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혼 후 제기한 혼인무효 확인의 소와 확인의 이익

핵심 결론 이혼 후에도 무효인 혼인과 이혼의 법적 효과가 다르고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등 실익이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과거 혼인의 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20므15896

판결번호

대법원 2024. 5. 23. 선고 2020므15896 전원합의체 판결

원심판결

서울가정법원 2020. 11. 27. 선고 2020르31402 판결

제1심판결

서울가정법원 2020. 5. 29. 선고 2019드단73952 판결

관련판례

관련법령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2001년 12월 3일 혼인신고를 하였고, 슬하에 자녀 한 명을 두었다.
원고는 2003년 11월 24일 피고를 상대로 이혼 및 위자료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소송계속 중이던 2004년 9월 16일 당사자 사이에 이혼 조정이 성립하였고, 2004년 10월 28일 이혼신고가 이루어졌다.
원고는 이혼 후 약 15년이 지난 2019년 11월 11일 피고를 상대로 다음과 같은 소를 제기하였다.
  • 주위적으로 원고와 피고 사이의 혼인이 무효임을 확인한다.
  • 예비적으로 원고와 피고 사이의 혼인을 취소한다.
원고는 혼인 당시 실질적인 혼인의사가 없었거나 강박 등에 따라 혼인신고에 이르렀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혼인무효 사유가 실제로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이미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된 상태에서 과거 혼인의 무효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지였다.

제1심의 판단

제1심은 원고의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에 관한 소를 모두 각하하였다.
주위적 혼인무효 확인청구에 대해서는 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에 따라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 혼인관계는 이미 이혼신고로 해소되었다.
  • 혼인무효 확인은 과거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에 불과하다.
  • 혼인무효 확인이 원고의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준다고 볼 자료가 없다.
  • 따라서 혼인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없다.
예비적 혼인취소청구에 대해서도 혼인관계가 이미 이혼으로 해소되었으므로 혼인을 취소할 소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제1심판결의 이유를 인용하면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원고는 가족관계등록부에 혼인 및 이혼 경력이 남아 있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미혼모가족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불이익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원심은 이러한 사정이 원고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결국 이혼으로 해소된 혼인의 무효 확인은 과거 법률관계에 관한 확인에 불과하고, 원고가 현재의 구체적인 법률관계를 제시하지 못하였으므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보았다.
법리 / 대법원의 판단

1. 과거의 법률관계도 예외적으로 확인의 대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확인의 소는 현재의 권리 또는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하므로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해서는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법률관계가 당사자 사이의 현재 또는 잠재적 분쟁의 전제가 되고, 과거 법률관계 자체를 확인하는 것이 여러 관련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이라면 예외적으로 확인의 이익이 인정된다.

2. 혼인관계는 다수의 법률관계가 형성되는 기초적 신분관계이다

혼인관계는 단순한 사실관계가 아니라 다양한 법률관계의 기초가 되는 신분관계이다.
혼인을 전제로 형성된 각각의 법률관계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효력 여부를 다투게 하는 것보다, 그 전제가 되는 혼인 자체의 무효를 확인하는 것이 분쟁을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되어 과거의 법률관계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혼인무효 확인의 이익을 일률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

3.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다르다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이혼은 유효하게 성립한 혼인을 장래를 향하여 해소한다.
이러한 차이에 따라 혼인무효와 이혼은 다음과 같은 법률관계에서 서로 다른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민법 제809조 제2항은 인척이거나 인척이었던 사람 사이의 혼인을 금지한다. 혼인이 처음부터 무효라면 원칙적으로 인척관계 자체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이 규정의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형법 제328조 제1항은 일정한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에 대하여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를 규정한다. 혼인이 무효라면 혼인을 전제로 한 친족관계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으므로 친족상도례의 적용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
민법 제832조은 부부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한 경우 다른 일방이 연대책임을 부담하도록 규정한다. 이혼은 장래효만 있으므로 이혼 전에 발생한 일상가사채무는 존속할 수 있지만, 혼인무효가 확정되면 혼인을 전제로 한 책임의 성립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혼인이 무효인지, 유효한 혼인이 이혼으로 해소된 것인지는 이혼 이후에도 실질적인 법적 차이를 가진다.

