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총회 결의 없는 도시개발조합의 연대보증과 법인의 불법행위책임

핵심 결론 대표자의 행위가 외형상 직무행위라도 상대방이 권한 제한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몰랐다면 법인은 책임지지 않는다. 전문성·거래경험·법령 확인 가능성·우회거래 경위 등을 종합하여 중과실을 판단한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24다229343

판례번호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4다229343 판결

관련규정

민법 제35조 제1항(법인의 불법행위능력)

법인은 이사 기타 대표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사 기타 대표자는 이로 인하여 자기의 손해배상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도시개발법 제15조(조합의 법인격 등)

도시개발법 시행령 제35조(총회의 의결사항)

이 사건 당시 도시개발법 제15조 제3항, 같은 법 시행령 제35조 제3호 및 조합 정관은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이율 및 상환방법을 조합원 총회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사실관계

원고는 1997년 설립된 회사로서 건축설계·감리업, 건설사업관리업, 부동산개발사업 및 도시정비사업전문관리업 등을 영위하였다.
피고는 청주시 일대 약 137,960㎡를 사업시행구역으로 하여 도로 등 기반시설을 조성하고 공동주택용지와 단독주택용지를 개발하며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도시개발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도시개발사업조합이었다.
원고는 2011년경 이 사건 도시개발사업 시행구역 내 토지를 취득하여 피고 조합의 조합원이 되었다.
피고 조합의 조합장은 자신의 관련 회사 등에 대한 원고의 대여금채무를 피고 조합 명의로 연대보증하였다.
구체적으로 원고는 2016년 8월 18일 피고 조합장이 대표이사로 재직하는 회사에 2억 원을 대여하였고, 조합장은 피고를 대표하여 그 대여금채무를 연대보증하였다.
원고는 같은 달 24일 다른 회사에도 5억 원을 대여하였고, 조합장은 다시 피고를 대표하여 그 차용금채무를 연대보증하였다.
그러나 당시 도시개발법령과 피고 조합의 정관은 자금 차입과 그 방법·이율 및 상환방법을 총회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었다. 이 사건 연대보증에 대해서는 피고 조합의 총회 결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고는 피고 조합에 대하여 주위적으로 연대보증계약에 따른 보증금의 지급을 청구하고, 예비적으로 조합장의 불법행위에 관하여 민법 제35조 제1항에 따른 법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주장하였다.
원심은 조합장의 연대보증이 외관상 대표자의 직무에 관한 행위에 해당하고, 원고가 총회 결의 없이 연대보증이 이루어진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피고 조합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법리

1. 대표자의 행위가 외형상 직무와 관련되면 법인의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민법 제35조 제1항에 따라 법인의 대표자가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법인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대표자의 행위가 법인 내부적으로 정당한 권한에 기초한 적법한 행위일 필요는 없다.
대표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행위했거나 그 행위가 법령 또는 정관을 위반했더라도, 행위의 외형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때 대표자의 직무에 관한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면 민법 제35조 제1항의 직무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대표자의 행위가 무권한이거나 내부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위반했다는 사정만으로 법인의 불법행위책임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도 조합장의 연대보증은 피고 도시개발조합의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부족하더라도, 외관상 조합장이 피고를 대표하여 체결한 행위이므로 대표자의 직무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유지되었다.

2. 상대방의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법인의 책임이 배제된다

대표자의 행위가 외형상 직무행위에 해당하더라도 거래 상대방이 그 행위가 실제로는 대표자의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법인에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
거래 상대방이 중대한 과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법인 대표자의 권한 남용으로부터 선의의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되, 상대방에게 거의 고의에 가까운 주의의무 위반이 있는 경우까지 법인과 구성원들에게 손해를 부담시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데 근거한다.

3. 중대한 과실은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 결여를 의미한다

대법원은 민법 제35조에서 말하는 중대한 과실을 일반적인 과실보다 엄격하게 정의하였다.
중대한 과실이란 거래 상대방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대표자의 행위가 직무권한 내에서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알 수 있었는데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만연히 권한 내의 행위라고 믿은 경우를 말한다.
그 주의의무 위반은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하고 거의 고의에 가까울 정도여야 한다.
아울러 공평의 관점에서 그 거래 상대방을 법인의 책임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관계 법령이나 정관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언제나 중과실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거래의 구체적인 경위와 상대방의 전문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4. 상대방의 전문성과 지위는 중과실 판단의 중요한 요소이다

대법원은 상대방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판단할 때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첫째, 대표자의 행위가 법령이나 정관상의 제한을 위반한다는 점을 상대방이 쉽게 인식할 수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이 해당 분야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 또는 전문사업자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셋째, 상대방과 법인 사이의 종전 거래관계 및 법인의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알 수 있었던 사정을 살펴야 한다.
넷째, 해당 거래의 성질과 내용이 통상적인 거래인지, 비정상적인 우회거래인지 고려해야 한다.
다섯째, 거래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법인과 그 구성원에게 귀속되는지, 아니면 대표자 또는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되는지도 중요한 판단자료가 된다.

