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
## 1. 판결의 핵심
대법원은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1967년 이래 약 58년간 유지되어 온 다음과 같은 종전 판례를 명시적으로 변경하였다.
>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다.
종전에는 시효가 완성된 채무에 관하여 채무자가 일부 금액을 지급하거나 변제 약속을 하거나 채무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취지의 언행을 하면, 특별한 반증이 없는 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이제는 채무승인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할 수 없다. 채권자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실제로 인식하면서도 그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점을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주장·증명하여야 한다.
이 판결은 단순히 소멸시효에 관한 하나의 추정 법리를 변경한 데 그치지 않는다. 권리·항변권·법적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는 그 결과의 중대성과 이례성에 비추어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일반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를 시효이익 포기에도 명확하게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민사·상사 분쟁 전반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 2. 사건의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모두 상인이었다.
원고는 피고로부터 다음과 같이 여러 차례 돈을 차용하였다.
첫째, 원고는 2006. 12. 28. 피고로부터 3,000만 원을 이자 연 20%, 변제기 2009. 12. 31.로 정하여 차용하였다.
둘째, 2009. 6. 20.에는 9,000만 원을 변제기 2009. 12. 30.로 정하여 차용하였다.
셋째, 2011. 1. 25.에는 2,000만 원을 추가로 차용하였다.
넷째, 원고는 2015. 11. 2. 피고로부터 다시 1억 원을 차용하였다. 당시 작성된 차용증에는 신규 차용금 1억 원과 종전 미수금 1억 4,000만 원을 합하여 총 2억 4,000만 원이라고 기재되어 있었고, 이자는 월 150만 원으로 정해져 있었다.
원고는 2016. 2. 6.부터 2017. 7. 6.까지 피고에게 합계 1,800만 원을 송금하였다. 이 금액은 2015년에 새로 차용한 1억 원에 대한 12개월분의 약정이자와 일치하였다.
그 후 피고가 근저당권을 실행하여 원고 소유 부동산에 대한 임의경매절차가 개시되었고, 피고에게 약 4억 6,000만 원을 배당하는 내용의 배당표가 작성되었다. 원고는 피고의 채권 중 일부가 이미 소멸시효로 소멸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하였다.
##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원고가 종전 차용금의 이자채무에 관한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도 피고에게 일부 금액을 변제하였으므로, 종전 이자채무에 대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원심 판단의 근거는 종전 대법원 판례가 확립한 다음의 추정 법리였다.
>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원심은 원고가 일부 금액을 지급한 사실로부터 종전 이자채무에 관한 시효완성의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를 모두 추정하여 원고의 소멸시효 주장을 배척하였다.
## 4. 대법원은 왜 종전 추정 법리를 폐기하였는가
### 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경험칙이 없다
시효완성 여부는 단순히 일정한 기간이 지났는지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멸시효기간, 시효의 기산점, 권리행사 가능 시점, 시효중단 또는 정지 사유, 채무의 성격과 변제기 등 여러 요소를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은 법률전문가에게도 복잡하고 불명확할 수 있다.
따라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채무의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고 일률적으로 추정할 수 없다.
시효완성 사실에 관한 채무자의 인식은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판단해야 할 사실이지, 일반적인 경험칙에 따라 당연히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 나. 자신의 시효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오히려 이례적이다
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자는 그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중대한 법적 이익을 취득한다.
그런데 채무자가 자신이 이러한 법적 이익을 취득하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포기하고 다시 채무 전부를 부담하겠다고 의사표시하는 것은 통상적이라기보다 이례적인 행동이다.
보통의 채무자는 자신에게 이미 발생한 법적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불리한 법적 지위를 자청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오히려 시효완성 후 채무를 일부 변제한 경우에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채무승인이나 일부 변제라는 외형만으로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은 경험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 다.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는 법적으로 전혀 다른 행위이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완성 전의 채무승인과 시효완성 후의 시효이익 포기를 명확히 구별하였다.
채무승인은 채무자가 상대방의 권리 또는 자신의 채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표시하는 관념의 통지이다. 채무승인 자체에는 특정한 법률효과를 의욕하는 효과의사까지 필요하지 않다.
반면 시효이익 포기는 채무자가 다음 두 가지를 모두 전제로 하는 의사표시이다.
