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번호
원심판결
제1심판결
서울서부지방법원 2022. 12. 8. 선고 2020가합41903 판결
※ 제1심판결의 독립된 국가법령정보센터 판례 페이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관련판례
-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9다226135 판결 — 법률의 유추적용 요건과 한계
- 대법원 2002. 1. 25. 선고 2001다52506 판결 — 고의의 불법행위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경합하는 경우 상계금지
- 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19776, 19783 판결 — 고의의 불법행위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이 경합하는 경우 상계금지
관련법령
- 민법 제105조, 제476조, 제492조, 제496조, 제603조 제2항
- 이자제한법 제2조 제1항·제3항·제4항
- 구 이자제한법(2014. 6. 11. 대통령령 제2537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의 최고이자율에 관한 규정
- 구 이자제한법(2017. 11. 7. 대통령령 제2841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의 최고이자율에 관한 규정
사실관계
피고는 2000년경부터 알고 지내던 원고의 언니에게 주식과 채권 투자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며 투자를 권유하였다. 피고는 원고와 원고의 언니로부터 수십 차례 돈을 받아 투자원금·이자·수익금 명목으로 일부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장기간 금전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2010년 9월 29일경부터 2014년 11월 17일경까지 피고에게 여러 차례 돈을 지급하였다. 원심은 원고가 피고에게 총 427,500,000원을 대여하였다고 인정하였다.
피고는 원고와 원고의 언니에게 원금과 이자 또는 투자수익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이들을 기망하여 돈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피고는 징역 2년의 유죄판결을 선고받았고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확정된 형사판결의 범죄사실에는 피고가 원고로부터 18회에 걸쳐 합계 407,500,000원을 편취한 내용과 원고의 언니로부터 18회에 걸쳐 합계 600,780,000원을 편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이 아니라 소비대차계약에 따른 대여금 원금과 약정이자 또는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피고는 원고에게 2010년 10월 15일부터 2015년 3월 16일까지 여러 차례 돈을 지급하였다. 그중 일부는 이자제한법상 최고이자율을 초과하여 지급한 이자였고, 초과이자를 원금에 충당한 후에도 일부 초과지급액이 남았다.
피고는 이 초과지급액에 관한 부당이득반환채권 또는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원고의 잔존 대여금채권과 상계한다고 항변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가 고의의 기망행위로 자신에게 돈을 대여하게 하였으므로, 민법 제496조를 유추적용하여 피고의 상계항변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피고가 원고를 기망하여 돈을 편취하였다는 형사판결이 확정된 사실을 인정하였다.
다만 원고가 이 사건에서 행사하는 권리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이 아니라 소비대차계약에 따른 대여금채권이라고 보았다.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대여금채권에 민법 제496조를 유추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 원고가 행사하는 대여금채권은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이 아니다.
- 계약상 대여금채권과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발생원인과 부대채권의 범위 등에서 성격이 다르다.
- 원고가 계약상 대여금청구를 선택한 이상 이를 실질적으로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
- 따라서 피고는 초과이자 지급으로 발생한 부당이득반환채권 또는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할 수 있다.
원심은 변제충당과 상계 결과를 반영하여 피고가 원고에게 72,888,106원과 각 해당 금액에 대한 약정이자 또는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명하였다.
법리 / 대법원의 판단
1. 법률의 유추적용은 법률의 흠결을 보충하는 방법이다
민사법의 문리해석이나 논리해석만으로 현실적인 분쟁을 해결할 수 없거나 사회적 정의관념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 법원은 실정법의 입법정신을 살려 유사한 법률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두 사안 사이에 일부 공통점이나 유사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추적용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유추적용이 인정되려면 다음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 해당 사안에 직접 적용할 법적 규율이 존재하지 않을 것
- 규율이 없는 사안과 기존 법률이 규율하는 사안 사이에 본질적인 공통점 또는 유사점이 있을 것
- 법규범의 체계에 부합할 것
- 해당 법률의 입법 의도와 목적에 비추어 유추적용이 정당할 것
2. 민법 제496조의 취지
민법 제496조는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채무자는 상계로 피해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그 입법 취지는 다음과 같다.
