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번호
원심판결
관련판례
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8다248626 전원합의체 판결은 공동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판시하였다. 다만 변경된 법리는 판결 선고 이후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은 공동상속인 사이에 제사주재자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적장자가 우선한다고 보았으나, 위 2018다248626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그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되었다.
관련법령
민법 제751조는 타인의 신체·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을 가한 사람은 재산 이외의 손해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민법 제1008조의3는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이 승계한다고 규정한다.
사실관계
이 사건에는 원고의 조부모, 부친 및 부친의 첫 번째 배우자 등 모두 4명의 분묘가 있었다.
원고의 부친은 첫 번째 배우자와 사이에 장남과 차남을 두었고, 두 번째 배우자와 사이에 원고를 포함한 자녀들을 두었다. 이 사건 분묘의 제사주재자는 원고가 아니라 첫째 집안의 장남의 아들이자 종손이었다.
소외인과 피고 2는 분묘가 있던 임야를 개발할 목적으로 2018. 7. 23. 종손으로부터 묘지이장 이행각서를 받았다. 이행각서에는 임야 소유자가 분묘를 이장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소외인과 피고 2는 2018. 10. 3. 이 사건 분묘들을 파헤치고 그 안에 안치된 망인 4명의 유골을 꺼냈다. 이들은 각 유골을 구분하여 수습·이장하지 않고 한꺼번에 양철통에 담은 다음 가스분사기로 불에 태웠다. 이후 타고 남은 유골을 분묘 입구 쪽 땅에 함께 묻었다.
이러한 처리로 유골 일부가 소실되고 서로 혼재되어 어느 유골이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는 불가역적인 손상이 발생하였다.
소외인은 2019. 9. 5. 사망하였고, 그 모친인 피고 1이 소외인의 재산을 단독상속하였다. 피고 2는 2020. 5. 28. 분묘발굴유골손괴죄 및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그 판결은 확정되었다.
원고는 망인들의 자녀 또는 손자녀로서 평소 분묘를 벌초하고 제사를 봉행하는 등 분묘를 실질적으로 관리해 왔다. 반면 법률상 제사주재자인 종손이 실제로 분묘를 관리하였다는 사정은 확인되지 않았다.
원고는 피고들을 상대로 묘지조성비와 대체묘지 구입비 및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등을 합하여 82,180,000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이 사건 분묘에 관한 관리처분권은 제사주재자에게 전속되고, 이 사건의 제사주재자는 원고가 아니라 종손이라고 판단하였다.
원심은 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8다248626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사주재자의 결정기준을 변경하였지만, 새로운 법리는 그 판결 선고 이후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보았다.
이 사건에서 제사용 재산의 승계는 위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전에 이루어졌으므로 종전 법리에 따라 종손이 제사주재자이고, 원고에게는 분묘에 관한 관리처분권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원고가 제사주재자가 아닌 이상 분묘와 유골 훼손으로 인한 손해가 원고에게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묘지조성비·대체묘지 구입비와 위자료를 포함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법리
분묘와 유골을 관리·처분할 수 있는 권한과 분묘 발굴 또는 유골 훼손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구별하여야 한다.
분묘를 설치·관리하거나 이장하고 유골을 처분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은 원칙적으로 제사주재자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분묘의 훼손으로 묘지조성비나 대체묘지 구입비 등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도 원칙적으로 관리처분권자인 제사주재자이다.
그러나 분묘 발굴이나 유체·유골 훼손으로 침해되는 법익은 분묘에 관한 관리처분권에 한정되지 않는다. 망인을 추모하고 유골의 존엄한 보존을 바라는 가까운 친족의 추모감정도 독자적인 인격적 법익으로 보호될 수 있다.
따라서 분묘 발굴이나 유골 훼손 행위가 특정인의 추모감정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여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였다면, 그 사람은 제사주재자가 아니더라도 민법 제751조에 따라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추모감정 등 인격적 법익의 침해 여부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 분묘 발굴 또는 유골 처리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 분묘 발굴 및 유골 처리 방법이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지
- 위자료를 청구하는 사람과 망인 사이의 친족관계
- 망인과 청구인 사이의 생전 생활관계
- 청구인의 평소 분묘 관리 및 제사 봉행 상황
- 분묘 및 유골의 손상 정도와 회복 가능성
따라서 제사주재자가 분묘 이장에 동의하였다는 사정은 분묘 발굴의 권한 유무와 관련될 수 있지만,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방법으로 유골을 훼손한 행위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로 인해 다른 가까운 친족의 추모감정이 침해되었는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고가 제사주재자가 아니므로 분묘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이에 따라 분묘의 관리처분권을 전제로 하는 묘지조성비와 대체묘지 구입비 상당의 재산적 손해가 원고에게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본 원심판단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위자료청구까지 원고가 제사주재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한 원심판단은 잘못이라고 보았다.
이 사건 분묘에 안치된 망인 중 한 명은 원고의 부친이고, 두 명은 원고의 조부모였다. 원고는 평소 분묘를 벌초하고 제사를 봉행하는 등 분묘를 실질적으로 관리하였다. 반면 제사주재자인 종손이 분묘를 실제 관리하였다는 사정은 드러나지 않았다.
소외인과 피고 2가 임야 개발을 목적으로 제사주재자에게서 묘지이장 이행각서를 받았더라도, 유골을 개별적으로 수습·이장하지 않고 4구의 유골을 한꺼번에 양철통에 담아 불로 태운 뒤 땅에 묻은 행위는 통상적인 이장 방법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이로써 망인들의 유골이 소실되거나 서로 뒤섞여 구분할 수 없게 되는 불가역적인 손상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유골 처리 방식은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를 명백히 벗어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원고는 망인들의 자녀 또는 손자녀이자 분묘를 실제로 관리해 온 사람으로서, 유골 훼손으로 추모감정 등 인격적 법익이 침해되어 정신적 고통을 입었고 피고들에게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였다.
원심은 유골 훼손의 경위와 방법, 원고와 망인들의 관계, 원고의 분묘 관리상황 및 유골의 훼손 정도 등을 심리하여 원고의 인격적 법익이 침해되었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원고가 제사주재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위자료청구권까지 부정하였으므로, 유골 훼손에 따른 위자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결론
분묘의 관리처분권과 그 침해로 인한 재산적 손해배상청구권은 원칙적으로 제사주재자에게 귀속한다. 따라서 제사주재자가 아닌 원고는 묘지조성비와 대체묘지 구입비를 청구할 수 없다.
그러나 분묘 발굴이나 유골 훼손으로 인한 위자료청구권은 제사주재자에게만 인정되는 권리가 아니다. 망인과의 친족관계, 생전 관계, 분묘 관리상황 및 유골 훼손의 방법과 정도 등에 비추어 추모감정 등 인격적 법익이 침해되었다면 제사주재자가 아닌 후손도 독자적으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위자료청구 부분을 파기하여 춘천지방법원에 환송하고, 묘지조성비와 대체묘지 구입비 등 나머지 재산상 손해에 관한 상고는 기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