첫째, 채무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둘째, 그러한 시효완성으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외부에 표시하여야 한다.
따라서 채무가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과, 시효완성으로 취득한 법적 이익까지 포기하겠다고 의사표시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채무승인이 인정되더라도 그것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라는 별도의 효과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 라. 중대한 법적 이익의 포기는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대법원은 종전부터 다음과 같은 경우 당사자의 권리 포기 여부를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해 왔다.
* 채권의 포기 또는 채무의 면제
* 손해배상청구권의 포기
* 동시이행항변권의 포기
* 상대방에게 권리 포기와 같은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약정
* 기타 법률상 권리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의사표시
이와 같은 권리 포기는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묵시적 포기가 인정되려면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 또는 법적 이익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이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시효이익 포기도 채무자가 이미 취득한 중대한 법적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이므로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종전 추정 법리는 단순한 채무승인 행위만으로 채무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시효이익 포기를 손쉽게 인정하였다. 이는 권리와 이익의 포기를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해 온 대법원의 일반적인 의사표시 해석 원칙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 마. 종전 추정 법리는 사실상 채무자에게 증명 부담을 전가하였다
종전 법리에 따르면 채권자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하였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되었다.
그 이후에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했다거나 시효이익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반대로 증명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사실상 추정에 불과하므로 증명책임 자체가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는 일단 채무승인이 인정되면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았고, 채무자가 그 추정을 번복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결국 종전 추정 법리는 증명이 어려운 채무자의 내심을 채무자 스스로 해명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본래 채권자가 부담해야 할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증명 부담을 사실상 채무자에게 이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법원은 이러한 획일적인 추정 대신,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그에 필요한 구체적 사실을 주장·증명하는 일반적인 증명책임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 바. 채권추심 과정에서 악용될 우려가 있다
대법원은 종전 법리가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 의해 악용될 우려도 지적하였다.
시효가 이미 완성된 채권에 관하여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소액의 일부 변제, 분할상환 약속, 채무확인서 작성 또는 변제기 연장 요청 등을 유도한 다음, 이를 근거로 전체 채무에 관한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종전 추정 법리와 추정 번복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던 재판 실무가 결합하면 채무자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시효이익을 상실할 수 있었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채권자 편향적인 구조를 바로잡고, 시효제도가 본래 예정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법적 지위를 회복하려는 의미도 갖는다.
## 5. 변경된 대법원 판례
대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면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판시한 다음 판례들을 비롯하여 같은 취지의 종전 판례를 모두 변경하였다.
* 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 대법원 1992. 5. 22. 선고 92다4796 판결
* 대법원 1999. 1. 26. 선고 98다46808 판결
* 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3다12464 판결
*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다244, 251 판결
* 그 밖에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
특히 일부 변제를 이유로 시효가 완성된 이자채무의 시효이익까지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 대법원 2013다12464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 6. 새로운 판단기준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나 일부 변제가 있더라도 시효이익 포기는 자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실제로 알고 있었는지, 나아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시효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는지를 다음 사정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 일부 변제나 채무승인에 이르게 된 동기와 경위
* 채무승인 또는 일부 변제의 자발성
* 채권자의 요청·압박·설득 또는 추심행위가 있었는지
* 일부 변제액과 시효가 완성된 전체 채무액의 차이
* 시효기간이 얼마나 경과한 후 채무승인이 이루어졌는지
* 채무승인 당시와 그 전후의 당사자 언동
* 채무자가 어느 채무를 변제하려고 하였는지
* 여러 채무가 각각 독립된 채무인지
* 당사자 사이의 관계
* 당사자의 거래 경험과 법률지식
* 차용증·채무확인서·상환약정서 등 문서의 구체적인 내용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에 관한 설명을 들었는지
* 채무자가 시효항변을 포기할 합리적인 동기나 이유가 있었는지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 시효이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객관적으로 표시하였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시효이익 포기가 성립한다.
## 7.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
원고가 피고에게 합계 1,800만 원을 지급한 사실은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 금액은 2015년에 새로 차용한 제4 차용금 1억 원에 대한 12개월분의 약정이자와 정확히 일치하였다. 반면 이미 시효가 완성된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와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금액이었다.
