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존 회사를 이용한 채무회피와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

핵심 결론 개인의 채무를 그가 지배하는 회사에 부담시키는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은 기존 회사가 이용된 경우에도 가능하다. 그러나 회사 지배나 재산의 개인적 사용만으로는 부족하고, 채무 발생 또는 강제집행 회피와 법인격 이용 사이의 구체적인 관련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22다276703

판례번호

대법원 2023. 2. 2. 선고 2022다276703 판결【대여금】
제1심: 대구지방법원 2020. 12. 18. 선고 2018가단117651 판결
환송 전 항소심: 대구지방법원 2022. 9. 2. 선고 2021나301570 판결
대법원: 원심판결 파기·환송
파기환송심: 대구지방법원 2024. 2. 8. 선고 2023나302348 판결

관련 규정

민법 제2조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를 규정합니다. 법인격 부인론은 회사의 독립된 법인격을 인정하는 것이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이 규정을 근거로 적용됩니다.
상법 제169조에 따라 회사는 독립된 법인격을 가지므로 회사와 주주·대표이사는 원칙적으로 별개의 권리주체입니다.
상법 제520조의2는 휴면회사의 해산간주와 회사계속에 관하여 규정합니다. 해산간주등기가 이루어졌다는 사정만으로 회사의 법인격이 당연히 형해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법 제538조는 청산 중인 회사의 잔여재산 분배에 관하여 규정합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66조는 면책결정이 확정되면 채무자가 원칙적으로 파산채권에 대한 책임을 면한다고 규정합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57조는 면책절차 중 강제집행의 중지 및 면책결정 확정에 따른 집행절차의 실효를 규정합니다.

사실관계

피고 회사는 2003년 4월 부동산 중개업과 임대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당시 주식은 개인 채무자 G의 형이 80%, 다른 두 사람이 각 10%를 보유하였고, 이후 10%의 주식이 G의 배우자에게 이전되었습니다.
피고 회사는 2004년 2월 임의경매절차에서 토지와 그 지상 건물을 매수하여 소유권을 취득하였습니다. 이 부동산은 피고 회사의 사실상 유일한 재산이었습니다.
원고는 그로부터 2년 이상이 지난 2006년 7월과 11월 G에게 합계 1억 2,000만 원을 대여하였습니다. 당시 원고는 G 아들 소유의 인접 부동산에 원고 배우자 명의로 소유권이전청구권가등기를 마쳐 담보를 제공받았습니다.
담보 부동산에 대한 경매절차에서 원고 배우자는 2008년 10월 약 5,239만 원을 배당받았습니다. 원고는 나머지 채권에 관하여 G를 상대로 지급명령을 신청하였고, 2009년 1월 G가 원고에게 1억 64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지급명령이 확정되었습니다.
한편 G는 2006년 10월부터 피고 회사 소유 부동산에 무상으로 거주하였고, 2011년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로, 2017년에는 대표청산인으로 취임하였습니다. 피고 회사는 2009년 해산간주되었다가 회사계속등기를 하였고, 2017년 다시 해산간주되었습니다.
원고는 G가 피고 회사를 실질적으로 설립·지배하면서 회사 소유 부동산을 자신의 재산처럼 사용하였으므로, 피고 회사가 G의 개인 대여금채무를 변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환송 전 항소심의 판단
환송 전 항소심은 피고 회사의 형식상 주주들이 G의 형, 배우자 및 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이 주금을 납입하거나 회사 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시하였습니다.
또한 G가 피고 회사의 유일한 부동산에 장기간 무상으로 거주하고, 회사의 세금을 개인 자금으로 납부하는 등 회사 재산과 개인 재산을 혼용하였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환송 전 항소심은 피고 회사가 G의 개인기업과 다르지 않고, G가 자신의 채무와 강제집행을 회피하기 위해 회사의 법인격을 이용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결과 법인격 부인론을 역으로 적용하여 피고 회사가 G의 대여금채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의 법리

1.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통상적인 법인격 부인론은 회사의 채무에 관하여 그 배후의 주주나 지배자에게 책임을 부담시키는 법리입니다.
반면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은 개인의 채무에 관하여 그 개인이 지배하는 회사에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개인이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고, 회사와 개인을 별개의 인격체로 인정하여 개인의 채무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경우에는 개인 채무의 이행을 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 새로 설립한 회사뿐 아니라 기존 회사의 남용에도 적용된다

개인이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새 회사를 설립한 경우뿐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회사를 채무면탈 수단으로 이용한 경우에도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이 가능합니다.
기존 회사가 이용된 경우에는 다음 두 가지 유형이 문제 됩니다.
첫째, 회사가 이름뿐이고 실질적으로 개인기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법인격이 형해화된 경우입니다.
둘째, 회사가 독립된 실체를 일부 유지하고 있더라도 개인이 회사의 법인격을 채무면탈이나 강제집행 회피의 수단으로 남용한 경우입니다.

3. 형해화와 남용의 판단 기준시점은 구별된다

회사의 법인격이 형해화되었는지는 원칙적으로 문제가 된 법률행위나 사실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법인격이 완전히 형해화되지는 않았지만 개인이 회사의 법인격을 남용하였는지가 문제 되는 경우에는 채무면탈 등 구체적인 남용행위를 한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따라서 채무 발생 이후에 개인이 회사를 지배하거나 회사 재산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그보다 앞서 발생한 개인 채무를 회사에 부담시킬 수는 없습니다.