5. 원고는 도시개발사업에 관한 전문성과 조합원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원고는 약 27년 동안 도시정비사업 등에 참여하면서 공동주택의 건축설계와 인허가 업무를 수행해 온 회사였다.
원고 대표이사 역시 건축사로서 도시개발사업의 구조와 인허가 절차에 관하여 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원고는 이 사건 사업구역 내 토지를 취득하여 피고 조합의 조합원 지위에 있었다.
원고는 피고 조합의 임시총회 소집통지를 받고 조합 운영비 조달과 관련된 안건에 관한 총회 의결에 참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에 따라 조합의 운영비 조달이나 자금 차입이 총회 의결사항이라는 점을 인식하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전문성과 지위는 일반적인 거래 상대방보다 강화된 확인 가능성을 인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6. 조합 명의의 직접 차입을 피하기 위한 우회거래라는 사정이 있었다

피고 조합장은 원고 대표이사에게 피고 조합 명의로 직접 돈을 차입하면 법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다른 회사를 주채무자로 하고 피고 조합이 연대보증하는 방식을 제안하였다.
이는 처음부터 도시개발조합이 직접 차입하는 경우 요구되는 법적 절차를 피하기 위한 우회거래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었다.
원고로서는 피고 조합 관계자나 원고의 임직원 또는 외부 법률전문가를 통하여 관계 법령과 조합 정관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원고는 총회 의결이 필요한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조합장 개인의 대표행위만을 믿고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거래 경위에 비추어 원고가 단순히 법률관계를 잘못 판단한 정도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것으로 평가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았다.

7. 대여금의 경제적 이익이 조합보다 제3자에게 귀속되었다

이 사건 대여금은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지급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은 피고 조합이나 조합원들이 아니라 사업시행대행사 등 제3자에게 귀속되었다.
특히 대여금은 사업시행대행사가 대출받은 돈의 선이자 등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피고 조합이 직접 경제적 이익을 얻지 않으면서 다른 회사의 채무를 연대보증하는 구조였다.
이는 통상적인 조합의 자금조달 행위와 달랐고, 원고가 조합장의 권한과 총회 의결 여부를 더욱 신중하게 확인했어야 할 사정으로 평가되었다.

8. 총회 결의 규정은 조합원 보호를 위한 본질적인 절차이다

도시개발법령이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이율 및 상환방법을 총회의 필수 의결사항으로 정한 것은 단순한 내부 업무처리 규정이 아니다.
도시개발사업은 장기간 진행되고 자금조달에 따라 조합원들의 재산상 권리와 의무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조합의 중요 의무부담행위에 조합원들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도록 하고, 조합장이나 소수 임원의 전횡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총회 의결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법령상의 제한은 사건 당시 이미 장기간 시행되어 일반에 공지되어 있었다.
대법원은 원고가 전문사업자이자 피고 조합의 조합원이고 총회 결의 없는 연대보증의 직접 상대방이라는 점에서, 법령이나 정관에 총회 결의와 같은 절차적 요건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당연히 기대되었다고 판단하였다.

9. 법인의 책임을 인정하려면 거래 상대방의 보호가치도 심리해야 한다

이 판결은 대표자의 행위에 외형상 직무관련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법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법원의 판단은 다음 두 단계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대표자의 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법인의 직무에 관한 행위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다음 거래 상대방이 대표자의 권한 일탈이나 법정 절차 위반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것은 아닌지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
특히 전문사업자가 법령상 의사결정 절차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고, 대표자의 특수관계회사를 통한 비정상적인 우회거래라는 사정까지 존재한다면 공평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결론

대법원은 이 사건 연대보증이 외형상 피고 조합 대표자의 직무에 관한 행위라고 본 원심의 판단은 유지하였다.
그러나 원고는 장기간 도시정비사업에 참여한 전문회사이자 피고 조합의 조합원이었고, 조합의 자금조달이 총회 의결사항임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또한 조합장이 직접 차입 대신 특수관계회사를 주채무자로 세우고 조합이 연대보증하는 우회방식을 요청하였으며, 대여금의 경제적 이익도 피고 조합보다 제3자에게 귀속되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총회 의결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 절차가 누락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확인하지 않은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원고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부정하고 피고 조합의 민법 제35조 제1항상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 등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다.
이 판결은 법인 대표자의 무권한·권한남용 행위에서 외형상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더라도 법인의 책임이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며, 전문사업자가 법령·정관상의 핵심 승인절차를 확인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우회거래에 참여했다면 피해자로서의 보호가 부정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한 중요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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