또한 원고가 2015년에 작성한 차용증에는 종전 미수금 1억 4,000만 원이 기재되어 있었지만, 이미 시효가 완성된 제1, 2 차용금의 종전 이자채무를 부담하겠다는 내용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원고가 1,800만 원을 지급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지급이 제4 차용금의 이자를 변제한 것인지, 시효가 완성된 종전 이자채무까지 승인하고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인지 확정할 수 없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일부 변제 사실만으로 시효완성에 관한 원고의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를 추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하였다.
원심은 원고가 일부 변제 당시 종전 이자채무의 시효완성 사실을 실제로 알고 있었는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시효이익을 포기하려는 의사를 표시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심리했어야 했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였다.
## 8. 시효이익 포기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판결은 시효완성 후의 채무승인이나 일부 변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시한 것이 아니다.
채무승인은 여전히 시효이익 포기를 판단하는 중요한 간접사실이 될 수 있다.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전체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시효이익 포기가 인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정이 존재하면 시효이익 포기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설명받은 후에도 채무 전부를 변제하겠다고 약정한 경우
* 채무자가 소멸시효 항변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명시한 경우
* 시효완성 사실을 전제로 새로운 분할상환계획을 체결한 경우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음을 문서나 대화에서 명확히 밝힌 경우
*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포기할 합리적인 동기와 대가가 존재하는 경우
또한 채무승인이 시효이익 포기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채무자의 시효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판결의 핵심은 시효이익 포기를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채무승인이라는 하나의 사실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자동적으로 추정하던 판단방식을 폐기한 것**이다.
## 9. 모든 법률관계에서 중요한 이유
이 판결의 직접적인 쟁점은 소멸시효 완성 후의 시효이익 포기이다. 그러나 판결이 제시한 의사표시 해석 원칙은 시효 문제를 넘어 민사·상사 법률관계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시효이익 포기를 다음과 같은 권리 포기 법리와 동일한 원칙 아래에 두었다.
* 채권 포기
* 채무면제
* 손해배상청구권 포기
* 동시이행항변권 포기
* 계약해제권 포기
* 계약상 이의권 포기
* 기타 당사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권리 포기 약정
어떤 당사자가 상대방의 요청에 응하였거나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였거나 협상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항변·법적 이익을 모두 포기하였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권리 포기를 인정하려면 당사자가 다음 사항을 인식하고 의욕하였는지를 엄격하게 심리해야 한다.
첫째, 자신에게 해당 권리나 법적 이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둘째, 그 권리나 이익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불리한 결과를 인식하고 있었는가.
셋째, 그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권리나 이익을 포기하려는 의사를 외부에 표시하였는가.
넷째, 그와 같은 포기를 할 합리적인 동기와 경위가 존재하는가.
따라서 묵시적인 권리 포기를 주장하는 당사자는 단순한 외형적 행위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해당 권리의 존재와 포기의 효과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포기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정을 증명해야 한다.
이 판결은 그동안 일부 변제, 확인서 작성, 정산 협의, 변제기 연장, 협상 참여, 이의 없는 업무처리 등 제한적인 사정만으로 권리나 항변의 포기를 쉽게 인정하던 해석에 중요한 제동을 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10. 계약 및 분쟁 실무에 미치는 영향
### 가. 채권자의 대응
채권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자와 상환협의를 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일부 금액을 받거나 채무확인서를 작성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시효이익 포기를 명확히 하려면 채무자가 다음 사항을 인식하고 동의하였다는 점이 문서에 드러나야 한다.
* 해당 채권의 발생 원인과 금액
* 소멸시효 완성 여부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
* 그럼에도 시효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점
* 잔존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점
* 분할상환의 금액과 기한
다만 채권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시효이익 포기를 강요하거나 충분한 설명 없이 형식적인 문서를 작성하게 한 경우에는 그 문서의 효력이 다시 문제될 수 있다.
### 나. 채무자의 대응
채무자는 오래된 채무에 관하여 일부 금액을 지급하거나 채무확인서·상환계획서·분할변제약정서를 작성하기 전에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이 판결로 일부 변제만으로 시효이익 포기가 추정되지는 않지만, 일부 변제와 그 전후의 언동은 여전히 시효이익 포기를 인정하는 중요한 간접사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채무만을 변제하는 경우에는 변제 대상과 목적을 명확하게 표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여러 채무 중 일부 채무만 변제하려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를 문서나 송금기록에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
> 이 지급은 특정 채무에 대한 변제이며, 그 밖의 채무의 존재·금액이나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인정하거나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취지가 아니다.
