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인의 의혹 제기도 근거 없는 구체적 허위사실이면 명예훼손 책임이 성립한다

핵심 결론 정치적 발언은 과장 표현이 폭넓게 허용되지만, 객관적 근거 없이 구체적 사실을 단정하고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도 없다면 명예훼손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22다242649, 2000다14613, 2014다61654, 2009다52649, 2010다60950, 2004다69291, 2005다40907

판결번호

대법원 2025. 6. 26. 선고 2022다242649 판결
사건명: 손해배상(기)
재판 결과: 일부 파기환송, 나머지 상고기각

원심판결

서울남부지방법원 2022. 5. 19. 선고 2021나66669 판결

관련 판례

사실의 적시와 의견 표명을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와 문맥을 기준으로 사실 적시 여부와 명예훼손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구체화되지 않은 의혹의 허위성을 증명하는 경우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이를 뒷받침할 소명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자료를 제시하면 상대방은 그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정당의 정치적 주장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손해배상책임을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였다.
공공의 이해와 관련된 정치적 비판에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하였다.

관련 법령

사실관계

  • 원고는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된 사람이다.
  • 피고는 당시 국회의원으로서 국회 위원회 위원과 소속 정당의 관련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었다.
  • 피고는 2016년 11월 24일부터 2019년 6월 6일까지 방송·라디오·강연 등에 출연하여 원고의 해외 은닉재산과 자금세탁 의혹에 관해 총 10차례 발언하였다.
주요 발언은 다음과 같다.
  • 독일 검찰에 따르면 원고 일가의 은닉재산이 수조 원이고 원고와 관련된 수백 개의 페이퍼컴퍼니가 독일에 생겼다가 없어졌다는 발언
  • 원고의 재산이 특별검사가 발표한 200억 원의 100배 정도일 수 있다는 발언
  • 스위스 비밀계좌에 들어온 국내 기업의 돈이 원고와 연관되어 있다는 정황을 발견했다는 발언
  • 원고와 관련된 페이퍼컴퍼니가 약 500개 확인되었다는 발언
  • 원고의 재산이 전직 대통령의 통치자금에서 비롯되어 원고 일가에게 승계되었다는 발언
  • 독일 검찰이 원고의 재산 또는 돈세탁 규모를 수조 원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발언
  • 원고가 미국 기업 회장을 만났고 사드와 관련하여 거액의 이익이나 커미션을 취했다는 취지의 발언
  • 원고는 피고의 발언이 모두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핵심쟁점

  • 피고의 발언이 사실의 적시인지 단순한 의견이나 정치적 논평인지
  • 특정되지 않은 시기와 장소에서 발생하였다는 의혹의 허위성을 피해자가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 정치인의 공익적 의혹 제기에는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보다 넓은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는지
  • 제보의 존재와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별도의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경우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는지

법리

1. 사실 적시와 의견 표명의 구별

민법상 명예훼손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품성·명성·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관한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순수한 의견이나 논평은 그 자체만으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의견 형식을 취했더라도 그 배경에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초 사실이 묵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
사실 적시와 의견 표명은 다음 요소를 종합하여 구별한다.
  •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 발언 전후의 문맥과 전체적인 흐름
  • 일반 청중의 평균적인 지식과 경험
  • 표현 내용의 진위가 객관적으로 판별될 수 있는지

2. 구체화되지 않은 의혹의 증명책임

누군가 특정되지 않은 시기와 장소에서 비위행위를 하였다는 의혹은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기 어렵다.
이 경우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한 사람이 그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피해자는 그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을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의혹 제기자가 아무런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피해자에게 사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완전한 증명을 요구할 수 없다.