4. 실질적 지배와 재산의 개인적 사용만으로는 부족하다

G가 피고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회사 소유 부동산에 무상으로 거주한 사실은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고 회사의 법인격이 무시될 정도로 형해화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피고 회사는 설립 후 여러 부동산 경매와 공매에 참가하였고, 아파트를 최고가매수인으로 매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부동산 중개업과 임대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의 사업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이었습니다.
따라서 피고 회사가 처음부터 아무런 독립적인 사업활동 없이 오로지 G의 재산은닉만을 위하여 존재한 회사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5. 회사의 부동산 취득과 개인 채무 사이의 시간적 관련성이 없었다

피고 회사가 부동산을 취득한 때는 2004년 2월이고, G가 원고에게 돈을 차용한 것은 2006년 7월과 11월이었습니다.
회사의 부동산 취득이 대여금채무 발생보다 2년 이상 앞서 있었으므로, G가 원고에 대한 채무나 장래의 강제집행을 회피하기 위해 회사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하였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경매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각대금을 실제 부담한 사람이 아니라 경매절차에서 매수인이 된 명의자가 취득합니다. G가 자신의 자금으로 매각대금을 부담하였다는 증거도 없었으므로, 회사 명의의 부동산을 G의 실질적 소유재산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었습니다.

6. 대여 당시 별도의 담보가 제공되었다

G는 원고에게 돈을 빌리면서 아들 소유 부동산에 가등기를 설정해 주었고, 원고 측은 실제 경매절차에서 약 5,239만 원을 배당받았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G가 차용 당시부터 피고 회사를 이용하여 대여금채무와 강제집행을 회피하려 했다는 주장과 양립하기 어려웠습니다.
대법원은 결국 피고 회사의 법인격이 형해화되었거나 G가 원고에 대한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회사의 법인격을 남용하였다고 볼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환송 전 항소심판결을 파기하였습니다.

파기환송심의 판단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G가 피고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고 회사 소유 부동산을 장기간 무상으로 사용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피고 회사는 부동산 경매와 공매에 참여하는 등 사업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회사의 부동산 취득은 원고의 대여보다 2년 이상 앞서 있었고, G가 그 매수자금을 부담했다는 증거도 없었습니다.
G는 대여 당시 별도의 부동산 담보를 제공하였고 원고 측이 상당 금액을 실제 배당받았습니다. 따라서 차용 당시부터 채무면탈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피고 회사가 그 후 영업활동을 하지 않았거나 청산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사정도, 그보다 앞선 대여금채무에 관하여 법인격 남용을 인정할 근거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파기환송심에서 추가로 문제 된 예비적 청구
원고는 예비적으로 G가 실질적으로 소유한다는 피고 회사 주식 8,000주에 관하여 G 명의로 명의개서를 하고, 그 주식에 따른 잔여재산분배금 범위에서 추심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하였습니다.
그러나 G는 소송 중 파산 및 면책결정을 받았고, 그 면책결정은 항고와 재항고가 모두 기각되어 확정되었습니다. 이 사건 대여금채권도 파산채권자목록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파기환송심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첫째, 채권자대위권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행사할 수 있는 피보전채권이 존재해야 합니다. G에 대한 면책결정이 확정되어 원고가 G에게 대여금채권의 이행을 강제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그 채권을 피보전채권으로 하여 G를 대위해 주식 명의개서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명의개서청구 부분은 부적법하여 각하되었습니다.
둘째, 면책결정이 확정되면 면책절차로 중지된 파산채권에 기한 강제집행은 효력을 잃습니다. 이에 따라 원고가 G의 피고 회사에 대한 청산금채권에 관하여 받아 둔 압류 및 추심명령도 효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원고는 추심권능을 상실하였으므로 추심금청구 부분도 부적법하여 각하되었습니다.

결론

대법원 판결과 파기환송심 판결을 종합하면, 개인이 기존 회사를 지배하고 그 재산을 개인적으로 이용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개인 채무를 회사에 부담시킬 수는 없습니다.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을 위해서는 개인과 회사 사이의 사실상 동일성뿐 아니라 다음 사항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책임재산이 정당한 대가 없이 회사로 이전되었는지, 그 이전이 채무 발생이나 강제집행 회피와 시간적·인과적으로 관련되어 있는지, 회사가 독립적인 사업활동을 하지 않고 개인의 재산도피 수단으로만 이용되었는지, 채무자가 해당 채무를 면탈하려는 의도로 회사의 법인격을 이용하였는지가 핵심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회사의 부동산 취득이 개인의 채무 발생보다 2년 이상 앞섰고, 회사가 실제로 부동산 관련 사업활동을 하였으며, 대여 당시 별도의 담보까지 제공되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회사 지배 및 무상사용에도 불구하고 채무면탈을 위한 법인격 남용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파기환송심은 이에 따라 회사에 대여금 지급책임을 묻는 주위적 청구를 기각하고, 개인 채무자의 면책결정 확정으로 피보전채권과 추심권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의개서 및 추심금에 관한 예비적 청구를 모두 각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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