### 다. 소송에서의 주장·증명
시효이익 포기가 쟁점이 된 소송에서는 더 이상 “채무승인이 있었으므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는 측은 다음 사실을 구체적으로 주장·증명해야 한다.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근거
*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포기하려 했던 동기
* 채무승인 또는 일부 변제의 정확한 대상
* 문서 작성과 일부 변제의 구체적인 경위
* 당시 당사자 사이에 오간 설명과 대화
* 채무자의 거래 경험과 법률지식
* 채무자가 얻은 반대급부나 경제적 이익
*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가 외부에 명확히 표시되었다고 볼 사정
반대로 채무자는 일부 변제가 다른 채무를 위한 것이었다거나,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했다거나, 채권자의 요청이나 압박에 따라 소액을 지급하였다는 구체적 사정을 주장할 수 있다.
## 11. 별개의견의 입장
다섯 명의 대법관은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종전 추정 법리를 폐기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별개의견을 제시하였다.
별개의견은 추정 법리를 유지하더라도 이 사건의 1,800만 원은 제4 차용금의 12개월분 약정이자와 일치하므로, 그와 독립된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의 시효이익까지 포기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종전 추정 법리는 사실상 추정에 불과하여 구체적인 반증으로 번복될 수 있고, 이미 대법원이 개별 사건에서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를 구별해 왔으므로 판례 변경은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종전 추정 법리가 실제 재판에서 사실상 의제처럼 기능하면서, 채무승인이 인정되면 시효이익 포기로 곧바로 이어지는 간편한 판단경로를 제공해 왔다고 보았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는 개별 사건에서 이루어져야 할 세밀한 의사표시 해석이 생략되고, 채무자가 추정을 번복하기 어려운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 12. 판결의 실질적 의미
이 판결로 인하여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는 것은 종전보다 현저히 어려워졌다.
종전에는 채무승인 또는 일부 변제가 인정되면 시효완성에 대한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 의사가 함께 추정되었다. 이제는 채무승인은 여러 판단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고, 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실제로 인식하면서도 그 법적 이익을 포기하려는 효과의사를 표시하였는지를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
판결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채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둘째, 일부 변제만으로 전체 채무에 관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할 수 없다.
셋째, 여러 채무가 존재하는 경우 특정 채무의 변제를 다른 독립된 채무의 승인이나 시효이익 포기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넷째,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는 측이 채무자의 시효완성 인식과 포기의 효과의사를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다섯째, 권리·항변권·법적 이익의 묵시적 포기는 그 이례성과 중대한 결과에 비추어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여섯째, 단순한 행위의 외형만으로 당사자에게 중대한 법적 불이익을 부과해서는 안 되고, 실제 의사와 구체적인 행위 경위를 개별적으로 심리해야 한다.
결국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채권자 중심의 획일적인 추정구조를 폐기하고, 의사표시의 개별적·중립적 해석과 당사자의 자기결정을 중심으로 법리를 재구성한 판결이다.
그 영향은 시효가 완성된 채무의 일부 변제에 그치지 않는다. 각종 계약과 합의, 정산, 변제, 협상 및 분쟁 과정에서 어느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나 항변을 묵시적으로 포기하였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안에서, 법원은 포기의 대상에 관한 인식과 불리한 법적 효과를 감수하려는 의사가 실제로 존재하였는지를 더욱 엄격하게 심리해야 한다.
따라서 이 판결은 시효이익 포기를 사실상 쉽게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 판결인 동시에, 모든 민사·상사 법률관계에서 묵시적 권리 포기의 인정 범위를 제한하는 중요한 의사표시 해석 판례로 평가할 수 있다.
## 13. 판결의 핵심 법리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
시효이익 포기가 인정되려면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그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표시하였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의사표시가 있었는지는 일부 변제나 채무승인의 동기·경위·자발성, 변제액과 시효완성 채무액의 차이, 시효기간의 도과 정도, 당시와 전후의 언동, 당사자의 관계와 거래 경험 및 법률지식 등 개별 사건의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권리나 법적 이익의 포기는 당사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이례적인 의사표시이므로, 묵시적 포기의 인정은 엄격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 1. 판결의 핵심
대법원은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1967년 이래 약 58년간 유지되어 온 다음과 같은 종전 판례를 명시적으로 변경하였다.
