에 책임지울 수는 없습니다.

6. □□건설의 주요 자산이 피고 회사로 이전되었다는 증거가 없었다


□□건설의 주요 자산이 정당한 대가 없이 피고 회사로 이전되거나 유용되었다고 볼 증거가 없었습니다.

피고 회사가 일부 돈을 반환받았거나 두 회사 사이에 지급원인이 불분명한 거래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반환금이 구체적으로 어떤 법률관계에 따라 지급되었는지, □□건설의 책임재산을 부당하게 감소시킨 것인지, 피고 회사가 정당한 대가 없이 취득한 것인지가 확인되어야 합니다.

원심은 이러한 자금거래의 구체적인 원인과 결과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습니다.

7. 호텔과 그 운영수익이 피고 회사에 귀속된다는 사정만으로 부족하다


원심은 피고 회사가 호텔을 운영하면서 계속 수익을 얻는 반면 □□건설은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점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피고 회사는 호텔 사업의 시행자이자 발주자였고, □□건설은 호텔 신축공사를 수행한 원도급회사였습니다.

피고 회사가 원도급 공사대금을 모두 지급하였다면, 완공된 호텔과 그 운영수익이 피고 회사에 귀속되는 것은 도급계약에 따른 정상적인 결과입니다.

호텔과 운영수익이 피고 회사에 귀속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건설의 재산이 피고 회사로 이전되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8. 회계 혼용은 중요한 정황이지만 독립된 책임 근거는 아니다


피고 회사 직원이 □□건설의 회계처리를 담당하고, 두 회사가 서로의 채무를 대신 변제하며, 지급원인이 불명확한 금전거래가 있었다는 사정은 회사의 독립성이 약하다는 정황입니다.

그러나 법인격 부인을 인정하려면 이러한 회계상 혼재가 실제로 □□건설의 책임재산을 감소시키고 원고의 강제집행을 회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회계와 자금관계가 다소 불분명하다는 사정만으로 모든 회사채무를 서로 부담시키는 것은 법인격 독립의 원칙에 반합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고의 주장처럼 피고 회사와 □□건설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라고 가정하더라도, 피고 회사가 □□건설의 하도급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이용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 회사가 □□건설에 원도급 공사대금을 모두 지급한 점
피고 회사가 계약에서 정한 공사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지급한 사실까지 인정되는 점
□□건설이 원고에게 하도급공사대금 중 597,780,000원을 지급한 점
□□건설의 주요 자산이 피고 회사로 무상 이전되거나 유용되었다는 증거가 없는 점
두 회사 사이의 금전거래가 □□건설의 채무면탈을 위한 것이었는지 충분히 심리되지 않은 점

이에 대법원은 피고 회사의 법인격 남용을 인정한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이 있다고 보아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결론

이 판결은 동일인이 지배하는 발주회사와 원도급회사 사이의 관계에서 법인격 부인을 인정하려면 단순한 지배관계나 회계 혼용을 넘어 구체적인 책임재산의 이전과 채무면탈 목적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발주회사가 원도급회사에 공사대금을 모두 지급하였다면, 원도급회사가 하도급업체에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발주회사에 법인격 부인에 따른 책임을 부담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호텔과 그 운영수익은 원래 발주회사에 귀속될 재산입니다. 이를 원도급회사의 책임재산이 발주회사로 이전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법인격 부인을 위해서는 원도급회사가 보유하던 공사대금이나 다른 자산이 발주회사로 부당하게 반환·이전되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두 회사를 동일인이 지배했는가’가 아니라 ‘원도급회사의 책임재산이 발주회사로 무상 이전되어 하도급채무의 집행이 곤란해졌는가’입니다. 대법원은 후자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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