3. 정치적 표현의 특수성

정치인은 국민의 관심사와 공공의 이해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단정적이거나 수사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국민도 구체적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치적 발언을 객관적 진실이라기보다 정치공세나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치적 주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황의 뒷받침 없이 악의적으로 이루어졌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손해배상책임을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치인의 발언이라는 이유만으로 확인되지 않은 구체적인 사실을 단정적으로 적시하는 것까지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4. 위법성이 조각되기 위한 요건

적시한 사실이 진실하거나, 설령 진실로 증명되지 않더라도 발언자가 이를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발언이라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다음 사정을 고려한다.
  • 제보자의 신원과 제보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되는지
  • 제보의 신빙성을 검증하였는지
  • 객관적인 자료와 관계자 확인을 거쳤는지
  • 발언 내용의 구체성과 사회적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 의혹을 가능성으로 제시했는지 확정적 사실처럼 단정했는지
각 발언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

1. 정치적 의견 또는 허용될 수 있는 과장 표현

대법원은 다음 발언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 원고의 재산이 특별검사가 발표한 200억 원의 100배 정도일 수 있다는 발언
이 발언은 “자신은 그 정도로 추정한다.”라는 표현과 전체 문맥에 비추어 특별검사의 조사가 부족했다는 의견이나 의혹 제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 원고의 은닉재산이 수조 원에 이르고 페이퍼컴퍼니가 수백 개 존재한다는 발언
이 발언들은 구체적 사실을 적시한 것이고 허위라고 볼 여지가 크지만, 당시 원고의 국정 개입과 해외재산 은닉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피고도 실제 독일을 방문해 검사들을 면담하고 관련 회사를 추적하였으며, 유사한 내용의 언론보도도 있었다. 대법원은 정치적 의혹 제기 과정에서 수사적으로 과장된 표현으로 용인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 전직 대통령의 통치자금이 원고 일가에 승계되었다는 발언
전체적인 문맥상 재산형성 과정과 은닉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정치적 의견에 가깝고, 청중도 이를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보다는 정치적 주장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이러한 발언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2. 명예훼손 책임이 문제되는 구체적인 허위사실

대법원은 다음 두 발언에 관해서는 위법성이 조각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 2017년 6월 28일 발언
“최근 스위스 비밀계좌에 들어온 국내 기업의 돈이 원고와 연관되어 있다.”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는 원고가 특정 기업의 자금과 스위스 비밀계좌를 통해 관련되어 있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한 것이다.
피고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제보자의 신원, 제보 내용 및 제보의 존재 자체를 확인할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고, 별도로 사실관계를 확인한 자료도 없었다.
  • 2016년 11월 24일 발언
원고가 미국 기업 회장을 만났고 사드와 관련하여 거액의 커미션이나 이익을 취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는 원고가 특정 인물을 만나 사드 도입과 관련한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는 구체적인 기초 사실을 포함한 표현이다.
피고가 주장한 제보자는 특정되지 않았고, 제보 이외에 객관적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고는 단순한 의혹 제기가 아니라 사실을 확정하는 것과 같은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대법원은 이 두 발언이 정치적 주장임을 고려하더라도 허위사실의 적시에 해당하고, 피고가 이를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도 없으며,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피고가 제출한 자료만으로 각 발언이 진실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그러나 피고가 독일 검사와 면담하고 현지 조사를 하였으며 관련 제보를 토대로 발언한 것으로 보이는 점, 발언이 은닉재산 조사와 환수를 촉구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점 등을 들어 10개 발언 전부에 위법성조각사유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모두 배척하였다.

결론

대법원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대부분의 발언에 관한 원심의 결론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다음 두 발언에 관해서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구체적인 허위사실을 단정적으로 적시한 것으로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 2017년 6월 28일 스위스 비밀계좌와 국내 기업 자금의 관련성에 관한 발언
  • 2016년 11월 24일 미국 기업 회장과의 만남 및 사드 관련 이익 취득에 관한 발언
대법원은 이 두 발언에 관한 손해배상책임과 배상범위를 다시 심리하도록 사건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환송하고, 나머지 발언에 대한 원고의 상고는 기각하였다.

판결의 의미

이 판결은 정치인의 공익적 의혹 제기에 일반적인 표현보다 넓은 보호영역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명확히 하였다.
정치적 논평이나 수사적 과장은 구체적 정황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악의적 공격이 아니라면 폭넓게 허용된다. 반면 제보의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고 객관적 검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계좌·기업·인물·커미션 등을 구체적으로 단정하면 정치적 발언이라도 명예훼손 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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