>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다.
종전에는 시효가 완성된 채무에 관하여 채무자가 일부 금액을 지급하거나 변제 약속을 하거나 채무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취지의 언행을 하면, 특별한 반증이 없는 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이제는 채무승인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할 수 없다. 채권자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실제로 인식하면서도 그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점을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주장·증명하여야 한다.
이 판결은 단순히 소멸시효에 관한 하나의 추정 법리를 변경한 데 그치지 않는다. 권리·항변권·법적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는 그 결과의 중대성과 이례성에 비추어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일반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를 시효이익 포기에도 명확하게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민사·상사 분쟁 전반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 2. 사건의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모두 상인이었다.
원고는 피고로부터 다음과 같이 여러 차례 돈을 차용하였다.
첫째, 원고는 2006. 12. 28. 피고로부터 3,000만 원을 이자 연 20%, 변제기 2009. 12. 31.로 정하여 차용하였다.
둘째, 2009. 6. 20.에는 9,000만 원을 변제기 2009. 12. 30.로 정하여 차용하였다.
셋째, 2011. 1. 25.에는 2,000만 원을 추가로 차용하였다.
넷째, 원고는 2015. 11. 2. 피고로부터 다시 1억 원을 차용하였다. 당시 작성된 차용증에는 신규 차용금 1억 원과 종전 미수금 1억 4,000만 원을 합하여 총 2억 4,000만 원이라고 기재되어 있었고, 이자는 월 150만 원으로 정해져 있었다.
원고는 2016. 2. 6.부터 2017. 7. 6.까지 피고에게 합계 1,800만 원을 송금하였다. 이 금액은 2015년에 새로 차용한 1억 원에 대한 12개월분의 약정이자와 일치하였다.
그 후 피고가 근저당권을 실행하여 원고 소유 부동산에 대한 임의경매절차가 개시되었고, 피고에게 약 4억 6,000만 원을 배당하는 내용의 배당표가 작성되었다. 원고는 피고의 채권 중 일부가 이미 소멸시효로 소멸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하였다.
##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원고가 종전 차용금의 이자채무에 관한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도 피고에게 일부 금액을 변제하였으므로, 종전 이자채무에 대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원심 판단의 근거는 종전 대법원 판례가 확립한 다음의 추정 법리였다.
>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원심은 원고가 일부 금액을 지급한 사실로부터 종전 이자채무에 관한 시효완성의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를 모두 추정하여 원고의 소멸시효 주장을 배척하였다.
## 4. 대법원은 왜 종전 추정 법리를 폐기하였는가
### 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경험칙이 없다
시효완성 여부는 단순히 일정한 기간이 지났는지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멸시효기간, 시효의 기산점, 권리행사 가능 시점, 시효중단 또는 정지 사유, 채무의 성격과 변제기 등 여러 요소를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은 법률전문가에게도 복잡하고 불명확할 수 있다.
따라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채무의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고 일률적으로 추정할 수 없다.
시효완성 사실에 관한 채무자의 인식은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판단해야 할 사실이지, 일반적인 경험칙에 따라 당연히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 나. 자신의 시효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오히려 이례적이다
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자는 그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중대한 법적 이익을 취득한다.
그런데 채무자가 자신이 이러한 법적 이익을 취득하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포기하고 다시 채무 전부를 부담하겠다고 의사표시하는 것은 통상적이라기보다 이례적인 행동이다.
보통의 채무자는 자신에게 이미 발생한 법적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불리한 법적 지위를 자청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오히려 시효완성 후 채무를 일부 변제한 경우에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채무승인이나 일부 변제라는 외형만으로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은 경험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 다.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는 법적으로 전혀 다른 행위이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완성 전의 채무승인과 시효완성 후의 시효이익 포기를 명확히 구별하였다.
채무승인은 채무자가 상대방의 권리 또는 자신의 채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표시하는 관념의 통지이다. 채무승인 자체에는 특정한 법률효과를 의욕하는 효과의사까지 필요하지 않다.
반면 시효이익 포기는 채무자가 다음 두 가지를 모두 전제로 하는 의사표시이다.