4. 혼인무효 판결의 효력은 제3자에게도 미친다

가사소송법 제21조 제1항에 따라 혼인무효 판결의 효력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미친다.
따라서 혼인무효 확인은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다수의 법률관계에 관하여 당사자와 제3자 사이의 분쟁을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는 혼인무효 확인의 소가 단순히 과거의 명예나 감정적 만족을 위한 소송에 그치지 않는 이유이다.

5. 가사소송법은 혼인관계가 사망으로 해소된 뒤에도 혼인무효소송을 허용한다

가사소송법 제24조 제1항은 부부 일방이 혼인무효 등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배우자를 상대방으로 하도록 규정한다.
가사소송법 제24조 제2항은 제3자가 소를 제기하는 경우 부부를 상대방으로 하고, 부부 중 한쪽이 사망한 경우 생존자를 상대방으로 하도록 규정한다.
가사소송법 제24조 제3항은 상대방이 될 사람이 사망한 경우 검사를 상대방으로 하도록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은 사망으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된 경우에도 혼인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된 경우에만 과거 법률관계라는 이유로 확인의 이익을 일률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가사소송법의 체계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6. 협의파양 후 입양무효 확인을 인정한 법리와도 일치한다

대법원 1995. 9. 29. 선고 94므1553, 1560 판결은 협의파양으로 양친자관계가 이미 해소된 후 제기된 입양무효 확인의 소에 관하여 확인의 이익을 인정하였다.
입양이 당사자 사이의 모든 분쟁의 근원이 되는 기초적 신분관계이므로, 입양의 효력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거나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리는 이혼으로 혼인이 해소된 후 제기된 혼인무효 확인의 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7.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위해서도 혼인무효 판결이 필요하다

혼인무효 판결이 확정되면 당사자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07조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을 신청할 수 있다.
혼인무효 사유가 한쪽 당사자나 제3자의 범죄행위로 발생한 경우에는 가족관계등록부를 재작성할 수 있고, 그 밖의 경우에는 무효인 혼인 기록에 말소 내용과 사유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정정할 수 있다.
따라서 혼인무효 확인의 소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에 필요한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하고,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 기재로 인한 현재의 법적 불안이나 위험을 제거하는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이다.

8. 구체적인 현재 법률관계를 개별적으로 제시할 필요는 없다

원심은 원고가 혼인무효 확인으로 영향을 받는 현재의 구체적인 법률관계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확인의 이익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혼인관계 자체가 다수의 법률관계를 형성하는 기초적 신분관계이고 혼인무효 확인이 관련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으므로, 원고가 현재 영향을 받고 있는 개별적인 권리·의무를 일일이 특정하지 않더라도 확인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9. 국민의 실질적인 권리구제를 보장해야 한다

가족관계등록부의 잘못된 혼인 기록을 단순한 불명예나 사실상의 불이익에 불과하다고 보아 확인의 이익을 부정하면, 당사자는 혼인무효 사유에 관하여 법원의 판단을 받을 방법을 잃을 수 있다.
대법원은 재판청구가 있는 이상 법원이 가능한 범위에서 분쟁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국민의 권리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확인의 이익을 인정하는 근거로 들었다.
판례의 변경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한 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 등을 이 전원합의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하였다.
혼인하였다가 이혼한 것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정만으로는 현재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고, 이혼으로 해소된 혼인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므로 확인의 이익이 없다.
변경된 법리에 따르면,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된 이후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혼인무효 확인의 이익이 인정된다.

결론

대법원은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된 후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과거 혼인의 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주위적 혼인무효 확인청구를 각하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주위적 청구와 불가분적으로 결합된 예비적 혼인취소청구 부분도 함께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제1심판결까지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환송하였다.
따라서 환송 후 제1심법원은 소의 이익을 인정한 상태에서 원고가 주장하는 혼인의사의 부존재 등 민법 제815조의 혼인무효 사유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본안에서 심리하여야 한다.
이 판결은 혼인의 무효를 최종적으로 인정한 판결이 아니라, 이혼 후에도 혼인무효 여부에 관한 본안판단을 받을 수 있다고 선언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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