- 가해자가 상계를 예상하고 보복적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한다.
- 불법행위 피해자가 손해배상금을 현실적으로 지급받게 한다.
- 고의의 불법행위자에게 상계금지라는 불이익을 가한다.
- 고의의 불법행위를 억제하고 가해자를 제재한다.
이는 불법행위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제재한다는 사회적 정의관념을 상계제도에 반영한 것이다.
3. 민법 제496조는 원칙적으로 고의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에 적용된다
민법 제496조는 수동채권이 고의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배상채권인 경우에 적용된다.
따라서 수동채권이 단순한 계약상 이행청구권, 부당이득반환채권 또는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 손해배상채권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수동채권의 형식적 발생원인이 불법행위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고의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과 동일하다고 평가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추적용할 수 있다.
4. 청구권이 경합하는 경우에는 상계금지 법리가 유추적용될 수 있다
하나의 고의적 불법행위가 동시에 채무불이행을 구성하여 다음 두 손해배상채권이 경합하는 경우가 있다.
-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
-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
피해자가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채권을 선택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상계를 허용하면, 고의의 불법행위 피해자를 현실적으로 보호하려는 민법 제496조의 목적이 무력화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고의적 불법행위가 부당이득의 원인도 되어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과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경합하는 경우에도 상계금지 법리가 유추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서로 다른 청구권이 동일한 행위 또는 원인에 기초하고, 그 급부를 통해 실현하려는 경제적 이익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5. 계약상 대여금채권은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과 다르다
상대방의 기망으로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더라도 피해자가 계약을 취소하지 않고 유효한 계약에 기초하여 대여금 반환을 청구하는 경우, 대여금채권은 기망행위로 발생한 권리가 아니다.
대여금채권은 당사자 사이에 체결된 소비대차계약에 기초하여 발생한다.
또한 계약상 대여금채권과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실현하려는 경제적 이익이 동일하여 서로 경합하는 관계라고 보기도 어렵다.
- 대여금채권은 유효한 소비대차계약에 따라 대여원금과 약정이자의 반환을 구하는 권리이다.
-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은 기망행위로 발생한 손해의 전보를 구하는 권리이다.
- 약정이자, 지연손해금, 소멸시효 및 항변관계 등에서도 양자의 법적 성질과 범위가 다르다.
따라서 기망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계약상 대여금채권을 고의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6. 피해자가 계약상 청구를 선택하면 그에 따른 법적 효과도 받아들여야 한다
피해자는 기망으로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한 경우 사기취소 후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거나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을 유효한 것으로 유지하면서 약정이자 등 계약상 이익을 포함한 대여금 반환을 청구하였다면, 그 청구는 계약상 채권으로서의 법적 성질을 갖는다.
계약상 청구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고의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에만 적용되는 상계금지의 보호까지 받을 수는 없다.
7. 이 사건에 대한 적용
원고는 피고의 기망행위로 돈을 대여하였지만, 이 사건에서 불법행위 손해배상이나 계약취소에 따른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지 않았다.
원고는 소비대차계약이 유효함을 전제로 잔존 대여금과 약정이자 또는 지연손해금을 청구하였다.
따라서 원고의 대여금채권은 고의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이 아니며, 실질적으로 그와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
대법원은 원고의 대여금채권에 민법 제496조를 유추적용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상계항변이 허용된다고 판단하였다.
결론
대법원은 상대방의 기망으로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더라도 피해자가 계약상 대여금채권을 청구한 경우에는 민법 제496조의 상계금지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피고의 상계항변을 받아들인 원심판결을 정당하다고 보아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도 원고가 부담하도록 하였다.
이 판결은 고의의 불법행위와 관련된 금전거래에서도 피해자가 선택한 청구권의 법적 성질에 따라 상계 허용 여부가 달라진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피해자가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 대신 계약상 이행청구를 선택하는 경우 약정이자 등 계약상 이익을 청구할 수 있지만, 민법 제496조의 상계금지 보호는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