첫째, 채무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둘째, 그러한 시효완성으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외부에 표시하여야 한다.
따라서 채무가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과, 시효완성으로 취득한 법적 이익까지 포기하겠다고 의사표시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채무승인이 인정되더라도 그것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라는 별도의 효과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 라. 중대한 법적 이익의 포기는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대법원은 종전부터 다음과 같은 경우 당사자의 권리 포기 여부를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해 왔다.
* 채권의 포기 또는 채무의 면제
* 손해배상청구권의 포기
* 동시이행항변권의 포기
* 상대방에게 권리 포기와 같은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약정
* 기타 법률상 권리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의사표시
이와 같은 권리 포기는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묵시적 포기가 인정되려면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 또는 법적 이익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이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시효이익 포기도 채무자가 이미 취득한 중대한 법적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이므로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종전 추정 법리는 단순한 채무승인 행위만으로 채무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시효이익 포기를 손쉽게 인정하였다. 이는 권리와 이익의 포기를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해 온 대법원의 일반적인 의사표시 해석 원칙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 마. 종전 추정 법리는 사실상 채무자에게 증명 부담을 전가하였다
종전 법리에 따르면 채권자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하였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되었다.
그 이후에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했다거나 시효이익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반대로 증명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사실상 추정에 불과하므로 증명책임 자체가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는 일단 채무승인이 인정되면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았고, 채무자가 그 추정을 번복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결국 종전 추정 법리는 증명이 어려운 채무자의 내심을 채무자 스스로 해명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본래 채권자가 부담해야 할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증명 부담을 사실상 채무자에게 이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법원은 이러한 획일적인 추정 대신,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그에 필요한 구체적 사실을 주장·증명하는 일반적인 증명책임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 바. 채권추심 과정에서 악용될 우려가 있다
대법원은 종전 법리가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 의해 악용될 우려도 지적하였다.
시효가 이미 완성된 채권에 관하여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소액의 일부 변제, 분할상환 약속, 채무확인서 작성 또는 변제기 연장 요청 등을 유도한 다음, 이를 근거로 전체 채무에 관한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종전 추정 법리와 추정 번복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던 재판 실무가 결합하면 채무자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시효이익을 상실할 수 있었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채권자 편향적인 구조를 바로잡고, 시효제도가 본래 예정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법적 지위를 회복하려는 의미도 갖는다.
## 5. 변경된 대법원 판례
대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면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판시한 다음 판례들을 비롯하여 같은 취지의 종전 판례를 모두 변경하였다.
* 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 대법원 1992. 5. 22. 선고 92다4796 판결
* 대법원 1999. 1. 26. 선고 98다46808 판결
* 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3다12464 판결
*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다244, 251 판결
* 그 밖에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
특히 일부 변제를 이유로 시효가 완성된 이자채무의 시효이익까지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 대법원 2013다12464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 6. 새로운 판단기준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나 일부 변제가 있더라도 시효이익 포기는 자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실제로 알고 있었는지, 나아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시효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는지를 다음 사정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 일부 변제나 채무승인에 이르게 된 동기와 경위
* 채무승인 또는 일부 변제의 자발성
* 채권자의 요청·압박·설득 또는 추심행위가 있었는지
* 일부 변제액과 시효가 완성된 전체 채무액의 차이
* 시효기간이 얼마나 경과한 후 채무승인이 이루어졌는지
* 채무승인 당시와 그 전후의 당사자 언동
* 채무자가 어느 채무를 변제하려고 하였는지
* 여러 채무가 각각 독립된 채무인지
* 당사자 사이의 관계
* 당사자의 거래 경험과 법률지식
* 차용증·채무확인서·상환약정서 등 문서의 구체적인 내용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에 관한 설명을 들었는지
* 채무자가 시효항변을 포기할 합리적인 동기나 이유가 있었는지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 시효이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객관적으로 표시하였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시효이익 포기가 성립한다.
## 7.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
원고가 피고에게 합계 1,800만 원을 지급한 사실은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 금액은 2015년에 새로 차용한 제4 차용금 1억 원에 대한 12개월분의 약정이자와 정확히 일치하였다. 반면 이미 시효가 완성된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와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금액이었다.
또한 원고가 2015년에 작성한 차용증에는 종전 미수금 1억 4,000만 원이 기재되어 있었지만, 이미 시효가 완성된 제1, 2 차용금의 종전 이자채무를 부담하겠다는 내용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원고가 1,800만 원을 지급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지급이 제4 차용금의 이자를 변제한 것인지, 시효가 완성된 종전 이자채무까지 승인하고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인지 확정할 수 없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일부 변제 사실만으로 시효완성에 관한 원고의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를 추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하였다.
원심은 원고가 일부 변제 당시 종전 이자채무의 시효완성 사실을 실제로 알고 있었는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시효이익을 포기하려는 의사를 표시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심리했어야 했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였다.
## 8. 시효이익 포기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판결은 시효완성 후의 채무승인이나 일부 변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시한 것이 아니다.
채무승인은 여전히 시효이익 포기를 판단하는 중요한 간접사실이 될 수 있다.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전체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시효이익 포기가 인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정이 존재하면 시효이익 포기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설명받은 후에도 채무 전부를 변제하겠다고 약정한 경우
* 채무자가 소멸시효 항변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명시한 경우
* 시효완성 사실을 전제로 새로운 분할상환계획을 체결한 경우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음을 문서나 대화에서 명확히 밝힌 경우
*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포기할 합리적인 동기와 대가가 존재하는 경우
또한 채무승인이 시효이익 포기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채무자의 시효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판결의 핵심은 시효이익 포기를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채무승인이라는 하나의 사실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자동적으로 추정하던 판단방식을 폐기한 것**이다.
## 9. 모든 법률관계에서 중요한 이유
이 판결의 직접적인 쟁점은 소멸시효 완성 후의 시효이익 포기이다. 그러나 판결이 제시한 의사표시 해석 원칙은 시효 문제를 넘어 민사·상사 법률관계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시효이익 포기를 다음과 같은 권리 포기 법리와 동일한 원칙 아래에 두었다.
* 채권 포기
* 채무면제
* 손해배상청구권 포기
* 동시이행항변권 포기
* 계약해제권 포기
* 계약상 이의권 포기
* 기타 당사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권리 포기 약정
어떤 당사자가 상대방의 요청에 응하였거나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였거나 협상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항변·법적 이익을 모두 포기하였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권리 포기를 인정하려면 당사자가 다음 사항을 인식하고 의욕하였는지를 엄격하게 심리해야 한다.
첫째, 자신에게 해당 권리나 법적 이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둘째, 그 권리나 이익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불리한 결과를 인식하고 있었는가.
셋째, 그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권리나 이익을 포기하려는 의사를 외부에 표시하였는가.
넷째, 그와 같은 포기를 할 합리적인 동기와 경위가 존재하는가.
따라서 묵시적인 권리 포기를 주장하는 당사자는 단순한 외형적 행위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해당 권리의 존재와 포기의 효과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포기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정을 증명해야 한다.
이 판결은 그동안 일부 변제, 확인서 작성, 정산 협의, 변제기 연장, 협상 참여, 이의 없는 업무처리 등 제한적인 사정만으로 권리나 항변의 포기를 쉽게 인정하던 해석에 중요한 제동을 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10. 계약 및 분쟁 실무에 미치는 영향
### 가. 채권자의 대응
채권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자와 상환협의를 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일부 금액을 받거나 채무확인서를 작성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시효이익 포기를 명확히 하려면 채무자가 다음 사항을 인식하고 동의하였다는 점이 문서에 드러나야 한다.
* 해당 채권의 발생 원인과 금액
* 소멸시효 완성 여부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
* 그럼에도 시효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점
* 잔존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점
* 분할상환의 금액과 기한
다만 채권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시효이익 포기를 강요하거나 충분한 설명 없이 형식적인 문서를 작성하게 한 경우에는 그 문서의 효력이 다시 문제될 수 있다.
### 나. 채무자의 대응
채무자는 오래된 채무에 관하여 일부 금액을 지급하거나 채무확인서·상환계획서·분할변제약정서를 작성하기 전에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이 판결로 일부 변제만으로 시효이익 포기가 추정되지는 않지만, 일부 변제와 그 전후의 언동은 여전히 시효이익 포기를 인정하는 중요한 간접사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채무만을 변제하는 경우에는 변제 대상과 목적을 명확하게 표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여러 채무 중 일부 채무만 변제하려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를 문서나 송금기록에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
> 이 지급은 특정 채무에 대한 변제이며, 그 밖의 채무의 존재·금액이나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인정하거나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취지가 아니다.
### 다. 소송에서의 주장·증명
시효이익 포기가 쟁점이 된 소송에서는 더 이상 “채무승인이 있었으므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는 측은 다음 사실을 구체적으로 주장·증명해야 한다.
*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근거
*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포기하려 했던 동기
* 채무승인 또는 일부 변제의 정확한 대상
* 문서 작성과 일부 변제의 구체적인 경위
* 당시 당사자 사이에 오간 설명과 대화
* 채무자의 거래 경험과 법률지식
* 채무자가 얻은 반대급부나 경제적 이익
*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가 외부에 명확히 표시되었다고 볼 사정
반대로 채무자는 일부 변제가 다른 채무를 위한 것이었다거나,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했다거나, 채권자의 요청이나 압박에 따라 소액을 지급하였다는 구체적 사정을 주장할 수 있다.
## 11. 별개의견의 입장
다섯 명의 대법관은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종전 추정 법리를 폐기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별개의견을 제시하였다.
별개의견은 추정 법리를 유지하더라도 이 사건의 1,800만 원은 제4 차용금의 12개월분 약정이자와 일치하므로, 그와 독립된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의 시효이익까지 포기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종전 추정 법리는 사실상 추정에 불과하여 구체적인 반증으로 번복될 수 있고, 이미 대법원이 개별 사건에서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를 구별해 왔으므로 판례 변경은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종전 추정 법리가 실제 재판에서 사실상 의제처럼 기능하면서, 채무승인이 인정되면 시효이익 포기로 곧바로 이어지는 간편한 판단경로를 제공해 왔다고 보았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는 개별 사건에서 이루어져야 할 세밀한 의사표시 해석이 생략되고, 채무자가 추정을 번복하기 어려운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 12. 판결의 실질적 의미
이 판결로 인하여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는 것은 종전보다 현저히 어려워졌다.
종전에는 채무승인 또는 일부 변제가 인정되면 시효완성에 대한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 의사가 함께 추정되었다. 이제는 채무승인은 여러 판단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고, 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실제로 인식하면서도 그 법적 이익을 포기하려는 효과의사를 표시하였는지를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
판결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채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둘째, 일부 변제만으로 전체 채무에 관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할 수 없다.
셋째, 여러 채무가 존재하는 경우 특정 채무의 변제를 다른 독립된 채무의 승인이나 시효이익 포기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넷째,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는 측이 채무자의 시효완성 인식과 포기의 효과의사를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다섯째, 권리·항변권·법적 이익의 묵시적 포기는 그 이례성과 중대한 결과에 비추어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여섯째, 단순한 행위의 외형만으로 당사자에게 중대한 법적 불이익을 부과해서는 안 되고, 실제 의사와 구체적인 행위 경위를 개별적으로 심리해야 한다.
결국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채권자 중심의 획일적인 추정구조를 폐기하고, 의사표시의 개별적·중립적 해석과 당사자의 자기결정을 중심으로 법리를 재구성한 판결이다.
그 영향은 시효가 완성된 채무의 일부 변제에 그치지 않는다. 각종 계약과 합의, 정산, 변제, 협상 및 분쟁 과정에서 어느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나 항변을 묵시적으로 포기하였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안에서, 법원은 포기의 대상에 관한 인식과 불리한 법적 효과를 감수하려는 의사가 실제로 존재하였는지를 더욱 엄격하게 심리해야 한다.
따라서 이 판결은 시효이익 포기를 사실상 쉽게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 판결인 동시에, 모든 민사·상사 법률관계에서 묵시적 권리 포기의 인정 범위를 제한하는 중요한 의사표시 해석 판례로 평가할 수 있다.
## 13. 판결의 핵심 법리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
시효이익 포기가 인정되려면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그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표시하였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의사표시가 있었는지는 일부 변제나 채무승인의 동기·경위·자발성, 변제액과 시효완성 채무액의 차이, 시효기간의 도과 정도, 당시와 전후의 언동, 당사자의 관계와 거래 경험 및 법률지식 등 개별 사건의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권리나 법적 이익의 포기는 당사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이례적인 의사표시이므로, 묵시적 포기의 인정은 엄격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